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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강 연극이란 무엇인가?
1. 카타르시스의 역할
내가 언젠가 이야기했다. 어떤 문명이든 예술이 없는 문명은, 문명이 될 수가 없다고 했다. 예술이 없이는 문명이 문명 구실을 못한다.
그런데 예술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를 반영한다.
희랍에도 희랍 철학이 가장 전성기일 때, 희랍의 예술이 같이 전성기에 달했다. 소위 말해서 희랍의 유명한 비극 작가들인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사람들도 전부 소크라테스 시대에 활약했다.
@희랍 3대 비극작가
아이스퀄로스(Aeschylus, 525~456 BC)
소포클레스(Sophocles, 495~406 BC)
에우리피데스(Euripides, 480~406 BC)
위대한 연극이 나오는 것 역시 그 역사가 가장 위대한 시기였다. 로마 시대가 쇠망하여 멸망으로 갈 때, 연극도 아주 퇴폐적인 연극으로 흘렀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아테네인들은 자유의 고귀함을 배웠다. 그 후 50년간 페리클레스 전성시기에 희랍비극도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위대한 역사 시기에는 반드시 위대한 예술이 있었다. 그리고 위대한 예술에는 반드시 위대한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에 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을 모시겠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배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무대 뒤에서 많은 사람이 일을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무대는 배우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배우를 좋아한다. 그래서 오늘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배우 윤석화 선생님을 모시겠다. 고등학생을 보시니깐 참 기분이 좋죠?
@ 연극배우 윤석화(尹石花)
객석 발행인, 극장 정미소 대표
[윤석화]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의 나이가, 여러분들의 외모가, 여러분들의 미모가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운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그 나이 때는 나도 잘 몰랐다.
나도 여러분 나이 때는 주변의 학부형, 선생님들이 저보고 예쁘다고 그랬다. 그런데 나는 예쁜 줄 몰랐다. 이제 와서 많이 후회하고 있다. 그때 예쁜 것을 알고, 그때 나에 대해서 좀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면, 아마 지금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용옥 선생님과 제가 하는 이야기 가운데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 여러분이 누구인지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도올]
나는 윤 선생님을 뵐 때마다, 내 나이도 윤 선생님 나이도 잊게 된다. 그 이유는 항상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살아 있는 분, 그리고 조금도 나이를 모르고, 예술인으로서 끊임없이 무대 위에서 자기 생애를 던지면서 혼신을 쏟는 분, 난 이런 분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윤석화]
여러분들은 연극을 본 적이 있나요?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공연 예술을 보았을 때, TV를 보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와 다른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생생한 현장감, 생동감, 배우랑 같은 상황에 있는 거 같은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것 이외에 공연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또하나의 특징 혹은 역할은 바로 카타르시스이다.
카타르시스(catharsis) : 정서의 정화(淨化), 해탈(解脫)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그 다음에 무슨 현상이 올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나면, 뭔가 시원해지고, 뭔가 스스로에게 감동이 오고, 뭔가 자신이 무아지경에 이르고, 뭔가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보면 거기 그 빈 자리에 또다른 꿈이 생긴다.
카타르시스는 우리 감정의 정화를 가져오며 새로운 꿈을 불러일으킨다.
이 꿈의 세계를 넓히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넓은 세상을, 이 넓은 우주를 다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에겐 간접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러 관계가 필요하다. 선생님하고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엄마하고의 관계를 통해 간접 경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또 부족하다.
무대는 모든 가능한 인간관계의 투명이다. 우리는 무대의 간접체험을 통해 무한히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상상의 관계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여러분에게 주는 또다른 객관적인 카타르시스이다.
2. 소통이 불가능한 TV
연극의 3대 요소는 무대, 배우, 관객이다. 무대는 현장감이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연극은 관객과 배우가 함께 만나는 살아있는 예술이다.
연극의 3대 요소 : 무대, 배우, 관객
그런데 어느 예술도 3대 요소 중에 관객이 들어있는 것은 없다.
TV에서 연기를 하면, 어떤 사람이 TV를 보고 있는지, 안 보고 있는지 모른다.
옛날에 우리 친구 할머니가 나이가 많이 드셔서 조금 망녕이 나셨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어느 날 그러셨다. ‘난 이제 텔레비전을 무서워서 못보겠어.’ 그래서 그 손녀딸이 ‘왜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제 내가 TV를 하도 많이 보니깐, 배우가 날 알아봐.’라고 하셨다고 한다.
