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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방에서 찾은 법열(法悅) 1
정휴는 물어물어 지함의 맏형인
지번(之蕃)의가회동 집을 찾아갔다.
열네 살에 아버지 치(穉)를잃고
열여섯 살에 어머니 김 씨를 잃은 지함은
맏형지번을 부모처럼 따랐다.
학문도 그에게서 배웠고
신변 대소사도 모두 지번과 의논하였다.
정휴는 지번의 집이 커다란 양반가일 거라고
상상했었으나,
이조에 출입하는 정3품부제조(副提調)의 집치곤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정휴는 문을 두드려 지함을 찾았다.
그러나안에서는
지금 계시지 않다는 대답만 들려올 뿐
문이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정휴는 다시 문을 두드리면서 큰소리로외쳤다.
"이보시오. 나는 홍성에서
지함 도련님과 알고지내던 사람이오.
지금 안 계시다면 말씀이라도전해주시오."
그러자 대문이 열리면서 하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뉘신가 했더니..."
문을 여는 하인은
옛적 홍성에서부터 낯이 익은사이였다.
정휴가 홍성 지함의 집을 처음 찾았을 때
문전박대했던 바로 그 하인이었다.
"그래 어디를 가셨다는 건가요?
어째 이리 집안이조용한가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셨군요.
지금 제 목숨이붙어 있는 것만도 천행이올시다."
"어서 말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말인가요?"
하인은 대문을 얼른 닫아걸고는
내당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는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 집안이 지금 풍비박산 났습니다."
"뭐라고요?"
"안명세 도련님 아시지요?
우리 도련님하고 맨날붙어다니던
그 도련님 말이우."
"알고 말고요."
"그이가 참수를 당했습니다."
"예에?"
"그뿐만 아니라
그 댁 사람들은 모조리 주륙을당했습니다.
내당 마님과 민이 아가씨만 간신히목숨을 건졌는데
, 어디론가 종으로 끌려갔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우리 큰서방님도
금부도사가들이닥쳐 잡아갔습지요.
그러더니 벼슬도 빼앗기고
몇달이나 집 안에 갇혀 있다가
얼마 전에야 자유로운몸이 되었습니다.
또 무슨 화가 미칠지 몰라서
큰서방님은 마님과 산해 아드님을 데리고
홍성집으로내려가셨습니다."
"지함 형님은요?"
"혼사를 눈앞에 두고
친구 잃고 혼약한 아가씨마저잃었으니
정신이 온전할 리가 있나요.
연일술타령이랍니다."
"그래,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인은 대문을 성큼 나서며 정휴에게 따라오라고했다.
한참 길을 가던 하인이 문득 정휴를 돌아보면서
아래위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제사 승복을 한정휴의 차림이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그동안 어디 계셨길래
이 엄청난 소식도 듣지못했단 말씀이오?"
"산중에 있었소."
"하필 이런 어수선한 세상에 출가를 하시다니.
하기야 어수선하니까 출가한다지만,
지나가는 중붙잡아 흠씬 때려줘도
나무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에
하필 그 천한 중노릇을."
하기사 하인들도 알 만큼 중의 지위는 형편없었다.
정휴는 하인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지번 집의 하인과 함께 들어선 청진동 골목길에는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어디선가 애조띤가야금 소리가 흘러나왔다.
간혹 젊은 처녀들의간드러진 노랫가락이
담을 넘어 길까지 흘러나왔다.
"안 선비님이 끔찍하게 돌아가시고 나서
도련님이완전히 달라지셨다오.
게다가 민이 아가씨마저
어디서어떤 수모를 받으며
종살이를 하고 계신지 모르니
오죽 하실려구요.
벌써 몇 달째 기방에서 살다시피하신다오."
정휴가 붙잡을 새도 없이
하인은 어느 집 대문으로불쑥 들어가버렸다.
정휴는 문간에 멈칫 섰다.
그 집에서 처녀들의
간들간들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안으로 들어갔던 하인이 다시 나왔다.
"들어오시랍니다."
그 말만을 남기고 하인은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온갖 감미로운 소리를 음미하듯
천천히 어둠 속으로사라져갔다.
한동안 망설이던 정휴는
이윽고 대문을 힘껏 밀치고들어섰다.
술상을 내어가던 여인네가 정휴를 돌아보았다.
곱게분칠하여 희디흰 얼굴,
동백기름을 발라 반듯하게쪽찐 머리,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아래로
둥그스름하게 부풀어오른 엉덩이.
정휴는 자기도 모르게 큰 숨을 들이마셨다.
"이 선비, 어디 계시오?"
