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9월 15일 금요일
오늘은 아침부터 은혜가 넘치는 하루였다
어저께부터 함완식 전도사님 방에서 함께 새벽기도 드리고 하루를 시작하였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심을 늘 알 수 있었다.
아침에 김창근 집사님(화운틴 벨리 침례교회 집사님)께서 전화가 와서 그의 친구 염기동씨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에 가자고 하였다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장례식에 가게 되었는데 가는 길부터 프리웨이에서 차가 막혀서 십자가를 차창 밖으로
내어놓고 옆에 가는 차량들에게 전도를 하였다 앞뒤의 차들에게서
많은 반응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찬송을 힘차게 부르면서 전도를 했는데 우리를 보던
사람들의 마음이 활짝 열렸다 미국은 기독교의 바탕에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전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많은 차량들이 우리를 주시하며
전도하는 것을 좋아했다.“HALLELUJAH PRAISE THE LORD!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가 그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의 문화의 기본 바탕이
기독교니 만큼 믿음이 있던지 없던지 간에 노방전도에 대하여
크게 훼방하거나 한국에서 마냥 이를 간다거나 하는 사람들은 없었고 거의다
긍정적인 반응으로 받아 들였다
그런데 전도할 때에 전도를 방해 하려고 이를 갈고 덤벼드는 그러한
사람들은 거의 다가 악한 우상을 숭배하여 귀신의 영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교회안에 있는 이단자들이었다 (꼭 카인과 같은 자 들이 있다)
장례 예배 시간이 1시간 가량 남아 있어서 어제 전도하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한국 마켓 바로 앞에서부터 전도하기 시작했다 한국 장의사에서
장례식이 있었는데 마침 장의사가 이곳에 있었다.
나는 1시간을 그냥 무료하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보낼 수 없어서 그 시간을
이용하여 그 주변을 돌아다니며 전도를 하고 난 후
시간이 되어서 입관식 예배에 참석했다. 여기서는 죽은 사람 얼굴에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혀서 넥타이까지 메어서 얼굴이 보이도록 관을 열어 놓고 문상객들이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
그 후 관은 닫혀지고 그 관은 장지로 출발하기 위하여 차에 실려 지는데
장의차가 어마어마하게 고급 승용차이다 그 이름이 리무진인가 하는 차인데 내가보기에는
아마 미국에서 최고급 승용차 같았다. 아마도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호강 한번 하라는 것일 게지만 죽은 사람은 자기가 타고 가는 차가 좋은 차인지 나쁜 차인지
알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차라리 살아서 좋은 차 한 번타고
여행 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고 하고 나는 생각에 잠겼었다. 이제 장지로 출발하는데
경찰 싸이도크 두 대가 양쪽에서 호위 하면서 교통정리를 하고
리무진 장의차를 따라 문상객들의 차량이 줄을 지어서 뒤 따라 가는데 모두 라이트를 켜고 간다
이제 LA 시가지를 벗어나서 프리웨이로 들어섰다 나는 그 차량의 행렬에 끼어
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우리 차 창문 밖으로 십자가를 내어 높이 들고 시가행진을 했다
양쪽으로는 경찰이 호위하고 모든 차량들은 라이트를 켠 장례행열에서
우뚝 치켜들은 십자가 그 십자가에 쓰인 문구 이 모든 모습을 보는 이로 하여금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장지에 도착하니 공동묘지라고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묘지가 하나도 안보이고
널따란 잔디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고목들이 드문드문 서있고 전혀 공동묘지같이
공원 같이 보이지만 여기가 평토장한 묘지 공원이다.
생기지 않았고 무슨 잘 꾸며진 공원 같아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평토장한 무덤이었기 때문에 묘지의 봉우리가 없었다.
그리고 비석도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서 지평과 똑같게 묻고
윗면만 하늘 쪽으로 나오게 했는데 그 비석의 글을 읽으려면 허리를 구부려서 읽어야 된다
모든 땅이 잔디로 덮였으나 비석이 있는 자리만큼은 잔디가 없으니
잔디가 없는 곳 아래가 곧 묘지이다 나는 평토장 무덤을 처음 보았다 겉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지만 속에는 썩는 시체로 가득한 평토장한 무덤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이제 하관식을 하는데 예배가 끝나고 문상객들이
꽃을 한 송이씩 그의 영전에 갖다 바치면 그것으로 예식은 끝이 나고
그의 인생은 흙으로부터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그의 영혼은 그를 지은 자 앞에 서게 된다
나는 그에게 꽃을 바칠 때에도 나의 손에는 십자가가 들려 있었다
어디던지 십자가를 가지고 다닌다. 장례식에 참석함.
