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말씀배경
오늘 말씀과 관련이 있는 의미가 있는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제가 해변가 화장실에 있었는데 바닷물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해변을 덮치고 낮은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을 위기에 빠졌습니다. 나는 함께 있는 어린이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왔던 곳으로 다시 가 보았지만 아이는 없었습니다. 다시 산으로 도망을 가는데 해변에서 순복음교회에서 나온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 밀려오는 물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들과 합류하여 이 민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울면서 기도하는 꿈이었습니다.
꿈을 깨고 묵상하는데, 밀려오는 물은 세상의 물이요 그리고 화장실은 교회요, 어린아이는 신앙적으로 어린 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온 세상이 더러운 세상의 물에 잠겨 다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영적으로 세상 바다에 접해 있고, 낮은 위치에 있는 교회까지 잠기고 있습니다. 높은 산 거룩한 산으로 가지 않으면 다 죽습니다.
이 꿈은 오늘 본문인 계12장 말씀과 창6장의 노아의 홍수 사건, 예수님께서 말세에 일어날 예언의 말씀인 마 24장, 눅 21장 말을 떠 올리게 했습니다.
2. 물의 심판, 노아의 홍수
노아의 시대에 일어난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으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사건입니다.
아담의 10대손 노아의 시대에 일어났습니다. 아담 이후로 1656년 만입니다. 짧은 지구 역사에 노아의 가족 8명을 제외하고는 생명의 기운이 있는 사람과 동물 등 모든 육체가 물에 빠져 죽은 사건입니다.(창 6:17)
이 심판은 영적으로는 바다라고 하는 세상에서 영적 방주인 교회에 들어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세상 바다 물에 다 잠기어 영적으로 죽는다는 사건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당시 인간들의 죄가 얼마나 심했는지 창6장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세상도 점점 이렇게 되어져 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내용을 정리하면, 인간들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고, 부패하고, 포악이 가득했고, 그들로 인하여 땅도 부패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의 인간의 모습은 “좋았더라”입니다 (창1장), 그런데 2000년도 되지 않아 인간을 지으신 것을 한탄할 정도로 타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의롭고 당대에 완전한 자가 있었는데 그가 노아인 것입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9)
그래서 홍수를 일으켜 천하의 높은 산까지 다 덮어 방주에 들어간 의로운 자 노아와 그의 가족 외에는 다 수장되어 죽었습니다.
그래서 물 심판이 없는 오늘날에는 이 사건을 두고 방주가 오늘날 교회라고 영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야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은 인간들의 영혼을 죽이는 세상 물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므로 바닷물을 먹고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는 영이 죽은 사건인 것입니다.
제가 꾼 꿈은 노아의 홍수시대처럼 사람들이 세상의 물에 빠져 영적으로 다 죽는 상황을 보여준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마저 말입니다.
방주가 하나님께서 주신 설계대로 지어지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기능적으로 문제가 있어 부서지거나 물이 침투하여 다 가라앉아 죽게 되는 것처럼, 오늘날 교회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교회의 모양은 하고 있지만, 물에 떠 있지만, 심한 세상물의 쓰나미가 덮쳐 올 때에는 그 물에 다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낮은 수준의 교회는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 꿈에 본 교회는 바닷가 해변 너무 근처에 있었습니다.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해변에 접해 있었습니다. 이것도 의미가 있는 내용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너무 가깝게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세상과 친밀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라는 울타리에 있지만 세상 수준의 높이에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물이 금방 그 경계를 넘어 흘러 들어올 수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물이 쓰나미처럼 득실거리고 넘쳐도 잠기지 않는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높은 곳, 거룩한 성산에 있어야 세상 물에 잠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산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대산교회 이름 참으로 좋습니다. 앞으로 이름 값을 할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문화를 다 받아들이고,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끌어들이고, 화려함과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면 그 교회는 낮은 위치에 있는 교회입니다. 잠기게 될 것입니다.
기도와 예배보다도 말씀보다도 전도보다도 다른 것에 우선을 둔다면 그 교회는 세상 물을 막아 낼 수 있는 영적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파도의 물결이 범람하는 시대가 오면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왔을 때에 영적인 지각이 있는 사람들은 그 교회를 떠남으로 피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 영적으로 어린아이는 도망가지 못하고 잠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꿈에 어린아이가 없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3.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뱀이 물을 통하여 여자를 떠 내려가게 하고자 합니다.
계 12장에는 여자와 아이와 붉은 용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자는 오늘날 교회입니다. 아이는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용은 사탄, 뱀입니다.
