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남사님은 산사나이들의 마음을 그렇게 읊었다.
김 학송님은 그 정서에 곡을 붙여 주셨다.
그리고 우리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동문들은 이번 지리산 계곡산행에서
"정(情)이란 무엇일까?" 해답을 가슴속 가득히 채워 넣고 왔다.
1년을 기다린 동문산행!
지리산 계곡의 지형적 특성상 사전답사가 필요했다.
이 양근 동문회장님의 후원으로 우리의 산 머슴 김 영호님(6기)과
강 경원님(6기)이 우정 대원들의 계곡산행 예정루트를 미리 답사하였다.
김 영호님은 대원사쪽으로 해서 조갯골을 강 경원님은 윗새재길을 탐사(探査)하였다.
문 채식님(3기)이 총 기획을 하였고 조 남형님(2기), 최 용환님(5기)이 영상기록에 힘쓰셨다.
모두 20인의 2003년 지리산 계곡 등반대원들은 298,800번의
정을 나누느라 바쁜 일정이었다.
이제 그 298,800초 동안의 일정을 대략 써보고자 한다.
첫째 날; 국(國)골의 슬픈 전설
드디어 출발일이다.
언제나처럼 동문산행 출발일은 부푼 설레임에 일찍 깨었다.
왼쪽 허리 근육통이 남아있어 오렌지 다섯 개와 복숭아 통조림 한 개,
산이슬 다섯 통은 결국 냉장고 신세가 된다.
출발시간 30분전부터 장대비가 쏟아진다. 상쾌하다.
오전 7시 30분 서울시청 앞에서 엘리트 동문들을 태운
엘리트관광전세버스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로 힘차게 출발한다.
빵빵한 에어콘 바람이 잠시 젖은 몸을 이내 뽀송하게 한다.
서초구민 회관 앞에는 주 영일님, 최 용환님, 김 영호님, 한 수봉님이
반쯤 빠진 목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규 7기의 정 훈님의 모습이 보이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대교산악회 팀을 이끌고 지리산 등반에 나서는 길이란다.
45인승 좌석의 여유가 있으니 백무동까지 태워 주는 것도
우리 동문들의 여유로운 마음이다.
오후 1시 추성리 주차장에 예정된 시간에 들어선다.
2003년 청소년 백두대간 팀의 출정식에 격려차 하루 먼저 내려오신
이 양근 동문회장님과 한 영길 이사님, 조 남형 이사님이
만면에 가득한 미소로 우리 일행을 맞아 주신다.
주차장 바로 옆 칠선 산장 음식점에서 질(質)에 비해서
꽤 비싼 5,000원짜리 산채 비빔밥으로 모두들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첫날의 국골 산행을 시작한다.
국(國)골은 가야국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이 신라에게 쫓겨와
진을 쳤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골짜기다. 이러한 전설을 뒷받침하듯
국골 초입에는 성안이라는 지명이 있다.
국골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들려온다.
칠선 계곡에서 살던 곰이 계곡에서 목욕하던 선녀의 옷가지를 나뭇가지에 숨긴다고 숨겼는데. 그것이 나뭇가지가 아니었고 사슴의 뿔 속에
숨긴 것이었고, 그것이 들통나 사슴은 계속 칠선 계곡에 살게되고,
곰은 칠선 옆 계곡인 국골로 쫒겨 났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옮겨 적으면서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
곰? 선녀? 사슴?
이 대근씨나 백 일섭씨면 알겠는데...
초입부터 제동이 걸린다.
빽(Back)! 빽!
매표소 바로 앞에서 빽! 지시가 떨어진다.
후미가 선두가 되어 5분여쯤 동쪽으로 돌아 산기슭으로 들어서는데
이번엔 칠선 매표소 쪽에서 빽! 빽! 지시가 떨어진다.
뭔 일이래? 초반부터?
길은 맞는데 매표소에 통행세 내고 들어 가시란다.
베이지색 점퍼에 진청색 모자 쓴 매표소 아저씨의 목소리가 아주 컸다.
몰랐지 우리는, 국골 매표소에서 지불하려고 했지!
용소 쪽으로 또 10여분 오르다 선두 조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또다시 빽! 빽!
국골은 동쪽으로 나 있는데 지금 용소 쪽으로 들어서는 희미한 길은
남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여차 저차 워밍업으로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가파른 길을 헤쳐 나간다.
바로 옆 서쪽의 칠선 계곡과는 달리 인적이 드믄 등산로이다. 칠선 계곡보다 좁고, 등산로도 덜 발달되어있다.
1시간 여 뻘뻘대고 있는데 선두에서 계곡으로 내려선다.
차가운 계곡 물에 풍덩풍덩!
물 속에서 지지고 볶는데 사홉들이 혼자만 벌거벗고 날뛰고 있다.
그 사이 김 희현님이 계곡 위 동쪽으로 나있는 올바른 등산로를
찾아내어 또다시 등반계속,
인적이 아주 드물어 길옆으로 산수국(水菊)이 지천이다.
주황색 산나리꽃도 수줍게 마중 나온다. 길은 점점 가파르다.
계곡으로 건너는 지점만 나오면 풍덩풍덩!
대원들이 하나둘씩 몸을 적시고 있다.