모든 장례식을 마친 후 김창근 집사님께서 점심 식사 대접을 하셨다
우리는 중국식당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마음껏 대접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세탁을 하고 다시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시내에 우체국에 가서
아내에게 쓴 편지를 붙이고 함전도사님과 함께 사촌동생
상건네 가게를 주소대로 찿아가는 중 차가 엔진 과열로 고장이 났다
그래서 엔진을 식혀가며 쉬었다가 운전하고 쉬었다가 운전하고
하여 몇 시간 씩이나 걸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상건네 집에는 차량고장으로 못 감. 차량의 고장상태는 엔진과열로
폭발 직전 이였었고 그 상태로는 도저히 돌아올 수 없는 상태였다 정비공장은
시간이 넘어서 고칠 수도 없었으며 또 수리비가 많이 드는 형편이라
난감하였지만 우리는 기도하고 시동을 걸어서 몇 킬로 와서 또 쉬면서 기도하고
이렇게 이렇게 하여 겨우 몇 시간을 고생하여 집으로 돌아 왔다.
금요 철야예배 화운틴벨리 침례교회 기도의 영을 부어 주셔서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
9월 16일 토요일
아침 새벽기도 후 식사하고 교회로 페인팅 작업을 하러 갔다
(화운틴 벨리 침례교회) 함전도사님과 함께 페인트 작업을 끝낸 후 수아미 시장 구경을 갔었다.
수아미 시장이란 각 가정에서 쓰지 않은 물건들을 꺼내놓고 서로
필요에 따라 물물 교환을 하는 곳이다 또 판매도 하는데 모든 물건이 중고이므로 가격이 저렴하다
나는 함전도사님과 함께 이곳저곳 다니며 미국사람들의 생활용품들을
구경도하고 하루를 그냥 보내게 되었다 .함전도사님은 악기 두 점을 구입했고
나는 제일 싼 기념품 1불 짜리 오픈 한 개와 (병마개 따는 것) 끝이 송곳같이
뾰쪽하게 생긴 나무에 구멍 뚫을 때 쓰는 연장 1불 짜리 한 개 또 한가지
프라스틱 안에 표구 해놓은 공예품 1불 짜리 한개 총 3개 3불어치 사서 왔는데
지금까지 아무짝에도 못쓰고 책상 서랍에 여기저기 뒹굴어 다니며 천대받고 있다.
LA 수아미 시장에서 이것 저것 구경하고 있다. (1989년 9월16일)
나는 그 수아미 시장에서 꼭 사고싶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그것을 사지 않은 것을 약간은 후회를 한적이 있다.
그중 한 가지는 그 미국 사람들이 영국에서 처음 넘어 올 때
청교도들이 가지고 온 성경 이였다 그 성경은 기름종이로 된 아주 오래된 것으로
가죽 캐이스도 때가 묻어 반질 거렸으며 두께가 두껍고도 무거울 정도로 컸다
나는 그것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살 것을 포기하고 말았는데
그것의 주인이 나에게 말하기를
“그건 당신에게 꼭 필요하니 당신이 그것의 주인입니다 사세요”라고 했다
가격은 70불이라고 하였다 나는 한참 생각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생각에 살 것을 포기하였다 “이것을 사서가면 좋은 기념품이 되겠는데, 음 살까?
아니야 내가 뭐 전도하러 와서 기념품을 챙기게 되었나?
그래도 그건 성경이니깐 괜찮아 사서가렴, 아니야 영어성경은 국내에도 더 싸게 얼마든지
살 수 있어 최고급 이라도 만원 안팎인데 어휴 70불이면 약 5만원 돈이잖아,
그래도 이건 기념품인걸, 하고 못내 미련이 남는데 내 속에서 기념품 너무 좋아하면
그것도 우상이 된다 그 돈이면 전도 하는데 경비로 쓴다면
얼마든지 많은 곳을 다닐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자 깨끗이 단념하고 일어섰다.
또 다른 곳에 가니 나의 눈에 뜨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오래된
골동품처럼 생긴 조그마한 창과 방패 이었다 그것은 이곳 미국 땅 원주민 인디언들이 쓰던 것인데
골동품이니 150불을 달라고 하였다 그때 150불이면 약11만원 정도였지만
있는 사람들 같으면 그 돈쯤은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전도자인 나에게는 단돈 천원도 만져보지
못할 때도 있었으므로 그 정도의 돈이면 대단한 액수였다
그것에 나의 마음이 이끌리는 순간 “내가 왜 이럴까 세상물건 지나가면 그뿐인데
나에게 왜 욕심이 생길까 오늘 전도를 안하고 물건구경을 하니 이것저것
가지고 싶은 마음뿐이네 내가 그 성경을 그렇게도 사고 싶어도 참았는데 이걸 가지고 싶어하다니!
말도 안 된다. 하고 떨고 일어나서 짠돌이 마냥 1불 짜리 3개 사서
기념품이라면 이것도 훌륭하지 하면서 돌아 왔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어두워지고
심히 곤고했다 이 귀한 시간에 전도 못하여 주님께 죄송하고 물질욕심에
이끌려서 들었다가 놓았다가한 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전도자는 항상 세상 등지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전도만 해야지 한눈 팔다간 옛날 것 다시 사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식사 후 교회 차로 모두 함께 싸이 프레스 기쁨 침례교회에
부흥회에 다녀왔다 강사는 한국서 오신 유덕용 목사님 이셨고 일본인 자매가 특송을 했는데
모든 시간들이 은혜로웠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