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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악을 보며 몸서리쳤던 문동환 목사. 아흔을 넘겼지만 한국 현대사와 교회사, 신구약 성경을 종횡무진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 미주뉴스앤조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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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정하시다.
모두 저 사람의 공로다. (아내 문혜림 여사를 가리키며)
자서전에서 여사님과 첫 키스할 때 방구 뀐 이야기를 읽고 웃었다.
그랬지.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웃음) 어느 날 저녁 학교에서 산책을 하다가 아내를 여자 기숙사까지 데려다 줬는데, 헤어지면서 난생 처음 키스를 했다. 그런데 키스하는 중에 그만 방귀를 뀌고 말았다. 당황했지만 아내가 "당신이 자연스럽게 방귀를 뀌니 더 좋다"고 웃어넘겼다. 그게 그렇게 귀여웠다.
▲ 경동교회에서 문동환 목사와 문혜림 여사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 왼쪽이 주례 김재준 목사. (출처 : 문동환 자서전) | ||
일본에서 유학할 때 만성두통에 시달리다, 기도하고 난 뒤 씻은 듯이 나았다고 기록한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살아오면서 위기의 순간도 많았는데,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경험은 없었나?
신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할 때 하나님을 만난 경험도 내겐 참 특별하다. 기도하려는데 여러 가지 잡념 때문에 도무지 기도할 수가 없었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려해도 안 되고, 두어 시간 애쓰다 기진맥진해 다다미방에 쓰러져 '아, 이제 모르겠습니다' 하고 탄식을 했더니, 그 순간 '네가 아무리 내게 오려고 해도 사람 힘으로 되나. 그래서 내가 세상에 간 거야' 하는 음성이 들렸다.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찾아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곁으로 내려오셔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이후로 내 영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어. 한 일주일 동안 그 환희 속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내겐 참 소중한 경험이다.
그런 하나님과의 만남이 훗날 목사님의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됐겠다.
물론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하는 말씀도 있잖나. 나무의 줄기를 통해서 영양분이 흐르고 그게 가지에 퍼지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과 연결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기맥이 우리에게 흘러야 돼. 바로 그때 내 삶이 열매를 맺는다는 거지. 동학에서 쓰는 말로 하면 기화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하나님의 사랑에 젖어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 자체보다 목사님의 삶에서 흐르는 하나님의 영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영과 연결되어 깨닫는 것이 삶으로 커뮤니케이션할 때 힘이 있는 거다. 목사가 말재간 가지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통할 때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말이다.
예수와 연결되어 있으면 이 세상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그러니까 세상이 미워하고 박해한다. 로마하고 손잡은 대사제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경제적·정치적·영적으로 수탈했잖나. 그런 곳에 참된 사람과 공동체가 들어오면 악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악한 것은 참된 것을 죽이려 들 수밖에 없다. 예수의 죽음이 바로 그랬다.
▲ YH 사건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때 수감번호 129. (사진 제공 : 문동환) | ||
감옥에서의 시간은 어떤 의미였나.
살면서 젊을 때 1년씩 감옥에 들어가 봐라. (웃음) 내가 공부했던 서구의 신학이 다 뒤집어지고 새로운 것으로 출발한 곳이 감옥이다. 고난과 악과 직면하면 우린 생각을 하게 된다. 고난의 자리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내겐 수도의 자리가 됐다.
김지하 시인과 오랜 시절 가까이 지냈는데, 그가 변절했다며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다.
김지하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의 초점이 달라졌다고 본다. 초점이 독재를 위해 투쟁하는 것보다 전 세계적으로 공해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점으로 바뀐 것 같다. 독재자하고 투쟁하던 그 긴장에서는 벗어나니 동학에 관한 연구도 많이 하고, 생명에 관한 것도 많이 생각하면서 공해 문제가 먼저다 하면서 나간 것이다. 하지만 공해 문제를 다루자면 산업 문화를 문제 삼아야 한다. 많이 소유해야 행복하다는 그릇된 생각을 이용한 장사꾼들이 대량으로 물건을 생산하면서 사람들과 생태계를 착취하게 되고 공해가 생기는 거니까.
▲ 문동환은 "고생하면서 점점 깨닫는다. 난 교육을 전공하는 사람인데 인류 교육하는 사람은 하나님이고 역사를 통해서 우리를 깨우쳐 주신다"고 말했다. ⓒ 미주뉴스앤조이 | ||
이재오 장관과도 함께 활동했던 때가 있던데, 한때 낮은 곳에서 민중과 뒹굴던 이들이지만, 오늘날 권력의 편에 서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있다. 김진홍 목사도 그렇고.
