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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진의 수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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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상식 스크랩 난치병 치유
이숙진 추천 0 조회 13 07.05.03 11: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옥미조: 말기암 등 20여 만 명의 난치병환자 무료로 고쳐온 기인  

 

취재일: 2002년 4월 21일

 

순리치유법 창시자 옥미조 선생

 

제목: "병원에서 고치지 못한 절망에 찬 환자들은 모두 오십시오."

 

요점: 순리치유법 배우면 스스로 병 고칠 수 있어

        절망에 찼다 기적적으로 나은 환자 부지기수

        지난 15년 간 20여 만 환자 무료로 진료해줘

        NHK에서 '한국의 기인'으로 특집 방송하기도

 

  "병원에서 고치지 못한 환자만 오십시오."

  푸른 파도가 시원스레 펼쳐진 남해의 한 섬에서 순리원(順理園)을 운영하고 있는 옥미조(玉米造 60세) 선생은 순리치유법(順理治癒法)의 창시자이다. 그는 자신이 창안한 순리치유법으로 절망에 찼다 우연히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수많은 환자를 15년째 구료해오고 있다. 그간 그가 고친 병만도 폐암·갑상선암·코암·간암·위암·췌장암·피부암 등 각종 암을 비롯하여, 백혈병·빈혈·혈소판 감소증·청색증·협심증·심근경색·근무력증·파킨슨병·중풍·와사풍·디스크·류머티스 관절염·좌골신경통·축농증·악성종양·담석증·고혈압·당뇨병·간질·자폐증·불면증·정신착란·만성두통·자율신경 실조증·치질·중이염·천식·담석증·신부전증·불임증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또 나은 환자만도 10만 명에 이른다니 가히 놀라운 일이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들 병을 그는 순리로 치료하면 능히 낫기 마련이고 나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병은 삶의 방식과 조건이 순리에 어긋나서 생긴 현상이며, 난치병이란 순리로 치료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붙인 말에 불과하다고 한다. 때문에 이 세상에 난치병은 없을 뿐더러 순리에 따르면 어떤 병이든 당연히 낫기 마련이고, 누구든 순리치유법을 배우면 스스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지론이다. 말기암 환자의 경우도 2개월만 버텨준다면 순리적인 생명 복원력으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병원에서 고칠 수 있는 병은 병원에서 고치고, 병원에서 고치지 못했다면 언제든 그에게 오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의 이런 독특한 치료이론과 기적적인 치유사례가 알려지면서 이제 순리원은 절망에 찬 환자들에게 재생의 희망을 주는 터전이 되고 있다. 또한 인공 화학적인 치료방법의 한계에 봉착하여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각종 질환에 속수무책인 의학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곳이 되고 있다.

