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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를 구원할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어느 특정 단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우리 구주 예수님께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감사의 대상도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의 목적되시는 분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복음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도 극복하셨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 뿐만 아니라 오늘 말씀에 있는 것처럼 첫째, 예수님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시는 분이십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오늘 요한계시록 1장 4절에 있는 것처럼,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인간의 하나님체험이 많이 나옵니다. 그중에 아주 생생하게 하나님을 체험한 사건중에 하나가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체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죠?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땅에서 구원해 내라!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이 말씀은 사역형으로 나는 과거에도 스스로 있었고, 현재에도 스스로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입니다. 어느 누구 어떤 피조물, 어떤 영적 존재에 의해서도 움직여 질 수 없는 스스로 계신 분이 바로 야훼 하나님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변함없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우리는 끝까지 믿고 따라야 할 줄로 믿습니다.
복음의 개혁은 없는 것입니다. 종교의 개혁은 있어도 복음의 개혁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은 언제 어디서나 어느 누구가 전한다 하여도 어느 순간 바뀌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이렇게 우리가 함께 외우고 있는 사도신경의 내용은 천지 만물이 바뀌어져도 변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처해있는 시대적 상황이 변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복음의 내용들입니다. 설사 여러 가지 현상적인 것들이 불합리하다고 할찌라도 복음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변함없는 복음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끝까지 붙잡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예수그리스도는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 되십니다.
오늘 4절에 보면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라는 말씀이 나오는 데 여기서 일곱영이 무엇을 가리키는 가? 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먼저 일곱영은 성령을 가리킨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입니다. 혹자는 ‘일곱 영’이 천사를 일컫는다고 주장합니다만 대부분 완전한 성령을 가르키는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성령을 일곱영으로 표현한 것은 성령의 속성과 권능이 완전함을 뜻합니다. 그 외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셨다”(5a)고 합니다. 예수님은 충성된 증인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과 사역을 친히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까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시킨 하나님의 충성된 증인이십니다.
오늘 5절에 충성된 증인이 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박해받는 교회와 교인들의 위로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셨다”(5절b)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사실은 요한의 수신자들에게 큰 용기를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성으로 자기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셔서 물 한방울 피 한방울 남김없이 흘리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하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셔서 그를 뒤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여기 5절에 ‘먼저 나셨다’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토토코스’(πρωτὁτοκοζ)입니다. 이 말은 바울의 경우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나 통치자의 근원의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첫 열매가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죽은 자들에 대하여 주권을 가지고 계심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5b)
여기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다는 말은 ‘땅의 왕들의 통치자가’ 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왕적 직분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위에 뛰어나시며 모든 권세자들을 지배하시는 주권적 통치자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권력을 오른손에 쥐고 계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13장 1 절에 보면 “모든 권세는 주께로부터 오기 때문에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골로새서 2장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어떤 권세나 세력보다 더 높은 분이십니다.”(공동번역 )
이렇게 예수님은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땅 위의 권력보다도 크십니다. 하늘의 어떤 권세나 세력보다 더 높으십니다.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자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요한계시록 1장 5절에 보니까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5절에 말하는 은혜와 평강은 단지 인간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지는 풍요로운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와 평강은 샬롬의 인사와는 다릅니다. 샬롬은 하나님의 종적이 복이 강조된다면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의 복이 종적으로 횡적으로 임할 것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평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어느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1세기 크리스챤 뿐만 아니라 그후에 수많은 크리스챤들 가고 오는 수세기의 수많은 사람들속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하나님의 은혜는 끝이 없다고 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한 은혜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한 번 주시고 더 이상 주시지 않는 은혜가 아니라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은혜라고 합니다.
한 번 주실 때도 아주 충만하게 채워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마다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은혜가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뿐 만 아니라 평강을 주십니다. 오늘 5절 중반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넷째, 예수님은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5b)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은혜 뿐 만 아니라 평강을 구했습니다.
1세기 크리스챤들은 정말 앞이 캄캄한 가운데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도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력에 힘입어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쫒고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한 은총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에 평강은 에이레네의 평강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를 다 씻어주사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평강을 말합니다.
오늘 1세기 크리스챤들에게 임한 큰 권능의 평강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5c)
오늘 5절 하반절에 보면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 밧모섬에서 배고픔과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끊임없는 하나님의 보호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천년전 골고다 언덕 십자가상에서 단 한번 죽으심으로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구원의 은혜로 완벽하게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 5절 하반절의 말씀대로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습니다.옆에 분에게 말씀해 주십시다.