이재오나 김진홍은 좀 다르다고 본다. 그들의 배신은 가룟 유다의 배신하고도 통한다. 고난이 생각을 변절을 시키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그들의 가치관은 바뀌어져 있지 않은 거야. 김진홍은 빈민운동과 농민운동을 하면서 거기서 얻은 명성으로 돌아다니면서 설교하고, 설교할 때는 감옥살이 한 얘기부터 시작한다. 이런 게 배신이야. 복음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거지. 젊은이들이 '와' 하니까 영웅심으로 뛰어들어 하다가, 새로운 길이 열리니까 거기로 가버린 거다. 그게 가롯 유다의 심리와 같다는 거야.
이재오는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우리 형님(문익환)이 주관하는 모임 중에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이 있었는데 이재오도 거기 있었다. 시기는 명확치 않은데, 이제는 정당에 들어가서 민주화 운동을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어느 정당에 들어갈 것인가를 놓고 함께 고민했다. 그때 김대중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다른 정당을 하고 있었는데 양쪽을 비교해보고 더 옳은 쪽으로 함께 가자고 약속했다. 양쪽으로 똑같은 질문을 보내서 답변을 받았는데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김대중 쪽이 나았다. 그러면 이재오도 거기로 와야 하는데 이재오를 포함해 경상도 출신 다섯 사람만 김영삼 쪽으로 갔다. 지역 구도의 한계를 넘지 못한 거지. '합해야 되는데 왜 갈라지느냐'면서 갔지만, 스스로의 약속을 어긴 거다. 언젠가 형님(문익환)이 그러더라. '이재오는 자기 야심에 차 있는 사람'이라고. 이재오는 변한 거 아니야. 원래 그런 거지.
흔들림 없이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나고 자란 명동이란 곳이다. 민족이라는 가치가 깊이 뿌리 내린 곳이다. 항일운동을 하면서 민족이 사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거다. 어려서부터 민족정신, 기독교 정신이 뼛속 깊이 젖어든 사람들이다. 바꿀 수도, 바꿔질 수도 없다.
▲ 1989년 12월 3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소환해 국회에서 청문회를 개최하는 장면. (자료 제공 문동환) | ||
최근 한국 복음주의권에서 과거에 대한 참회의 고백이 잇따르고 있다. 이만열 교수는 얼마 전 유신 정권의 폭정 속에서 침묵했던 것을 고백하면서 역사에 빚진 마음이 있다고 말했고, 이동원 목사는 은퇴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지 못했다며 참회했다.
참 반가운 일이다. 언제나 바로 서면 고마운 거다. 과거를 묻다보면 온전한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하나님보시기에 마땅치 않은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나. 그 빚을 이제부터 갚으면서 살면 된다. 그러려면 악에 대한 뼈저린 반발이 있어야 한다. 남이 한 일 나는 못했다 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생명을 죽이는 악한 세력이 만연하다. 그 악이 얼마나 몸서리치게 무서운지 목도해야 한다.
지금 전 세계가 몰락하고 있다.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하루 1불로 사는 사람이 20억이 넘는다. 직장이 없이 헤매는 사람들의 고생을 우리가 모른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악을 몸으로 안다. 우리는 먹고 살만 하니까 그 소리를 못 듣는 거다. 그 소리를 듣고 분노해야 한다. 악을 악으로 보고 그 악이 어떻게 하나님의 질서를 깨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류를 착취하는지 몸으로 경험해야 한다. 예수님도 갈릴리에 사니까 그것을 보고 알았다.
대체로 목사들이 악을 그런 각도에서 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축복만 얘기하면 교인수가 많아지고 헌금이 많아지고 큰 교회당을 짓고 더 많은 사람이 오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그게 성공이라고 여기는 게 오늘날 교회다. 이건 예수 믿는 것이 아니다. 복을 받겠다는 것이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한 번은 강원용 목사를 보고 이런 얘기를 했단다. '나도 몰트만의 신학을 잘 안다. 그러나 그런 얘기하면 교인들이 못 받아들인다. 그래서 교인들이 원하는 얘기를 해줘야 한다'고. 교인들이 원하는 것은 돈 잘 벌고, 축복받고, 자식들 잘되고, 천당 가는 거다. 그 얘기만 하라는 거고, 복음을 거기에 갖다 붙이라는 거다.
난 이것을 백화점 목회라고 말한다. 백화점에서는 고객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지 않고, 고객들이 뭘 원하느냐 하는 것을 알아서 고객들이 원하는 상품만 갖다 놓으면 된다. 거기 가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연애도 할 수 있고 직업도 생기고 죽은 다음에 묻힐 수 있는 공동묘지까지 마련되어 있다. 이런 교회 속에서는 악을 볼 수 없다.
