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는 '지갑, 휴대용티슈, 손수건, 양치액, 립밤과 핸드크림, 텀블러'등이 들어있는 크로스백을, 등에는 '헤어드라이어, 수건, 수면유도제와 비상약품, 세면도구, 3분영어낭독책과 상행 기차간에서 읽을 책 2권, 필기노트, 복사한 발제문 파일'이 담긴 배낭을 매고, 한 손에는 '지정된 나머지 텍스트 10권과 3박 4일 동안 갈아입을 상하의와 속옷'을 담은 캐리어를 끌고 나서자니, 영락없이 세계 일주를 떠나던 그 때의 모습이다.
살기마저 느껴지는 땡볕 때문에 매고, 지고, 끌면서 한 손에 양산까지 펼쳐들고 부산역을 향했다. 악랄한 노예상이었던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자 각종 무기를 주렁주렁 몸에 매단채 폭포 절벽을 오르던, 영화 <미션>속 '멘도자'신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여행자의 짐은 전생의 업보라 했건만, 나는 무슨 죄를 그리도 많이 지었길래 길을 떠날 때 마다 이 모습인가. 본격 휴가철을 맞은 부산역은 가족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그득하였고, 유모차에 캐리어에 배낭에, 그들의 모습도 나와 별다른 차이는 없어 보였다. 사방이 업보를 면치 못한 중생들이었다. 하지만 '저도 여행을 떠납니다. 어울려 공부하는 그 환희의 세계를 향해 떠난답니다. 제게는 선생과 동학이 있답니다', 이 나지막하고 선명한 자부심과 감사함이 그날의 내 여비였다.
천안 외곽의 한옥펜션은 열 세 명이 어울려 공부하기엔 아주 쾌적한 환경이었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3박 4일간 크게 더운 줄도 불편한 줄도 모른 채 지냈다. 이 역시 검색을 하고 여러 곳을 사전답사한, 누군가들의 노동 덕분이다. 접이식 휴대용 책상을 둘러친 공부자리를 손걸레질 하다, 지난 1년간 받은 선생과 동학들의 발제문과 유인물들을 야무지게 스프링으로 묶어 제본한 H의 물건들을 보게 되었다. 대부분 일회용으로 끝나거나, 다시 본다고 모아둬봤자 눈길 주기 어려운 상태로 떠돌다 결국 폐기되기 마련인 그 낱장짜리 A4 용지들을, 어느 것도 허투루 대하지 않고 모은 모양인지 제본된 책이 무려 3권이었다. 아직도 보관 중인, 씨알서원의 제본책들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아! 이 사람은 나보다 훨씬 좋은 밭을 지녔구나. 이토록 마음밭이 좋으니 선생이 무슨 '말'을 심어도 고운 꽃이 피겠구나.....' 속깊이 축원하였다.
7달 쯤 전에 만났던 몇 몇 동학들은, 그 사이에 이런 저런 변모가 있어 보였다. 공부하는 태도에 심지가 생긴 이도 보였고, 분망하던 말길을 다잡느라 힘든 이행기를 거치는 이의 표정도 곱고 맑았다. 막 입문한 동학들은, 재바른 총기로 이 공부길이 외통수임을, 계속 걷거나 포기하거나 선택지는 단 둘 뿐임을 알아챈 표정들이었다. 사정과 처지가 제각각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어둡거나 뚱한 표정으로 물러나 있지 않다. 전에 없이 온기와 슬기가 감도는 공부자리다. 이 사람들과 길게 사귀며 배우는 일은 최고의 사치이고 복됨인데, 내가 그런 것을 여전히 욕망해도 괜찮은지 알 수가 없다. 남을 살릴 만한 말과 글을 내놓을 재주가 내겐 없다는 것. 20년 공부 끝에 알게 된 나에 대한 인정인데 미련인지 욕망인지, 존재의 정당한 요구인지, 판단하는 것이 늘 어렵기만 하다.
3박 4일 동안, 점심/저녁 식사시간을 빼고, 하루에 12~13시간씩 공부하였다. 아니, 먹는 것, 자는 것, 화장실 가는 것, 걷는 것, 앉는 것, 눈길 주는 것도 모두 스스로를 단속하는 시간이었으니 24시간, 3박 4일 동안 통으로 '공부'하였다. 아직은 이런 형식을 버틸 수 있는 선생과 동학들의 강건함에 감사하고 서로의 나이듦에 따라 익어갈 이 공부의 '형식'에도 손모아 기원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