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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7년(2013) 향불교 송년회
서울 성북 망월산 정각사(望月山 正覺寺)에 가다 ②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도량에 들어선 염화님과 정파님
이제 정각사에 들어섰으니 정각사에 대하여 알아볼 차례입니다. 그러나 정각사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대략적이나마 소개해 봅니다.
정각사는 서울 성북구 삼선동1가 277-6번지에 소재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입니다. 정각사는 1958년 광우(光雨) 스님이 ‘한국불교를 세계불교의 텃밭으로 가꾼다는 원을 세운 뒤, 단층 개인집을 사들여 포교당으로 세운 게 효시입니다. 당시 전국을 통틀어 변변한 포교당이라곤 손꼽을 정도였으니 이 당당한 ‘대한민국 포교당 제1호’에는 법회 때마다 많은 지성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정각사에는 유형문화재 제223호 ‘목(木) 아미타불좌상’과 문화재자료 35호 ‘석가모니 불화’가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오늘의 대중공양
법회에는 600~800명이 모인다고 합니다. 오늘은 '아픈 어린이 돕기 작은 사랑 12월'이 펼쳐지고 '더 솔리스트'의 아카펠라 공연이 펼쳐지므로 800여 명은 넘으리라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 많은 대중을 위하여 대중공양을 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감사드립니다.
법당으로 가는 길 1
법당으로 가는 길 2
일주문 옆 밑에 자리한 항아리들이 정결하게 보입니다.
전각과 전각사이를 오갈 때 비를 안 맞게 하려는 유리지붕이 많더군요.
언제나 푸른 대나무. 대나무를 심은 까닭은?
일주문을 오를 때의 빨간 열매는 작은사랑을 상징하고 이나무는 항상 그런 마음을 실천하 겠다는 굳은 의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한쪽 길 모퉁이에 있는 돌확
축대 밑에 모셔진 석조관세음보살좌상. 결가부좌하시고 선정에 드신 모습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뵙고 그 옆에 난 계단을 오르면 천수각(千手閣)과 대웅전이 나타납니다.
대웅전 왼편에 자리한 천수각(千手閣)
천수각은 종무실로 사용하는데 마루가 있어 보기가 좋네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네요.
천수각(千手閣) 편액
종무실 안내판
정각사의 주건물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은 정면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정각사에서 가장 전통적인 건물입 니다. ^^ 이 건물이 건축된 것에 대한 정보가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정각사 대웅전 삼존불
우보처 지장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관세음보살 -염화님 사진-
제가 찍은 사진은 좀 어두워서 염화님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 삼존상을 뵙고 있노라니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요즘은 부처님의 좌우 보처보살로 문수ㆍ보현보살님보다 관 음ㆍ지장보살님을 선호하는 것이 대세인 줄은 알겠는데 대좌(臺座)에서 발을 한 쪽씩 내려 놓은 반가좌상(半跏坐像)입니다. 보처상으로 좌상이나 입상이 보편적인데 반가좌상은 드 뭅니다. 청량사 유리보전에는 좌보처 지장보살님이 반가좌상을 하고 계심을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뒤의 후불탱화는 아주 간결하네요. 이른바 부처님을 좌우로 협시(脇侍)한 문수ㆍ보현보살 님과 관음ㆍ지장보살님이 입시(立侍)한 모습입니다.
중단(中壇)인 신중단의 신중탱화(神衆幀畵)
하단 영단(靈壇)의 모습입니다.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상단 불단의 좌우에는 부처님의 일대기인 팔상도(八相圖)를 축약하여 사상도(四相圖)를 벽화로 모셨습니다.
팔상도 중 두 번째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입니다.
팔상도 중 첫 번째는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이죠. 도솔천의 호명보살(護明菩薩)이 육아 백상(六牙白象)을 타고 마야부인(摩耶夫人)의 태에 드는 모습이죠.
두 번째가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죠. 비람(毘藍)은 룸비니동산을 말합니다.
태자를 잉태한 마야부인은 산달이 되자 당시의 풍속대로 콜리국 친정에 가서 순산하기 위 해 화창한 봄날 룸비니 동산을 지나던 중 잠시 연(輦)에서 내리어 백화만발한 꽃동산을 구 경하게 됩니다. 그 동산 한복판에 바라차나무[무우수(無優樹)]가 있었는데 오른손을 들어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그 때에 뱃속의 아기가 태동하여 아주 고통없이 분만하게 됩니 다. 때는 四월 八일이였습니다.
태자가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옮기는데 땅에 서 연꽃이 솟아 올라와 태자를 떠받들었습니다. 이때 태자는 외쳤습니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 나 하나 홀로 높도다. 天上天下 唯我獨存(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가 다 괴로우니 내가 장차 편안케하리라. 三界皆苦 我當安之(삼계개고 아당안지)"
하였고 <가라>와 <울가라>라는 두 용신(龍神)은 덥고 찬 두 줄기의 물을 쏟아 내리어 몸 을 씻게 하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하늘 음악이 울렸다고 합니다.