  필자가 옥미조 선생을 알게 된 것은 한 한의사가 이야기를 해주어서이다. 그 한의사는 옥미조 선생을 동서양의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의통(醫通)'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또한 그는 그가 깨달은 순리철학을 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하기도 하고, 순리농법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고, 지금껏 20여 만 명의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 주는 등 기행합일(技行合一)을 이룬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참으로 '대단한 분'이란 생각에 취재계획을 세워 남해의 섬으로 내려갔다. 섬은 처음의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번화하고 많은 사람들로 생기가 넘쳐 있었다. 순리원은 섬의 번화한 곳과는 비켜져 약간 외진 곳의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인수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순리원 앞에 내리자 먼저 학교 대문이었던 양쪽 기둥에 붙은 '순리건강의 집'이란 현판과 '농경민속의 집'이란 현판이 반갑게 외지 손님을 맞아 주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넓은 운동장에 시원스럽게 깔린 푸른 잔디가 오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순리원의 전후좌우에는 높다란 산이 녹음을 자랑하며 순리원을 지켜주는 양 버티고 서 있었고, 양쪽으로는 넓게 휘둘러 산에서 맑은 물이 계곡을 이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리원 안으로 들어서자 예전에 학교 교실로 쓰던 전면의 건물에는 농경민속박물관답게 각종 농경 민속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소장되어 있는 물건이 농경 민속품 5천3백여 점, 서화 1백30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연 평균 하루 관람객이 2백~3백 명에 이른다고 한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민속박물관이 전부란 생각도 들게 하였다. 다만 잔디 위에 앉아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과 마비된 몸을 이끌고 걸음 연습을 하며 운동하는 사람, 그리고 여기저기 보이는 황토집이 건강의 집이란 생각을 들게 하였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아담하게 지은 한옥의 거실에 앉아 옥미조 선생과 순리치유법의 개념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순리치유이론에 대해 강의하듯 거침없이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필자의 질문에 조목조목 상세히 답변해 주기도 하였다.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그가 말하는 순리란 지나치면 감해주고 부족하면 보충해주어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상태, 모든 만물이나 인체 기관이 제 위치에서 제 때 제 몫만큼 제 역할을 하는 조화의 상태, 사람 본위의 탐욕과 억지와 인공적인 것을 버린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제 철이 아닌 농산물을 억지로 재배하여 먹는 것이나, 사람의 먹거리가 아닌 것을 먹는 것은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한다. 여름철에 냉방시설로 몸을 차갑게 하는 것이나, 겨울철에 실내를 무덥게 하는 것도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한다. 또 밤에 몸이 쉬어야 함에도 활동하는 것이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화를 내는 것도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한다.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화학첨가제를 가미하여 억지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도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요, 화학물질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도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고 순리의 뜻이 무조건 반문명의 상태, 무위자연 (無爲自然)의 상태로 되돌아 가자는 것은 아니다. 음이 강한 밤에는 불을 때는 노력을 하여 양을 보충해주는 것도 순리요, 자신이 원하는 정보욕구를 텔레비전 등을 통해 적절히 얻는 것도 순리이다. 따라서 순리는 온전성·완벽성·합리성을 이룬 상태까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렇듯 그가 말하는 순리에 대한 개념을 들으니 순리란 이 세상에서 질서를 이루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법칙이란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어찌 보면 순리를 지킨다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쉬운 일인 듯도 보였다. 하지만 그는 현실로 돌아와 보면 이 세상은 인간 본위의 이기심과 탐욕에 의해 순리가 심각할 정도로 무너진 상태라고 한다. 병은 이렇게 순리가 무너진 상태에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인체 장부의 경우만 해도 신장은 여름철에 몸을 식혀주기 위해 일하고 겨울철이면 쉬게 된다. 반대로 심장은 겨울철에 몸을 덥혀주기 위해 일하고 여름철에 쉬게 된다. 그런데 여름철에 냉방으로 몸을 차겁게 하고, 겨울철에 실내의 온도를 높이면 신장과 심장이 거꾸로 일하게 된다. 결국 신장과 심장의 길항작용(拮抗作用)이 깨져 추위와 더위를 조절하지 못하게 되고, 내분비가 착란현상을 일으켜 여기에서 암도 생기고 이상 생리현상도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또 식품의 경우도 순리대로 섭취하지 않고 사람의 편의에 따라 비일비재하게 인스턴트 가공함으로써 병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즉 인공감미료가 든 칼슘제·비타민제·음료수·껌·1회용 커피 등만 해도 오랫동안 먹고 마시면 그 속에 든 아스파르테임이라는 물질로 인해 뇌세포 정보전달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뇌세포의 정보전달에 이상이 가해지면 파킨슨병·간질·근육경련·근육강직·갑상선질환·면역력 상실 등 내분비계와 신경계에 이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이유로 생긴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식사요법·활동요법·천연요법·명상요법·자극요법 등 5가지 순리치유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식사요법은 자연식을 하는 것이 요체이다. 몇 가지 요점을 정리하면 제 철에 난 음식을 먹는 것, 요리하지 않고 생으로 먹는 것, 과일을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전체식(全體食)을 하는 것, 육식을 하지 않는 것, 32번 이상 꼭꼭 씹어 먹는 것, 식후 2시간 이내에 물을 먹지 않는 것 등이다.

  활동요법은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쉰다는 게 요체이다. 해가 떠 있을 때 충분히 활동함으로써 2백30만 개의 땀구멍을 통해 노폐물을 배출하고, 맑은 산소를 깊이 들이마셔 폐장의 힘을 높이고, 심장과 소화기관의 연동작용을 활발히 불러 일으키고, 이렇게 함으로써 몸의 신진대사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천연요법은 자연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요체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첫째 일광욕을 통해 비타민 D를 충분히 생성시키는 것이다. 일광욕을 통해 생성된 비타민 D는 겨울철 감기를 예방해줄 뿐더러 칼슘의 흡수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 둘째는 산림욕을 통해 산림이 주는 신선한 산소를 충분히 흡수하고, 몸 속의 탄산가스를 완전히 배출하는 것이다. 셋째는 토사욕을 통해 지기(地氣)를 흡수하고, 몸 속의  중금속을 배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황토나 갯벌을 온 몸에 바르기도 하고, 맨발로 땅 위를 걷기도 하고, 땅 위에 눕기도 하고, 밭에서 일을 하며 흙과 생활하기도 한다. 넷째는 해수욕을 통해 몸 속의 염분농도를 조화시켜 세포의 생명력을 높이는 것이다. 다섯째는 황토방에 군불을 때어 화기욕(火氣浴)을 하는 것이다.

