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자료] 서울 행촌동의 '테일러 가옥(딜쿠샤, 이상향)'
▲ 독립문네거리에서 사직터널로 걸어오르면 (단, 이 경우 대신고등학교 쪽으로 길을 선택하면 접속도로가 막혀있거나 찾기 힘들므로 반드시 건너편의 남쪽 인도를 이용하여 사직터널로 올라가야만 행촌동으로 진입할 수 있다) 터널입구 상단부에서 이러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저 너머로 보이는 큰 나무가 이 '행촌동(杏村洞)'이라는 동네이름을 만든 바로 그 유명한 '은행나무'이며, 그 왼쪽에 바로 '테일러 가옥(딜쿠샤)'가 자리하고 있다.
▲ 이것이 행촌동의 이상향, '딜쿠샤'의 모습이다.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88번지이며, 새도로주소로는 "충장공길 11"이다. 이 일대가 골목길이라서 찾기가 힘들다면, 이 '충장공길'이라는 표지판에 유의하는 것도 이곳을 쉽게 찾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 미니 장독대의 역할을 하는 곳에 'DILKUSHA 1923'와 'P.S. ALM CXXVII-I'이라고 두 줄로 새긴 머릿돌이 남아 있다. 딜쿠샤는 인도의 곰티강 근처에 있는 딜큐샤 궁에서 따온 것으로 힌두어로 이샹향(행복한 마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집에 얽힌 사연과 내력에 대해서는 지난 삼일절에 KBS 1TV에서 방영된 특집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나라"에서 소개된 바 있다.
▲ 건물의 뒤쪽에서 살펴보면 건물보존상태가 썩 좋지는 못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뒤편으로 보이는 것이 행촌동 은행나무(서울시 보호수 '서1-10',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18)이다. 이 나무 아래에는 "권율도원수 집터"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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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자료 1] '테일러 가옥' 화재사건에 관한 신문자료
미국인 부호가(米國人 富豪家)에 낙뢰섬섬(落雷閃閃)!
광산하는 부호의 집에 벼락에 떨어져 큰 소동
<시대일보> 1926년 7월 27일자
작 이십륙일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지며 뇌성과 벽력이 진동하더니 마침내 오전 일곱시 이십분경에는 시내 행촌동(杏村洞) 일번지(一番地) 미국사람으로 조선에 건너와 광산업으로 거부의 이름을 듣는 '텔러'씨의 삼층벽돌집 벼락을 쳐서 삼층에서부터 불이 일어나 이층까지 거의 소실되었는데 원래가 맹렬하게 타기 시작하였으므로 소방대의 진력과 쏟아지는 소낙비가 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약 두 시간 가량이나 타고 겨우 진화되었다는데 그 집에 유하던 가족 일명은 감전으로 중상을 당하고 건축물은 물론이오 가구와 기타 피해가 막심하다 하며 동 팔시 사십분에는 부내 관철동 일백이십오번지 중국요리 제일루(第一樓) 지점에도 벼락을 쳐서 천정을 뚫고 지나갔으므로 크게 놀랐으나 별 손해는 없었다고.
▲ <매일신보> 1926년 7월 27일자
행촌동 산상(杏村洞 山上)에 폭우중 대화(暴雨中 大火)
텔나씨의 양옥집이 전소
손해는 삼만원이나 된다, 원인(原因)은 낙뢰호(落雷乎)
<매일신보> 1926년 7월 27일자
이십육일 아침 큰비로 한편에서는 폭우가 쏟아져서 물난리를 만나 물을 막느라고 소동 되고 혹은 다리가 유실되어 그것을 붙들어 매느라고 서대문형무소에는 죄수까지 출동하는 오전 여덟시 오십분경에 폭우와 동시에 낙뢰가 사면에 요란할 때 서대문외 행촌동(杏村洞) 일번지에 벽돌 이층으로 지어논 미국인 '텔나'의 집 이층에 불이 일어났는 바 시내에 있는 각소방대는 전부 출동되었으나 행촌동 산꼭대기라 수도(水道)가 육정 밖에 있으므로 도저히 물을 끌어드릴 수 없게 되어 약 한시간반까지에 지붕과 및 목재는 전부 타게된 후 겨우 수도가 연락되어 동 열시 오십분경에 진화되었는데 그 집에는 현재 '텔나'씨의 점원이 거주하여 있고 '텔나'씨는 목하 태평통(太平通) 이정목에서 잡화상을 경영중이라는 바 아직까지는 낙뢰인지 누전인지 원인은 분명치 못하므로 소관 전기회사와 경찰에서는 조사중이라는 바 손해는 대략 삼만원 가량이라 하며 그 집은 현재 이만원 보험에 있다더라.