다시 터벅터벅.. 무슨 한발짝이 이리 무거운지. 그렇게 4시간여를
오르니 국골 계곡의 끝 지점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첫 날의 비박지
하봉을 지나 헬기장까지 샘(泉)이 없다.
사홉들이를 포함한 몇몇 대원들은 이미 지쳐있어 헬기장 까지의
운행이 어렵다.
계곡 끝 지점부터 하봉까지 등반로는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길이다.
양 스틱에 거의 의지하다시피 기어 오른다.
출발전 일주일 여를 몸살감기로 기력이 쇠진한 최 용환님을
이 양근회장님이 보조를 맞추어 오르고 있고 허리근육통에 절절매는
사홉들이도 바로 앞에서 헐떡이고 오른다.
작은 안부에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이미 비박 장소를 찾은
선두의 문 채식님과 한 수봉님은
커다란 물통(나중에 하봉 너머 헬기장 아래쪽 샘터로 내가 물 길러 가서 10여분 들고 오르는데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을 들고
그 가파른 길을 되돌아 물 길러 간다.
김 영호님과 강 경원님도 곧이어 뒤따라 내려와 냉큼 최 용환님의 배낭을 짊어지고 비박지까지 걷는다. 그렇게 계곡 끝 지점에서
가파른 500여M 쯤 더 오르니 우리 일행이 비박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에서 첫 날의 운행을 마친다.
비박지는 4-5M 쯤 되는 활엽수들로 지붕을 이루고 있고 약간 경사진 곳으로 잡풀과 잡목으로 뒤덮여 있다. 주 영일님은 지형에 맞게 조용히
정리를 하며 대원들의 비박 사이트를 정해준다. 많이 지친 대원은
좀 더 평평한 자리를 덜 지친 대원은 덜 평평한 자리를...
사홉들이는 평평과 덜 평평의 중간자리를 배정 받았다.
생활조별로 저녁취사를 하는데 우리조(2조. 장 도희님, 이 화중님,
강 경원님, 사홉들이)는 식수를 아끼려 장 도희님의 사골곰탕 떡국으로 주식을 차렸다.
주 영일님의 햇반 두 개를 받아 말아먹으니 꿀맛이다.
상큼한 열무김치를 이 화중님의 배낭에서 꺼내는데 이건 열무김치
장독을 지고 왔다. 그래서 우리는 사흘 내내 상큼한 열무의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조의 오른쪽으로 5조(문 채식님, 최 용환님, 최 성필님)는 해물매운탕을 끓였나 보다.
한 그릇 얻어먹고 있는데 왼쪽의 4조(조 남형님, 최 종원님, 한 수봉님, 주 영일님)에서 충북 음성군 시골 깻잎장아찌와 무채장아찌를 건네준다.
곰탕 떡국 물에 젖은 햇반을 한 숟갈 떠서 깻잎을 척 얹어 먹으니
수라상(水刺床)이 부럽지 않다.
위쪽으로 1조(김 희현님, 김 덕자님, 강 정순님, 정 영호님)와
3조(이 양근님, 김 영호님, 한 만호님, 길 현자님)는 무슨 지지고 볶는 소리가 들리는데 뭔지 모르겠다.
사홉들이는 지쳐 앉은자리에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서 모르겠다.
때는 단기 4336년 7월 초닷새의 초승달빛 아래 서걱이는 잎새소리와
한 수봉님 별빛과 문 채식님 별빛이 초롱초롱 어우르고 이름 모를
지리(智異)의 국골 어느 능선에서 정(情)은 흐르고 있다.
왜 최 용환님이 뒤에서 유유자적 하였는가? 해답이 돌아왔다.
그 연륜이 녹아 있는 백화수복 중탕장비들이 배낭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버너에 중탕 냄비를 척 올려놓고 한 되짜리 페트병 가득한 백화수복을 그 만의 Knowhow로 적당히 페트병을 찌그려 뜨려 중탕 남비에 넣는다.
찌그려 뜨린 페트병이 부풀어 팽팽히 펴질 때 백화수복은 최고의
향 (香)과 맛(味)이 난다.
그 향과 미를 대원들에게 나누어주려 후미에서 유유자적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떠나기 전날 사홉들이에게 최 용환님으로 부터 전갈이 왔다.
대원이 20명인데 한 되로는 모자랄 테니 사홉들이도 한 병 챙겨오라는
반가운 전갈이었다.
덕분에 사홉들이도 첫날의 국골 산행은 그와 함께 유유자적하였다.
헐떡벌떡 이면서.
뜨끈한 수복 향은 하루의 산행 피로를 말끔히 씻어 내 준다.
열달 후 '김 국골'이가 탄생하기를 기다리면서...
둘째 날; 온 종일 구름 위를 걷고 눕다.(步雲 臥雲)
5시에 기상하였다.
사홉들이는 간 밤의 조금 덜 평평한 비박 사이트가 허리 근육통으로
도져서 힘겹게 일어났다.
한약 쥬스로 졸린 눈을 비비고 어제보다 더 힘든 가파른 산길을 간다. 최 용환님과 또 유유자적하면서.
아주아주 가파른 길이다.
앞서간 대원들의 발자국과 스틱자국을 보면서 지천으로 반기는 야생화를 보면서.
아주 헐래벌떡 국골과 새재의 안부갈림길 주능선에 붙었다.
