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몸을 일으켜 기사를 자청한 날. '줄포' 종곡리에 있는 대종사 유숙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부산이 고향인 시은 덕무님은 얼마전 열반한 모친의 1재를 맞아 가는 길이었고, 성래원의 육타원님과, 은퇴한 교무님들이 모여사는 수도원의 운타원님까지 합석하여 전무출신 여성 4명이 동행하게 되었다. 날은 맑았고 볕은 뜨거웠지만 그늘은 선선하여, 천도재에 가는 길임에도 마치 소풍을 나선 것 마냥 마음이 화창하였다.
천도재를 주재한 분은 영산성지사무소에서 17년간 소장으로 계셨던 '청타원'님이었는데 나는 초면이었다. 대종사 당대 제자인 이춘풍 선진을 친가로, 2대 종법사 정산종사를 외가로 두고 계신 어른으로 한번쯤 뵙고 싶었던 분이었다.
인품과 덕망이 높아 소장으로 계시는 동안 성지사무소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하고, 시은님과 육타원님의 출가 스승이라 듣고 나니 더욱 궁금하였다. 세 분 어른이 번갈아 천도법문, 참회문, 종법사님 법문을 대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죽음복이 있는 분이구나'싶었다. 부산에서 살다 열반한 분을 이리 멀리에서 추념하는 것도 흔치 않고, 다른 날도 아닌 '육일대재'날이니.
재식을 끝내고, 이제 지은지 1년된 '유숙지'(-교단에 등록된 교적지로 사유지가 아니다. 대종사님이 하루 묵어 간 집자리이다)를 둘러 보았다. 1년 만에 기적처럼 구현된 집으로 여러 교무님들과 후원인들의 합력이 깃든 장소였다. 밖에서 보면 단아한 전원 주택같은데 안으로 들어서면 법당이다. 잔디며 나무며 꽃들이 이제 막 터를 잡기 시작한 곳으로 사방이 트여 기운이 좋았다.
" 이제 곧 접시꽃이 가득 하겄네, 을마나 하늘하늘 예쁠까나!"/"아이고! 저 매실봐. 저 쬐끄만 나무에도 그냥 앵두같이 매달려 있네!"/"앵두 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나~았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하였고, 소풍과 천도재가 다르지 않았으며 법문과 유행가가 한데 어우러져 그저 마음이 평온하고 온전하였다. 청타원님 법력인 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