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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산 둘레길 산행
심학산둘레길과 정상과 약천사 그리고 정가브리살과 미갈매기살
언제 : 2022-1018(화) 맑음
누가 : 구선0 김윤0 신경0부부
어디를 : 파주시 동패리 심학산
얼마나 : 심학산둘레길 포함 약7.5km 2시간50분(50분 휴식시간 포함)
오늘은 초등후배들과 심학산 가는 날이다
나를 데리러온 김윤0 차를 따라나서는 마눌과 함께 타고
제2자유로를 달려 출판단지를 지나
파주시 동패리 심학산 약천사 : 15:10
주차를 하고 약천사 옆으로 지나자마자 십자길에 이르고
좌우로 가는 길이 둘레길이고
직진으로 오르면 심학산산줄기 옛군사도로로 올라서
능선따라 심학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우쪽으로 돌기로 한다
수시로 나오는 이정목은 필요한 것만 언급하기로 한다
ㅏ자길을 지나
배밭정자가 있는 오거리에 이른다
우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배밭 가운댓길로 출판단지로 내려가는 길이라
이곳 정자이름이 배밭정자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정목에 우쪽 사면길로 가는 것이 둘레길이고
좌로 오르는 길은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우쪽 능선으로 가는 길이 출판단지로 직접 내려가는 길인데
그 옛날 심학여맥산줄기 답사시 내 기얶으로는
길 흔적정도라 고생을 좀 한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떨지 가보지 않고 둘레길로 가버렸으니 알길은 없다
배밭정자 오거리 : 15:25
돌고돌아 바윗길도 지나고
우쪽 한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전망데크가 조성되어있고
데크 밖으로 커다란 사진조망판이 있는데
오늘도 그리 청명하지는 않아
강화도 정도는 흐릿하게 실루엣으로 보이는데
사진조망판에는 아예 그 흔적도 없어 조금은 아쉬운 장면이다
1.4
전망대 : 15:30 15:40출발(10분 휴식)
십자길 좌 능선 우로 내려가는 길은 경운기길인
십자길에 이정목과
온길과 앞으로 갈길이 평화누리길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참으로 헷갈리는 평화누리길이라는 생각이다
심학산둘레길도 평화누리길이고 능선길도 평화누리길이며
언제 생겼는지 그길이 경기둘레길이라는 표시기를 수시로 알현한다
그길은 엄밀하게 따지면 경기둘레길은 아니다
저멀리 강화대교앞 바닷가가 경기둘레길이 아닌가
경운기길 십자길 : 16:05
진짜 우리나라꽃인 산수유나무가
빨간 산수유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길을 가다가
전망은 없지만 데크쉼터에 이곳은 솔향기쉼터라고 한다
구선0 후배가 가지고 온 배한조각으로 허기를 줄이고
마눌이 가지고온 커피는 전부 사절하여 보온병 뚜겅도 열지 못했다
솔향기쉼터 : 16:10 16:20출발(10분 휴식)
목조데크길로 계곡건너
한없이 내려가서 오르기를 몇 번이나 하다가
동패지하차도 십자갈림길에 이르고
이정목에 교하배수지쪽으로 간다
심학산둘레길 안내도이자 평화누리길6코스이자 출판도시길순환코스라고 한다
여기는 없지만 경기둘레길도 되고 암튼 무쟈게 헷갈린다
60, 4
동패지하차도 십자갈림길 : 16:30
잠시 오르다가
막판 돌계단을 오르면
드너른 배수지위에 이르고
각종운동기구와 안내판 정자등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이정목에 직진하면 능선길로 정상으로 가고
우쪽 사면길로 가면 둘레길을 이어가 약천사로 가고
우쪽 뒤로 도로따라 내려가는 것은 방골 신도시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나는 능선으로 정상을 갔다가
다시 이리로 와서 둘레길을 이어가자고 했고
마눌은 둘중에 하나만 하자고 하니
완벽한 심학산둘레길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덩달아서 두 후배는 마눌편을 들고 나서니 어쩌냐 내가 지기로 하고
