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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걸 교수의 'CRM(고객관계관리) 클리닉'] 회사에 부족한 2% 채워
'충성 고객'을 만들어라
- 김영걸 발행일 : 2010.06.19 / W-BIZ C7 면
필자는 최근 트위터 에서 '소크라테스와 CRM'이란 오픈 강좌를 개설했다. 140자라는 트위터의 한계를 감안,
모든 강의는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철저히 문답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던진 12개의 질문 중에
유일하게 제대로 된 답변이 하나도 날아오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한 럭셔리(luxury) 수입차 브랜드의 고객들을 조사해 보니 고객만족도 90% 이상, 재구매 의향 80% 이상인데,
NPS(순추천 고객지수=고객 충성도)가 -14%로 나왔다. 어찌 된 일일까? 필요한 조치는?"
위의 질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NPS(Net Promotion Score)가 어떤 지표인지를 알아야 한다. 세계적 컨설팅사인
베인&컴퍼니에서 개발한 고객충성도지표인 NPS는 기존의 고객만족도 조사만으로는 자사 고객의 충성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한계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고객만족도 조사결과가 향후 시장점유율이나 수익성을
예측하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점도 일조했다.(실제로 고객 만족 대상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기업들 중에
기업 성과나 경쟁력은 별 볼일 없는 기업들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NPS의 측정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먼저 고객들에게 "○○회사(또는 브랜드)를 당신의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전체 고객 중 10점 척도에서 9~10을 선택한 고객(추천 고객)의 비율에서
0~6을 선택한 고객(비추천고객)의 비율을 빼면 NPS 수치가 나온다.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GE 헬스케어사업부가 NPS를 이용해 고객 충성도를 측정해 활용한 성과를 보고받은 뒤
"지금까지 본 고객 지표 중 최고다. 당장 전사적으로 사용하라"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GE는 2005년부터 NPS를
모든 사업부서의 핵심 경영관리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베인&컴퍼니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평균 NPS는 5~10%인 반면 애플이나 델 컴퓨터, 이베이, 코스트코,
사우스웨스트항공사 등 지난 10여년간 놀라운 성장률을 보인 기업들은 한결같이 50% 안팎의 NPS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충성 고객들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대형 오토바이 제작사 할리 데이비슨은 NPS가 무려 80%에 육박한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현대카드나 삼성화재, 제일모직, 매일유업 등 여러 분야 기업들이 NPS를 도입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고객 관계 관리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국내 기업들의 NPS가 10% 이하 또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다시 예로 든 수입차 회사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재구매 의향이 80%가 넘는데도 NPS가 마이너스로 나온
이 회사 고객들의 실제 설문 응답 데이터를 KAIST 경영대학 연구팀이 분석해 봤다. 그랬더니 추천(9~10)도
비추천(0~6)도 아닌 중립 성향(7~8)으로 응답한 고객들이 매우 많았다.
즉, 전반적으로는 대부분의 고객들이 현재 타고 있는 이 회사 브랜드의 차량(제품)이나 서비스에 큰 불만 없이
만족하고 있었으며, 향후에도 같은 회사 같은 브랜드의 차를 구입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들에게는 이 회사의 홍보대사가 되어 동네방네 다니며 자기가 타는 차의 브랜드를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는 의지가 '2%' 부족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회사 고객들의 부족한 2%를 채워
'만족해하는 고객'에서 '충성스러운 고객'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이 회사의 경우 자사 차량의 성능이나 디자인, 가격, 서비스 등에 대해 고객들이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있으므로
충성 고객 만들기는 고객과 회사 간의 관계 강화 노력에서부터 시작해 볼 수 있겠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말이 있듯이 고객들은 자신들에게 발생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자신의 거래 회사가 그 자리에서 신속히 해결해 줄 때
기대 이상의 큰 감동을 받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수입차 고객들은 차를 구입할 때는 '왕(王) 대접을 받는 갑'이지만,
사고나 고장으로 서비스센터를 찾을 때는 차를 산 지 1년이 채 안됐어도 '수리비를 걱정하는 을'로 변하기 마련이다.
이 회사 서비스센터엔 혹시 고객을 왕처럼 떠받들던 영업사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뻣뻣한 자세의 정비요원이
고객의 불편보다 차량 수리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바가지 쓰지 않을까
걱정하는 고객의 마음은 더욱 위축된다.
NPS를 올리기 위한 이 회사의 전략은 자명해 보인다. 다른 어느 자동차 회사에도 없는 영업사원과 정비요원이 함께
상담해주는 '협진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들어올 때의 '보통 고객'은 서비스센터를 나서기가 무섭게 '2%'가 넘치는
'구전(word of mouth) 고객'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정리해보자. NPS를 개발한 베인&컴퍼니의 프레드릭 라이켈트는 고객들이 자신의 거래 기업 제품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추천 대상 제품이 가격·성능·품질 등에서
경쟁사 제품보다 탁월하다고 믿어야 한다. 둘째, 자신이 회사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고객들은 적극적으로 그 회사를 추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의 회사가 훌륭한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고, 고객들의 만족도 또한 높게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매출이 정체돼 있거나 고객들이 경쟁사로 옮겨가고 있다면 한 번 고민해 보기 바란다. '고객의 입장에서 우리 회사에 부족한 2%의
감성은 무엇일까?'라고 말이다.
김영걸 KAIST 경영대학 교수· 트위터 @dominom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