▲ <동아일보> 1926년 7월 27일자
사처(四處)에 낙뢰(落雷), 화재(火災)와 감전(感電)
화재손해는 일만여원 가량이고 감전된 사람 일시 혼절 하였을 뿐
귀중보물 전부소실(貴重寶物 全部燒失)
<동아일보> 1926년 7월 27일자
작 이십육일 오전 여덟시 사십분경에 시내 행촌동(杏村洞) 일번지 미국인 광산가 '에이 따불유' '테일라'씨의 벽돌 이층집 굴뚝에 돌연히 벼락이 내리었는데 그로 말미암아 불이 일어나서 소관서대문서와 시내 각 소방서의 총출동으로 푹우가 나래는 중에 진화에 노력하였으나 그곳은 지대가 높은 산언덕이므로 물을 마음대로 끌어대일 수 없어서 그 집 건물 이층 전부를 태우고 아래층도 반이나 태운 후 동 아홉시 이십분에야 겨우 진화하였는데 그와 같이 낙뢰하는 바람에 그 집에 고용으로 있는 사람 한명이 감전이 되어 일시 혼도하였으나 즉시 응급치료로 생명에는 별관계가 없겠다 하며 소방부 김복일(金福日, 26)도 부상을 당하였다 하며 그 집 웃층에 산 같이 쌓아 두었던 수백년된 귀중한 고물(古物)이 많이 소실되었다는데 화재 손해는 약 일만원 가량이라더라.
[첨부자료 2] 행촌동 은행나무에 관한 신문자료
▲ <동아일보> 1924년 7월 14일자
[내동리 명물] 행촌동(杏村洞) 은행나무
[정해자(正解者)] 행촌동 107번지 이순○(李順○)
<동아일보> 1924년 7월 14일자
<>사직골 성터진 너머 남향판 언덕 위에 은행나무 하나가 우뚝 서 있습니다. 맑은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와 잎사귀는 속살속살 옛날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이 은행나무는 행촌동의 명물이오 행총동의이름은 이 은행나무가 있는 까닭이올시다.
<> 이 은행나무의 춘추는 얼마나 되었는지 자세히 아는 이가 없으나 노인네의 전하는 말을 들으면 사직(社稷) 안에 있는 태조대왕 수식송(太祖大王 手植松)과 벗할 나이 아니면 연치 존장은 단단하다 합니다. 그리고 물구즉신(物久則神)이라더니 낫살이 많아서 아는 일이 있는지 보통 해에는 열매가 열지 않다가 나라에 큰 일이 있으려면 한번씩 열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 몇해 전까지는 엉클한 뿌럭지를 드러내어 오고가는 사람을 붙들어 앉히고 구름 같은 그들로 덮어주며 "내가 너희들 몇대조부터 이렇게 정답게 굴었다" 하는 듯하더니 지금은 코큰 양반의 울타리 속에 들어가서 예전 인연을 다 끊어버리고 "어느 몹쓸 놈이 나를 팔아먹었노" 하고 궂은 비를 눈물 삼아 뿌리고 있습니다.
▲ <동아일보> 1933년 7월 26일자
고령수순례(高齡樹巡禮) 제4 = 행촌동 은행(杏村洞 銀杏)
<동아일보> 1933년 7월 26일자
세상에서 이르기를 금슬 좋은 은행나무라 합니다마는 원래 늙은 몸인지라 원앙의 꿈도 이제는 옛기억이 희미할 뿐입니다. 앞으로 의주(義州) 무학재 고개를 멀리 바라보고 뒤로는 조선 오백 사직의 옛터를 등지고 있는 나는 지금 "매이 테러"라는 미국 사람의 뜰을 지키고 그날 그날의 옛 회포를 풀을 길도 없이 서 있을 뿐이외다. 나이 이미 오백살을 넘기었으니 내가 지금 좀더 무슨 말이라도 하면 곧 '망령'이니 무엇이니 떠들어 버릴 터이니 차라리 긴말을 하지 않으렵니다. 다만 나 있는 이곳이 옛날에는 조그만한 야산이더니 지금은 제법 사람의 주택지로 되었고 근처에도 '악박골'약물터를 빼놓고는 이주조차 모를 집들이 하도 많이 생기었다는 것을 소회 삼아 두어 마디 말해둘 뿐이외다.
(정리 : 2006.6.12, 이순우, http://cafe.daum.net/dist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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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쥔장한테 허락도 안받고 급한 마음에 일단 퍼왔습니다. 4짱이 언젠가 소개했던 카페 "일그러진 근대역사의 흔적"에서...읽어볼만한 자료가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