이만열 교수는 "그들이 내쫓기고 고난 받았기에 오늘 우리가 이만큼의 자유와 민주화의 과실을 따 먹고 있다"고 했는데, 목사님이야말로 그런 사람 중 한 명인데, 아직도 빨갱이 목사라고 폄하하면 섭섭하지 않나?
▲ 77년 12월 31일, 22개월만에 출혹해 딸과 함께 기뻐하는 문동환 목사. (출처 : 문동환 자서전) | ||
그런 걸(빨갱이라 폄하하는 것) 섭섭해 하면 어떡하나.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지. 예수님도 정치범이고 강도로 몰려 죽었다. 다 그런 법이다. 그런 말을 듣지 않게 살려니 그게 문제다.
다만 통일운동은 북한이라는 체제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건 말하고 싶다. 우리 가족은 공산당이 하는 짓을 몸으로 겪은 집안이다. 아버지는 만주에서 20년 정도 목회했다. 아버지는 공산당 때문에 감옥에 두 번이나 들어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오셨다. 하지만 심방도, 설교도 못하게 해서 남한으로 넘어왔다. 우리 부모님은 민족 통일이 사무쳤던 분들이다. 아버지는 '원산은 지났는데 평양은 아직 멀었니' 하고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통일은 다 이루었다' 하고 돌아가셨다. 민족이 갈라진 지 벌써 60년이 됐다.
김대중 선생이 6.15선언을 발표하자 때가 왔다가 생각하고 통일운동에 뛰어들었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 ‘서로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6.15선언의 정신이다. 남과 북의 동포들이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는 일을 위해 6.15남북공동선언실현 재미동포협의회 미국위원장이 된 거다. 남한도 북한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집단이 되어버렸다. 북에 오가면서 북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많고 정을 느낄 수가 없다.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 그런데 그건 해외에서 들어온 이념이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은 거다. 난 이게 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북한이라는 체제가 틀려먹은 거 잘 안다. 그런데 갈라져 있는데 어떻게 할 건가.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잖나. 자꾸 대화를 해야 서로를 안다. 내가 한 5년 동안 북쪽과 대화했는데 많이 좋아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랑도 줄곧 했던 얘기가 '빨리 합치면 안 된다'는 거다. 계속 만나다보면 손자 세대쯤 가면 대화가 될 것이고 점점 변화가 올 것이라고. 손자 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일하는 것이다.
북한의 3대 세습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게 말이 되나. 웃기는 얘기다. 근데 문제는 지금 북에서는 갑자기 바꿀 수 없다는 거다. 그걸 바꿀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북쪽이 중국처럼 점점 깨어나야 된다. 나중에는 중국에서도 민주주의 아는 사람 많이 생겼잖나. 그렇게 되어야지. 북한이 하루아침에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겠나. 남쪽에서도 힘든 민주주의가.
▲ 문 목사는 이런 산업 문화가 한국 교회의 타락과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 미주뉴스앤조이 | ||
민족을 사랑하는 것과 민족주의의 경계선은 어딘가.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이걸 극복하는 것이 성서에서도 나온다. 아브라함에게 얘기한 거 보면 인류 역사의 마지막은 인류가 서로가 서로에게 축복하는 것으로 끝난다. 성경은 민족주의를 넘어선 하나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명박 장로의 국정운영을 평가한다면?
엉망이지 뭐. 나라를 어떻게 기업하는 것처럼 다스리나. 기업주는 계획하면 밀고 나가면 된다. 그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장이 아니다. 혼자 계획해서 그걸 막 밀고 나가려고 하면 안 된다. 사업에서 성공했던 대로 하면 나라가 잘 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하지만 이명박 욕할 거 없다. 그 장로가 탐욕의 상징, 권력의 상징 아닌가. 이명박을 욕하지만 모두가 사실은 다 그런 거다. 이 시대 사람들이 뭐가 중요한가? 돈이다. 돈 때문에 욕심이 생기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되고 힘을 오용해서 앞만 보게 된다. 결국 이웃을 짓밟고서라도 돈을 벌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유치원 때부터 그렇게 배우면서 자란다. 교회 나가는 사람이 거기서 탈피했나. 예수를 왜 믿나. 복 받아서 부자 되고 집 사려고, 자신의 몸의 행복을 위해서 교회에 나온다. 종교까지도 이렇게 됐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의 제자가 되라면 되겠나.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옆에 앉아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
‘불쌍한 존재여’라고 말해주고 싶다. 역사에서 비참한 존재가 될 것이다. 역사를 쓰는 지성인이 이명박 대통령을 어떻게 보겠나. 언제나 현실이 문제가 아니라 역사에 어떻게 남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은 불쌍한 존재다. 사람들이 이명박을 욕하잖나. 박정희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욕하는 것만 가지고 안 된다. 그 사람들을 보고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저러면 저들도 망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춤춘다고. 이 땅에 저런 사람들이 많은데 어쩌면 좋냐고 아파하고 안타까워해야 한다.
