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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하는 산행이야기
진달래가 그리워지는 수리산 수암봉 - 태양산 산행기
(산새의 지저귐이 수암봉 바람을 만나 비어버린 가슴속에 자리 잡다.)
일시 : 2011년 4월 17일 오후 1시 ~ 5시
산행코스 : 병목안 삼거리 - 문둥바위 - 수암봉 - 태양산 - 새미골 - 문둥바위 - 병목안삼거리
산동무 : 아내와 단 둘이서
날씨 : 맑음 (스모그 현상으로 청명하지는 않음). 따뜻함(낮기온 18도 정도)
오늘 같이 산행을 하던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이도 늠내길을 갔다. 나와 아내는 오늘이 할머니 기일이라 연미사 신청을 한 아침 9시 미사를 보아야했기에 오이도는 포기하고 아내와 둘이서 오붓하게 수리산을 가기로 하였다. 오늘쯤이면 태양산에 진달래가 붉은 위용을 뽐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즐거운 상상을 한다.
미사 전에 어머니로부터 성당 본당수녀님이 나를 급하게 찾는다는 전화가 와서 시간보다 일찍 성당에 갔다. 수녀님의 용무인즉 ‘어떤 할머니가 아들이 없어 수양아들을 한명 키웠는데 이놈이 경마장 놀음에 빠져 노름빚으로 집도 이미 일부 저당 잡히고 할머니가 너무 시달림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집 한 채 있는 것 마저 아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집을 정리해서 요양시설로 들어가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과 달리 일시금을 내고 돌아가실 때 까지 있을 수 있는 요양시설은 없는 모양이다. 의료보험 공단에서 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는 돈을 벌지 않으시니 매달 돈을 낼 형편은 안 되고 요양시설과 협의를 해서 일시금을 내고 들어갈 수 있도록 협상을 해야 하는데 얼마를 내야 될지 수학적 계산이 필요 하시 단다. 그거 그냥 요양시설과 협의를 하면 될 일을 꼼꼼하게 하시려는 건지, 아니면 바가지를 쓰기 싫으신 건지 나보고 그걸 계산해 달라는 것이다. 할머니 연세가 현재 80이신데 앞으로 5년 사실 경우와 10년 사실 경우, 연금리를 4%로 적용할 경우와 2%로 적용할 경우, 요양시설이 싼 곳은 50만원 비싼 곳은 80만원인데 이 경우를 모두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내가 성당 아이들 수학 가르친다는 것을 성소 수녀님에게 들으시고 나에게 부탁하는 것 같았다. 미사 후에 집에서 일반식을 만들어 위의 8가지 경우에 대한 금액을 성소모임에 나가는 막내 딸 세실을 통해 보내드렸다.
우리나라는 그놈의 아들이 뭔지 자기 팔자에 아들이 없으면 그만둘 것을 제삿밥 얻어먹겠다고 수양아들을 두어 늘그막에 저리 고생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아들인 나도 우리 어머니에게는 생각만큼 보양해드리지 못해 항상 죄스러운데 노름에 빠진 양아들 뒤치다꺼리는 정말이지 끔찍할 것 같다. 판공시기이라 오랜만에 고백성사도 보고, 길고 긴 예수 수난기가 있는 성지주일 미사도 드리고 하늘에 계시는 할머니를 위해 기도도 드리고 집으로 왔다. 식구들 모두 늦은 아침을 먹고 집안 청소도 하고 이제 수리산에 가자해서 집을 나선 시간이 12시 50분이었다.
1시에 병목안 삼거리에서 버스를 내렸다. 오늘은 아내와 단 둘의 산행이다. 오늘의 코스는 문둥바위를 시작점으로 올라 수암봉과 진달래 밭인 태양산에서 진달래와 놀다가 내려오는 비교적 짧은 코스이다. 어제 만났던 산적대장은 태양산에 먼저 올라가는 길을 권하셨지만 직접 오르는 길은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수암봉부터 들르기로 하였다. 문둥바위에서 조금 올라가니 진달래가 곳곳에 피어 있다. 진달래를 배경으로 아내와 나 서로 한 장씩 사진을 찍어주었다. 오늘의 사진은 풍경사진이거나 독사진이거나 일 것이다. 문둥바위길은 제법 큰 소나무들이 많은 오솔길이다.