용이 여자가 낳은 아이를 삼키고자 하나 아이가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짐에 따라 실패합니다 (계 12:4-5).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사탄이 더 이상 예수님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용은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과 하늘에서 전쟁을 합니다. 그 전쟁에서 패한 용은 땅으로 쫓겨납니다. 그러니 이제는 용이 여자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탄은 오늘날의 교회를 다양하게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양육하고 뱀의 낯을 피하도록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주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광야로 가게 합니다 (계 12:6,14).
교회는 독수리의 큰 두 날개가 있습니다. 독수리의 날개는 ① 하나님의 보호하심 보여주고 있고 (출 19:4, 신 32:11). ② 그리고 독수리는 예언과 관련된 동물이므로 (계 8:13) 참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어야 하고, 높고 먼 곳을 볼 수 있는 독수리와 같은 예언적인 교회가 되어야 진정한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광야에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이 힘이 듭니다. 지금 광야의 교회시대는 교회가 양육을 받는 기간이며, 사탄을 피해 피난해 있는 기간입니다. 영적인 광야가 힘이 들어도 안전한 장소입니다. 잘 살고 잘 먹는 화려한 곳에 가봐야 더러운 물만 먹고 결국 죽게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시즌을 보내고 있는 여자에게 곧 교회에게 뱀이 여자의 뒤에서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 내려가게 합니다.
앞에서는 용, 사탄으로 말씀하다가 여기서부터는 그들을 뱀으로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뱀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그 뱀입니다. 뱀은 용, 사탄이 가장된 모습으로 다가오는 존재의 대표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뱀 뒤에 사탄, 용이 있는 것입니다.
하와도 눈에 보이는 뱀에 유혹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은 사탄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뱀의 모습, 가장된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반드시 뱀의 모습은 아닙니다. 뱀은 가장된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가장된 모습은 대체로 아름답고 현란하고 지혜가 있고 영향력이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저주 받기 전의 뱀은 아름담고 지혜로운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하와가 쉽게 유혹을 당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다는 아니지만 우리를 유혹하는 자는 뱀과 같이 지혜롭고 아름답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가진 자, 지혜로운 자, 잘 생긴 사람, 유명한 자, 힘과 능력이 있는 자들과 같이 말입니다. 반대로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하여 약한 자의 모습으로 오기도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 아니까 정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다가올 것입니다. 아무튼 뱀처럼 가장된 모습으로 다가오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뱀은 여자의 뒤에서 물을 토하는 것입니다. 뒤는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잘 인식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사탄이 뱀을 이용하여 자신을 숨기면서 다가오고, 뒤에서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뱀이 온 줄도 모릅니다. 그러면 당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토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뒷 모습, 어두운 곳을 통해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용이 토하고자 한 “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영적으로 “세상의 더러운 물”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세상 물은 영적으로는 더러운 물입니다. 처음에는 먹으면 달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꾸 먹으면 영을 죽게 만드는 더러운 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독되게 하는 물입니다. 안 먹으면 견디기 힘든 물입니다.
결국에는 영적인 죽음을 가져오는 물인 것입니다. 서서히 영적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에 바로 죽는 것이 아니라 “떠내려 가게”하는 것입니다. 세상 풍조에 흘러 떠내려가면 서서히 언젠가는 죽습니다.
세상의 물은 술과 같이 취하면 기쁨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약과 같이 결국에는 파멸로 이끄는 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생수가 아닙니다. 오락, 쾌락, 스포츠, 드라마, 섹스, 게임, 동성애, 낙태, 도박 등을 통해서 주는 물이며, 이 물을 먹는 자는 하나님 말씀과 위배되는 삶으로 가게 합니다. 육신의 삶을 살게 합니다. 자꾸만 하나님을 등지도록 하게 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합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물을 먹고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가 영적으로 죽은 줄도 모릅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바알과 아세라신인 것입니다.
한번 빠지면, 맛보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남께서는 그토록 오래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끊어지지 않은 것은 한번 맛보면 끊기가 여렵기 때문입니다.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신전 창기들과 놀아나는 그런 것을 맛 본자는 자꾸만 그곳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약을 맛 본자는 자꾸만 또 마약을 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도박을 끊고자 손가락을 짤라도 또 도박을 합니다. 중독성입니다. 세상의 물은 마치 콜라와 같습니다. 점점 더 마셔야 합니다.
저의 꿈은 이런 더러운 물이 온 세상 사람들을 덮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가 밀려 온다는 것입니다. 이미 밀려와 있습니다. 이미 일부 교회까지 잠겼다고 봅니다. 이런 물을 먹지 않기 위해서 교회는 거룩함이 있는 산으로 도망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잠기게 됩니다.