우쪽 사면길로 둘레길을 따라간다
배수지위 : 16:35 16::45출발(10분 휴식)
돌고돌다가
평장묘지에 이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몇m만 오르면 능선이고 우쪽 사면길을 계속 가면 둘레길이다
뒤따라 오는 일행을 기다렸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은 보고 가야지 하며
능선길로 간다
평장묘지갈림길 : 16:50
능선으로는 옛날 심학산 정상이 군부대였을때 군사도로가 이어지고
우쪽 도로변으로는 망가진 진지가 수시로 나와
세월이 무상함을 느낀다
경운기길 십자안부에 이르면
우쪽으로 내려가면 산머루가든으로 가는 길이다
경운기길 십자안부(90, 5.4) : 17:00
시나브로 진행해
운동기구들이 있는 십자길에 있는 이정목에
우쪽으로 내려가면 약천사100m
100, 5.9
약천사갈림십자길 : 17:05
우쪽으로 운정신도시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좌쪽 숲속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천부경비가 있다
천부경81자
우리나라의 경전이다
선도문화천부경비건립취지문이 오석안내판에 기록되어있다
천부경비 : 17:0 17:15출발(5분 휴식)
천부경이란?
불교니 기독교니 천주교니 하는 외래종교도
제대로 믿으면 좋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종교나 경전을 알고는 있어야할 것 같아
잠시 오래전에 쓴 나의글 극히 일부를 소개한다
우리 조상님들은 천손의 자손들이며
그 천손의 천인인 한인(桓仁)님과
천손인 배달나라를 세우신 한웅(桓雄)님과
우리의 시조님으로 알고있는 단군(檀君)님
이세분을 우리는 삼성(三聖)이라 일컫는다
여기서 말하는 한인이나 한웅 단군의 명칭은 어느 개인의 명칭이 아니라
왕의 직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표현으로는
한인나라 시조인 제1세 安巴堅桓仁
한웅 배달나라 시조인 제1세 居發桓桓雄
단군나라 고조선의 시조인 제1세 王儉檀君
이렇게 세분을 삼성이라 한다
그 세분 우리의 조상님들을 모시는 우리의 전통종교가
지금은 외래종교가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의 종교는 미신이라 일컬으며 말살을 유도하여
현재는 성황당 등으로 동네 조그만 고개나 산모퉁이에서
조그만 당집이나 그도 아니면 돌탑 그도 어려우면 돌무지를 만들어놓고
동네와 나 자신의 안녕과 건강을 기도하는 기복처로 둔갑하거나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있는 조금이라도 양심이 살아있는 절에 가면
제일 으슥한 곳이나 산비탈에 아주 조그만 전각을 지어놓고
삼성당이라고 당호를 붙여 그나마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그 우리의 종교를 대종교니 증산교니 국선도라는 이름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를 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인류의 최대 선하고 행복한 이상사회를 이룩할수 있는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세계를 지향하는 우리의 경전이 바로
천부경 81자인 것이다
이제 그 역사를 알아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시조를 단군이라 알고 있으며 일제의 날조된 역사관에 의해서 그나마도 신화로서만 단군임금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역사의 도적행위나 마찬가지인 일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켜 우수한 자기들이 우매한 한국을 지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시키기 위해 그리 만들었을 뿐이다