(문둥바윗길 등산로 입구 - 안내판 뒤로 문둥바위가 보인다)
(문둥바윗길로 오르면 바로 이런 아름드리 소나무와 만난다)
10분쯤 산을 오르니 지도에도 표시된 무덤이 나온다. 평소에는 그냥 옆길로 갔는데 아래에서 보니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발해있다. 무덤의 후손들이 무덤 주변에 일부러 심어 놓은 것 같다. 무덤은 철 구조물로 막혀있고 입구는 자물쇠로 잠가 놓아 보기에 좋지는 않았지만 진달래의 분홍과 개나리의 샛노랑이 멋지게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무덤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아 권세가 제법 있는 집 일듯 한 데 나의 생각으론 이 무덤을 개방하는 것이 무덤의 주인을 위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울타리를 치고 자물쇠로 잠가 놓으니 우리도 물론 무덤에 못 들어가지만 무덤 안에 계신 영혼도 마치 감옥에 있는 기분일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교과서에도 있던 동화 '키다리 아저씨'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귀찮아 벽을 쌓았더니 키다리아저씨 집에는 봄이 오지 않고 겨울만 계속 되었다는......' 무덤 앞에 제법 넓게 잔디가 있던데 이곳에서 사람들이 쉬면서 세상이야기를 하며 자기들만 먹기 미안하면 가끔 술도 한잔 드릴 것이고 무덤 주인도 심심하지는 않을 터, 개방해 놓으면 무덤이 얼마나 훼손될지는 모르지만 자기 조상을 이렇게 감옥에 가두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 까 싶다. 아무튼 사진 몇 장을 찍고 무덤을 나오니 개나리와 진달래 터널이다. 왼쪽 개나리는 활짝 피었는데 오른쪽 진달래는 아쉽게 아직이다. 진달래마저 활짝 피어난다면 이 길은 정말 수리산 명물길이 될 것 같다. ‘수리산에서 만나는 100가지 즐거움’의 새로운 후보지로 점을 찍어 놓고 다시 길을 오른다.
(무덤가로 핀 개나리를 배경으로 선 아내의 모습)
(묘소와 묘소를 둘러 싼 진달래와 개나리)
(묘소 옆길 진달래- 개나리 터널 : 왼쪽 개나리는 만발했는데 오른쪽 진달래는 아직이다. 이 둘이 함께 만개했을 때 이 길을 걷는다면 정말 행운일 것 같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과 가파른 오르막을 번갈아 오르니 웅장한 <초원바위>가 나타난다. ‘수리산에서 만나는 100가지 즐거움’의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초원바위를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초원 바위 사이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이 소나무가 초원바위의 마스코트이다. 초원바위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다 뒤에 오는 아내를 살피기 위해 무심코 뒤를 돌아다보았는데 시민공원의 폭포가 웅장하게 보인다. 이 길을 이미 여러 번 올랐는데 처음 보는 광경이다. 신기하게도 폭포가 보이니 폭포의 웅장한 물소리도 들린다. 보지 않았을 때에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이다. 아니, 들렸지만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듣지를 못했던 것이리라. 아내에게 왜 저 폭포를 지금까지는 보지 못하였을까 물어보니 ‘앞만 보고 걸었기 때문’이란다. 사람은 가끔은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볼 것을 보고 들을 것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감각에 의존하여 살지만 사실 우리의 감각이란 얼마나 무디며 또 얼마나 스스로에게 속는가? 폭포가 나의 뒤에 있었듯이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곳에 인생의 해답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였을 때 우리는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지 않던가?
(진달래와 초원 바위)
(초원바위 위에서)
(초원바위를 지나 오르막에서 뒤를 보니 시민공원 폭포가 보인다. - 이 길을 수없이 올랐지만 나는 오늘 처음 저 폭포를 보았다. 폭포를 보니 들리지 않더 폭포소리가 웅장하게 들려온다.)
아름봉을 거쳐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 길옆에는 봄꽃들이 한참이다. 대신 산에 오를수록 진달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양지쪽으로만 겨우 몇 송이 씩 피어있을 뿐이다. 오늘 태양산 진달래의 꿈은 접어야 될 것 같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보름 전 산행했을 때 노랗게 아름답던 생강나무가 이제 시들어 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올해 잘 자라서 내년에 다시 멋진 모습 보여 달라며 길을 재촉했다. 수암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어김없이 막걸리 포차가 여러 곳 자리 잡고 있다. 아내가 지난번 산행때 마셨던 옥수수막걸리가 맛있었는지 한 잔 마시고 가잔다. 막걸리를 한 잔하고 소나무 쉼터로 올랐다. 막걸리 파는 곳부터 수암봉까지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예전의 아름답던 이 길의 모습을 생각하면 볼 때 마다 화가 치미는 이 곳. 그래도 뭐 어쩌랴. 이제는 할 수 없는 것을.