견성오도상(見星悟道像)입니다.
팔상도의 세 번째는 태자가 사문을 유관하며 생로병사와 해탈의 길을 찾는 사문(沙門)을 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이고, 네 번째는 해탈의 길을 찾고자 출가를 결행하는 유성출가 상(踰城出家相)이며, 다섯 번째는 출가한 태자가 설산에서 고행하는 모습인 설산수도상(雪 山修道相)이며, 여섯 번째가 보리수 밑에서 모든 악마를 항복 받고 대각(大覺)을 이루시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입니다.
팔상도에서 여섯 번째를 수하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이라 했는데 그 보다는 수하성도상 (樹下成道相)이나 견성오도상(見星悟道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볼 때가 많습니다. 부처 님의 성도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부처님의 성도는 탐진치는 물론 팔만사천의 번뇌를 남김없이 제거하고 대각(大覺)을 이루어 인천(人天)의 스승으로 인류의 찬란한 빛 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마왕 파순(波旬)과 그의 군대인 마군(魔軍)을 완전히 항복 받으신 것이니 말입니다. 마군(魔軍)이란 다름 아닌 팔만사천의 번뇌입니다.
이곳의 벽화를 보니 평소에 생각했던 생각이 떠올라 적어 보았습니다.
팔상도의 일곱 번째는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입니다.
부처님은 성도하신 후 범천(梵天)이 법륜(法輪)을 굴리시기를 간청하자 범천의 권청(勸請) 을 받아들여 법을 설할 대상을 구하던 중 가야에서 함께 고행정진하던 다섯 사람을 구제하 시고자 천안으로 살피다가 그들이 바라나시 녹야원에 있음을 아시고, 천여 리나 떨어진 그 곳에 오시어 그들에게 사성제(四聖諦)와 중도(中道)를 설하셨는데, 이 법문을 들은 다섯 사 람은 곧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으니, 이에 부처님은 "이 세상에는 여섯 아라한이 존 재한다."며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저 유명한 오비구(五比丘)이니, 콘단냐(憍陳如), 앗사지(阿說示 馬勝), 밧디야(跋提), 마하나마(摩訶男), 밥파(婆頗)를 말합니다.
이들은 본래 정반왕이 명을 받고 태자를 모시고자 사자로 왔다가 그대로 머물러 함께 고행 하며 있었는데 태자가 고행 도중 니련선하에서 목욕을 하고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모습을 보고는 타락했다 하여 태자 곁을 떠나 녹야원으로 자리를 옮기었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부처님께 귀의하여 제자가 되었으니 최초로 승가(僧伽)가 이루어진 것이며, 이들에게 설한 법문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합니다.
팔상도의 여덟 번째는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입니다.
부처님은 45년간의 설법을 마치시고 80세를 일기로 쿠시나가라성 사라쌍수(裟羅雙樹) 사 이에서 대열반(大涅槃)에 드시었습니다. 이를 완전한 열반이라 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 이라고도 하고 범어로 마하빠리닙빠나(mahāparinibbana 大般涅般)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3개월 전에 미리 열반을 예언하시고 열반처인 쿠시나가라로 가셨습니다. 대열반에 들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법을 묻게 하시었습니다. 부처님은 무수히 모여든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다정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내가 한 설법의 내용에 대해서 의심나는 점이 있거든 묻도록 하여라. 승단이나 계율에 대해서도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 이것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의문을 지닌 사람이 없다고 아뢰자 부처님은 마지 막 가르침을 펴시었습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열반에 든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이것이 최후의 가르침입니다. 제자들이 흐느끼며 우는 가운데 위대한 열반의 모습을 보이 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아 속 절대계인 불세계(佛世界) 상적광토(常寂光土)에 무량광 (無量光)으로 계십니다. 나무석가모니부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천장에 걸려 있는 연등이 특이하고 정결합니다.
영단쪽의 연등모습입니다.
대웅전의 이모저모를 담다보니 공간이 다 찼네요. 끝으로 정각사를 창건하신 창건주 광우 (光雨) 스님에 대하여 알아보고 마치겠습니다.
정각사 창건주 광우(光雨) 스님
광우(光雨)스님
광우 스님은 1939년 15세에 직지사에서 성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셨으며, 상주 남장 사에서 혜봉대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하셨습니다. 최초의 비구니 강원 상주 남 장사 ‘관음강원’에서 대교과 졸업하셨으며, 비구니 최초로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하셨 습니다.
1956년부터 10년간 부산 소림사에서 법화산림법회 여셨으며, 1958년 정각사를 창건하 셨습니다. 또 〈신행불교〉를 간행하는 등 정신ㆍ정행(正信ㆍ正行)의 기치를 들고 정 법의 당간지주를 세우셨습니다. 뇌허불교학술상을 제정하고 2002년에 뇌허 김동화전 집 전14권을 펴내셨습니다. 1986년 〈묘법연화경〉번역 간행하셨으며, 전 7권을 사경 하셨습니다.