더구나 불과 2천여년밖에 안되는 고주몽 박혁거세 온조마저도 신화로 여기거나 아득한 원시시대처럼 느끼게 만들었으면서 같은 연대의 중국사나 서양사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존인물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금의 우리 국사교육이 이런 사고를 고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제1의 숙명적인 과제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나라명이 桓國(한국)이며 파내류산 즉 지금으로 말하자면 파미르고원이나 천산을 말한다 바로 그 산아래서 천해의 동쪽까지 즉 지금으로 말하자면 천해는 바이칼호이며 그 동쪽이라함은 만주와 지금의 우리나라를 말한다
남북 오만리 동서 2만리에 걸쳐있었다 여기에는 모두 12나라 아홉족속 즉 九桓이 살았다 즉 이들이 모두 한국사람들인 것이다
그 때는 법과 명령이 없어도 모든 삶은 이치에 맞도록 세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공적인 일을 결정할 때 그를 대표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어 12나라 아홉족속이 다 모여 桓仁을 桓花로 둘러쌓인 곳에 앉히고 높이 임금으로 추대하여 드디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桓花는 槿花 즉 지금의 산수유꽃을 말한다
그때가 BC7199년의 일이었으며 그후 桓仁시대가 열리며 BC3899년 까지 7세 역년 3301년을 이어왔다
이때에 “우주의원리”를 밝힌 天符經은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다음에 나라를 세우신 桓雄天皇이 배날나라를 세우면서 사슴 발자국을 보고 만든 鹿圖文으로 옮겼으며 이 천부경은 伏羲씨가 지은 桓易의 모체이며 여와와 주양을 거쳐 주나라때 周易이 되었다
또한 녹도문은 현재 경남 남해군 낭하리 계곡과 만주 길림성 경박호 선춘령과 부오소리의 암석에 그 때 새겨놓은 것으로 보이는 글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桓國의 마지막 임금때 사람은 많아지고 물자가 부족해 삼위산과 태백산에서 인간을 널리 유익하게 할 수 있다고 여겨 지위리한인의 아들인 한웅을 천거하여 “弘益人間”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天符印 3개를 주며 3천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고 무리들이 桓雄을 임금(天皇)으로 추대하고 나라이름을 倍達이라 하였다
이래서 배날나라는 BC3898년부터 BC2334년까지 18세 역년 1565년간이다
제1세 桓雄 居發桓 :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인간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360여가지 일을
風伯 雨師 雲師에게 나누어 다스리도록 하였으며
역법을 만들어 일년을 365일로 정하였으며
곰족의 딸을 황후로 받으며 혼례법을 제정하고
그 외 여러 가지 복식 제도등을 만들었으며
공수와 두열이라는음악이 있었고
계산할 때 쓰는 算木이 있었다
제14세 桓雄 慈烏支 : 蚩尤天皇이라고도 하며 창과 투구등 쇠병기를 만들었으며
12제후의 나라를 합병하였다
중국 軒轅과 전투를 하여 이겼으며
도읍을 지금의 중국 절강성 항주 근방에 있는 靑丘로 옮겼다
망나니인 헌원이 치우천황을 뵈러 가는 길에 사람이 되라는 말과 함께
자부선인에게 삼황내문경을 받았으며 이것이 노자로 이어져
도교의 기초가 되었으며 헌원은 지금도 도교의 개조로 숭배받고 있다
@.현재 월드컵축구시합시 붉은악마들이 입거나 쓰고 나오는 셔츠와 가면의 문양이 바로 치우천황의 얼굴 모습이며 머리에 2개의 뿔을 달고 응원하는 것도 치우천황의 뿔인 것인바 이는 창과 투구 등 쇠병기를 만들어 쓰고 전쟁을 했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그 모습을 그린 형상으로 알고 있으며 실지로 그런 모습을 한 것은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제18세 桓雄 居弗檀 : 檀雄이라고도 하며 그의 아들 단군 왕검이 단군조선을 건국하였다
이때가 BC2333년의 일이다
단군왕검은 배달나라 18세 거불단 환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곰족의 왕녀이다