(소나무 쉼터에서 소나무 한그루를 붙잡고)
수암봉 바로 아래에는 직직하여 바위로 오르는 길과 왼쪽으로 살짝 우회하여 헬기장으로 바로 가거나, 수암봉을 조금 쉽게 오르는 길이 있다. 여기서 망설이지 말고 바위를 치고 올라가야 한다. 바위를 치고 오르면 <지강바위>의 멋진 위용과 만난다. 이곳의 전망을 참으로 좋다. 넓게 펼쳐진 안산, 시흥, 인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남분기점에서 만나는 서해안고속도로, 외관순환도로의 모습도 멋지다. 가까이에는 수암저수지가 아담하게 보이고 중간에는 물왕저수지가 뽐을내며 고개를 들면 인천 송도와 그 앞바다가 보인다. 오늘은 아쉽게도 날씨는 맑은데 스모그 때문인지 황사 때문인지 송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지강바위 끝에 앉아 사진을 찍어달랜다. 사진을 찍어주고 아내에게 다가서는 순간 기가 막히게 멋진 새 소리가 들린다. 여러 마리의 새들이 리듬을 타며 노래를 부른다. 그 아름다운 소리를 글로 옮기려 하는데 표현이 안 된다. 츷, 치, 찌, 쪼. 마땅한 소릿글이 없다. “쯪쯔르 짓찌 쯔 지.. 쯔즈즈즈 지지” 하며 가락과 리듬이 나온다. 걸 그룹이 노래하는 “지지지지지” 뭐 이런 소리랑은 비교도 안 되는 맑으면서도 높고 제멋대로 인 것 같으면서도 오묘하게 어울리는 화음과 리듬. 여러 마리의 서로 다른 새들이 들려주는 이 아름다운 자연의 음악에 나는 한동안 귀를 기울이며 그 환희를 만끽하였다. 그 아름다운 소리를 조금이라도 잘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를 모으기 위해 두 손을 귀에 가져다 보았다. 이 소리를 녹음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 성능 좋은 녹음기라도 하나 장만해야 하는지... 가난한 내가 이럴 때는 너무 원망스럽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좋은 사진기 하나 장만해주지도 못하고 똑딱이 디카로 사진을 찍게 하는 것도 너무 미안하기만 한데..... 그래도 그 사진기로나마 멋지게 사진을 찍어 주는 아내가 나는 정말 너무 좋다.
(지강 바위에서 바라 본 시흥 목감, 물왕저수지, 인천 송도의 모습 - 스모그 때문인지 송도까지는 잘 안보인다)
(지강 바위에 앉은 아내의 모습)
(새들의 합창을 조금이라도 더 잘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운 나)
새들의 연주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될 즈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지강바위를 떠난다. 여기서 1분만 오르면 바로 수암봉이다.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어서인지 평소 오던 시간으로 오면 발 딛을 틈이 없었던 수암봉이 비교적 한가하다. 이 곳 정상에서도 막걸리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 여유 있게 수암봉과 전망대들 둘러보고 헬기장으로 하산을 한다.
(수암봉에서 본 수리터널과 수암터널- 오늘 저 옆길로 하산하였다)
(수암봉 전망대)
어느 길로 갈까 망설이며 아내에게 물어보자 태양산을 들렀다가 되돌아와서 새미골로 내려가진다. 상태로 보아서는 태양산에 진달래가 피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아내 말을 쫒아 태양산에 가기로 하였다. 헬기장에서 오른쪽은 안산 수암, 직진은 종주능선,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지도에 안산내미고개로 표시된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오른쪽 길은 천지신명비로 내려가는 길이고 직진은 태양산, 오른쪽 길은 새미골(지도상으로는 안산내미골, 일명 반딧불이 계곡)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리는 태양산으로 향한다. 태양산으로 가는 길 온통 진달래 밭인데 양지 바른 곳에 겨우 한두 송이 피어있을 뿐, 아직 몽우리도 없는 진달래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은 다음 주에 한 50%, 보름 뒤에나 80% 정도 피어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2주 뒤인 5월 1일. 수리산 산행 때에는 정말 멋진 태양산 진달래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헬기장으로 내려가는 길 청설모 한마리가 사람들이 던져 준 먹이를 먹고 있다. 팬스가 쳐 있어 사람들이 자기 있는 곳에는 못가는 줄 아는지 전혀 도망길 기색이 없다. 저 놈도 곤줄박이 처럼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로 모를 일이다.)