지도를 보니 첫날의 비박지에서 안부까지는 약 300M의 고도 차를
올리는데 사홉들이와 최 용한님은 무려 2시간 여를 소비하였다.
북쪽으로 두류봉, 남쪽으로 하봉, 북서쪽으로 우리가 올라온 국골, 남동쪽으로 새재 길이다.
안부 갈림길에 하얀 스티로폼 도시락 뚜껑에 곶감 두 개가 오도마니
누워있다.
헐떡이며 바라보는 곶감을 보며 어느 놈이 음식을 버리고 갔담!
투덜대며 배낭을 벗는데,
왜 두 개지? 땅바닥에 떨어진 게 아니고 도시락 뚜껑에 가지런히
놓여 있지?
그 중 한 개는 우리가 가야할 남쪽의 하봉 쪽으로 곶감을 찢어서 방향 표시를 해 놓았다.
의아한 생각에 잠겨서 주위를 둘러보니 싱싱한 오이 반 토막이 눈에 띄었다.
이 건 장 도희님이 엊저녁에 건네준 오이가 분명 맞는데?
아!
이건 뒤쳐진 사홉들이와 최 용환님을 위해서 남겨놓은 우리 대원들의
표시로구나!
나중에 물어 보니 강 경원님이 그렇게 놓아 두었단다.
한 조각 베어 무니 힘이 불끈 솟아 오른다.
서늘한 안부바람에도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주능선에 붙으니 좌우로 지리의 장관이 펼쳐진다.
힘은 들어도 시야가 트이고 날씨도 쾌청하여 내딛는 걸음걸음이 가볍다.
하봉(1781M) 넘어 솔밭에 두 사람은 뻗어 누웠다.
현 지점에서 예정 루트상의 거리와 시간을 재어보니 아무래도 두 사람은 조개골과 윗 새재골 등반은 어려울 것 같다.
치밭목 산장에서의 중식시간까지 바로 질러가면 치밭목 산장에서
대원들과 합류할 수 있으리라. 선두 조가 예정된 조개 골과 윗새재골로 등반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한 대를 피워 물었는데 헬기장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채식님과 경원님이다. 모든 일행이 헬기장에 도착하여 아침 취사를
준비하고 있단다.
쳐진 두 사람의 배낭을 각각 하나씩 척척 둘러매고 헬기장까지 걸음을
재촉한다.
미안하고 쪽 팔리고 따뜻했다..
사홉들이는 빈 몸으로 스틱을 휘두르며 걷는데 경원님은 만만치 않은
내 배낭을 매고 바로 뒤에서 지나칠 듯 뛰어온다. 먼저 도착한 대원들의 걱정을 몇 초(秒)라도 덜어 주기 위한 마음씨다.
그래서 사홉들이는 뛰었고, 용환님은 날았다.
가는 곳곳에 작은 암릉이 나오고 올라서니 사방으로 달리는 지리의
연봉들이 장쾌하게 뻗어있다.
산죽(山竹)의 정글을 지나고 산수국, 산나리, 구절초, 산오이풀,
투구꽃 등등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로 재촉하는 발걸음을 잡는다.
주능선의 남(南)과 북(北)으로 구름은 골짜기마다 피어올라
봉우리를 넘지 못한다.
지리 연봉(連峰)의 푸르름과 하얀 구름의 조화(調和)!.
지리산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곧 넓은 평지가 나오고 대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헬기장 이다.
남으로 중봉이 보이고 헬기장 주위는 온통 꽃 대궐이다.
4조는 뙤약볕 아래 씩씩하게 벌거벗고 취사를 하고 있고 다른 조는
숲 그늘로 피해 취사에 열중이다.
각 조마다 온갖 먹거리를 풀어놓는데 김 영호님이 보이지 않는다.
밥물이 뜸을 들어갈 즈음 양손 가득 참나물 잎, 취나물 잎을 뜯어 온다.
갓 지은 하얀 쌀밥에 쌈장 찍어 바르고 마늘과 풋고추를 뚝뚝 손으로
꺽어 싸 먹는 참나물 쌈밥!
대원들의 아침 수라상은 그렇게 차려진다.
넉넉한 쌀밥은 길 현자님, 강 정순님, 장 도희님 과 사홉들이가
김밥 마는 솜씨 대결로 변한다.
이 때 이 화중님은 김 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한다.
"씻었어?"
"소금이 없어서, 그냥..."
"손맛이지 뭐!"
북동쪽으로 조갯골 계곡등반이 되어야 하는데 많은 대원들이 지쳐 있다.
첫날 비박지에서 이곳 헬기장 까지의 루트는 정말 힘이 들었다.
해서 주능선을 따라 중봉(1873M)->천왕봉(1915M)->제석봉(1805M)
->연하봉(1667M)까지의 둘째날 산행을 결정한다.
중봉에 올라서니 천왕봉이 코앞이다.
중봉에서 올려다보는 천왕봉은 천하의 절경(絶景)이다.
남쪽의 용추 쪽에서 계곡을 타고 하얀 구름이 피어올라 중봉과 천왕봉의 안부(鞍部)를 넘지 못한다. 북쪽의 칠선골에서 상쾌한 바람이 밀어 올라 그 구름은 안부의 남쪽 언저리에서 마냥 뭉게뭉게 소용들이 칠 뿐이다.