  명상요법은 아침의 기도와 자연 속에서의 명상이 요체이다. 아침에 기도를 통해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 자연 속에서 새소리·바람소리·개울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질서를 깨닫기도 하고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는 것이다.

  자극요법은 침·지압·약물·효소가 요체이다. 침과 지압은 세포를 강자극함으로써 독소로 막혔던 내분비를 활성화시켜주는 작용을 하고, 미네랄과 비타민이 충분한 자연약초는 효소작용에 의해 내분비계통을 자극하는 작용을 한다. 음식을 불에 익히지 않음으로써 비타민 C 등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나, 자연식을 통해 미네랄과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나, 일광욕을 통해 비타민 D를 생성시키는 것도 효소작용에 의한 자극요법의 일환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체 전체를 자극하는 데 필요한 4천6백여 가지의 효소를 생성시키는 것이다.

  옥미조 선생은 순리원에서는 이 5가지 순리치유법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고, 또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오늘날의 병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오늘날의 병은 일시적인 한 가지 문제로 간단히 생긴 게 아니고, 오랜 기간동안 다방면으로 순리를 어겨 병이 생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결과라 한다. 때문에 5가지 순리치유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오늘날의 병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어느 한 가지 특효약이나, 특이한 한 가지 약초나, 특이한 식품이나, 기이한 요법 하나로 오늘날의 병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한다. 또 그런 환상을 갖고 찾아 다니는 환자의 행동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 한다.

  그날 오후 이렇게 옥미조 선생과 순리치유법에 대해 대화하는 가운데 어느덧 밤은 깊어 갔다. 밤 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무수한 별과 사정없이 울려 퍼지는 개구리소리가 깊어 가는 밤을 더욱 재촉하는 듯했다. 장시간 말을 이어가던 옥미조 선생은 밤 9시가 되자 순리원에서는 밤 9시가 취침시간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부터 1등 의사는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요, 2등 의사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요, 3등 의사는 사람의 병을 빌어 돈벌이에 급급한 의사라 했다. 병이 나면 인공적인 절제수술을 통해 도려내고 강한 화학약을 써서 소탕작전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오늘날의 의료습관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그의 순리치유법은 생소하기도 하고 아무런 치료도 아니라고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리에 어긋난 사람의 마음과 삶의 방식을 고치고자 하는 그의 자세는 분명 심의(心醫)요, 철학자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순리원의 하루는 아침 6시에 시작되었다. 6시에 아침 명상기도를 하고, 7시에 순리원 뒷산에 올라갔다 내려온 후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오후 5시에 저녁 식사를 한다고 하였다.

  6시가 되자 순리원 내의 황토집에서 기거하는 8명의 환자가 거실에 모였다. 그들은 갑상선·폐암환자, 코암환자, 시력상실환자, 당뇨·중풍환자, 정신질환자 등이었다. 시력상실환자는 15일째 순리치유를 받은 결과 물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고 하고, 코암환자는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 또 중풍환자는 약간씩 걷게 되었다고 하고, 정신질환자는 많이 마음이 안정되었다고 한다.

  옥미조 선생은 그들과 함께 30여 분 간 명상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명상기도가 끝나자 한 사람씩 건강상태를 진단하면서 그날 주의해야 할 사항을 일러주는 한편, 침과 지압을 이용하여 치료해주었다. 침과 지압은 먼저 5장6부의 허실을 진단한 후 손바닥에 있는 해당 장부의 경혈을 자극하여 보(補)해주거나 사(瀉)해주었다. 지압은 상당한 힘을 오랫동안 가하고 있슴인지 치료받는 환자마다 눈물을 쏙 쏟을 만큼 자지러졌다. 그는 잘못된 5장 6부의 기능을 단 한 번에 제자리에 돌려 놓으려면 그만한 고통은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치료가 다 끝나자 환자들은 하나 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필자도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섰는데, 4백~5백 미터 정도 되는 등산로로서 땀이 적당히 배일 만큼 오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은 오르면서 계곡물을 마시기도 하고, 정상에서 운동도 하였다. 또 한편으론 자연을 벗삼아 명상하기도 하고, 주변에 돋은 쑥·소루쟁이·씀바귀·취나물·민들레·비름나물 등의 약초를 채취하기도 하였다.