“주께서 보혈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한 주께서 죄짐을 걸머지고 십자가상에서 고통받으셨습니다.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죄의 빚은 다 갚아졌습니다.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빚을 지고 있는 사람에게 “네 빚은 다 탕감되었다”는 말이 얼마나 엄청난 소식인 줄 압니까?
자신의 재산을 팔아 자식의 빚을 갚으신 아버지의 심정을 아십니까? 어느 분이 그때의 아버지의 심정을 글로 써 놓았습니다.
“그날 아버님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으시고 눈물만 뚝뚝 흘리셨습니다. 그때까지 아버님에 대해서 원망도 많이 하고 불평도 많이 했던 저였지만,결국 빚을 다 갚았다는 사실 때문에 날아갈 것같이 홀가분했습니다.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빚에서 해방된 다음부터 삶을 사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거의 이십년 만에 저는 아버님의 얼굴색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참으로 아버짐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내가 느끼는 구원의 기쁨도 크지만 양잡고 소잡고 큰 잔치를 벌이는 하나님의 기쁨은 더욱 더 큰 줄로 믿습니다. 죄 사함 받은 기쁨이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뻐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할렐루야!
여섯째, 예수님은 6절에 보면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6)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입니다.
6절입니다.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라고 합니다.
여기 6절 전반절에 있는 말씀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감당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도 예수님의 사역의 일들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일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구원의 사역은 전부다 하나님의 섭리중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운데 우리들을 선택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셨고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대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셨는 데 왕, 선지자,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땅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병든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수많은 제자들, 때로는 이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시며 가르치시는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악한 마귀 사탄의 권세를 다 물리치셨습니다. 그 뿐아니라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보헤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 큰 사역을 지금 이 순간에도 행하시고 계신데 이 놀라운 예수님의 사역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세례요한은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막1:7),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으셨습니다. 본문에 나온 ‘나라와 제사장’ 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는 ‘나라 곧 제사장들’ 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나라에서 심음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시고 광야의 길과 홍해 바다와 요단강을 건너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요한은 주님의 피 값으로 산 1세기 크리스챤들을 ‘나라와 제사장’ 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1세기 크리스챤들은 수 많은 고난과 고초를 받았습니다. 이같은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단어가 7절에 나옵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는 데 그를 찌른 자들도 본다고 했습니다. 그를 찌른 자들은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을 말합니다.
성경에 찌른 자들도 본다는 표현은 세 번 나옵니다. 스가랴서와 요한복음과 오늘 요한 계시록에 나옵니다.
스가랴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요한복음 19: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예수님이 2012년전에 이 땅에 오실 때는 구원의 주로 오셨습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이 되는 나이인 30세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신일이 누가복음 4장 18-19절에 나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왜 이 말씀을 드리냐면 예수님이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제자들과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맨 처음 회당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구약성경을 펴셔서 읽으신 본문이 바로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19절입니다.
많은 구약성경을 읽으신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길게 하셨는 지 짧게 하셨는지는 모릅니다. 때로는 몇칠동안도 하셨으니까? 그렇지만 맨 서두에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4:21)
그때부터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마귀 사탄에 억눌리고, 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다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유함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들은 주로 섬기시는 일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내가 섬김을 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막 10:45)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똑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나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주 철저히 섬기러 이땅에 오셨고 끝까지 섬기기 위해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다릅니다. 섬기러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나라의 제사장 삼으신 주님은 이제 왕권을 가지고 오십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로 세상 모든 나라와 백성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양과 염소를 나누고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고 곡식과 가라지를 나눌 것입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세상에서 믿음으로 이기는 자를 찾아내 영원한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재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수없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재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한 300번 나온다고 합니다. 예수 재림에 관한 말씀이 바울 서신서 안에만 50번 이상 나옵니다.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재림의 주를 어떤 인물로 생각합니다. 재림의 주가 어느 개인의 이름으로 오는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림의 주는 문선명이나 이만희나 박대선이나 정명석이나 이런 모습으로 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십시요!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1장 7절에 보면,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7a)
일곱째, 앞으로 예수님은 구름타고 오십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는 임마누엘로 오십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개정)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새번역)
그러나 예수 메시아 초림부터 기원년부터, 그렇니까? 지금으로부터 2012년전부터 지금부터 사람의 몸에서 난자는 무슨 재림의 주의 성격을 붙일 수 없습니다.