(헬기장 옆 부채소나무 - 소나무가 부채처럼 넓적하게 펼쳐져 있다)
태양산 가는 길부터는 아무도 없다. 단지 우리 부부 둘 뿐이다. 2주후에 수사사 식구들이 이곳에 왔을 때 점심 먹을 만한 장소가 눈에 띄어 찜해 놓았다. 진달래가 피어있지 않은 진달래 산이 너무나 아쉽기는 하지만 제법 키가 큰 멋진 소나무들과 솔향기가 실고 온 사월 향긋한 바람이 기분 좋게 콧노래가 나오게 한다. 그렇게 사브작 사브작 오른 태양산은 나무들에 막혀 전망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 오지도 않고, 대부분 알지도 못한다. 정상에는 안양시에서 설치한 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있다. 담배촌 60M라는 터무니없는 안내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600미터는 될 것을 60미터라니. 허 참. 담배촌은 병목안삼거리의 왼쪽마을을 말하는 것인데 옛날에 박해를 피해 살던 천주교인들이 담배농사를 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후두미골’이라고 불렸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님이신 최양업신부님의 아버지이신 최경환프란치스꼬 성인이 교우회장을 하다가 잡혀서 새남터에서 순교하시고 그 유해가 수리산에 모셔져 있다. 지금은 천주교 성지로 개발되었고, 안양8경 중 5경으로 손꼽히는 자리이다. 참고로 병목안 삼거리에서 오른쪽 마을은 창박골이라 하는데 지금은 그냥 병목안으로 통일되어 있고, 행적구역상으로는 안양9동이다.
(태양산 정상 - 정상은 이처럼 소나무로 막혀있어 조망이 없다. 담배촌 60M라는 잘못된 정상 안내판)
태양산 정상에 둘이 오붓하게 앉아 가져온 참외와 맥주 한 캔을 나누어 마시며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제 수사사 임시총회 이야기며, 다음 주 석모도 이야기며, 아이들 이야기며, 어머니 이야기 뭐 그냥 시시콜콜 사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다가 문득 ‘꿈의 대화’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엔,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 너와 나 만의 꿈의 대화를....’ 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아내는 듣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이 노래 같이 배워서 다음번 노래방 갔을 때 멋지게 불러보자 하는데 아내는 그냥 웃기만 한다. 한동안 태양산 정상에서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다가 산을 내려가기 위해 일어섰다. 빨간 배낭을 멘 아내의 모습이 수리산 맑은 하늘 아래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청명한 하늘아래 하느님에게 우리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내와 달콤한 키스를 나누었다. 수리산의 한 가운데 볼록 솟은 태양산. 수암봉, 수리봉, 슬기봉, 태을봉이 감싸주는 수리산의 한가운데 태양산 정상에서 수리산의 기를 받으며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새들이 지켜보는 대자연의 정상에서 나누는 사랑의 키스. 그 키스의 여운은 우리들의 사랑의 징표로 오래도록 예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새미골 산괴불주머니 - 마술사의 묘약인 듯 초록과 노랑이 신비롭게 섞여있다)
(새미골 털괭이눈 - 자기들끼리 재잘재잘 종알종알 시끄럽다. 이 아름다운 꽃이 봄이면 언제나 새미골에서 나를 반겨주기를......)
(새미골 큰개별꽃 - 꽃말이 은하수 - 별을 뿌려놓은 듯 귀엽고 앙증맞다)
다시 안산내미골 사거리로 내려와 새미골로 길을 잡는다. 새미골은 수리산에서 가장 완벽한 원시림을 볼 수 있는 골짜기이다. 이 길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아내와 나 둘 밖에는 없다. 수백그루의 아름드리나무들이 쭉쭉 시원하게 하늘로 솟아있다. 길옆에는 현호색은 지천으로 깔려있고 꽃말이 은하수인 큰개별꽃은 밤하늘에 은하수를 펼치듯 초록잎을 배경으로 흰꽃잎을 점점히 흩뿌려놓았다. 산괴불주머니는 노랑과 초록이 어울려 마치 마술사의 묘약 재료인 양 신비롭다. 여섯송이의 작은 꽃들이 두줄로 피어있는 털괭이눈은 자기들끼리 종알종알 재잘거리며 ‘나 여기 있어요.’라고 낙엽이며 돌 아래에 숨어 있다. 그러나 여기도 작년 곤파스의 피해를 벗어나지 못해 곳곳에 쓰러진 나무들과 그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다. 안양시에서 쓰러진 나무들을 톱으로 자르고 우선 길을 내었지만 전부를 다 정리하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어느 정도 내려오자 사방공사를 한 흔적이 보인다. 작년 봄이 이곳에 들렀을 때는 없었던 것인데 아마도 곤파스로 사태가 나자 부랴부랴 공사를 한 것 같다. 조금 더 내려가니 장승으로 유명한 개간지가 나온다. 이 곳 개간은 누가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환경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반딧불이도 키우고 장승도 만들고 농사도 지으며 사는 곳 같다. 오늘은 작년에 안보이던 솟대들이 대거 세워져 있다. 아내는 쑥 뜯기에 여념이 없다. 그거 그만 좀 뜯으라고 해도 아내는 막무가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딱 한번 된장국 끓일 정도만 뜯어가자해서 나도 몇 뿌리 뜯어보았다. 조금 더 내려오니 난과 비슷하게 생긴 풀의 새싹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내가 몇 뿌리 캐가자고 해서 작은 놈으로 다섯 뿌리 캐왔다. 집에 와서 화분에 옮겨 놓았는데 잘 자랄지, 또 자라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작년 곤파스에 뿌리째 넘어진 나무와 새미골의 원시림 - 이 나무가 무너져 길을 막자 나무를 잘라 길만 내었다.)
