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02 마 6:9; 사 63:16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찬송: 363, 312장
기도의 모범인 주기도문
성도로서 마땅히 기도해야 할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선포되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또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주기도문이 가지고 있는 기본 핵심 내용이다. 따라서 주기도문을 바르게 이해하면 우리가 우리의 열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기도해야 할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함을 배울 수 있으며, 우리의 기도는 중언부언하지 않는 바른 기도가 될 것이다.
기도의 기초와 대상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두 마디 외침으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두 가지가 언급되고 있는데, 하나는 “우리 아버지”이고, 또 하나는 “하늘에 계신” 이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기도를 시작할 때 이러한 고백으로 시작하도록 하셨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있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기도에 대한 기초와 그 대상에 대한 것이다.
기도할 때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우리 아버지”에게 한다. 왜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을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는가?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 왕, 그리고 남편이다. 이 모든 호칭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비유를 통해 우리와 관계를 맺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이 어떤 분인가를 표현하여 주셨으므로 우리가 그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유를 절대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실 때 이렇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대접하고 계신다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정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버지인가? 먼저 왕을 생각해 보자. 왕은 하나님께서 주권과 권능과 공의와 사랑으로 통치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의 주인 되심을 스스로 선포하심으로 우리가 그분 앞에 굴복하여 순종하는 자리에 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당신을 왕으로 선언하시는 것이다.
또 하나님은 당신을 남편으로 알리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남편으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이는 어떤 의미인가? 남편은 한 여자와 결혼한 남자를 가리켜 남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 서약을 맺고 한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수행하도록 세우심을 입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남편이 되신다는 것은 당신께서 친히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우리로 당신의 아내가 되도록, 즉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를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고 보존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만 이 사명을 받았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창 1:27-28의 문화명령을 보면 알 수 있다.
창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예가 하나님께 이 사명을 받아 태어남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의 관계 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창조세계의 보존을 위하여 힘써야 하는 것이요, 여기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사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아내로서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떠한가? 아버지는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 되심을 의미한다. 아버지로부터 자녀가 세움을 받는다. 사 63:16b이 이를 말한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다고 선지자가 선언한다. 이 말씀은 옛날부터, 즉 태초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조성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예수께서 우리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의 관계로부터 나온다. 성부 하나님에게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 독생자가 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버지, 아들, 성령’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부름이 남성적이기 때문에 중성적인 표현으로 ‘창조자, 구원자, 거룩하게 하는 이’라고 부르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성경의 계시를 인본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것일 뿐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성경에 계시된 대로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당신을 계시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삼위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신 것은 우리의 마음에 경외감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아버지를 향한 공경심과 신뢰를 갖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도록 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은혜의 자리에 들어와 구원 받은 자가 되었기에 예수님을 의지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하면, “우리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왜 “우리”인가, ‘내’가 아니고?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고, 예수를 의지하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성도는 결코 혼자 동떨어진 채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함께 부름을 받아 나와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는 것이고, 그분의 구속하심을 찬양하는 것이고, 그분에게 우리의 준비한 예물을 헌상하는 것이고, 우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몸의 공통되는 것을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마땅한 것이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 된다. 결코 나 혼자만 생각하는 것은 상달되는 기도가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 앞에 “하늘에 계신”을 덧붙이고 있다. 이 설명을 덧붙이신 이유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크시고, 강하시고, 선하신 분이라는 의미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아시며, 이해하시며, 우리를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 아버지”가 내재성을 강조한다면, “하늘에 계신”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이는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능력이 어떠한가를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달라서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우리의 모든 간구를 해결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 계신”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하나님은 인간을 초월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타락한 자리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다만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심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것이며, 그분의 ‘함께 하심’과 '함께 능력을 행하심’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처음 기도하러 들어갈 때 가져야 할 마음이다.
우리는 이 예를 누가복음 15장에서 볼 수 있다. 보통 탕자의 비유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비유는 두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비유이다. 두 아들은 모두 아버지를 배신하여 떠났다. 아니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고 떠나버렸지만 아버지는 한없는 자비를 베푸심으로 당신의 두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 노릇을 해주신다는 진리를 가르쳐준다. 어느 누가 나 같은 것을 위하여 아버지 노릇을 해주시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약속하신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할 때 아버지의 이 약속을 의지하여 우리의 기도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마 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바로 이 분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이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요구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그분의 약속을 따라 그분 앞에 나아갈 때 우리의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요구를 아시며 이미 응답하실 것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