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완구사(이주환, 62세)
1. 1954년 아버지때 시작하여 나중에 형님이 몇 년 동안 장사하다가 1978년부터 이어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년 2014년이 개업 60주년 되는 해이다. 중앙시장내에서 2~3번이전 후 현재의 장소에 자리 잡게 되었다. 초등 3학년때부터 가게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가게의 반이 살림집이었고 이층도 일부는 방이고 일부는 가게로 썼다. 11살 때 즉 4학년때 도매시장에 큰 화재가 있었다. 다행히 완구점은 무사하였다. 그러나 30년뒤 또 큰 불이 나서 기왓장이 튀어 날아갈 정도였다. 70년대 세개이던 완구점이 몇년전 두개였다가 지금은 오직 한개뿐이다. 현재는 도매와 소매를 같이하고 있다. 그 전엔 완구 상권이 굉장히 커서 광주 목포 수원까지 거래를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땐 완구 생산 공장이 부산에 많이 있어서 서울 못지 않게 대전 상권이 컸다고 본다. 고속도로 개통 후 많이 위축 되었고 현재는 공장도 서울 근교에 많이 있다. 큰 메이커 회사들의 개발과 생산은 한국에서 이루어지나 대부분 70%~80% 제품이 중국산이다.
2. 아버지는 원래 대전역에 근무를 하였는데 당시 역장 수입도 그리 만족할만한 것이 아님을 보았고 당시 어려운 환경에 양키시장 사람들의 부산 심부름을 많이 해 주고 수고비를 받기도 하였다. 그런 경험으로 장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완구와 맛과자, 뽑기, 풍선 등도 같이 하였고 시장의 화재로 절망하였으나 제품 생산자가 신용만으로 도와주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더욱 장사가 잘 되어 90년대초까지 시내 장난감 백화점도 모두 거래하였다. 생산자와 도매상, 소매상, 소비자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스템이었으나 지금은 도매 기능이 많이 줄었다. 수입 자유화로 도매상이 기능이 축소되고 따라서 생산자도 어렵게 되었다. 요즘은 주로 아파트상가 문구완구점과 거래를 하고 있고 학교 앞 문구점은 많이 없어졌다. 학교에서 준비물을 모두 구비하기 때문이다. 안영 하나로마트에도 납품하고 금산, 옥천, 청산 등지에서 필요 물품을 방문이나 택배로 구매해 간다. 옛날에는 외상 거래도 많이 하였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현재 500~600가지정도의 완구를 갖추고 있다.
2000년~2001년쯤 옛장난감 수집붐이 일어나 장난감 박물관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구입 문의가 많았다. 인기 있는 품목 중 하나인 우레매나 태권브이 같은 것은 8천원짜리가 작년 10월쯤 40만원에 거래되기도 하였다. 그런것을 모르던 시절엔 창고 물품 정리때 그냥 주기도 하고 버린 것도 많았다. 옮기는 것보다 폐기물로 처리하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다. 레고 종류중에는 10만원 하던 것이 100만원 하는 것도 있다. 지금도 생산 되고 있는 크로바미니카 중에서 단종된 것은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70년대 생산된 한국산을 많이 찾는다. 현재 호스돈 여고 아래쪽에 가면 옛 완구 까페도 있다.
롯데껌 대리점도 하고 뽑기 과자도 할때 시위생과에서 한 박스를 수거해 가기에 한 박스(30~40갑)에 2~3개값이 남는데 너무 많은 양을 가져 간다고 항의했더니 그날 바로 뉴스에 불량식품으로 보도 되었다. 그래서 과자를 없앴다. 그때부터 장사가 위축되기 시작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완구상과 교재상과 맛과자 전문으로 분리되었다. 그때가 80년대중반쯤부터인 것 같다. 분리후 판매가 위축되어 갈 때 IMF로 생산자가 어려워졌고 재고 덤핑 물건이 많아져 유통질서가 흐려졌다. 또한 수입자유화 이후 짝퉁물건도 다수 등장하였다. 인기 제품일수록 불량복제품은 많다. 옛날엔 중앙시장에만 완구도매상이 있어 어린이 날 전날은 밤을 세운적도 있다. 어린이 날 공원에서 장사하기 위한 사람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그후 1세까진 유아 전문 매장이 생기고 6세이후엔 전자게임이 성행하면서 완구점은 더욱 위축되었다.