"이 선비라니요?
어느 이 선비를 말씀하시는지요?
여기는 방마다 이 선비님이랍니다, 스님."
여인의 가느다란 눈썹이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때 방문이 하나 열리면서 기생인 듯한 여인이나왔다.
"이쪽으로 드십시오."
여인은 정휴를 기다리기나 하고 있었던 듯
자연스레맞이했다.
처음 보았던 여인은 마루에 술상을 내려놓고
치맛자락을 살큼 추켜올리더니
엉덩이를 흔들며마당을 가로질러 걸었다.
정휴는 여인이 열어주는 대로 방안에 들어섰다.
지함이 거기 있었다.
정휴를 안내한 여인은 지함의 옆자리로 가서
다소곳이 앉았다.
지함은 한참 만에야 고개를 들어
서 있는 정휴를바라보았다.
"앉게나."
정휴를 바라보는 지함의 눈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절망에 젖은 눈빛같기도 했다.
"역시 입산했던 게로군.
그래 금맥이라도 찾아냈나,
아니면 은맥이라도 잡은 겐가?"
"아직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형님은 무엇을찾으셨습니까?"
"나? 무엇을 찾았느냐고?"
느닷없이 지함은 정휴를 안내했던 여인을 부둥켜안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지함은 한동안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공허한 웃음소리만 방을 울릴 뿐,
지함의 눈도 입도일그러져 있었다.
웃음이 서서히 잦아들면서 지함은
여인을 안았던손을 풀었다.
"찾긴 찾았지. 바로 이 여자 선화를 찾았네.
이래봬도 선화는 기쁨 덩어리라네.
언제나 나를 기쁨의세상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지.
어떤가? 자네가 찾은길보다 나은 셈이 아닌가.
자네의 길이래야
뼈를 깎는고통과수도와 절제만이 있을 테니까 말일세."
"그 대신 법열(法悅)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세상의 어떤 쾌락보다도 더 큰 것이지요.
형님의기쁨은 밤이 지나면 사라지는
어둠과 같지 않습니까?"
법열(法悅),
정휴는 그런 것을 한번도 느낀 적이없었다.
느낄 만한 자격도 갖지 못한 행자 아닌가.
정휴는 말을 해놓고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밤의 쾌락을 아는가?
자네는 숫총각이 아니던가? "
지함은 짓궂은 눈초리로 정휴를 탐색하듯 건네다보았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샅샅이 겪어보아야만
진리를깨우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지함은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선화라는 기생의손을 잡아끌면서
입가의 미소를 거두었다.
"선화야. 네 안의 세계를 펼쳐보이거라."
선화는 자목련 빛깔의 저고리 앞섶을 만지작거리며
지함을 쳐다보았다.
별로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함의 말을 거부하는 눈빛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내린 분부인지 몰라서
미적거리는표정이었다.
놀란 건 정휴였다.
도대체 지함은 안명세의 일로
얼마나 변했길래 이러는 것일까?
홍성현에 있을 때 두 사람 사이에서
여자 얘기가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지함은
여자를 앞에 두고 기쁨을 찾았노라고
자신있게얘기하고 있다.
게다가 아무리 기생이라지만
정휴가있는 앞에서
옷을 벗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저 여인은 또 어떻게 된 것인가?
기생이라 한들
남자 앞에서 옷을 벗는 일이 어디 예삿 일인가?
수치스럽지 않겠는가.
하물며 사랑하는 이 혼자 있는것도 아니고
다른 남자까지 함께 한 자리임에야.
그제야 정휴는 지함의 곁에 바싹 붙어앉은
선화라는여자의 생김새를 자세하게 뜯어보았다.
빨아들일 듯한눈빛,
착 감겨들 것만 같은 몸매,
무엇보다
남자의피를 끓게 하는 색기(色氣)가 흘렀다.
"듣지 못했느냐?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게냐?"
꽃봉오리가 살짝 벌어지듯 기생 선화의 입에서
웃음이 살포시 피어났다.
황홀한 웃음이었다.
선화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휴를 쳐다보고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정휴 너머의 무언가를 보는 것같기도 한 묘한 시선을 하고
선화는 서서히 옷고름을잡아당겼다.
소리도 없이 저고리 앞자락이 스르르 벌어졌다.
선화는 다시 꽉 동여맨 치마말기를 풀어 내렸다.
그러자 꾹꾹 눌려 있던 젖가슴이
터질 듯이부풀어오르는 모습이
하얀 속치마 아래에 드러났다.
정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질끈 감았다
. 몸어디에선가 급히 불끈 움직이는 기운이 느껴졌다.