클로즈업을 잡으면 화면을 봐도, 마치 나한테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나? 간혹 그런 예가 있긴 있지만, 사실 TV는 시청자와 소통을 할 수 없다.
내가 어떤 연기를 해서, 그것이 TV화면에 흐르고 있을 때, 시청가가 누워 보는지, 서서 보는지 아니면 켜놓고 딴짓을 하는지 모른다.
3. 꿈의 형성 과정
제가 A라는 연극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경진이는 그것에 너무 감동을 했다. 그런데 민진이는 내용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럴 때는 감동까지는 안 하겠지만, 그 대신에 그냥 잠깐 생각은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가 민진이가 한 2년이 지난 후에 그 작품과 비슷한 상황을 만났다. 그때 민진이가 어떻게 대처할까? 전혀 생각을 안했다면, 대처할 능력이 없다.
연극은 철저히 무대와 관객의 기의 교감(氣之交感)을 전제로 하는 예술이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동은 못 받았지만, 잠깐 생각은 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렵기 때문이다. 연극은 내용이 좀 어렵다.
TV 드라마나 영화는 어려운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좀 쉽다. 그냥 우리의 일상이다. 내가 다 아는 것이다. 그래서 그건 그냥 흘러가면서 보게 된다.
연극은 간접체험을 통해 나의 삶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데 구체적 도움을 줄 수 있다. 즉 연극은 나의 정신세계를 성장시킨다.
그런데 연극은 좀 어렵다. 좀 어려우니깐 부정적인 사람은 금방 생각을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처럼 긍정적인 사람들은 ‘왜 어렵지?’하고 그 의문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의문을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이 되는 것이다.
꿈은 많은 생각들을 통해서, 삶의 하루하루, 1년 2년, 시간시간을 통해 체로 걸러지는 것이다. 체로 걸러지면서, 정말로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결정된다.
꿈은 연속적인 카타르시스 과정을 통해 정밀하게 되고 또 나의 실존적 체험과 더불어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다. 꿈은 역동적 삶의 과정이다.
그것이 또 다른 우주를 만나게 되면, 그 안에 그냥 우주를 만나는 게 아니라, 나의 사고를 통해서 만나게 되면, 거기에서 또다른 꿈이 생겨날 수 있다.
4. 꿈, 자긍심, 헌신
이제 Dignity, 자긍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자긍심은 자존심과는 조금 다르다. 자존심은 자신의 자존을 위한 것이다. 자기를 위한 다소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긍심은 자신에게 긍지를 갖는 일이다. 자존심은 어떻게 보면, act 즉 행동이 없다. 자긍심은 행동이 포함된 것이다. 자긍심이다.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내가 이걸 할 수 있으니깐, 또 저것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런 것이 자긍심이다.
이 자긍심이 무엇을 가져오게 될까?
제가 연극배우로 살면서, 꿈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 그 꿈을 통해서,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내가 참 괜찮은 배우구나 하면서 저만의 자긍심을 느끼게 되었다. 누구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보기에 참 좋은 나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참 좋은 나는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참 좋다. 그렇게 자긍심이 생기게 되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나만을 생각하는 삶이 아닌, 사회를 생각하고, 친구를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 되고 싶은, 누군가에게 헌신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의 여지가 생긴다.
이 헌신을 영어로 Devotion이라고 한다.
여러분들이 러브송을 들어 보면, ‘I Devoted for you.’라는 가사가 많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헌신했어요.’라는 뜻이다. 우리는 사랑을 하게 되면 뭐든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 이 아니다.
여러분의 삶을 스스로 사랑하는 그런 삶의 자세를 갖게 되면, 그것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에, 이웃에 나누어줄 수 있는 ‘헌신’을 하게 될 것이다.
연극이라는 길을 통해서 제가 깨닳은 삶의 3가지가 바로 이것이었다. 꿈(Dream), 자긍심(Dignity), 헌신(Devotion)이었다.
꿈(Dream), 자긍심(Dignity), 헌신(Devotion)
옛날에 우리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3D가 있었다. danger, difficult, dirty다. 그때 제가 그런 생각을 했다. ‘왜 긍정적인 3D를 생각하지 않고, 왜 부정적인 것을 먼저 생각할까? 칭찬은 약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할까?’라고 생각했다.