남쪽 면의 천왕봉은 하얀 뭉게구름 뒤로 클라이밍 유혹으로 날카롭게
손짓을 한다.
중봉에서 바라본 그 날 오전 천왕봉 모습은 아주 오랫동안 대원들 가슴 깊이 자리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풍광(風光)에 조 남형님과 최 용환님의 카메라는 바쁘게
돌아간다.
전 대원이 천왕봉을 배경으로 박고 이정표를 두고 박고 또 박고 한다.
7기는 무려(?) 5명이 참여했다. 그래서 7기 참여대원만으로 이정표를
배경으로 한 장을 수놓았다.
1기조도 3명이 참여하여 한 컷이 이루어지더니
급기야 동네산악회조(김 희현님, 김 덕자님, 정 영호님, 강 정순님,
한 만호님, 길 현자님),
잡(雜)기조(적게 참석한 기수 대원들이 모여 찍은 사진촬영 조)까지
온갖 구실을 만들어 그 황홀(恍惚)한 풍광 속에 자신들을 담고 있었다.
중봉을 지나 천왕봉 바로 아래 시야가 탁 트인 너럭바위에 앉아 지나온 중봉을 본다.
여전히 우리가 앉은 너럭바위 바로 옆까지 하얀 뭉게구름이 남에서
북으로 넘으려 아우성을 치고 있고 북에서는 칠선골, 국골의 냉랭한
바람이 불어온다.
반바지의 대원들은 쟁쟁한 햇볕과 냉풍(冷風)에 저마다 고추 말리기에
여념이 없다.
천왕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길로 등산로 유실을 방지(防止)하기 위해
세숫대야 만한 돌들로 포장이 되어있다.
정상 곳곳마다 작은 바위 위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신선(神仙)인양
한 봉우리씩 차지하고 사방으로 달리는 지리의 연봉에 취해 있다..
앞면은 동쪽을 향하여 지리산(智異山) 천왕봉( 天王峰) 1915M이라 적고 뒷면은 한국인(韓國人)의 기상(氣像)이 어쩌구 하는 글이 적혀있는데
이 구절(句節)에는 작은 사연(事緣)이 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호남인 이니, 영남인 이니 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연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지리산(智異山)의 뜻도 모르고 아웅다웅 하였으니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문 채식 박사의 해석을 덧붙인다.
지리 하면 복지리 탕을 연상(聯想)하시는 독자들이 있을 터이고
인문지리(人文地理)나 세계지리(世界地理)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리(智異)란 인터넷과 옥편(玉篇)이 있고 하니 검색하시기 바라며
그 심오(深奧)한 뜻을 음미(吟味)하시기 바란다.
한 마디로 "아는 체하지 말거라!"는 뜻이란다.
산이 어떻고, 영남이 어떻고, 호남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저가 어떻고 하지 말라는 뜻이란다.
이하생략!
이 지리(智異)의 정상에 잘 발달된 홀드와 풍만한 슬랩과 깊이 푹 빠질 것 같은 크랙을 갖춘 두 개의 암벽이 설렁설렁 살아 움직이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眺望)을 찾고자 몇몇 대원은 저마다
조금이라도 높은 확보점을 찾고자 생(生) 암벽(岩壁) 주위를 맴돈다.
뭔 야그 냐구요?
정상에서 머문 20여분 내내 살아있는 허여멀건 그 암벽덩어리를
자세히 관찰한 최 종원님(7기)에게 개인적으로 물어 보세요.
김 덕자님 왈(曰), "에이! 나도 뽕을 넣고 다니던지 해야지, 원!"
이하생략!
그리고 보니 나는 이 천왕봉을 15년 만에 다시 온 것이다.
15년 전 남동생과 실상사(實相寺)에서 불도(佛道)의 냄새만 맡고
한신 계곡을 거쳐 천왕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감격해 했었다.
그 이후 내 동생은 지리산 예찬자가 되었다.
그 때 기억하고 있는 지리 정상의 모습은 사라지고 인파로 변하였다.
그런 추억을 더듬으며 통천문(通天門)을 지나는데 푸른 철 계단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
나의 기억 속에는 허름한 통나무를 걸쳐 놓아 그걸 안다시피 기어올라
통천(通天)하였는데...
둘쨋날의 산행은 고지(高地)의 강렬한 햇볕으로 피부를 그슬린다.
대원들 하나둘 지쳐간다. 하봉 지나 헬기장에서의 아침취사 이후
엄청나게 빠른(?) 속보(速步)로 진행을 하였기 때문이다.
제석봉(帝釋峰)에서 중간 휴식을 하기로 하고 이 양근님이 앞길을
헤쳐 나가신다.
제석(인드라 샤크라)천 봉우리의 준말이 제석봉이다.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미흡하시면 검색해 보시라!)
우리는 그 제석천이 되지 못하여 제석봉 아래 길가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제석봉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이고 풀밭이 있고 청량풍(淸凉風)이
불어와 주 영일님과 이 양근님은 제석천(帝釋天)인 양
청담(淸談)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이 양근님은 제석천의 지위를 내어주시고 칠선골로 칠선녀를
맞이 하러 하산하셨다.
엘 브루즈 해외원정 산행의 사전준비를 위하여 아쉬운 발걸음을
칠선골의 선녀들은 공손히 하산길을 보살펴 주었으리라!
장터목 대피소이다.
예나 지나 장터이다.