요즘 유행 완구로는 6세쯤부터는 레고 블록 닌자시리즈, 키마시리즈가 있고 2~3세는 뽀로로, 타요시리즈, 폴리시리즈 등이 인기 있는 품목이다. 요즘은 TV어린이 전용 채널이 있어 신제품이 너무 많고 유행기간도 짧아졌다. 파워레인저 시리즈, 토봇 변신 로봇 그리고 여자 아이들은 시크릿 쥬쥬 미미의 집등이 있다(미미의 집은 과거에 비해 부피가 작아지면서 가격 변동은 적게 나타나고 있다.) TV광고 제품은 무조건 비싸다고 할수 있다. 어떤 부모들은 TV도 안보고 교육 교재만 사기도 하는데 다양한 장난감으로 놀게 해야 한다고 본다. 이 곳에는 같은 종류의 장난감을 각자의 경제 사정에 맞게 고를 수 있다. 형편에 맞게 사면 된다고 본다. 바퀴달린 말이 처음에 2500원~3000원이었는데 현재는 2만5천원~ 3만원정도로 가격 상승되었다.
아파트 상가보다 30%저렴한 가격으로 조부모들이 손자손녀 데리고 오신다. 대형마트보단 10~15%저렴하다. 옛날엔 추석, 구정때가 제일 바빴다. 문도 열기전에 와서 기다리고 보름전부터 물건 확보 위해 상인들이 애썼다. 신정 구정이 갈라지면서 추석때가 좋았다. 요즘은 크리스마스가 가장 바쁜날이고 그다음이 어린이날이다.
요즘 대형마트에서 인기상품 전단 작업하여 미끼상품으로 손님을 끌고 있으나 실제 제고 상품이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인터넷 상인들이 일찌감치 전부 싹쓸이 구입 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또 외국에 직접구매도 하는데 인기 제품 닌자를 예로 들면 우리나라에서 10만원이면 외국 인터넷에 7만원인데 항공택배비가 10만원이어서 여기서 구매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구매하는 사람도 있었다.
3. 아버지 친구분들이 항상 아버지 대를 이어 잘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어도 잘 하려고 하고 있다. 젊었을땐 대를 이어줄 생각도 있었으나 지금은 부인이 그것을 굉장히 싫어 한다. 전엔 부인이 가게를 많이 도와 주었고 많을때는 13명까지 있던 직원들 숙식도 직접 제공해 주고 했었다. 몸이 아프고 나서는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하신 장인어른이 여러해 동안 대신 봐 주셨는데 나름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손님과 다투는 경우도 있었다. 장인어른은 교사 시절엔 장사하는 것이 부러웠으나 직접해보니 무엇보다 제일 어렵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중에는 장사를 할려면 오장육부를 모두 버리라 하시기도 하셨다. 앞으로 대를 이어줄까는 갈등이 많다.
장사는 부인이 나와야 더 잘 할 수 있다. 잘되는 가게들은 거의가 부인과 같이 한다.
4. 예전엔 자전거, 리어카 이용한 배달도 했었다. 리어카꾼 전용지역에서 박스가 무너지면서 자전거가 아기를 눌러 인공호흡 후 입원 시킨적이 있다. 그때 여러번 문병을 갔었는데 처음엔 과자를 사가지고 가다가 나중에 장난감을 사준 후 아이가 나은적이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예전엔 차량을 이용하는 판매상도 많았으나 요즘은 완구의 부피가 커지고 마진도 적어 차량에 싣고 다니면서 판매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5. 아케이트 설치 후 손님도 늘고 깔끔해지고 가격도 싸니 손님이 조금 늘었다.
예전엔 시내 백화점에도 모두 물품이 들어 갔으나 다른것에 비해 수수료를 적게 책정했음에도 서로 마진이 맞지 않아서 지금은 모두 철수하였다. 내년이 개업 60주년이다. 전국에서 현재 유지하고 있는 완구전문점으론 가장 오래되었는데 어떤식으로 60주년을 맞을까 생각중이다.
젊은층의 시장방문을 희망한다. 전주 남부 시장과 같이 빈점포를 행정적 차원에서 지원하여 저렴한 임대료로 젊은 창업자의 입점을 유도해야한다. 그래야만 젊은 취향이 반영된 점포들의 증가를 가져오고 젊은 세대들의 발길을 시장으로 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의 길이 아닌가 한다. 정부차원의 시장 활성화 노력도 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절실한 희망은 대전역전길에의 주차 가능 방안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전에 어떤 손님이 주차위반딱지 한번 받곤 2년동안 중앙시장에 오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리고 사람들의 문 앞에 주차하고자하는 고집도 개선 되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