▶ 세상의 더러운 물들이 아이들이 자라나는 가정과 학교까지 점령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온통 게임에 빠져 있습니다. 핸드폰에 빠져 있습니다. 땅에서 노는 막대치기, 땅 따먹기, 고무줄놀이와 같은 것은 사라졌습니다. 세상의 더러운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서히 사회와 가정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빨리 높은 산으로 도망을 가야 합니다. 각자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거룩함을 유지할 것인가? 세상의 물과 어떻게 멀이 떨어져 있을까?를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아의 홍수 시대처럼 물에 다 빠져 죽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도 위험합니다. 방주의 역할을 못하면 교회 안에서 다 죽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구원”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교회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가 거룩함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세상의 물과 벽을 쌓아야 합니다. 은사가 있어도 세상의 물을 먹고 죽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은사로 은사로 물에 빠져 있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해 내고 자신도 세상의 물을 먹지 않는 거룩함 유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 데이빗 윌커슨 목사라는 분이 50년 전에 본 환상이 지금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1. 전세계 경제 공황이 다가온다는 것이며, 그러면 선교가 되지 않습니다. 2. 광범위한 자연 재앙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비가 많지 않는 리비아 대홍수를 보세요. 그러면 식량 공급이 되지 않습니다. 3. 영적 더러운 것들이 마치 문화처럼 자연스럽게 세상을 덮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인 것입니다. 지금의 도적 기준도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4. 반역이 심한 세상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거역하고 마치 가족이 서로 원수처럼 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믿는 자가 광기적으로 핍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다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4. 마 24:16, 눅 21:21에 예수님께서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① 마태복음에는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볼 때, ② 누가복음에는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볼 때입니다. 핍박과 환란의 때인 것입니다.
누가 피해야 하는가 보니 “유대에 있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영적으로는 예수를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환란이 다가올텐데 그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를 고려하지 않아도 실제로 핍박과 환란을 피해서 이렇게 산으로 도망해야 할 날이 이를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산 골짜기를 사서 마지막 때를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예루살렘 멸망시 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망을 간 자들은 살았다고 합니다. 영적으로도 그들은 살기 위하여, 거룩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산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에서 나와야 합니다. 촌에서 나와야 합니다. 성과 촌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 물을 먹고 사는 세상인 것입니다.
나와야 합니다. 거룩한 곳으로 피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고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두어 집 안에 물건을 가지러 가지 말아야 합니다. 물건은 재물입니다. 재물은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물을 먹는 수단입니다.
세상의 것을 즐기고자 하는 수단입니다. 겉 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아야 합니다. 겉옷은 수치를 가리고 신분을 표시하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할지언정 신분을 초월해서 세상 밖으로 나와 산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실제적으로 우리들이 산에 가서 살라고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산은 세상과 분리된 곳입니다. 높은 곳으로 하나님과 더 가까운 곳입니다. 영적인 산인 것입니다. 세상에 있지만 분리된 삶인 것입니다. 마간사님 꿈에 발이 땅에 떠서 다니는 것처럼 말입니다.
▶ 인간이 동물들과 다르게 왜 두발로 걷는지 아세요? 두발은 세상에 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땅에 닿아야 하지만 그러나 나머지 몸은 하늘을 향해 일어서고, 두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예배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온 몸과 두손까지 사용하여 땅의 것을 취하고자 땅을 짚고 삽니다. 짐승이 먹을 것을 찾듯이 땅 만 주시하고 사는 것입니다. 땅에 모든 것이 묶여 있으면 동물과 같은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육체가 있어 먹어야 하니까 두발 정도는 땅의 것을 취하시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드리시고 하늘의 것을 취하십시오. 방주도 하늘에 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물 위에 떠 있지만 빠지지 않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사는 길입니다.
산으로 도망을 가십시오. 세상의 물을 먹지 않기 위하여 똥을 피하듯이 도망가듯이 피하라는 것입니다. 쓰나미가 오는데 걸어서 피할 수 없습니다.
<맺는 말>
저는 이 꿈을 꾸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 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높은 산으로 빨리 도망하도록 외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상관없이 저는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노아도 분명히 홍수심판을 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까운 형제들고 다 죽었습니다. 살자만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얼굴에 금강석과 같은 담대함과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 참으로 거룩함을 유지하지 못하면 이런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거친 세상 파도를 거슬려 올라가야 합니다. 살아 있는 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와 같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떠 내려가는 고기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용이 물을 토하여 여자가 떠내려 가도록 했습니다. 세상 풍조에 떠내려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 뱀이 물을 토해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땅이 입을 벌려 뱀이 토한 물을 삼키는 보호를 받는 자는 여자인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온전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가 되지 않으면 이미 삼켜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토한 물에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보호를 받는 온전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물은 강 같은 물입니다. 쓰나미 같이 강력하고 많은 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끊임없이 공격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도하면서 스스로 거룩한 산에 오르는 삶이 되셔서 세상 물에 잠기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