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1850-1894)은 1850년에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에딘버러는 저지대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로, 이 지역은 잉글랜드보다 일찍, 그리고 보다 진보적인 종교개혁을 이룩한 후 18세기를 거치면서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스티븐슨의 가문에는 이러한 산업혁명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지니어들이 많았고 그의 부친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에딘버러는 고래로 스코틀랜드 왕실이 있던 수도로서, 정치, 문화적 중심지였으므로, 법률가들과 국교인 장로교 지도자들이 많이 살았는데, 스티븐슨의 외가는 이러한 법률가와 목사들을 많이 배출한 명문가였다. 현재 스티븐슨의 저택이 에딘버러 중심지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스코틀랜드에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 자제였던 것이다.
에딘버러는 대학도시로도 유명하다.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에딘버러 대학에 스티븐슨이 진학할 때 그는 집안의 사업을 잇기를 바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공학을 전공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전공을 법학으로 바꾼 후 1875년에 변호사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작가가 되기를 원했으므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는 않았다. 대학 재학시절 그는 여름방학마다 젊은 예술인들과 어울려 프랑스로 놀러가서는 '끼'를 발산했는데, 그의 첫번째 작품집은 이때의 여행담을 담고 있다.
여행은 스티븐슨에게 매우 중요한 창작의 원천이자 작품의 소재였다. 오늘날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그의 작품이 《보물섬》이며, 첫번째 작품집이 《내륙 여행》이라는 것, 이어서 그 다음 해에도 여행기를 냈다는 사실이 그것을 대변해준다. 이 여행기들에서 이미 유려한 서술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그는 능숙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한다. 시작이 그랬듯이 말년에도 그는 남태평양의 사모아섬 등을 여행하며 요양 중에도 《팔레사의 해변》, 《썰물》 등의 여행기와 소설을 가미한 좋은 작품을 펴냈다. 그가 숨을 거둔 곳도 고향이 아닌 먼 남태평양의 사모아였다.
이러한 스티븐슨은 평생의 반려자도 여행 중에 만났다. 그는 파리근처 한 마을에서, 무려 11살이나 연상인 패니라는 미국인 유부녀와 사랑에 빠진다. 2년 후에 패니가 이혼수속을 마치자 그는 캘리포니아로 가서 결혼한다. 이런 와중에서의 여행담 및 이런저런 삶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들이 후에 나왔는데, 자신의 신혼여행기인 《은광 채굴자들》이나 이후의 미국생활을 다룬 《아마추어 이민자》등이 그것이다.
여행기 외에도 스티븐슨은 1877년경부터 잡지 등에 단편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그의 단편들은 독일이나 미국, 러시아 등과 비교할 때 단편소설의 전통이 취약했던 영국에서 이 분야를 개척한 선구적인 작품들로 인정되곤 한다. 그리고 1882년에 나온 단편집 《신판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그의 단편소설들은 공상 요소들을 과감히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심각한 현실 문제를 다루던 당대의 영국 문학의 경향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새로운 문학세계였다. 그리고 이러한 단편들에서 선보인, 현실 속에 숨겨진 어두운 범죄 요소들에 대한 탐구, 또한 이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현실과 환상이 절묘히 결합한 모습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 그대로 이어지며 집대성됐다.
◇이중성의 미학
스티븐슨이 물려받은 스코틀랜드 문화는 엄격한 도덕률과 냉엄한 신의 섭리를 강조한 칼빈주의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 이러한 캘빈주의적 문화는 현실의 욕망과 충돌할 수밖에 없으므로 욕망과 규율 사이의 이중성을 낳게 된다. 이러한 이중성을 가장 인상적으로 형상화한 인물이 바로 지킬박사/하이드씨다. 또한 지킬박사 이야기를 만든 스티븐슨 자신도 이러한 면이 없지 않았다. 오늘날 그의 문학세계를 대표하는 두 작품을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와 《보물섬》이라고 할 때, 이 둘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서로 전혀 상이한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둘을 묶어주는 환상적 요소가 없지 않으나, 전자는 욕망의 논리에 둘로 갈라진 어른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면 후자는 욕망이 잘 실현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로 《보물섬》은 스티븐슨이 수양아들(아내의 전남편의 자식)을 위해 지어준 이야기로서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인기 있는 아동문학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인간의 이중성을 전면적으로 탐구한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다.
아동문학의 선구자로서 스티븐슨이 어떤 시대에도 사랑을 받았다면, 《지킬박사와 하이드씨》가 보여준 이중성의 탐구는 자아 분열이 일종의 지배적인 현상처럼 되어버린 오늘날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이러한 이중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은 그 외에도 《발란트라이의 주인 The Master of Ballantrae》과 그의 사후에 나온 《허미스튼의 웨어 Weir of Hermiston》가 있는데, 특히 뒷작품은 오늘날 그의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받곤 한다. 특히 《허미스튼의 웨어》는 스코틀랜드의 일상적인 언어인 스코트 방언을 전면적으로 사용한 소설로, 이후 20세기 후반에 번성하기 시작한 스코틀랜드 토착어 문학의 좋은 선례다.
지금까지 스티븐슨에 대한 평가는 그의 독창성에 비해 다소 인색한 편이었다. 그것은 사실주의적인 소설들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 때문에 상대적으로 스티븐슨의 아동문학이나 환상적인 요소들은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후반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정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영문학 내부보다는 주로 그 밖에서 진행되었다. 예컨대 환상적인 요소를 과감히 이용하는 이탈리아의 이탈로 칼비노,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 등의 비영어권 작가들이 스티븐슨의 문학적 성취에 주목하며 자신들의 선배작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스티븐슨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그를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작가로 보는 것인데, 스코틀랜드 문학은 인간의 이중성과 현실 이면에 숨은 어두운 악몽의 세계를 즐겨 탐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첨예한 이중성 속에서 인간을 바라본 스코틀랜드 문학의 안목은 오늘날 분열된 자아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변호사 어터슨은 친구인 의학박사 지킬이 자신에게 위탁한 유언장에 지킬의 유고 시에는 모든 재산을 하이드에게 주라고 한 것에 대해 늘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하이드의 만행 소식을 듣고는 호기심이 발동해 하이드의 정체를 추적하기로 한다. 하지만 가장 도움을 줄 수 있을 지킬은 이에 대해 함구해버린다. 그러던 중 하이드는 마침내 끔찍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그후 얼마 안 있어 어터슨과 지킬 둘 다 아는 친구인 래년 박사가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후 지킬은 두문불출하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어터슨은 의문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