  산에서 내려와 식사를 하였는데, 상차림이 아주 소박하였다. 밥은 현미에 잡곡과 쑥을 넣어 지은 것이고, 국은 쑥된장국이었다. 여기에 방금 산에서 가져온 약초들이 싱싱하게 올려져 있었고, 깻잎절임과 김치와 과일이 곁들어져 있었다. 옥미조 선생은 순리원의 식사는 소식이 원칙이며, 점심은 먹지 않으며, 과일은 칼로 썰지 않고 통째로 먹으며, 육식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아침 일과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될 무렵 어떤 사람은 다시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약초를 채취하기도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잔디에 앉아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흙을 파며 화단을 가꾸기도 하였다. 그러는 중간중간에 와서는 아침처럼 침도 맞고 지압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일상을 보니 참으로 자유롭고 편안하게 보였다.

  이런 모습에 대해 옥미조 선생은 사람의 병은 80%가 마음에서 오니 자연의 질서 속에서 동화되다 보면 마음의 안정을 찾고 병은 자연히 나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암 또한 어려운 병이라 하나 그 근본은 지방질과 탄산가스로 이루어진 무호흡세포이므로 산소를 공급해주면 양성세포로 변해 자연히 없어지기 마련이라고 한다. 이 충분한 산소와 영양과 기운을 자연 속에서 얻으니 순리치유를 하면 낫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사람이 화를 한 번 크게 내면 8만 4천 개의 세포가 죽고 이것이 그때그때 교환되지 않으면 축적되어 큰 병이 되는데, 자연 속에서 안정을 찾아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니 자꾸 생명력이 강한 세포가 늘어나 건강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낫지 않는 병은 없고 그것은 그가 신통한 능력이 있어서 고치는 게 아니라 환자 스스로 고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단지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과 환자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한다.

  옥미조 선생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긁어 부스럼'이란 말처럼, 그간 우리는 병이 나면 급한 마음과 급히 고쳐 보려는 욕심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자르는 억지 치료의 어리석음을 얼마나 범해왔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진정한 의술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순리치유법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외지에서 환자들이 하나 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치료과정을 통해 그의 진단과 그가 환자에게 내리는 처방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몇 사람만 치료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오른팔의 뼈속이 차갑게 느껴진다는 40대 여인. 그녀는 손을 만져보면 차갑지 않으나 뼈속이 차갑다는 것을 자신은 느낀다며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옥미조 선생은 차갑다면 보하는 방법으로 먼저 따뜻한 방에서 열을 보충하여 차가운 걸 풀어주라고 하였다. 특히 숯불이나 황토방에서는 원적외선이 나오니 가능하면 이용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손이 차가워지고 수족이 마비되는 이유는 대부분 우리 몸의 영양을 흡수해야 할 소장이 이상을 일으켜 영양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소장이 영양분을 흡수하여 신체에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해주어야 하는데, 소장이 제 역할을 못하니 덩달아 심장도 제 기능을 못하고 간장도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만들어 피를 만드는 일을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소장이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칼슘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칼슘이 부족되는 건 인스턴트 가공식품 속의 인(P)이 칼슘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당질은 칼슘과 합해 산소의 도움으로 에너지원을 만들어 주어야 몸에 힘이 나고 열이 나는데, 이 기능을 못하므로 손발이 차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수족냉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육류나 인스턴트 가공식품이나 백설탕의 섭취를 금하고, 채소와 생수를 충분히 섭취하라고 하였다. 또 일광욕을 하면 비타민 D가 생성되는데, 이 비타민 D가 칼슘을 흡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햇볕을 최대한 쪼이라고 하였다. 또한 구연산은 굳어진 칼슘을 분해시켜주는 역할을 하므로 매실·석류·돌복숭아 등 신 것을 섭취하라고 하였다.

  두 번째, 중이염이 심해 병원에 갔다 오는 길에 들렸다는 50대 남자는 귀에서 물을 한 대롱 뺐다고 한다. 옥미조 선생은 그에게 중이염은 신장의 기능이 떨어져 체내의 노폐물을 배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신장기능을 살려주는 치료는 며칠 후 다시 올 때 하자고 하였다. 대신 먼저 대증적인 요법으로 지렁이 50마리를 잡아 후라이팬에 태워 술이나 물에 타서 마시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지렁이는 소염효과가 항생제의 1천 배에 이른다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숯이 물을 흡수해주고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는 작용이 강하니 숯을 베개 속에 넣어 베고 자라고 하였다. 또한 중이염은 안면 경혈이 막혀 생기기도 하니 눈·코·귀를 하루에 1천 번 이상 마사지해 주라고 했다.

