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홋가이도(북해도) 연수기행
북해도(홋가이도) 노보리베치, 화산폭발로 쓸모없는 땅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용암이 흘러내린 골이 마치 손톱자국 같다.
꼬막껍질을 엎어놓은 것 같은 산 아래 해변 좁은 땅에 키 작은 아이누족들이 오밀조밀 살면서 자손을 이어 왔단다.
용암이 흘러내린 척박한 땅에 스며든 해수의 짠맛은 고통 이였고, 먹을 것이 없어 영역이 없이 노략질하며 자손을 이어왔단다.
기아에 허덕이며 지켜온 이 척박한 땅을 일 본족에 빼앗겨 버리고 지금은 명맥만 유지한 아이누족의 한이 설어있는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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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불리벳츠의 시대촌(지다이무라)
에도시대(1603-1868)를 재현되는 테마공원에는 가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늘진 오후의 공기가 차갑다.
갈잎을 쓸고 있는 기모노 차림을 한 게이샤의 고사리 같은 손에 가을의 쓸쓸함이 쥐어졌다.
이국의 정취와 에도시대 건물을 함께 담아가고 싶어 사진을 요구하는 나에게 상냥하고 친절하다. 나중에 알아보니 테마극의 배우란다.
야외무대에선 관광객의 푼돈을 얻기 위한 난자들의 칼바람 놀이 공연에 몇 안 되는 관광객이 둘러싸여있다.
나는 난자들의 연극보다 어렸을 때 길거리에서 보았던 약장사의 호객행위를 본다.
에도시대를 재현한 기와집 건물의 곡선이 아름답다.
그러나 바닥도 벽도 천정도 오래된 목조로 삐걱거리고, 관광객의 볼 건지라는 단막 시대극 닌자 공연, 게이샤 공연, 그리고 귀신 미로는 유치하기만 하다.
왜 이들은 이 땅에 에도시대를 재현하려 했을까? 신분의 상승이 가장 덧보였던 닌자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전국시대를 동경해서 이었을까?
일본 전국시대를 종결하고 화려한 막부를 연 이에야스 일생을 기록한 소설 20권을 밤세워 읽었던 지나날 기억이 새롭다.
질풍노도 같은 신속함으로 일본 전국을 재패했던 노부가나, 아부와 능글거림으로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전국을 제패한 히데요시, 도약 할 때까지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리며 결국 전국을 제패했던 이에야스.
『울지 않는 새는 죽여라, 울지 않는 새는 울게 하라,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
세 사람의 정치 철학보다는 이에야스가 태어나서 사라지는 영욕의 일생에서 세월의 무상함과 때와 인간의 만남이 자기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만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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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계곡, 지고쿠다니
온 동네는 유황냄새 자욱하고 산은 아직도 수많은 분화구에 자욱한 연기를 피어내고 있었다,
수백 년에 거쳐 분출된 유황이 세월 속에 하얗게 굳어 황토색 땅을 점령해 가고 있었다.
지옥계곡이라고 써진 검은색 말뚝이 연기보다도, 척박한 땅보다도, 더 지옥 같은 분위기를 연출 한다.
쉼 없이 계곡에 흐르는 뜨거운 온천수의 源泉(원천)이 궁금해지는데, 시골의 공기와 온천수의 뜨거움으로 어우러진 노천탕의 물에서 게이샤의 섬섬옥수 같은 손길이 느껴진다.
유황의 냄새는 고약해도 부드러운 물길을 한 평생 대해도 싫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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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호수
화산 폭발로 인한 지각의 융화작용으로 침강된 곳에 물이 고여서 생긴 칼테라호이다.
아직도 해발 420킬로의 산에는 유황의 연기를 내뿜고, 금방이라도 화산이 폭발하며 용암을 분출 할 것만 같다.
화산 활동으로 호수 한 가운데 섬이 솟아나 도나스형이 된 호수는 맑고 투명 할 뿐 아니라 겨울이도 얼지 않는단다.
몇 안 되는 사람을 싣고 호수를 도는 관람선이 쓸쓸 하기만 하다.