3D(위험, 어려움, 더러움)를 3D(꿈, 자긍심, 헌신)로 바꾸자 -윤석화
우리 젊은이들은 긍정적인 3D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누구나가 모두 그런 마음이 되면,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것을 전염시켜서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 많아지도록 해야겠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이 3D의 전도사가 되기 바란다.
5. 아름다운 유일한 나
꿈을 갖고, 그 꿈을 실천함으로서 혹은 생각함으로서 나 자신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아름다움(Beauty)이다.
여러분의 아름다움(Beauty)은
여러분 개개인의 유일함(Uniqueness)입니다. -윤석화
여러분의 아름다움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은 자신과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교육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비슷하게 이루어진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다르다. 그 서로 다름을 가지고 꿈을 꾸셔야 된다. 여러분은 유일한 존재이다. 아무도 여러분하고 똑같은 사람이 없다. 거기에 놀라운 축복이 있는 것이다.
나는 1남 6녀의 막내딸이었다. 위에 언니가 5명 쭉 있고, 그리고 드디어 원하고 원하던 아들을 낳은 것이다. 바로 제 위의 오빠다. 원래 5명의 딸을 낳고, 아들을 낳았으니깐 그만 낳으려고 했는데, 제가 생겨 버렸다. 그러니깐 저의 어머님이 ‘낳은 김에 하나 더 낳지. 혹시 아들일지도 모르지.’ 그러면서 낳았는데, 제가 나온 것이다. 얼마나 실망을 했겠나? 그런데 제가 어려서 못생겼었다. 제 바로 위의 언니는 너무너무 이뻤다. 그래서 저는 집에 없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바로 위의 언니가 너무 이쁘지, 또 오빠는 우리집 왕자님이었는데, 저는 얼굴도 안 이쁘니깐, 없는 존재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다가 저희 어머님 친구들이 오면 ‘니네 5째 딸은 어쩜 저렇게 이쁘니...’라고 하시다가 좀 미안하니깐 ‘니네 막내딸은 참 개성있게 생겼어.’라고 하셨다. 그때 우리 엄마가 ‘그럼, 우리 막내딸도 아주 개성있고, 이쁘지.’라고 하셨으면 좋았을텐데, 옛날 어머님들은 겸손이 미덕이라서, ‘아이, 그냥 우리 막내딸은 밉지는 않아.’라고 하셨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밉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실제로는 하나도 안 이쁜데, 엄마가 이쁘다고 해서, 자기가 이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저처럼 이쁜데, 자기가 이쁜지 모르는 것도 문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오히려 제가 어려서부터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래, 그렇다면 얼굴이 안 이쁘니깐, 내가 뭔가 다른 사람과 다른 특징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래 좋아, 나는 얼굴은 안 이쁠지 모르지만, 마음이 이쁜 사람이 되자.’ 그러면서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무슨 책을 읽었더니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얼굴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굉장히 위로를 받았다.
만약에 그런 문학을 통한 간접적인 위로가 없었다면, 제가 꿈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가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세상은 다 이쁜 여자만 원하는 거야. 나 같은 것은 소용없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 맞아. 그래, 이 책을 봐. 이 다음에 커서는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얼굴에 쓰여진다고 하잖아. 그러면 20대에 끝날 것도 아니고, 30대에 끝날 것도 아니고, 최소한 60살까지 산다면, 나는 끝끝내 아름다워질 거야!’라는 꿈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얼굴은 나의 삶의 축적태이다.
아름다운 삶은 반드시 아름다운 얼굴을 만든다.
바로 그래서 예술이라는 간접적인 경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여기서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6. 연극의 효용성
연극이 여러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혹은 특색은 바로 어느 날 문득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자신의 삶을 투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라는 다른 세상에 있는 허구의 삶을 들여다보지만,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거울이라는 것이다.
작품의 허구성(functionality)은
나의 삶의 리얼리티(reality)가 될 수 있다.
그 거울을 보는 순간, 내가 누구인지, 나의 실체가 무엇인지,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과한 것은 무엇인지, 과연 나에게 꿈이 있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이런 것들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가 집에서 바라보는 거울은 우리의 외모를 들여다보는 거울이지만, 그 거울은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여러분의 마음 상태, 여러분의 정신 상태, 여러분이 꾸는 꿈의 상태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연극도 많이 보시고, 무엇보다 예술을 사랑하기 바란다. 예술과 가깝게 지내기 바란다. 예술은 사실 실생활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별개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이 너무 살아가는 현장의 체험이 아닌 것만 가르친다. 너무 시험이 많고, 그러다보니, 경직된 교육 환경에 있는 여러분들이 안타까울 때도 있다.