  자폐증에 걸린 5세 정도의 여자아이. 그는 이번에 2번째 왔는데, 처음에 올 때는 전혀 말을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침을 맞고 간 후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며 그의 부모는 연신 고마움을 표하였다. 실제 아이는 침을 놓으려 하자 처음 침 맞을 때 생각이 나는지 침을 맞으면 아프다는 표현을 연신하였다. 옥미조 선생은 아이에게 침을 놓은 후 손바닥을 살피며 전에 보다 피가 뭉친 게 많이 풀어졌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과자 등 인스턴트 가공식품을 먹이지 말라고 부모에게 일렀다.

  이렇게 환자들이 그에게 치료를 받고 내는 대가는 고맙다는 인사일 뿐 무료이었다. 개중에는 그가 쓴 순리치유법에 대한 책을 사서 읽는 것으로 보답을 대신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가 운영하는 민속박물관까지 공짜로 구경하는 덤까지 얻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순리원 내에서 기거하며 치료받고 있는 사람도 모든 게 무료이었다.

  한편 옆에서 여러 사람을 치료하는 걸 보면 그는 침시술과 지압을 손에만 하였다. 따라서 수지침과 유사한 점이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침술이나 지압법은 기존의 수지침과는 전혀 다르다고 하였다. 시술부위가 손바닥인 점은 같지만, 인체 장부의 허실을 조절할 수 있는 경혈점은 오랜 연구 끝에 독창적으로 창안해내었다고 한다. 그가 최근에 쓴 저서 <순리치유원론>을 보면 각 질병별로 5장6부의 허실을 조절할 수 있는 경혈점이 소상히 설명되어 있는데 여기서 이에 대해 소개하는 것은 생략한다.

  병의 진단은 수맥을 찾는 것처럼 조그만 시계추와 같은 진동자를 환자의 손에 올려놓고 그 흔들림으로 판단하였다. 대개 병이 없거나 병세가 호전된 사람일수록 흔들림이 덜하고 병이 있는 사람은 흔들림이 심하였다. 그렇다고 그는 진동자 하나만 가지고 병을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환자가 말하는 증상과 손바닥의 상태·체형·안색·태도·목소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장부가 허하고 실한지, 어떤 이유로 병이 생겼는지 판단이 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간 치료해준 20여만 명의 환자 중 기억에 남는 환자를 들려 달라고 하자 식물인간의 상태로 남편에게마저 버림받은 여인를 99일만에 고쳐준 일, 평생 자기 코로 숨을 한 번 제대로 못쉬던 사람 고쳐준 일, 정신병에 걸린 여인을 4일만에 고쳐준 일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식물인간의 여인은 고쳐주자 너무 감격스러워 일어난 자리에서 고향의 어머니에게 울면서 전화하기도 하였고, 정신병에 걸린 여인은 자신의 남편이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는데 3년만에 남편을 찾아 같이 인사 오기도 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장농을 해와 지금도 잘 쓰고 있다고 한다.

  옥미조 선생이 순리치유법을 창안하게 된 때는 1984년이라고 한다. 그는 본래 병 고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이 줄곧 교직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76년 간경화에 걸려 병원에서 99% 죽는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그가 간경화에 걸린 것은 평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한 나머지 과로가 겹쳤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불우하게 자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비를 내지 못해 학업을 중단한 채 어린 나이에 머슴살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의 재능을 아깝게 어긴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쳤다. 그리고 역시 선생님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였고, 그는 줄곧 장학생으로 학교를 마쳤다고 한다. 그후 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교직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교직의 길에 들어선 그는 조금이라도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서 도움을 주고자 늘 낙도(落島)에 있는 학교에 자원하는 식으로 삶을 꾸려갔다. 특히 1973년 경남 통영군 한산면 죽도초등학교 장사도 분교장으로 근무할 때는 부임한지 1년만에 돼지와 염소 등을 길러 마련한 기금으로 가난을 극복하고 자립학교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농어촌 소득증대, 낙도개발, 주민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공로로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는 전무후무하게 국가로부터 철탑산업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과로한 나머지 간경화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좌절도 했지만, "왜 죽는지 알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동서양 의학서적과 신학서적을 닥치는대로 읽었다고 한다. 당시 읽은 책만도 4백여 권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순리적인 치료법을 깨닫고 4년만에 간경화를 극복했다고 한다.