서울시립 목동청소년회관 관장 대통령표장 수상하셨으며, 전국 비구니회장을 8년 역 임하면서 비구니 회관을 완공하는데 전력을 다하셨습니다.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생 명공양 실천회 이사. 비구니 별소계단 전계대화상. 2007년 조계종 최초 비구니 명사 법계 품수. 저서로는 번역 〈묘법연화경〉, 〈부처님 법대로 살아라〉, 〈회향〉 등이 있습니다.
다음은 정목 스님의 법문과 '정목스님과 함께 하는 아픈 어린이 돕기 작은 사랑, 12월' '더 솔리스트'의 아카페라공연을 살펴보겠습니다. (계속해서 3탄이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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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사도 짧고 규모도 크지 않은 듯 한데 신도분들이 많으시네요.
정목 스님의 인기를 여기서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_()_
광우스님께서 정각사 포교당을 여시고 처음 하신 일은 매주 법회를 여시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어린이, 중고등학생법회, 대학생법회, 일반신도법회를 개설하고 매주 법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지금 법회를 보면 매달 두 번째 주에 여는 것에 비하면 선구적 역할을 하신 것 같습니다.
법회 안내를 보니 어린이, 중고등학생법회, 대학생법회 등이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당시에 당대 최고의 불교학자들이 설법하고 강의한 일요정기법회에는 서울시내 유수한 대학의 학생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황성기, 원의범, 홍정식, 김동화 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서울대, 고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동국대 학생들이 꾸역꾸역
몰려왔다고 합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던 윤호균 씨(한국심리학회 회장· 가톨릭대 교수), 성대 박상길 씨,날 정각사에서 _()_
역사학자 이이화 씨, 교회목사, 통일교회 책임자 등이 강의를 듣기 위해 정각사에 왔는데,
공부한 분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식인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천장에려있는 등과 향꽂이, 촛대등이 모두 사각모양을 하고 있어 특이합니다. _()_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무슨 의미일까요 여기의 절이 정각이니 그런 뜻이 있지 않을까요 _()_
천수각이무소로 사용되고 대웅전 법당에 려 있는 사각등이 눈이 띄었습니다. _()_
그러셨군요. 저는 법당에 처음 들어갔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팔상도를 축약한 사상도였습니다. _()_
미소님 덕분에 궁금했던 석조보살좌상의 보살명호를 알았습니다. 저도 전화를 해보려고 했었지요.
감사합니다.
송년회 좋은 사진글 잘 봤습니다. _()_
제가 찍은 불단의 부처님 사진이 어두워서 밝게 잘 찍힌 염화님 사진을 모셔왔습니다. _()_
화려하지 않으면서 아담한 정각사!1 도심 포교의 활력소가 되어 거듭 발전 하기를 기원해야지요....나무묘법연화경()()()
앞으로 이곳의 법회가 활성화되어 어린이, 중고등부, 대학부 등의 법회를 개설하여 활성화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_()_
참 자세히도 올려 주셨습니다. 다녀와서 읽고보니 더욱 이해가 잘 됩니다.
그래도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니 우짜면 좋을꼬~~~감사합니다. _()_
정각사(正覺寺)란 이름은 '바른 깨음을 이뤄가는 절'이란 뜻입니다. 현장에서 한 번 보시면 더욱 명히 각인됩니다. _()_
절이름은 김동화(金東華) 박사가 지었다고 합니다. 포교를 하되 불법을 올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랍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하지 않습니까
저도 잘 잊습니다. 잘 잊는 것이 정상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사상도 중 보리수하의 성도하신 그림을 견성오도상(見星悟道相)이라 했는데 괜찮은가요 이 보이시나요 _()_
수하성도상(樹下成道相)이 낫나요
부처님은 샛을 보시는 순간 대각을 이루셨으니 견성오도상(見星悟道相)이 좋을 듯합니다. 이 보입니다. _()_
예, 자세히 보니 우측 상단에 반짝이는
감사합니다. 돋보기를 대고 보시면 샛이 반짝이는 것이 보입니다. _()_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자세히 담고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각사의 위치와 창건역사 창건주 광우스님에 대한 _()_
설명 잘 읽었습니다. 또한 법당의 팔상도를 축약한 사상도에 대한 설명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넷에서 정각사 정보를 얻긴 했지만 정각사에 대한 정보는로 없었습니다. _()_
정각사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노력한 끝에 광우 스님의 탐방기사 등에서 단편적인 정보를 얻어 정리해
본 것입니다. 사상도를 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색상이 선명해 보기 좋았습니다.
그날 책에 정목스님 싸인 받는다고 줄을 오랫동안 서있는 바람에 사찰 구경을 못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이곳저곳 보니 좋으네요^^
법당에 들었으나 사람이 많아 운신도 잘 못하시고... 붓다홀에도 사람이 많아 역시 못 들어가셨겠네요. _()_
제가 그럴 줄 알고 자세히 담았으니 자세히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