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짓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작가 :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운율 : 내재율
성격 : 상징적, 성찰적, 관조적
제재 : 잃어버린 고향
주제 : 이상향에 대한 동경
출전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이해와 감상
윤동주의 시에서 '고향'은 그리움과 비애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그리운 고향에 돌아왔지만, 고향은 이미 육신과 영혼이 함께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1연에서의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는 그리운 고향에 왔지만 더 이상 고향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가 없어 자아의 분열된 모습을 보인다. 2연에서 백골이 누워있는 '방'은 현실을, 우주는 '이상'을 뜻하는 것으로 분열된 자아는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갈등을 일으키고 3연에서는 갈등이 표면화된다. 4연과 5연에서는 어떤 존재가 어둠을 짖으며 존재감이 분열된 나의 부끄러움을 일깨우고 있다. 6연에서 화자는 또 다른 고향에 가자고 한다. 여기서 또 다른 고향이란 현실에서의 백골처럼 무기력한 모습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자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더 알아두기
<윤동주의 시 세계>
● 그리움과 실향의 비애
윤동주의 시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비애의 감정이다. 이러한 비애의 감정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윤동주는 당시의 식민지 시대에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영혼의 뿌리 깊은 상실감 등으로 인한 비애의 감정을 여러 작품에서 표현하였다. 그러한 정서는 그리움으로 발전하여 때로는 비극적으로 때로는 서정적으로 윤동주의 여러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 부정적 현실과 죄의식
일제 강점하의 여러 지식인들의 모습이 그러했지만, 그 중에서도 윤동주는 특히 자학에 가까운 자기 부끄러움의 의식이 많았던 지식인이었다. 윤동주는 여러 작품들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매우 꾸짖으며, 또 절대적 자아에 대한 성찰 의식으로서의 부끄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죄의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저항 의식이라고 평가되기도 하고, 부정적이고 비판적 현실에서 스스로 적극적인 저항 의식을 펴지 못하는 데에 대한 자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평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