BC2370년 5월2일 寅時에 태어나 성장하여 河伯의 딸과 결혼하여
扶婁 扶蘇 扶虞 夫餘 이렇게 4아들을 두었다
九桓의 백성들이 BC2333년 10월3일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왕검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나라를 연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0월3일을 개천절로 정한 것이다
도읍을 새로운 땅이라는 뜻을 가진 지금의 중국 할빈의 완달산에 있는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이름을 “檀”이라 하였으며 이 아사달을 후세 사람들이 왕검성이라고 불렀다
이런 단군조선은 BC2333년부터 BC238년까지 47세 역년 2096년간이다
제1세 檀君 王儉 : BC2370년 5월2일 태어나
BC2333년 나라를 건국하고
BC2311년 도읍을 송화강가로 정하고 이름을 平壤이라 하였다
BC2283년 강화도 정족산에 삼랑성을 마리산에는 塹城檀을 만들었다
BC2266년 도산회의에서 중국의 태평성대를 말하는
요순시절의 순임금이 회대의 제후를 감독하게 하였다
BC2241년 3월15일 129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다
천부경(天符經)
일시무시일석삼극무(一始無始一析三極無)
진본천일일지일이인(盡本天一一地一二人)
일삼일적십거무궤화(一三一積十鉅無匱化)
삼천이삼지이삼인이(三天二三地二三人二)
삼대삼합육생칠팔구(三大三合六生七八九)
운삼사성환오칠일묘(運三四成環五七一妙)
연만왕만래용변부동(衍萬往萬來用變不動)
본본심본태양앙명인(本本心本太陽昻明人)
중천지일일종무종일(中天地一一終無終一)
한민족사의 으뜸경전인 천부경에는 천ㆍ지ㆍ인 사상의 입체적 구조가 낱낱이 드러나 있는데 그 핵심은 “創造ㆍ進化” “水昇火降” “本性光明” “宇我一體” “永遠한 生命” 이라는 5대 정신으로 요약된다
천부경을 통하여 천지인 사상이 단순한 사변적 논리조합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게 되고 나아가 통찰한 내용을 정확하게 현실 속에 구현해내는 방식으로 “弘益人間” “在世理化”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한민족의 선도는 고조선 이후 본질이 왜곡 민간신앙화 되면서 한국사의 저류로 흘러들어갔는데 오랜 침체기를 거친후 근대 이래 재차 발아되기 시작하여 점차 그 본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제 한국선도의 부활에 즈음하여 선도의 핵심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天符經碑” 81기를 한국선도의 유서 깊은 장소들에 건립하고자 한다
천부경 정신을 통하여 개인이 건강해지고 민족정신이 부활하며 나아가 모든 인류가 “지구인정신”으로 하나 되기를 기원한다
우주만물은 하나에서 나오고 하나에서 비롯되나 이 하나는 하나라고 이름 붙여지기 이전의 하나이며 본래부터 있어 온 하나이다
하나는 하늘과 땅과 사람 세 갈래로 이루어져 나오지만 그 근본은 변함도 없고 다함도 없다 하늘의 본체가 첫 번째로 이루어지고 그 하늘을 바탕으로 땅의 본체가 두 번째로 이루어지고 그 하늘과 땅을 바탕으로 사람의 본체가 세 번째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변함없는 하나가 형상화되기 이전의 하늘 땅 사람의 순서로 완성되면서 새로운 하나를 이룬다 이 새로운 하나는 한정도 없고 테두리도 없다
이 새로운 하나가 바로 형상화된 하늘과 땅과 사람이다 형상화되기 이전의 하늘 땅 사람과 형상화된 하늘 땅 사람이 어울리면서 음과 양 겉과 속 안과 밖이 생겨난다
하늘에는 밤과 낮이 있고 땅에는 물과 뭍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남여가 있어서 이 둘의 조화를 통해 천지는 운행을 하고 사람과 만물은 성장 발달해 나간다
이렇듯 하늘 땅 사람이 원래의 근본상태 형상화되기 이전의 상태 형상화된 상태 형상화되기 이전과 형상화된 상태가 어울려 작용하는 상태 이 네단계를 거쳐 우주만물이 완성되니 우주만물은 본래 따로 뗄 수 없는 한 덩어리다