저희 때도 대학을 들어간다거나 중학교 들어간다거나 고등학교 들어간다거나 항상 입시는 치열했지만, 지금 오히려 많이 갇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때는 너무 가난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넘볼 수 있는 게 참 많았다. 오히려 없으니깐 호기심이 많았다. 모든 게 부족한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물질의 풍성함에 갇히지 말기 바란다. 그 물질의 풍성함 때문에 여러분의 정신이 소멸되거나, 마모되거나 심지어 갇히는 일은 없어야 되겠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나의 자유로운 정신을 구속해서는 안된다.
많은 콘텐츠가 있을수록, 더 많은 생각을 한다면, 아인쉬타인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미래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7. 연극의 역사
[도올]
우리가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생각해 보면, 세익스피어도 죽고, 영국도 쇠망하고, 뭐가 남았나? 대본만 남았다. 그래서 연극이라는 것을 문학장르로만 생각하기 쉽다. 물론 대본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연극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종합적인 세계이다. 배우가 있고, 연출가가 있고, 음악가도 있고, 미술가도 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관객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그 말씀을 하신 것이다.
우리가 연극을 생각할 적에 하나의 literature로만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연극(play, drama, theater)을 문학(literature)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연극은 우리 인류가 개발한 가장 종합적인 예술이다.
연극은 반드시 문학적 측면이 주도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연극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서양 고대로 올라가면, 희랍 시대의 종교적 제식과 관련이 있었다.
제식이라는 것에는 sacrifice, 희생양을 쓴다. 처음에는 왕이 있으면, 왕의 아들이나 왕비를 죽인다든지 하는 휴먼 세크리파이스(human sacrifice)를 썼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참 끔찍했다. 그래서 휴먼 세크리파이스 대신에 그 다음에는 양(羊)으로 바꾸게 된다.
그러다가 그런 것도 지겨워지니깐, 사람들이 그 세크리파이스를 상징하는 드라마를 자꾸만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원을 하고, 나라의 안녕을 비는 실행 제식을 하는 대신에 희생의 제식을 드라마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런 것이 술의 신, 섹스의 신, 취함의 신인 디오니소스(바커스)를 찬양하는 축제에서 제식과 함께 공연되었다.
나중에는 거기 와서 제식을 하는 사람들이 대개 자기 죄를 이야기하고, 대의(大義)를 위해 자기가 희생당하는 모습으로 시작한 것이 비극의 출발이다.
희랍연극은 디오니소스 축제(the Dionysiac festival)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은 봄의 제전이었고 대지의 부활이었다.
오이디푸스(Oedipus) 같은 것도 신탁을 받아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한다. 그런데 그 지역에 엄청난 재앙이 오게 되니깐 스스로가 자기 눈을 칼로 찌르고, 희생 제물이 되어,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오는 그런 내용이다.
희랍비극은
회생의 제전(rites of sacrifice)의 고등한 형태였다.
희랍에는 비극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희극, 코메디라는 장르도 생겨나게 되고, 그러면서 계속 발전을 해서, 그 무대라는 것이 우리 삶의 소우주로 옮겨간 것이다.
무대는 우리 삶의 소우주(micro-cosmos)이다.
그런데 지금 말씀하셨듯이 연극은 우리 모든 인간의 관계를 무대에 발전시켜 놓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에 가질 수 없는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을 거기다가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이미지네이션(imagination)의 세계이고, 그것 자체가 꿈의 세계이다. 무대 위에 어마어마한 세계를 만들면서 모든 사람들이 거기로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마치 실제로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것인양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연극은 픽션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리얼리티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었다. 그러면서 위대한 배우들이 나오고, 사실주의적인 작품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급하게 발전되어 나간다.
그런데 그림도 17세기, 18세기를 계속 내려오면서 사실화를 중시하였다. 그리고 19세기에 사진기가 나오면서 사실화가 사진을 당해낼 수 없으니깐 사실주의가 없어지고 인상주의 같은 것으로 넘어갔다.