▲ 문동환 목사는 7년 동안 수도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기성 교회의 모습에서 탈피해 세상을 위한 교회, 평신도 중심의 교회라는 구호를 내걸고 다양하게 실험하고 실천했다. 그 기간 동안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교회의 가능성과 한계를 절감했다"고 문 목사는 말했다. (자료 제공 : 문동환) | ||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은?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겠지만, 교회 역시 그냥 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근본적인 악인 산업 문화를 문제 삼아야 된다. 예전에는 군부독재 타도였지만 지금은 산업 문화, 신자유주의라는 더 크고 무서운 악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모하라고 한다. 빈부격차가 생겨서 소비하지 못하면 망하게 되고, 망하면 실업자가 생기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생태계는 파괴되고 있다. 인구의 3분의 2가 2불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화가 핵심이 아니라 산업 문화라는 것을 70년대부터 알았지만, 박정희 정권의 폭정이 심해지면서 민주화가 급선무라는 생각을 하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산업 문화다. 바알신앙이다. 많이 소유하는 것이 선으로 여겨지는 건데, 이명박이 이 산업 문화의 상징일 뿐이다. 악한 문화 자체를 때려야 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휩쓸린 물질문명적 종교관이 악이라고 깨닫는 집단적인 각(覺)이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교회는 '이건 망한다'고 말해야 한다. 망한다는 얘기만 하면 쓸 때 없다. 망할 때 하나님은 늘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 그래서 새것을 함께 얘기해야 한다. <미주뉴스앤조이>의 역할이 이런 거다. 외적인 것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이 어떻게 성서적으로 패망의 길로 가는 것인지, 왜 망할 수밖에 없는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살려는 사람들도 찾아서 보여줘야 한다.
민중교회는 어떻게 평가하나?
민중교회는 산업 문화의 문제를 채 깨닫지 못했다. 민중교회도 이 산업 문화를 적으로 보지 않고 박정희를 적으로 봤다. 박정희를 무너뜨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무너뜨렸는데 안 되거든. 또 다른 적이 나타났다. 그래서 이제야 산업 문화가 문제라는 데 눈뜨기 시작한 거다. 물론 민중교회가 실패한 데는 신학자들에게도 책임도 있다. 민중교회가 신학자들에게 찾아와서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는데, '그건 너희들이 찾아라' 하고 던져버렸다. 그걸 교회 더러 찾으라는 건 신학자들의 잘못이다.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성서 안에 있는데 그걸 밝혀주지 못했다.
공장 노동자들을 불러 모아서 교회 했는데 어떻게 됐나. 노동자 운동이 확 일어나니까 다 교회에서 빠져나갔잖나. 교회는 빈껍데기 끼고 앉아 있었다. 정말 산업 문화가 문제라면 같이 가서 씨름하면서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우쳐줘야 한다. 민중목회한다는 사람이 민중이 되지 못한 거다. 예수처럼 밑에 내려가지 못한 거다. 그런데 '경건하지 못해서 문제'다, '영성이 부족하다' 이런 소리만 하고 앉아있다. 영성이 뭔가. 가만히 앉아있는 게 영성인가. 예수님을 봐라.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됐잖나. 그게 영성이다.
▲ 문동환 목사는 1972년 새벽의 집이란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윤 동기'로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 '나눔 동기'로 사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다섯 가정 열두 명이 문 목사의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문 목사는 "식사 때는 서로 손을 잡고 식사 노래를 하고, 저녁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피아노에 둘러서서 즐겁게 노래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고 말했다. | ||
살아오면서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 언젠가?