(새미골의 한가한 오솔길 - 오른쪽 뒤로 사방공사를 한 흔적이 보인다)
(반디의 집에서 - 여름이면 이 곳에서 반딧불이 축제를 연다)
(아내가 금방 쑥을 한 줌 뜯어서 보여준다)
(작년에는 없었던 솟대 - 이 곳 예술가들이 장승 대신 솟대를 만들기로 했나보다)
(여러가지 모양의 장승들이 저마나 뽐내고 있다)
이 마을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수리터널과 수암터널의 중간 외곽순환도로 옆을 지난다. 쌩쌩 달리는 차 소리가 어찌나 시끄러운지 저곳을 덮어버릴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길가에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이 있어 이곳이 얼마나 깊은 골짜기인지를 설명하여 준다. 보신탕을 파는 은행나무집을 거의 다 내려와서야 겨우 등산객들을 만났다. 수리산 주능선은 사람에 치여 제대로 산행을 할 수 조차 없다. 그러나 오늘 우리 부부가 다닌 태양산과 새미골은 정말 한가한 곳이다.
(물이 오른 버들 강아지 - 오늘 아내가 찍은 사진 중 가장 멋진 사진이다 )
병목안길로 내려와 수암천을 따라 아내와 손을 잡고 걷는다. 수암천 건너에 ‘수리산에서 만나는 100가지 즐거움’중에 하나인 수암천 버드나무가 연두빛 새싹을 살포시 내밀고 한껏 물오를 오월을 기다리고 있다. 수암천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맑게 느껴진다. 물을 살펴보니 제법 크고 날쌘 송사리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저 바위틈 사이로 가재도 있고, 물방개도 잘 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것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인데 우리 수리산은 너무나 많이 열려있다. 그것이 또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수리산에서는 합격 판정을 받은 약수가 몇 곳 없다는 것이 우리가 수리산의 보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말해준다. 어느덧 산행을 시작하였던 문둥바위가 보이고 병목안 시민 공원이 보인다. 공원입구에 바람으로 등산화며 등산복을 씻어주는 칙칙이로 아내와 나, 서로의 먼지를 털어주며 오늘의 수리산 산행을 마쳤다.
(수암천 버드나무는 이제 연두빛으로 살짝 물들었다)
1시에 시작한 산행이 5시에 끝났으니 오늘의 산행 시간은 4시간. 마음먹고 돌았으면 2시간이면 될 코스를 천천히, 쉬엄쉬엄 우리부부의 일요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오늘 길은 대부분 아무도 없는 길을 아내와 나 둘이서 걸었다. 부부란 무엇일까? 아무도 없는 길을 둘이서 가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힘이 들고 또 넉넉하지 않아도 일요일이면 산에 갈 수 있으니 난 행복하다. 그것도 예쁜 아내와 함께 갈 수 있으니 난 더더욱 행복하다. 이 행복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언젠가 아내에게 그런 약속을 하였다. 우리 둘 중에 한사람이 무릎이 다 되어서 산에 못 가게 되면 함께 자전거를 배우자고. 그래서 함께 안양천을 누벼보자고... 등산을 하던 자전거들 타던 여행을 가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을....
2011년 4월 17일 수리산 수암봉 태양산을 산행하고 나서
PS 위에 난과 비슷한 풀은 비비추였습니다. 그 풀들이 우리집에서 잘 자라 드디어 그 중 한 송이가 꽃을 피웠답니다. 그래서 사진을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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