이렇게 하나가 묘하게 피어나 우주만물이 형성되며 그 쓰임은 무수히 변하나 근본은 다함이 없다
마음의 근본과 우주만물의 근본이 하나로 통할 때 일체가 밝아진다 이렇게 마음을 밝혀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 들어간 사람을 하늘사람이라 한다
우주만물은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에서 끝이 나지만 이 하나는 하나라고 이름붙이기 이전의 하나이며 끝이 없는 하나이다
이에 내가 나름대로 해석한 아래 내용과 비교할 시 너무 보잘것이 없는 것 같으나 조금은 서로 상통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
[하나의 시작은 무로부터 시작된 하나가 삼극으로 나누어지고 다함이 없는 근본이 되면서 그 첫 번째가 하늘이요 두 번째가 땅이요 세 번째가 인간이다 하나가 더해짐으로서 십방으로 커지게 되어 가늠할 수 없게 된 것은 하늘에 2와 3이 땅에 2와 3이 사람에 2와 3이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삼대에 3이 합쳐져 6이 되었고 7, 8, 9가 生하였다
기운이 3(인간)에 이르러 4가 이루어졌고 5로 바뀌었다 7하나가 묘하게 흐르고 만번 가며 만번 오며 쓰였겠지만 본래 움직이고자 함에는 변함이 없으니 본래의 마음이 본래대로 있을 때 사람을 태양처럼 밝게 비추게 될 천지중에 하나가 될 것이며 하나의 끝남은 무에서 끝나는 하나이다]
대종교의 기본 성전으로 천신(天神)인 한인(桓因)의 뜻에 따라 한웅(桓雄)의 천부인(天符印)을 가지고 백두산 신단수(神檀樹) 아래 강림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大業)을 시작한 고사(古事)에서 연유하는 지고(至高)의 천서(天書)로 평가된다.
원래 대종교가 1909년초 중광(重光)될 당시는 밝혀지지 않았던 경전이다.
그 시절 묘향산에서 수도하던 계연수(桂延壽)가 10여 년 동안 정성을 들인 끝에 암벽에 새겨진 『천부경』을 찾아내어 1916년 9월 9일 이를 탁본(拓本)하여, 뜻을 살펴보려 해도 헤아릴 도리가 없어, 고심하던 끝에 서울에 한배검[檀君]을 신봉하는 단군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1917년 초 대종교로 전하여옴으로써 밝혀졌다.
그 뒤 대종교에서 발간된 『종리문답(倧理問答)』이라는 책 등에서 한배검의 사관(史官)인 신지(神誌)가 『비사(祕詞)』와 『천부경』을 지어서 한배검의 교화를 전하였다는 내용으로 『천부경』을 말하고는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대종교경전으로 편입되지 않았다.
1975년 6월 대종교 교단 교무회의의 결정에 따라 경전으로 정식 공인되었고, 1983년 간행된 『대종교요감』에 처음 경전으로 실리기 시작하였다.
『대종교요감』에 의하면, “천부경은 한배검께서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천하만민을 교화하는 데 ‘조화의 원리’, 즉 우주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한 진경(眞經)으로, 1에서 10까지의 수리(數理)로 천(天)·지(地)·인(人) 삼극(三極)의 생(生)·장(長)·노(老)·병(病)·몰(歿)의 무한한 반복의 경위를 설파한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 구성내용을 보면 一에서 三으로 오고 三에서 一로 가는 ‘一·三, 三·一’의 원리이다.
같은 원리를 담고 있는 『삼일신고』가 논설적 경전인 데 비하여 이 『천부경』은 상수학적(象數學的)인 경전이라는 특징이 있다.
원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종교에서 추구하는 ‘삼신일체(三神一體)·삼진귀일(三眞歸一)’이라는 기본교리로 표현된다.
앞의 것이 신도(神道)의 차원에서 홍익인간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뒤의 것은 인도(人道)의 차원에서 성통공완(性通功完: 참된 성품을 닦아 수행의 공덕을 이룩함)의 공덕을 쌓아 지상천궁(地上天宮: 光明世界)을 세우는 것으로 상통(相通)하고 있음을 본다.