마찬가지로 연극도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모션픽쳐(영화)가 등장하면서 사실주의적인 연극이 점점 추상화되고, 더 자유로운 장르로 발전을 했다.
연극의 사실적 무대의 리얼리즘은 영화예술의 출현으로 쇠퇴하고 새로운 추상성과 다양한 무대기법을 발전시켰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21세기의 우리 연극은 정말 위대한 장르이다.
고대의 종교제식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모션픽처라든가 텔레비전의 도전에도 꿋꿋히 살아남은 게 이 연극이라는 위대한 장르이다.
역사적으로 연극의 모든 사조와 기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전하고 축약되었다.
그래서 그 위대한 장르의 한복판에 서 계신 윤석화 선생님께서 지금 여러분들의 꿈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 연극이라고 하는 꿈의 세계를 여러분들이 이해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꾸게 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은 ‘나는 유니크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아주 감동을 받았다. 이 세상엔 둘이 있을 수 없다. 이 세계의 모든 DNA 조합에서 둘이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고, 누가 나를 못생겼다고 하든, 뭐라고 하든 나는 유니크한 존재라는 것이다.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고, 두 번 다시 살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고,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다. 이 유니크한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계신 것이다.
내가 유니크한 존재라는 것이 곧 나의 모든 가능성의 출발이다.
8. 배우의 숙명
[윤석화]
저는 주로 여러분에게 현장성에 대한 말씀을 드렸고, 여러분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소통하는 첫 길을 열었는데, 우리 선생님께서는 고대 희랍 비극부터 너무나도 아주 짧은 시간에 명쾌하게 드라마라는 것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말씀해주셨다.
사실 드라마(연극)는 고대 희랍에서 휴먼 세크리파이스부터 시작해서 양을 제물로 삼는다든지 해서 시작했는데, 그것이 현대의 드라마로 발전을 했다. 그런데 저는 간혹 배우라는 것이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배우야말로 우리시대의 희생양이다. -윤석화
그것은 어쩌면 배우뿐만이 아니라, 진짜 예술가라면, 모든 예술가가 이 시대의 희생양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가 막힌 여러분의 상상력과 여러분의 어떤 도전의식과 여러분의 꿈을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어떤 작품으로, 음악으로 미술로 연극으로 만들어낼 때, 사실 그 뒤안길은 엄청나게 힘들다. 고독하다. 외롭다.
진짜 예술가의 길이라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00% 이상의 치열함만이 그 예술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게 수학의 논리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다.
예술의 논리는 우리가 유일한 존재인 것과 똑같다. 지구상의 그 유일한 존재의 특성과 개성을 어떻게 무엇으로 표현하겠는가? 그것은 어떤 메타포로서 혹은 이미지로서 표현을 한다.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인간이 아닌 거 같다.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배우는 다른 예술 행위를 하는 사람들보다는 더 힘들 수 있다. 배우는 마치 사막에 발가벗고 서 있듯이 무대라는 땅에 관객을 기다리며 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때는 관객이 환호할 수 있지만, 환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얼마나 외로우겠는가?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상상할 수 있겠죠?
음악가라든가 미술가들은 어떤 작품이 실패로 나타난다고 해도 일단 그냥 숨어서, 안 나타날 수도 있고, 뒤에서 울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는 배우는 그럴 수 없다.
배우는 감기애 걸렸어도 무대로 나가야 한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그날도 코메디를 연기해야 한다. 나와서 깔깔깔 웃어야 된다. 그 이중성이 가져야 하는 엄청난 괴리감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배우다. 진짜 배우라면 엄청나게 다른 우주를 가져야 될 거 같다.
[도올]
내가 부연 설명을 하면, 영화는 찍을 적에 수 없이 NG를 낼 수 있다. 그래서 배우가 같은 장면을 계속 찍고, 대사도 그 자리에서 외우게 할 수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그렇게 해서 찍는 것이다. 한 장면을 10번 찍어서 그 중 1장면을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연극에 서 있는 배우는 NG가 없다. 불가능하다. 그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러기 때문에 연극 배우는 위대한 것이다. 연극 배우를 거쳐보지 않고 절대로 진짜 배우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배우가 되려면 무대 위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윤석화]
인생에 NG가 있나, 없나? 여러분이 시험을 봤는데, 잘못 봤다고 다시 보게 해달라고 할 수 없다. 대학에 떨어졌는데, 다시 할테니깐 물러 달라고 할 수가 없다. NG가 있을 수가 없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 친구도,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 친구도 헤어지면 끝이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기 어렵다. 인생에는 NG가 없다.
