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문화유적기행]
전주이씨임영대군파모전종친회경남양산재실을 들러보며
세종대왕 4자 임영대군
전주이씨임영대군파모전종친회경남양산재실
2014.11월 회사 업무차 지방에 가면서 보게된 전주이씨임영대군파모전종친회 재실을 보게 되었다.
전통목조건축으로 지어진 재실, 안내문 비문을 보면서 먼조상의 우산을 보는 듯하였다.






전주이씨
임영대군파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 는 세종대왕의 제 4남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 이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평생을 청백하게 살고 절개를 지켰으므로 정(貞),
진실하고 대쪽 같다 하여 간(簡)을 쓴 것이다.
그는
성품이 조용하고 인자하며 부귀를 탐하지 않았으며, 학문을 닦는 데 힘썼다. 그는 또 사물제작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세종대왕은 임영대군에게
화포제작의 감독을 명하기도 했다.
단종의
선위(禪位) 전후 수양대군은 여러 아우들의 동정을 살피게 되었다. 이를 눈치 챈 임영대군은 경기도 광주 의곡, 지금의 의왕시 내손동
모락산(慕洛山)으로 은신한다. 그가 단종이 유배당한 영월을 바라보고 절을 했다고 하여 산 이름을 `낙양을 사모하는 산'이란 뜻으로 모락산이라고
불렀다. 망배(望拜)하던 바위는 `사인암(斯仁巖)', 주변 마을은 `의곡동(義谷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1469년(예종
1) 50세를 일기로 타계한 임영대군은 자손들에게 유훈을 남겼다. 첫째는 `왕자, 왕손 간에 분쟁을 일으키지 말 것', 둘째는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였다. 그는 또 `나는 본디 안평 형님과 금성 아우와 함께 절의에 죽고자 하였다' 고 했다.
임영대군은
오산군 주(澍), 구성군 준(浚), 정양군 순(淳), 팔계군 정(淨), 환성군 징(澄), 영양군 함(涵), 단계부정 인(潾), 윤산군 탁(濯),
옥천군 옥(沃), 중모현주(中牟縣主), 청하현주(淸河縣主) 등 9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이 적자를 두지 못했기 때문에 정양군에게 승통되었다.
정양군은
봉산군 돈(敦), 유산도정 민(敏), 황원정 부(敷), 덕림군 자(孜), 의산수 창(敞), 영성수 경(敬) 등 6남이 있다. 18대 종손에
이르기까지 550여 년간 임영대군 묘에서 기신제와 사계절 절사를 올리고 있다.
<출처참고자료>
* http://blog.daum.net/12501436/14155155
* http://blog.naver.com/hannoverz/220203764820
* http://blog.naver.com/yesuw21/220144533616
* http://blog.daum.net/yacho2011/1920
* http://blog.naver.com/eelhs/13004012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