반가운 모습이 보인다.
어제 백무동으로 하산하신 한 영길님과 10기의 새내기 이 규성님,
박 용희님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영길산악회의 정기산행으로
다른 세분의 회원과 장터목에 올라 우리 대원들을 2시간 여 기다리셨단다.
끝까지 함께 동문들과 산행을 하지 못하시는 아쉬움을 하산 시
곡차 값으로 채식님에게 쥐어 주시고 헤어졌다.
한 모금의 특이한 칵테일로 대원들은 목을 축이고 연하봉(煙霞峰)으로
훠이훠이 걷는다.
지리 10경중의 하나인 연하봉이 우리의 둘째 날 비박지 이다.
오늘의 루트는 하루종일 구름 속을 걷고 구름 위를 걸었다.
천왕도 되어 보고 제석천도 되어 보고 이제 중생들을 구제했으니
연하(구름이 연기처럼 피어 오르는 곳)의 품 속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비박지 양 옆으로 선(先)캠브리아기(期)의 마그마타이트 질 편마암으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근사한 암벽이 솟아 있고 너른 풀밭이 지천이고
남쪽으로 연봉들은 운해(雲海)에 점점이 떠있는 풍광(風光)이
선경(仙境)이다.
이 곳을 찾으려고 조 남형님, 문 채식님, 강 경원님, 김 영호님,
한 수봉님은 20여분을 앞질러 뛰어가 제석천(帝釋天)이 되었다.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다.
취사 내내 우리 옆으로 구름은 피어올라 대원들을 감싸고 최 성필님은
이틀째 말없이 돼지불고기 구이에 묵묵이다.
최 용환님은 어서 와, 한 점 들라고 재촉하는데 조 남형님 조(4조)는
햄과 홍합과 꼴뚜기 탕으로 지지고 볶는다.
우리 조는 쌈장찌게와 깐 밥(누룽지밥)으로, 디저트로는 준비해 간
신선한 치즈를 뭉텅뭉텅 썰어 넣고 퐁듀(fondue:퐁뒤) 김밥으로 한다. 짭짤한 뒷 맛과 치즈의 절묘한 조화!
이 화중님은 4개를 먹었다. 산 머슴 김 영호님도 입맛에 맞나보다.
엘 브루즈 산행에서도 많이 드세요.
장 도희님이 틀림없이 가져갈 껄?
곡차시간인데 일용할 곡차가 바닥이 난다.
햄을 굽고 홍합 꼴뚜기탕은 널널 한데 산이슬 차는 수 병 만이 남았다.
장터목 샘물을 끓인다. 구절초 꽃송이를 한 웅큼 넣는다.
쌉싸름 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나는 구절초(九節草) 찻물이 완성되면
산이슬 한 병을 더하여 선주(仙酒)가 된다.
하얀 꽃잎이 가장자리를 빙 둘러 펴고 가운데는 샛노란 꽃술로
구절초가 사방으로 지천이다. 시에라 컵에 한 송이 띄어 마시는
은은한 구절초 주(酒)!
이제는 모두가 연하봉의 신선들이다.
초엿새 초승달은 연하봉에 서쪽으로 걸려있고 채식님은 그 봉우리에
걸터 앉아 달맞이를 한다. 그 모습이 춤추는 승냥이 같다.
우~우~!
칠선 골의 청풍(淸風)은 누운 풀잎에 서성이고 대원들은
청심(淸心)으로 변한다.
구절초 주(酒)도 천수(天壽)를 다할 즈음 마지막 남은 최 용환님의
꼬냑이 몇 방울씩,몇 방울씩 만수(萬壽)를 누리고 있다.
그 마지막 방울이 스러져가니 이제 마지막 바램은 최 성필님의
바랑(발낭,鉢囊)속 뿐 이다.
XO급 꼬냑이 통유리 병에 담겨 있다는 것을 연하봉의 문 채식님은
이미 냄새를 맡고 있었다.
최 성필님은 애원하는 대원들에게 출발일 이래 가장 긴 말씀을 한다.
"나가기 싫다!"
와아~! 다섯마디다! 성필님이 다섯 마디씩이나 이야기한다!
그 다섯 마디의 깊은 뜻은 다음 날 오전 모든 대원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 주었다.
채식님의 '녹슬은 해방구' 와 '아리랑'은 우리를 50여년 전,
지리의 슬픈 아니 미쳐 버린 광기(狂氣)에 대해 이야기한다.
(뭔 이야기냐면 책 이야기입니다!)
밤새도록 연하의 바람이 거세다.
최 종원님과 이 화중님은 밤새 누워서 잔디썰매를 탔고 우리는
녹녹치 않은 연하의 밤바람소리를 자장가로 삼았다.
셋째 날; 한신 계곡에 삼십 리(里)를 더하다.
5시에 기상하여 촛대봉으로 향한다.
세석 대피소에서 숙박한 많은 이들이 일찍부터 우리를 거슬러 오른다.
촛대봉이다.
지리 주능의 장관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이다.
최 성필님이 3일째에야 가장 긴 말씀을 한다.
"야! 이제서야 지리산이 보이는군!"
무려 열세마디 이다!
장 도희님이 그 소리에 감격했다.
'이 양반이 열 마디 이상도 하는구나!'