인생에는 엔지가 없습니다. -윤석화
저는 그런 면에 있어서 연극이라는, 무대라는 이 허구의 땅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제시해주고 혹은 위로를 주는지 생각할 때 배우라는 직업에 기쁨이 있다. 내가 이런 모진 것들을 통해서 만일 관객한테 그런 선물을 줄 수 있다면, 나는 괜찮은 일을 하다가 죽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희생양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희생양이 되어서 그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혹은 그 누군가에게 순간의 감동을 주어서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를 적어도 1주일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한다면, 그가 1주일동안 ‘난 괜찮은 사람이야’라며 어떤 소망을 줄 수 있다면, 그 희생이 어찌 아까우겠나? 무엇이 두려우겠나?
9. 감정이입
[도올]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배우는 작품에 몰입을 해서 울고, 웃고 그러면서 자기가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간다. 그러니깐 배우라는 것은 무대 위에서 햄릿을 흉내내면 배우가 아니다. 자기가 햄릿이라고 느껴야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언어가 햄릿의 언어로 나와야 한다.
배우는 느낄 뿐, 흉내내서는 안된다.
햄릿의 말을 외워서 수사학적으로 꾸미면 그건 배우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배우의 특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느끼고, 느낀 그 모습대로 자연스럽게 표현을 해야 한다. 옛날에는 꾸미는 배우를 위대하다고 했다. 그런데 20세기, 21세기에 와서 배우의 위대함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실제로 해보시면서, 그 어려운 감정이입을 영화 배우는 몇 번만 하면 되는데, 연극 배우는 연속으로 한 달을 해야 한다. 그럴 적에 어떤 상황에서 똑같이 그게 매번 되는지 궁금하다. 한 번 여쭈어 보고 싶다.
[윤석화]
제가 연속적으로 가장 장기간 공연을 한 게 386회이다. 매주 월요일만 쉬고 계속 했다. 요즘에는 제가 공연을 하면 일주일 7회 내지는 8회를 하는데, 예전에는 일주일에 14회를 할 때도 있었고, 최소한 12회를 한다. 그게 1년내내 이어진다.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신의 아그네스’라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으로 제 이름 석 자가 연극배우로 알려졌는데, 그때까지 제가 연극에 바친 세월은 10년이었다.
제가 여러분에게 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진정으로 꿈이 있다면, 오래 하라는 것이다. 그게 진정으로 여러분의 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진정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생각을 많이 하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래 해야 한다. 최소한 자신이 꿈꾸는 일에 10년은 바쳐보고, 할것인지 말것인지 결정하기 바란다.
근데 어찌 되었든 연극을 시작한지 10년만에 ‘신의 아그네스’라는 작품으로, 연극배우로서는 어떻게 보면 최초로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그 수식어라는 것은 저한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 스타라는 수식어가 주는 한 가지 중요한 게 있다. 책임감, 사명감, 이런 것들도 때론 다른 꿈을 꾸게 한다.
그렇게 369회를 한 것도 있고, 100회를 한 것도 있고, 200여 회를 한 것도 있고 40여 회를 한 것도 있지만, 제일 어려운 게, 아닌게 아니라,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똑같은 감정을 매번 어떻게 똑같이 할 수 있느냐였다. 굉장히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제가 제일 기분 나쁜 말이 뭐냐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 대사를 다 외우세요?’라고 묻는 것이다. 이게 제일 기분 나쁘다. 그건 외우면 된다. 대사는 죽어라 외우면 된다. 영어 단어 외우듯이 외우면 된다.
