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꽃은 핀다. 요즈음 꽃을 피우는 나무에는 무궁화, 회화나무, 배롱나무, 쉬나무, 두릅나무, 가중나무 등이 있다. 또한 꽃은 이미 졌으나 연두 빛 꽈리가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모감주나무도 넣어줄 만하다.
모감주나무는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여름 꽃나무로 서해안에 군락을 지어 서식하므로 중국 원산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우리 지역만 하더라도 숙천초등학교 뒷산, 금호 국도변, 영천 입구 강둑, 영일만 언덕 등에서 자생하고 있음이 발견되어 우리나라에도 자생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나무는 노란 꽃을 피우고 난 자리에 연두 빛 꽈리를 밝혀들며 가을이면 쇳녹 빛 꽈리를 매어단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세 번 꽃을 피우는 삼복화(三復花)라고 할 수 있다. 꽈리 속의 단단한 열매로는 염주를 만든다.
무궁화는 이 여름에 더욱 꿋꿋하다. 서양에서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로 불리며 사랑 받고 있는데, 동양에서도 무관(舞官), 근화(槿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사랑을 받고 있다. 진딧물이 잘 탄다,
병에 약하다 하며 더러 폄하하지만 수분이 넉넉하고 거름만 알맞으면 전혀 약하지 않다. 이름 그대로 무궁무진하게 꽃을 피워낸다. 서변동을 지나 팔공산으로 가는 길의 가로수로 조성되어 있는 무궁화는 올해 전혀 병 없이 아름다운 꽃을 잘 피워들고 있다.
회화나무는 지금 연둣빛 꽃을 한창 피워들고 있다. 아카시나무 잎을 닮은 이 나무는 그늘이 짙어 최근 가로수로도 많이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4대 장수목(長壽木) 중의 하나인 이 나무는 예로부터 선비 집안의 뜰에 많이 심어 겼으므로 선비나무, 학자수(學者樹)로도 불린다. 옛 중국에서는 이 나무 밑에서 정사(政事)를 논의했다는 기록이 많다.
배롱나무는 지조와 정절을 상징하고 있다. 그 붉은 꽃빛이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꽃이 오래 가기 때문이다. `원숭이미끄럼나무’, 또는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붉은 꽃을 무려 백오십일 정도나 피운다. 그래서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고도 부른다.
쉬나무는 `소등(燒燈)나무, 소동(小桐)나무, 수유(茱萸)나무, 쇠동백나무’라고도 불리는 귀한 나무이다. 옛날에는 이사를 갈 때에 꼭 이 나무 씨앗을 챙겼다고 한다. 이 나무의 씨앗에서 등(燈)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을 비롯하여 머릿기름, 식용유 등이 나오기 때문이다. 연둣빛이 비치는 흰 꽃이 지고 나면 산초나무 열매와 비슷한 열매를 마구 매어단다.
두릅나무는 수난을 많이 당하는 나무이다. 봄이 되어 새순을 내밀기 무섭게 꺾여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드릅나무는 날카로운 가시까지 내밀어보지만 사람들은 봄 반찬으로 용하게도 목을 잘라가고 만다. 퇴계 선생의 시조에도 이 나무는 `목두채(木頭菜)’라 하여 귀한 채소로 등장한다.
가중나무는 꽃은 이미 졌지만 노란색이 비치는 연둣빛 꼬투리가 마치 꽃처럼 보이는 나무이다. 참중나무(眞僧木)에 비교되어 가승목(假僧木)으로도 불리는 이 나무는 또다시 추락하여 `개가죽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나무는 잎자루 떨어진 자리가 호랑이 눈처럼 우람하다 하여 중국에서는 호안목(虎眼木)으로 불리는 나무이다.
이 더위에도 이 나무들은 아름다운 꽃을 피워 그들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삶까지도 풍요롭게 해준다. 꽃은 필연적으로 열매를 소망한다. 더러 열매를 맺지 못하는 헛꽃도 나오고, 벌레에게 먹히거나 비바람에 떨어지는 꽃도 있지만 모든 꽃은 열매 맺기를 전제로 하여 이 세상에 나온다.
연말 선거를 앞두고 바야흐로 말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종국에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말잔치라고 하더라도 많은 말 가운데에서 더러 열매를 맺는 말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더위에 애써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들에는 천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치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말의 꽃을 피우고 있는 모든 사람을 존경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