서쪽으로 영신봉->덕평봉->형제봉->영선봉->삼도봉->반야봉->노고단에
서남쪽으로 왕시루봉 까지 파노라마가 주아악 펼쳐진다.
멀리 노고단은 시시각각 구름에 숨었다 보였다 한다.
智異는 智異다!
촛대봉 정상에서 훤히 내려 보이는 세석 대피소까지 많은 안내 게시판들이 주변 지형에 맞게 예쁘게 펼쳐져 있다.
그 중 하나를 옮기면 지리산의 주능선은 선캠브리아기의
마그마타이트질의 편마암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선캠브리아기는 약 7억 년~10억 년 전이라고 하니 아주 오래된
암반층으로 지리의 주 능선을 형성하었다고 한다.
공룡이 살던 시기가 2억년 쯤 부터이고 지리산 주변에 즉 경남일대에
'공룡들의 알,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지리산은 공룡들의 산행지 였으리라.
그 날 이 화중님은 통천문 근처에서 공룡 알 화석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구워먹자고 우겼다.
믿거나 말거나!
요즘 산악인들의 대 선배는 공룡들이다!
억지인가?
촛대봉에서의 장관(壯觀)에 취해 용환님과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세석 대피소로 내려간다.
한 무리의 밝은 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세석에서 촛대봉으로 오르고 있다.
한국산악회 청소년 백두대간 팀의 대열이다.
반갑고 대견한 행렬들이다.
최근의 우리의 미래, 청소년들은 대부분 자연의 품속을 잃고
살지 않는가!
고행이라면 고행일 이 대간 산행을 걷는,오늘 아침의 이들은
참으로 대견스럽게 보인다.
참여 청소년들을 이끌어 주시는 강사님들(이번 지리산 청소년 대간 팀은 한국산악회 경남지부에서 진행했다.)은 위대해 보인다.
그 노고에 감사드리며...
이른 아침시간 이어서인지 장터목보다는 세석고원이 고즈넉하다.
콸콸 내어 뿜는 샘터 주위에 대원들이 조별로 취사중이다.
늦은 도착의 나를 위해 강 경원님은 짜파게티를 튀겨 내어온다.
양이 적을 테니 장 도희님은 누룽지를 더 끓이고, 한 수봉님/최 종원님은 먹다 남은(?) 꼴뚜기 호박 된장찌게를 그릇째 내어온다.
늘 그렇듯이 동문 산행은 항상 배가 터진다. 정(情)으로!
등반대장 문 채식님 조(최 용환님, 최 성필님)는 항상 취사가 제일 늦다.
동문들의 모든 면면을 챙겨 준 후에야 숟가락을 든다.
장 도희님의 더 끓인 누룽지와 강 경원님의 짜파게티 즉, 누룽지 짜장을 한 그릇 퍼서 채식님 조로 들고 간다.
'한 숟가락 들어 봐! 누룽지 짜장이라고 아실랑가?"
물끄러미 들여다 보더니, "야! 그게, 짜장이냐? 개밥이지!"
모두 낄낄낄!
'젠장 맛 만 좋구만 그래!'
퇴짜 맡고 돌아와 보니 장 도희님과 김 영호님이
엊저녁 구절초 차(茶)를 만든다.
한 그릇씩 퍼서 꽃송이 한 송이씩 넣어 권하니 모든 대원들이 반긴다.
채식님네 조는 두 그릇을 마셨다.
엔돌핀이 팍팍 솟는 즐거운 산행에 허리 근육통은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밀어내기 신호가 팍팍 온다. (요통이 심하면 변비가 심해진다. 사홉들이 주치의 말씀)
쭈그리고 앉으니 예쁜 창(窓)으로 세석 고원의 많은 야생화가 펼쳐진다.
꽃과 고원의 고즈넉함에 취하여 다리에 펌핑 났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한신(韓信)계곡으로 내려서는 첫 무렵에
소나무 그늘 아래 대원들 모두 널부러졌다. 배 좀 꺼지면 가자구!
소나무바람(송뢰,松뢰) 아래서 정 영호님이 이 구석 저 구석을 뒤지더니 마침내 산 이슬 마지막 병을 찾아내었다.
오! 위대한 산 이슬이여!
구(口)는 이십(이(二十)인데 이슬은 일(一)이라!
해서 정 영호님이 됫박질을 한다. 받는 이마다 손가락을 쪽쪽 빤다.
어미의 젓꼭지가 이보다 달콤할 수 있을까?
일을 이십으로 만드는데는 우리 동문들을 따를 이 있을까?
냉큼 최 용환님이 녹차 팩을 꺼내더니 세석의 그 콸콸한 물에 풀어
반 통 남은 이슬을 더하니 오 만명이 먹어도 남을 이슬곡차가 된다.
오 만명이 다 마셨는데 또 오 만명이 몰려온다.
모두들 난감해 하는데 최 성필님의 딱 두 마디!
'끌 끌..."
드디어 성필님의 XO 꼬냑이 영롱한 지리의 햇살을 받아 광채(光彩) 띤
자태를 드러낸다.
와~아~!
호박(琥珀)빛 정(情)이 절절이 대원들의 가슴에 흐른다.
산상수훈(山上垂訓, Sermon on the Mount) 이로다!