그런데 연기라는 게, 선생님이 조금 전에 말씀하셨지만, 그 대사를 그냥 서술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그 작품에서 필요로 하는 그 세상에 그 인간이 되어서 그걸 표현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연습 과정을 통해서 많은 것을 스스로 공부하기도 하고, 그것에 대해 확신을 갖기 위해서 많은 밤을 갈등하기도 하고, 여기다 대입시켜 보기도 하고, 저기다도 대입시켜 보고, 내 삶하고도 대입시켜 보기도 한다. ‘아니, 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는 안되잖아요?’ 이러면 연출자가 이야기 해주고, 동료들이 이야기해 주고, 그러면서 그런 많은 토론을 통해서, 소위 연구과정을 통해서 확신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 이건 이런 것이구나’하고 확신을 얻는다고 해도, 그 확신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또 다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살아온 많은 삶의 경험을 가지고도 부족하기 때문에 예술을 통해 혹은 삶의 관계를 통한 많은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얻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0.000001초 사이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일까, 저것일까 막 고민하면서 체로 쳐낸다. 그런 다음에 고요하게 자신을 낮춘다. 그리고는 어느 날, 어쩐지 내가 그 인물이 되어 있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되고, 사실상의 기도로 들어간다. 제 연기의 방법입니다만, 그런 다음에 ‘내 안에 들어가 있을 거야! 오케이 나우 저스트 렛잇고!’하면서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감정을 찾아내고, 표현하기까지도 어려운데, 어떻게 매일매일 똑같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똑같은 적은 300회를 공연해도 한 번도 없을 것이다. 결국은 매일매일 다 조금씩 다르다. 그걸 매일 녹화를 해서 본다면,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래서 배우인 저는 어떤 날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너무 오늘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날은 천국 같다. 그렇게 배우한테는 ‘이건 나밖에 못해.’라는 자아도취가 있다. 그건 배우뿐만 아니라, 누구한테도 필요하다. 내가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역시 이것만큼은 내가 제일이야!’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만 같고는 나태해진다. 그 다음에 뭐가 필요하냐 하면, 매일 똑같이 했는데, 어느 날은 ‘어떻게 이렇게 못할까? 어떻게 이렇게 안될까?’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내 자신을 다 속인 거 같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죽고 싶다. 그런 날은 지옥이다. 왜냐하면 노력이나 안했어야지? ‘이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안 되면, 배우 사표 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는 지옥이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내가 그렇게 잘했다고 생각하는 날, 관객 반응이 별로인 날이 있는가 하면, 나는 오늘 진짜 망쳤다고 생각을 했는데, 관객이 너무 감동해서 1시간 이상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배우는 천당과 지옥을 끊임없이 오간다. -윤석화
아무튼 그랬을 때, 제가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는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사실 오늘 같은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미래를 내다보면서, 진보와 보수가 함께 만나면서,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한다.
새로운 꿈을 꾸려면 뒤도 돌아봐야 한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왜 백미러 보는가? 그냥 가면 되는데, 우리는 꼭 백미러를 본다. 뒤를 봐야 앞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중요한 것이다
얘기가 빗나갔지만, 어찌 되었든 그렇게 부단하게 새로운 역사를 꿈꾸면서 저는 연극이라는 분야에서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쌓이면 쌓일수록 굉장히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 부족함 마저도 채워주는 것은 바로 관객이다. 연극의 3대 요소에서 뺄 수가 없는 관객이라는 주인공들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이다. 연극도 변하고 배우도 변하고 역사도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여러분 이게 멋있지 않나? 어떤 예술에도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는 예술은 없다. 연극 공연을 가면 여러분이 주인공이 된다.
여러분이 반응하고, 여러분이 진지하게 봐 주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가 없으니깐, 공연 시작 30분전까지도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다가 나가서 펄펄 뛴다. 그게 배우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여러분의 보다 아름다운 지성과 보다 아름다운 철학과 보다 아름다운 삶의 메타포, 그 운율을 꿈꾸게 하기 위한 배우라는 희생양일지도 모르겠다.
[도올]
오늘 많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여러분들이 가슴에 아주 깊이 담아서 되새겨 볼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지금 우리 논술 강의도 여러분들과 나 사이애서 그야말로 완벽한 교감으로 이루어지는 연극과 같은 세계다. 그리고 오늘 다룬 연극이라는 주제도 여러분의 논술 시험으로 항상 나올 수 있는 주제이다. 그러니깐 깊이 있게 연극의 세계라는 게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논술도 교감(交感)의 세계이다.
위대한 배우는 위대한 관객이 만든다. 요새 정치시즌인데, 이런 생각한 번 해봅시다. 우리나라에 위대한 정치가가 나올려면, 국민들이 위대한 정치에 대한 관객이 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정치 무대에서 뛰는 사람들과 우리 국민들이 한 몸이 되는 그런 위대한 연극과 같은 대한민국을 한 번 생각해보자. 오늘 강의를 마치기로 하겠다.
위대한 배우는 위대한 관객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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