한웅은 우리의 엄연한 개국 당시의 배달민족의 첫 번째 임금이신 것이다 어찌 어느 종교를 들먹이며 그분을 단위에서 끌어 내릴수 있단 말인가 이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여 일천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백성은 개화된 일본이 다스려야된다는 당위성을 만들기 위해 그리 한 것 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앞으로는 역사도 바로 잡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의 역사를 만방에 고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에서 주도하여 우리 문화를 바로 잡아야 될 것이다 단군을 어찌 종교적으로만 해석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서양이나 이집트 중국의 역사는 기원전 수천년 수만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단 한번도 신화라든지 지어낸 이야기라던지 그런 생각을 안하고 무조건 그 역사를 수용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선조이신 한인 한웅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정상이지만 단군까지도 신화로 알고 있는데 그 단군의 역사는 겨우 기원전 2333년전의 일이거늘 하물며 말해 무삼하리요 오호라 안타깝도다!!!
이상 천부경이이야기를 뒤로 하고
그 옛날 뜬금없이 감악산 대형안내판이 세워졌던 자리에는
나중에 어찌 그런일이 있으랴는 깨달음을 얻은
파주시 관계자분들께서 정리를 하고
이제는 심학산둘레길6.8km라는 대형 간판으로 설치를 하여
그간의 잘못된 행정을 바로 잡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오름길이 시작되면서
좌쪽으로 약간 비켜나 있는 너른 헬기장 있는 곳에서
전부 계단길로 바뀌어있어
마눌 허리 때문에 더 이상 올라갈수 없다며 기다린단다
잘보니 계단길 좌쪽으로 육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여
그길로 오르니 올라갈만 하단다
바위벼랑밑 한강을 바라볼수 있는 곳에
장의자 하나가 있어
남눈치 안보고 한갓지게 한강을 바라보며 쉴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좌쪽 바로 그 거대한 바위위에 있는 정자는
너무 오래되어 무너질 위험이 있어 보수한다며
금줄을 치고 출입금지란다
이후 이런저런 정자와 화장실 등 건물들을 지나 오르며
"김포23 2007재설" 귀하신 2등삼각점이 있는 곳 앞에
높은 2층 전망대가 있어 올라가면
아마도 심학산의 높이가 200m를 훌쩍 넘어갈 것같다
정자2층 한가운데 심학산정상 동판안내판이 있다
한강건너 서해바다로 가라앉는 고혹적인 석양의 붉은노을(적하)
김포 강화도 산들의 이름은 전망대에서 본것과 똑같으므로
이름과 사진은 생략한다
우에서 온 임진강을 받아들인 한강이
좌쪽 조강으로 흘러든다
당겨본 임진강 한강 합수점
당겨본 임진강 한강 합수점
좌 남쪽으로 당겨본 인천의 최고봉 계양산
정상의 철탑이 보인다
서쪽으로 멋진 소나무 옆으로 내려가는 데크길이 있지만
돌고개로 내려가는 길이 없이 되돌아 나와야한다
우쪽 북쪽으로 당겨본 오두산통일전망대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점
북동쪽으로 바라본 파주의 진산인 월롱산과 기간봉
그뒤로 우쪽으로 실루엣으로 이어지는산줄기는 파평산 감악산
우쪽 동쪽으로 보이는 군계일학의 높은산은 개명산앵무봉
우쪽 높은산은 도봉산
글고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하성들판과
그 뒤로 황해도의 올망졸망한 산들과
군계일학으로 솟아오른 송악산
예성강과 조강이 만나서 서해바다가 되는 지점을 가늠해보며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바로 한강건너 북한땅
엄연한 우리의 땅인데 가볼수가 없다는 이해 불가한 대한민국
그런 북한을 이적이니 주적이니하며 선제타격으로 제압하겠다느니
북한사람 이천만명 전부를 몰살시키자는 뜻이 담긴
킬링필드보다 더욱더 무시무시한
자국민을 죽이겠다는 공산당 빨갱이를 무찌른다거니
이무슨 끔직한 발상인가 저절로 터진 입이라고 발음을 한다는 말인가