산상수훈에 감명 받은 모든 대원들이 선발대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후발대는 한신 계곡 가내소 어디쯤 풍광 좋은 목을 찾아 기다리기로
하고. 김 희현님과 최 용환님은 제일 먼저 선발 조에서 제외되었다.
"용환님이 학창 시절, 깊은 산 속에서 벗들과 훈련을 받다가 곡차가
떨어져 그 의협심(義俠心)이 발동하니 자원(自願)하여 곡차를 조달하러 밤길을 하산하였다.
잔뜩 짊어지고 깜깜한 산 길을 오르는데 무섭더라! 무서워서 홀짝!,
목말라서 홀짝! 하다보니 산 중턱에서 그 한 짐의 술동이를
모두 비웠다더라!
다시 하산해서 다시 지고 오르며 또 무서워서 홀짝! 갈증에 홀짝!
밤새도록 산기슭 주막과 산중턱을 오르내리다 다음날 이른 아침
어느 골짜기 물가에서
걱정이 되어 찾아 나선 벗들에게 발견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실화(實話)가 전해 온다."
김 희현님도 그와 비슷한 전해 오는 무용담이 있다는 걸, 우리 모든 대원들은 알고 있다.
해서 제비뽑기 할 것도 없이 MO대원, HA대원, KA대원, CH대원이
40리터 배낭 두 개를 훌훌 털어 메고 뛰어 내려간다.
(선발대가 누군지 알아 맞추는 이 번 산행에 참여 못한 동문에게는
푸짐한 상품을 드립니다. 동문캠프에서.)
뒤이어 나머지 대원들도 훠이훠이 하산을 한다.
늘 그렇지만 하산 길은 정말 아쉽다.
산이야 어디 가랴만 잠시 떠나가기가 정말 싫다.
급경사의 한신 계곡을 떠라 30여분 내려가니 세석고원 이래
첫 번째 샘이 솟는 지점에서 주 영일님이 발 길을 잡는다.
물 맛이 이제껏 지리의 등반로 중 제일이다.
그래서 한 잔 또 한 잔, 마구 마구 마신다.
물맛이야 별다르랴 마는, 주 영일님도 하산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늦춰 보려는 안타까운 마음일 게다.
조금 더 내려가니 한신 폭포가 쏴아 하니 나타난다.
이번엔 김 희현님이 하산의 안타까움을 폭포 상단에
결가부좌(結跏趺坐)로 달래고 있다.
사홉들이는 훌러덩 벗어 재끼고 떨어지는 폭포수에 몸을 맡긴다.
아쉽기는 김 덕자님, 길 현자님, 강 정순님도 매한가지다.
발을 벗고 목을 씻고 우리 후발대는 한동안을 머무른다.
젖은 몸이 바람에 마를 때까지 사탕을 내오고 건과일을 내오고
구름과자도 까먹고...
그렇게 한참을 늦추었다.
오층폭포 어디쯤부터 김 희현님과 정 영호님은 아쉬움을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진짜 물길산행을 시작한다.
한신 계곡은 아시다시피 계곡물 길을 따라 오르내리기가 수월치 않다.
아쉬움은 어려움도 이겨내나 보다.
가내소폭포 위 어디 쯤에 넓은 너럭바위의 비박지가 보인다.
이 곳에서 4인의 선발대를 기다리기로 한다.
또다시 풍덩풍덩 물 속에서 한 참을 지지고 볶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김 덕자님, 길 현자님, 강 정순님은 내가 지지고 볶는 물을 옆으로
빙 둘러 올라서 선녀 누나 욕탕을 만들었다.
몸이 얼얼해 질 즈음 나와서, 끼리끼리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는데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비야 오면 기다리는 대원들은 비와 같이 놀면 되지만 선발대로 하산한
4인의 대원들이 예정 시간보다 늦다.
이 곳에서 곡차 조달 창고까지는 왕복 삼십 리 길이고 비가 오면 길이
매우 미끄러울 텐데.
대원들도 모두 걱정하기 시작한다.
김 영호형에게 슬그머니 눈치를 보내니 얼른 알아차리고 나와 마중을
나가기로 한다.
오줌누러 가는 척 하며.
얼마를 내려가니 한 짐씩을 짊어진 한 수봉님, 강 경원님이 빗 속을
끙끙대며 오르고 있고
조 남형님, 문 채식님이 이미 지친 모습이나 반가운 눈빛으로 보인다.
강 경원님의 배낭은 김 영호님에게 냉큼 벗어 주면서 한 수봉님의
배낭은 얼른 벗어 주지를 않는다. 한 수봉님은 내가 천왕봉에서
한약 주스를 마시는 걸 기억하고 있음이라!
"아! 어서 벗어 줘! 나도 생색 좀 내게!"
그제야 마지못해 내어준다.
받아 멘 순간,
"윽! 이건 돌덩이다. 내 배낭의 1.5배 무게로다!"
김 영호님과 문 채식님은 뛰어 올라가고 나는 뒤질 새라 헉헉 좆는다.
너럭바위에 모여 풀어 보니 삽겹살 10근,산이슬 3되,사이다 1되,
콜라 1되,캔맥주 20통, 마늘, 상추, 이름 까먹은 향내나는 푸성귀,
깻잎, 깐 마늘 등등
장(場)을 벌려도 될 양(量)이다.