역시 감격적인 순간은 6.15공동선언이다. 인류 역사에서 총부리를 맞대고 싸우던 두 적수가 평화협정을 맺지 않고 손을 잡은 일이 없다. 총대를 마주 잡은 채로 이대로 가면 우리 다 죽는다.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의 철학으로 평화가 오지 않는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강자가 하라는 대로 해서 얻어지는 평화는 거짓 평화다. 인류의 평화와 동북아의 평화가 오려면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평화의 정신이 필요한데, 이런 모습이 6.15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 실현된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신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반대로 얘기하면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그런 평화적 합의가 깨진 것인가. 최근에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으로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마음 아프다. 하지만 돌아갈 거다. 한국 사람들은 평화를 원한다. 예전에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그랬다. '남북이 갈라졌다고 한탄하지 말아라. 전 세계가 갈라졌는데 우리도 갈라졌다. 이 문제를 고민하는 민족이 있어야 한다'고. 북은 북대로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개인을 억압하고, 남은 개인을 강조하면서 공동체를 깨뜨린다. 이런 강약점들이 다 있다. 오랫동안 대화하면서 서로의 강약점을 보완해 나가다보면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해주고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공동체를 강조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 한국에서 그런 새로운 삶을 모델을 창조하고 우리가 준비해야 한다.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순간이 무엇인가?
▲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일 때 단식 투쟁을 하던 김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 문동환 목사. ⓒ 문동환 목사 카페 '문동환의 조각달'
같은 질문을 예전에도 한 번 받은 적 있다. 언젠가 인터뷰를 할 때 '후회되는 것을 이야기해달라'고 하더라. 아마 민주당에 들어갔던 것을 후회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던 거 같다. (웃음)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산업 문화가 본질적인 문제고 생명 공동체도 중요한데, 이런 게 가능하려면 먼저 민주주의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에 내 삶을 던진 거다. 그리고 김대중이란 인물이 한국 사회에서 공헌할 것이 있고 공헌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남북문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그러더라.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다 이룩하겠다’고. 내가 속으로 ‘천만의 말씀’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민주주의가 안 되면 정치적 민주주의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으로 ‘남북통일에 공헌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남북문제에 공헌하면 역사에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물론 정치를 하면서 국민들이 깨기 전에는 민주화가 어렵다는 한계도 봤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민이 '주'라는 말인데 민이 깨기 전에 어떻게 주인이 되나.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것도 결국 돈주주의라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고. 한계는 있었지만 정치에 투신한 것 자체를 후회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마누라 하고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웃음)
형인 문익환 목사는 어떤 사람인가?
형님은 동생들에게 좋은 형이었다. 도와주고 아껴주고 그랬지. 그 양반은 예언서를 공부하고 시인으로서 열정에 불타던 사람이었어. 믿는 것에 자신을 던지며 당시 새것을 간절히 바라는 젊은이들 가슴에 불을 붙였지. 이따금씩 그렇게 미친듯 폭발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시대는 어쩌면 그런 분들이 너무 없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때가 이르면 나온다. 누가 전태일이란 사람이 나올 줄 알았겠나. 형은 폭발해서 모두를 껴안는 사람이다. 형의 장례식에 어린애들까지 울면서 절하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형이 이토록 삶의 폭을 넓혀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농촌에서 오고 부녀회에서 오는 걸 보면서 참 감격을 했다.
이민 교회가 한국 교회 배울 것 한 가지와 배우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를 말한다면.
▲ 문동환 목사의 평생 동지이자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 문익환 목사가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을 환영했고 그 후에도 솔직한 충고를 해주었다"고 문동환 목사는 말했다. (자료 제공 : 문동환)
한국 교회 젊은이들 사이에서 교회에 대한 불만과 새 것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많다. 그것이 배울 점이다. 배우지 말아야 할 점은 많은데 가장 주된 것은 자기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가 무엇인질 모르고 있다. 서구 신학을 목사들이 반복하면서 덮어놓고 아멘한다. 생각하질 않는다는 거다. 목사가 강대상에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해도 교인들이 아무 생각없이 아멘하는 거 보고 있자면 미칠 것 같다. 기독교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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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보고 철저히 몸서리쳐야 해. 악을 철저하게 목도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어떻게 성육신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 하나님이 마지막에 해답을 줘. 마음이 아파야 돼. 구약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아파한다고 했거든, 모세도 그랬고. 팔복에도 의를 위해서 슬퍼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잖아. 의를 위해서 슬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깨닫는다는 거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 대안을 향해서 몸을 던져야 한다. 갈릴리로 가야 한다. 아파하는 사람의 아픔에 자신을 노출시켜서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만들어야 해. 계속 고민하고 생각해라.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야. 삶을 포기하지 마라."
▲ 문동환와 문혜림 여사. 그들 뒤에 걸려 있는 그림은 최병수의 장산곶매. 통일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분단된 민족을 새만 날아서 오갈 수 있는 현실을 표현한 그림이다. ⓒ 미주뉴스앤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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