메시야의 성격이나 구원의 완성자의 성격, 참 목자, 다시말해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님에게 적용시킬 만한 말씀들을 아예 적용시킬 수가 없습니다.
구세주 예수, 재림 주 예수는 예수 밖에 없습니다. 2012년전 이후 태어난 자가 내가 재림예수다 아무리 주장해도 그는 적 그리스도, 악한 마귀사탄입니다.
미혹시키는 자입니다. 사람의 몸으로 온 자는 재림의 주, 세상에 구원을 심겨줄 자가 못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만약 성경을 인용해서 그것이 아니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초림의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어느 특정 개인한테 잘못 적용시킨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9절에서 11절에 보면 분명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처럼 그대로 오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당시의 살아계심을 직접 나타내 보이셨는데,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수많은 성도들이 보는 중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보는 중에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성도들이 하늘을 쳐다보는데, 얼마나 자세히 보았겠습니까?
그 때에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성도들에게 나타나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0-11)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영화의 필름을 거꾸로 상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로 가시는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오신다고 했습니다.
어느 누구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아 그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들의 말이야? 성경 어느곳에 보니까? 이렇게도 나왔어!”
그러나 예수님이 분명히 말세와 관한 말씀을 하실 때와 또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에도 힘주어 재림때에 일어날 일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 후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가복음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누가복음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예수님이 말세에 대해 가르쳐 주실 때
마태복음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요! 주님께서 이런 예언의 말씀을 또 언제하신지 아십니까? 대 제사장 가야바 앞에서 심문을 받으면서도 하셨습니다. 대 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잡아놓고 결정적이고 최종적으로 물었습니다.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막14:61) 그 때 사실 그대로를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태복음에는 대 제사장으로 나오는 데 이렇게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26:63)
마태복음 26: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재림의 때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승천하신 그대로 하늘의 구름 타시고 오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우리 주님의 초림이후 재림 사이에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메시야를 지금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주를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난 자가 메시야 구원의 주 재림의 주 될 수 없습니다. 그런말을 하는 자는 분명히 이단입니다. 절대로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성도들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때에 살고 있다.”
우리 예수님은 이러한 성도들의 삶을 정의하면서 "이 세상"과 "오는 세상" 을 구분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혹은 "금세(현세)"와 "내세" 를 구분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에베소서 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마가복음 10: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누가복음 18: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오스카 쿨만도 비슷한 말을 했는 데 "그리스도인은 D-Day와 V-Day에서 살고 있다. D-Day는 그리스도의 초림이었다. 그 때에 원수들이 결정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V-Day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며, 그 때에 원수들은 최종적으로 완전히 항복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 주님은 영으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임마누엘 여자의 몸에서 난자로써 오시지 않습니다. 승천하셨던 그 모습으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우리 주님은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5절)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물과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 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두 번도 아닌 단 한번에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셨습니다.
둘째, 우리 주님은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부활하셨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셨다“(5절)
5절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셨다" 는 말씀은 그리스도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우리 주님은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
7절보니까?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멘 진실로 그렇다는 말씀을 넣고요!
스티븐 트레비스 박사는 End of Story라는 책, 종말 종말 종말이라고 번역된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은 현실이다. 죽음은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죽음은 정복되었다. 이것이 기독교의 확신이다."
우리 예수님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셨고, 하늘로 올리워가셨습니다. 이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어린 양 되시는 사랑의 예수님이 아니라, 역사의 심판주로 오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나타내는 용어 중에 “파루시아(parousia,신약 24회 나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파루시아라는 말은 한 나라의 왕이 왕권을 가지고 자기 나라의 임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입니다. 왕이 행차하시고 자기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오는 것을 파루시아라고 했습니다. 1세기 크리스찬들은 그렇게 주님의 재림의 때를 고대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그런 말씀아십니까?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리라"(고후5:10)
모토(Motto)라는 신학자는 말합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어제 죽으셨고, 오늘 아침 일어나셨으며, 내일 다시 오실 것처럼 살자"고 했습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어제 죽으셨으며, 오늘 아침 일어나셔서 부활하셨고, 내일 다시 오실 분으로 믿고 살자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이런 어제, 오늘, 내일의 사건으로, 주님에 대한 살아 있는 신앙을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앞에 무한한 감사, 넘치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단들은 감사의 조건이 없다고 합니다. 절대 예수님에 대한 감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른 교주에게 복종하고 따르는 길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심판의 길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오르지 예수님을 자랑하고 오르지 예수님만을 전하며 예수님께만 영광 올려드리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