  이렇게 순리적인 치료법을 깨달은 그는 부임하는 학교마다 주위에 아픈 제자나 사람이 있으면 직접 고쳐주었다. 일례로 운동회 연습 중 넘어져 2달 동안 제대로 걷지 못하고 고생하던 학생을 고쳐주었고, 시력이 상실되어 일부러 그에게 치료받기 위해 안양에서 전학 온 학생의 시력을 6개월만에 회복시켜 다시 안양으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또 일주일 동안 대변을 보지 못하고 고생하던 한 학부모를 고쳐주기도 했고, 관절통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동네의 74세 된 할아버지의 고쳐 주기도 하였다. 또한 지병인 좌골신경통으로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던 교장 부인을 그 자리에서 고쳐주기도 하였고, 근이영양증으로 두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여 남편에게 업혀오던 여인을 10일만에 걸어나가게 하기도 하였다. 또 12년 동안 고관절 탈골로 고생하던 청년을 그 자리에서 고쳐주기도 하였고, 다리 골절상을 입은 학교 어머니회 회장을 10시간 만에 걷게 해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자 치료받았던 사람들은 처음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다짐을 받은 것과는 달리 점차 '병 고치는 교장'이란 소문을 내버렸다. 그 소문이 퍼져 그가 머무는 교장사택은 졸지에 하루에도 수없이 환자들이 몰려드는 병원이 되어 버렸다. 그는 공직에 몸을 담고 있는 신분으로서 퇴근 후의 시간을 이용하여 치료하였지만, 어떤 사람은 퇴근 전에 찾아 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미리 와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에 30명이던 환자는 50명, 60명으로 점차 늘어났고, 아예 방을 얻어놓고 치료를 받는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환자도 암·간질·척수염·중풍·정신병·불임증·악성 피부병 등 다양해졌다. 그리고 낫는 사람이 늘어나자 나중엔 하루에 2백~3백 명의 환자가 몰려 들었다. 사태가 그 지경이 되자 그는 "이젠 더 이상 치료하지 않는다"는 팻말을 내걸고 도망 다니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환자들의 바람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1987년에 더 이상 순리치유법을 소극적으로 간직할 수 없다는 생각에 순리원을 설립하여 <순리치유> <순리치유 이해> <순리치유원리> 등의 저서를 발간하고, 연수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그후 지금껏 배출된 연수생이 2백30명으로 그중에는 국내외에서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또한 지금껏 1번에 3백~4백 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2천여 회의 강연을 하고, 때로는 하루에 6백~7백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강행군을 하였다. 그는 지금껏 그가 치료한 20만 명의 환자 중 적어도 10만 명은 나아갔을 거라고 한다.

  그의 이런 기행은 외국에까지 알려져 일본의 NHK 방송은 1994년에 '한국의 기인'이란 특집을 만들어 3부작으로 방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호응이 높자 1996년에 다시 순리치유법과 순리농법을 특집으로 제작하여 방영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 그간 연구한 순리치유법의 비밀을 모두 밝힌 <순리치유원론>을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만간에 영어·독어· 중국어·일어판도 내어  순리치유법을 세계에 보급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그간 의료종사자 중심으로 실시하던 순리치유교육을 일반인 대상으로까지 확대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제 누구든 순리치유법을 배워 자신의 병은 스스로 고치고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는 게 소망이라고 한다.

  옥미조 선생에게 순리치유법을 취재하면서 자연의 질서를 중시한 순리치유법이야 말로 미래의 의학이요, 그가 시도하고 있는 건강의 집이 미래의 병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잘못된 삶의 방식을 깨닫게 해주고, 마음까지 고쳐주는 그의 의술이야 말로 참된 의술의 본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언젠가 이곳 초등학교에 다녔던 학생이 쓴 비석에 새겨진 동시가 눈에 들어왔다.

"산 위에 서서 보니 학교가 성냥갑처럼 작게 보여요. <중략> 교실 창문에 매달린 친구들이 새장에 갇힌 새처럼 날아 가려고 조잘거려요."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처럼 우리는 자연 위에 서서 보면 보잘 것 없는 조그만 인공의술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교만과 억지를 부리고는 있지나 않는 걸까? 서울행 버스의 창 너머로 멀리 남해의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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