설경으로 유명한 이곳에 눈이 오지 않아서 일까 막물된 초록의 색깔은 볼품이 없다.
졸음이 몰려온 노곤한 버스여행길, 가이드의 해박한 해설을 들으며 덜컹덜컹 오후의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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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호수가의 썬팔레스 호텔(특급호텔)
창문을 열면 호수가 내다보이는 호텔 창가 의자에 앉아 좋아라 하는 아내를 바라본다.
아직도 수술 후유증으로 힘들어 하는 아내의 쓸쓸한 얼굴이 서럽다.
아내가 즐거워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다.
아내를 바라보는 내 두 눈에 어느덧 눈물이 고여 가고 있었다.
억지로 눈물을 말려기 위하여 하늘을 쳐다보며, 한이 되어버린 나의 지난 한평생을 본다.
날이 저문다.
사물을 구분하기 어려운 가을의 쓸쓸한 빛이 사라지고 도야의 호수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거울과 같은 호수에 쓸쓸함이 차오르는 시간, 어울리지 않는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호텔로비에 앉아 쓰디쓴 삿보로 맥주를 애찬하며 즐기는 우리에게 피곤과 졸음이 몰려온다.
또다시 검은색을 걷어내며 또 다른 날이 파란색으로 동터 오른다.
사려 깊은 청명한 날씨 덕분에 경관 좋은 호텔주변을 돌며 아내와 사진을 찍었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거울 같은 호수를 미끄러지듯 해염치는 백조 두 마리가 정겨웁다.
감정과 서정이 말라버린 나이든 사람들도 그림 같은 풍광에 설렌다면서 부부끼리 나와 사진을 찍는다.
눈 커플조차 걷어 올리기 힘든 피곤을 짊어지고 또다시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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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의 미항이라는 오타루
오타루는 유리공예, 오르골(인형이 돌면서 음악을 울리는 시계)등 으로 유명한 인구 14만명의 작은 도시다.
물류를 본선에서 소형 선박으로 운반하기 위해 건설하였다는 운하는 현대적인 물류시스템에 밀려 기능을 잃고 지금은 쓸모없어 관광객에게 골동품처럼 팔고 있다.
우리나라 청계천만도 못한 운하를 보기 위해서 먼 거리를 날아왔다는 것이 억울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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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도시 삿포로
삿보로 인구 150만의 도시,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알려진 도시, 어름조각 예술 축제로 유명한 도시, 눈으로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도시 이다.
그러나 가을의 삿보로는 환상적인 어름조각 예술도 소설속의 환상적인 설경도 없다.
겨울이면 쉼 없이 소복소복 내린 눈이 이곳에 하얀 나라를 만든다고 한다.
환상적인 이곳 설경을 보고 일본의 예술가들은 감성이 발동하여 찬란한 작품을 만들 엇단다.
『터널을 지나면 설국 이였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야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쓸쓸하고 외롭게 지냈던 그는 고독과 죽음에 대한 미학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의 허무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시마무라를 둘러싸고 게이샤인 고마코와 미소녀 요코의 심리적인 갈등과 산문시와 같은 아름다운 문체로 써진 소설이다.
작가는 결국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가스 호스를 물고 자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인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 『러브레터』도 이곳의 환상적인 눈을 배경지로 만들었단다.
눈속 등반사고로 목숨을 잃은 연인을 잊지 못한 여주인공(히로코)이 그가 살던 방을 찾아갔다가 연인의 옛주소를 발견하고는 손목에 옮겨 적는데서 시작된 영화는 허상을 진실로 착각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어쩌면 우리는 진실을 모르고 미화된 허상에 속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도,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 의 소설 빙점도 같은 맥락인지 모른다.
작가들은 어쩌면 진실을 덮어버린 눈의 순백, 아름다움을 보고 그 해답을 제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아름다움이 벗겨진 세계는 어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볼품이 없다.
우리는 가끔 허상이 벗겨진 위정자, 지식인, 배우, 공직자들을 보고 실망과 조소를 보내고 있지만 자기 자신도 위선과 거짓으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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