암울한 현실 앞에 저절로 고개를 들수 없는 자괴감
아직까지도 통일을 못하고 있는 배달민족의 후예들
조상앞에 떳떳한 후손이 될수 없고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선조가 되어야만 하는가
무지몽매한 검경찰과 사법부가 선택적인 판단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면 필망이라는 교훈을 되세기며
아픈 가슴이
심학산의 저녁노을에
더욱더 핏빛으로 물들어 가는구나
6.5 193.6
심학산 : 17:25 17:35출발(10분 휴식)
올라갔던 길로 그대로 내려가는데
사람이 내려가니 전망정자 기둥사이로 숨어버린 어린 고양이 한마리
이 산꼭대기에 그 어린 것이 언제 무슨 사우로 버려졌는지
아무리 말못하는 짐승이라도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순하디순한 눈망울이 못내 걸리는구나
헬기장에 이르고 : 17:40
약천사갈림길로 내려가다가
뒤따라 오는 마눌과 구선0 후배는
좌측 이정목 없는 길로 내려간다고 연락이 오고
우리는 이정목과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곳에서
100, 7.1
좌쪽 약천사로 내려간다 : 17:45
심학산둘레길 및 등산로 안내판
약천사입구에 제대로 된 심학산둘레길 안내판이 있고
청동대불 좌쪽 산비탈로 오르면 있는
조그만 암자같은 건물은 삼성당이나 산신각인줄 알고 올라가보니
희얀하게도 대웅전이다
통일기원 청동대불은 어머어마한 크기가 사람을 압도하고
범종각이 날아갈듯 세워져 있고
곧 심연을 울리는 맥노리를 하는
깊은 울림의 종소리가 들려올듯하다
드너른 요사체들이 있는 돌계단을 내려가면
어머어마하게큰 건물이 대웅전이 되어야함에도
이 절에서는 지장보전이라는 당호를 달고 있다
계단 석축밑에는 금복주 닮은
배불뚝이 스님이 애들을 데리고 노는 모습인 석상 뒤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을 비는 명패들이 즐비하다
잠깐 내려가면 주차장이다
먼저 와있는 마눌과 후배들이 기다리고 있다
60, 7.5
약천사주차장 원점회귀 : 18:00(10분 휴식)
그후
명동 시가지 같은 도시로 발전한 운정신도시 한가운데
가까스로 차를 끌고 들어간 고기집을
자기네동네라고 구선0 후배가 안내를 했다
그동네에서는 최고로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란다
주메뉴가 정가브리살 미갈매기살이고
보조메뉴가 목살 삼겹살 등이 있다
그리고 곁메뉴인 청국장 순두부 양송이 등이 있다
그런데 금액이 보통이 아니다
일인분에 16천원 곁메뉴가 한그릇에 7천원이다
그래서 소주 한잔 곁들이면 일인당 3만원은 가져야
고기맛을 볼수 있는 집이다
정가브리살은 정씨가 개발한 가브리살이 아니라
정사각형으로 만든 고깃덩어리라 하여
바를정자를 써서 정가브리살이라고
개업주가 임의로 지은 이름이고
미갈매기살이란 아름다운갈매기살이 아니라
갈매기살에 붙어있는 횡경막같은 얇은막을 제거하지 않은 갈매기살
즉 아닐미자를 써서 미갈매기살이라고
개업주가 임의로 지은 이름이다
비싼대신 종업원들이 엄청나게 친절하지만
새송이버섯 하나만 더 달라고 하니
1000원이라고 해서 더 시켜먹는 것을 포기했지만
고기맛은 일품이라 이빨이 없는 나도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보조의자에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런 문화 아니 습성은 울나라 밖에 없는 것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석달에 한번씩 간단한 산행을 하고
돌아가면서 경비를 부담하기로 했다
다음 차례는 구선0 후배이며 금년 중에
야당역에 있는 홍어전집에서 송년회 비스므리한 것을 하고
1월에 월롱산행을 금촌에서 파주둘레길로 하고
내가 경비를 부담하기로 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김윤0 후배가 집까지 데려다주어
최고로 편안한 산책같은 산행을 하고
난생 처음 먹어보는 부드러운 고기로 저녁을 한 흔치않은 하루였다
자리를 마련해준 후배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심학산둘레길 산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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