온몸의 피가 마구 달려가듯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눈을 뜨게. 자네와 다를 것 없는 인간의 몸일세.
자네는 왜 진실 앞에서 눈을 감는 겐가?"
이것이 진실이라구?
정휴의 가슴속에서 불덩이가 치솟았다.
지함에 대한반발 때문인지
선화의 터질 듯한 젖가슴 때문인지 알수 없었다.
"눈을 뜨라니까."
지함의 고함에 정휴는 눈을 번쩍 떴다.
바로 눈앞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선화가 서있었다.
아무도 없는 빈방인 것처럼 선화의 얼굴에는
한 가닥의 부끄러움도 거리낌도 없었다.
정휴의얼굴만 화로를 뒤집어쓴 듯 화끈거릴 뿐이었다.
연한 복사빛이 자르르 흐르는 살결.
가슴 위로 봉긋솟아오른 젖무덤.
툭 터져나올 것 같은 유방한가운데에
젖꼭지가 오만하게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탱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없이 부드러워 보였다.
이 세상에 이토록 가슴 떨리게 하는 것도 있었던가.
처음 대하는 것이지만, 오래 전부터 보아온 것처럼
다정해 보였고, 아름답기만 했다.
정휴의 시선은 차츰 아래로 향했다.
가슴에서 허리쪽으로 굽어드는 선이
물결보다 더부드러웠다.
정휴의 시선은 저절로 더 밑으로 떨어져갔다.
꿀꺽. 정휴가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정적을깨뜨렸다.
정휴의 눈길은 곧바로 거뭇한 음부에 닿았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운 것인지 어떤 것인지
생각을하기도 전에 정휴는 시선을 더 내렸다.
허리에서 물이 흐르듯 흘러내린 다리 하며
쭉 빠진종아리선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정휴의 시선을 끄는 것이있었다.
눈길이 자꾸 그리로 향했다.
윤기 있는 털빛,
그 갈라진 사이로 내보이는 속살이
촉촉하게 빛나고 있었다.
몸 어느 구석에 이런 힘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정휴는 자신의 남성이 힘차게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온몸이 맹수를 만난 사냥꾼처럼
, 아니백척간두에 서서 한걸음 내딛는 것처럼 긴장되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힘의 축적이었다.
"이보게, 정휴. 여체를 누가 고뇌의 덩어리라고했던가.
아닐세.
기쁨의 덩어리일세.
한번 손을 대어만져보게나."
정휴는 이를 악물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생각한 순간
무언가 맹렬한 기세로 자신의 몸을빠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순간
정휴는 이미 그 방을 박차고 나와 길거리로 내달리고있었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몸은 차디찬 겨울바람에도
좀처럼 식지 않았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염불이 정휴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차디찬 알갱이가 얼굴에 와 부딪쳤다.
눈발이었다.
눈이 녹는 것인지, 아니면 눈물이 흐르는 것인지
눈께가 축축히 젖어들었다.
골목길에는 가야금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기생들의 교성이 넘실대기도 하였다.
눈이 하염없이 내렸다.
머리 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정휴는 어느 집 담벼락에 머리를 찧었다.
그래도선화의 나체가 춤을 추고 있는 환영이
머리 속에서지워지지 않았다.
눈은 계속 내렸다.
떠나야 했다.
이런 미혹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었다.
떠나야 했다.
그러나 정휴는 그곳을 떠날 용기를 내지 못했다.
무언가 강한 힘이 정휴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정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발길을 되돌렸다.
여기에서 물러나는 것은 지함의 말을 인정한다는의미였다.
실제로 지함의 유혹 앞에서
정휴는 무릎을꿇고 만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자의 몸을 지함은인간의 몸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휴는 인간이기이전에 여자로 보았고,
한 마리의 수컷으로서무너져버렸다.
지함의 말대로 그것이 단지 인간의 몸일 뿐일 수도있었다
. 지고한 진실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정휴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두 해 동안 산사에 있으면서
정휴는 세상의 모든미련과 미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불목하니 노릇을묵묵히 해왔다.
산중에 있을 때는 그까짓 속세의미망쯤은
거의 다 벗어났다고 믿었다.
끊을 수 없는구도자의 고뇌에 비한다면야
그까짓 세속의 일,
여색같은 것쯤은 문제될 것도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몸 속 어느 구석에
그렇게 강렬한욕망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온전히 자기의 것이라고 믿었던 몸과 마음이
처음 대하는 타인처럼 낯설기짝이 없었다.
눈발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가끔 한편씩 읽으시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