왜 이리 늦었냐고 하니 삽겹살이 꽝꽝 얼은 냉동육 밖에 없어서
고깃집 주인을 윽박질러 주인은 털털대는 오토바이 타고 마하 1.5의 속도로 큰 장(場)에 가서 사오느라 그렇단다.
정(情)이 지나쳐 모두들 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지지고 볶고 삶고 취하면 물 속으로 첨벙풍덩!
우리의 너럭바위는 비가 올 때, 비박지로는 부적합하다는 대장조의
결론으로 취사 후 하산하여 야영장에서 비박하기로 했다.
한신 계곡의 골짜기는 V자(字)형태에 급경사이어서 조금만 비가 내려도 급류로 변한다.
몇 해전 지리산, 그 계곡의 인명사고를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취사를 시작할 즈음에 주 영일님, 조 남형님, 문 채식님,
김 영호님은 50M 로프 두 동과 많은 확보 장비로 계곡을 건너는 탈출로를 만들고 있었다.
안전과 즐거움은 동격이니까!
가내소폭포를 지나고 첫 나들이 폭포를 지나니 어느새 백무동 야영장이다.
평평하고 넓은 캠프 사이트를 보니 특급호텔에 든 기분이다.
플라이 셋을 연결하고 너럭바위 위의 취흥(醉興)이 깰 새라 부지런히
지지고 볶는다.
빙 둘러앉아 지난 3일의 산행을 나누는데 한국산악회 경남지부장
신 재호님과 일행 3인이 바리바리 싸들고 우리의 캠프를 방문하신다.
한국산악회 본부에서 내려 왔으니 자기 구역에 든 손님은 자신들이
반겨야 한다며
소나무 곡차(송주,松酒) 몇 동과 무슨 동동주 몇 섬을 부린다.
청소년 백두대간을 진행하시느라 수고했으니 대접은 우리 동문이 하여야한다며 화합주를 양푼 가득히 만들어 돌린다.
알파인 스타일이 경남지부 회원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모양이다.
신 지부장님에서 계속 정차 위반을 하더니 금방 동문들의 분위기에
휩싸여 말씀이 많아진다. 함께 온 3인의 경남지부 회원들은 질렸는 지
원래 말씀이 적으신 건 지 조용히 앉아만 계신다.
신 지부장님과 주 영일님, 최 종원님이 좌중을 리드하고 나도 점점
까물까물해 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을 보니 별은 총총 이고 산중한담은 그칠 줄 모른다.
급기야 조 남형님은 오늘의 메뉴를 재확인 작업이 한 수봉님의 집도(執刀)하에 있었고 몇몇 대원은 상가(商街)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흜날: 정(情)이란 무엇일까?
어김없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계곡 물텀벙 산행을 준비한다.
장 도희님, 조 남형님, 문 채식님, 김 영호님, 강 경원님, 최 성필님, 한 수봉님, 정 영호님, 한 만호님은 한신계곡의 계곡에서 물길따라
아쉬운 마무리를 한다.
독사(毒蛇) 한 마리를 발로 용감하게 밟아서 포획한 장 도희님은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이
한 수봉님과 문 채식님, 김 영호님의 실랑이가 있었다.
놔 주자, 삶아 먹자!
정작 발로 밟아 잡은 장 도희님은 하얗게 질려서 가만 있는데...
결국 보내줬지. 이십 명이 삶아 먹기엔 너무 양이 적으니깐.
그 사이 캠프사이트에선 최 종원님의 스포츠 의학 강의 시간이다.
김 덕자님은 쉴새없이 보리차를 나르고 최 선생의 강의는 침을 튀긴다.
요지는 '응급처치약품의 시연(試演)과 체 지방질이 다 나쁜 것 만은
아니다.'라는 야그다.
최 선생! 난 아직도 반 밖에 모르겄다!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와 계곡을 10여분 거슬러 오르니 아주 그럴듯한 넓은 여울을 발견하곤 그대로 뛰어들어 한참을 첨벙거렸다.
취기도 가시고 지형도 찬찬히 살펴보고 지난 3일을 되돌아 보기도 한다.
그렇게 홀로 유유자적을 즐기고 오니 물텀벙 산행팀이 돌아왔고
캠프정리에 느긋이 움직이고 있다.
아주 맛있는 닭 볶음탕과 대원들의 환한 미소로 가득채운 버스는
서울로 향한다.
잠시의 작별을 아쉬워 하는 지리산은 가벼운 빗방울로 우리 대원들을
배웅한다.
오후6시경 양재역 부근 한길 가에 우산을 받쳐들고 1시간 여를
기다리신 이 양근회장님이 우리를 맞아주신다.
마지막 순간까지 동문들을 챙겨 주시는 회장님!
근처의 식당에서 아주 아주 맛있는 주먹만한 만두와 보쌈과 칼국수와
냉면과 또 이슬+맥주!
전철역으로 가는 길목에 방앗간이 한 채 있다.
참새들이 그냥 지나치랴! 그래서 또 한 쪼끼!
문 채식님이 묻는다.
"형! 어땠어?"
"좋았지! 아주 엄청나게!"
"형은 참 정(情)이 많은 사람이야!"
"그러니깐 정씨(氏)지!'
하하하!
채식님! 내가 정(情)이 많은 건 우리 동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우!
첫댓글 형!!! 멋진 글 고맙구요.. 정이 넘치는 추억들 오래 오래 간직합시다...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