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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_< 4. 미쁜 순간들 - (3)>_24회
4 - (3)
나는 다시 출판사에 나가고, 아내는 의류업체에 일자리를 구했다.
그럼으로써 마침내 아내와 나는 안정을 되찾았다.
지금 와 당시를 돌이켜보건대, 그것은 안정이 아니었다. 그 뒤에 이어질 고난과 파탄을 앞둔 일시적인 공동화(空洞化) 현상일 뿐이었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 같은 그런 것이었다. 불행의 준비기간이랄까, 아무튼 운명의 속임수일 따름이었다. 조짐이 있으면 미리 사전 조치를 취하거나 조심할 터이니까 안심하도록 기만한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평화로웠다. 행복했다.
사돈노인의 도움이 컸다. 그네는 노련한 독심술가와도 같이 우리 내외의 표정만 보고도 속내를 훤히 읽어내는 재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속에는 약장처럼 숱한 서랍이 달린 경험상자가 마련돼 있어, 그때그때 상황에 알맞는 처방전을 꺼내 우리 내외 사이에 맺힌 매듭을 풀어주곤 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전날 밤 과음하고 밤늦게 들어와 거친 말을 퍼부어 아내가 토라져 있을라 치면, 사돈노인은 즉시 그 정황에 맞는 처방전을 경험상자에서 꺼내 거기에 씌어진 내용을 활용했다.
“여자의 마음이라는 건 봄눈과 같어서 따뜻한 말 한마디로 금세 녹아버리기 마련이라우.”
내게 이르고는, 의도적으로 아내에게 접근해서는 이런 식으로 말했다.
“남정네들은 늙으나 젊으나 다 애들 맘인 겨. 아들 하나 기른다 셈치고 요량껏 달래주고 추켜줘 봐. 그러면 죽을동살동 여자 말만 듣기 마련이라구. 내 말 알어듣겄남?”
그러다 보면 어느 새 화해의 미소를 나누고 있는 우리 자신을 깨닫게 되기 마련이었다.
밥은 대개 사돈노인이 해놨다. 아내가 맘먹고 일찍 일어나 밥을 하려고 거실에 나가 보면 어느 사이 전기밥솥에서 김이 솟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가 사돈노인에게 난색을 표하며 젊은 자기가 하도록 그냥 놔달라고 하면 사돈노인은,
“왜, 늙은이가 한 밥은 감자 굽는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겄수?”
말을 받아쳐 아내로 하여금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든다고 했다.
쌀과 반찬값을 우리가 부담하려고 기회를 엿봤지만, 그 또한 용의롭지 않았다. 그러기 전, 사돈노인이 미리 미리 그것들을 들여놓아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비며 제반 잡부금까지도 사돈노인은 우리에게 부담주지 않으려 애썼다. 몰래 고지서를 감춰두고 있다가 어느 새 해결하곤 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한번은 내가 직접 나서서 사돈노인에게 말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집세 받지 않는 것만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시면 저희들 보고 나가라는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사돈노인은 정색을 갖추고 내 말을 받아쳤다.
“미안해할 거 하나 없수. 나도 다 꿍꿍이속이 있어서 그러니께.”
“꿍꿍이속이라뇨?”
“왜, 겁나우?”
“그런 게 아니라…….”
내 손을 슬그머니 잡으며 사돈노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 나중 잘살게 되면 그 때 가서 내 사위한테 갚으면 될 거 아니우?”
이 대목에서 나는 잠깐 글쓰기를 멈추고 사돈노인의 영령을 향해 영원한 안식을 빌어본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극락이나 천당이 분명 있다면 그네는 내가 기원하지 않아도 그 어딘가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뵙고 싶다. 내 아내가 저 지경이 됐다는 것을 알면 사돈노인은 적어도 열 번은 찾아왔을 테고, 같이 눈물을 흘려 주며 위로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을 텐데― 부디 평안하소서!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면서 우리는 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듯 정이 들대로 들었다. 따스하고 포근하고, 정말 살맛 나는 하루하루였다.
문득 그날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느 토요일 오후로 기억된다. 그 날은 사돈노인이 광주 아들네 집에 갔으므로 오봇한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보일러를 한껏 가동하여 욕조에 데운 물을 가득 채우고 나부터 목욕을 했다. 그리고는 벌거벗은 몸으로 아내가 내 뒤를 이어 목욕을 하는 동안 식탁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 처음에는 늘어뜨려진 성기가 비닐 커버에 닿아 섬뜩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압박에서 해방된 상쾌함과 매끄러운 비닐 감촉이 나로 하여금 성충동을 일으키게 했다. 기세로워진 나를 앞세우고 욕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놀라지 않았다. 나의 늑골 밑에 시선을 둔 채 키들키들 웃었다.
“어때, 듬직해?”
내 말에, 아내가 대꾸했다.
“듬직해서 웃는 게 아니에요.”
“그럼, 왜?”
“왜 웃었는지 맞춰봐요.”
나는 시선을 내 성기에 내려뜨렸다. 왜소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왜소 콤플렉스에 말려들지 않았다. 옛날 한때 왜소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적이 있긴 있었지만, 선배의 조언을 듣고 이미 극복한 터였다. 내 하소연을 듣고 선배가 말했었다.
“남자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자기 것이 다른 사람에 비해 작다는 콤플렉스에 빠져보기 마련이야. 거쳐야 할 일종의 성장 단계라고 할까, 통과의례의 하나라고 할까. 어쨌든 나도 그런 과정을 거쳤으니까.”
“그렇다면, 선배님은 어떻게 그 콤플렉스에서 헤어났습니까?”
내 물음에 그가 시원하게 답을 주었다.
“내려다보지 말고 거울에 비춰보라구. 그럼 알게 될 거야. 이상, 때앵― 더 묻지 마.”
집으로 돌아와 즉시 문부터 걸어잠궜다. 그리고는 벽거울에 내것을 비춰보이자마자 외마디 탄성부터 튀어나갔다.
“야, 크다!”
뒤따라 의문이 제기되었다.
―과연 이 거대한 내것을 받아들일 여자가 있을까?
첫 번째 나의 실험 대상이 된 여자는 키도 작고 깡마른 계집애였다. 야산 숲속에서였는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첫경험의 심리적 부담감과 함께 이번에는 거대콤플렉스가 나를 위축시켰다.
다행히 계집애는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허둥대는 나를 깜냥껏 요리했다. 그녀는 편안한 자세로 누운 뒤 두 무릎을 세워 내 늑골 아랫부위가 꼭 들어맞도록 적당한 간격으로 벌리며 속삭였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불타는 키스만 퍼부어. 그리고 서둘지 마. 알았어?”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는 내것을 더듬어 쥐고는 단단하게 팽창하도록 재간을 부린 후 자신의 몸 속으로 가져갔다. 순간, 여자들의 그 놀라운 신체적 융통성에 나는 감탄했다. 어떻게 접촉되는 감촉을 느낄 사이도 없이 그 커다란 내것이 사타구니 사이의 그곳으로 삽입돼 버리는지, 그리고 끝이 닿지 않도록 허공처럼 드넓은 공간이 마련돼 있는지 선뜩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튿날, 나는 친구에게 당시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동굴 같았어.”
친구 녀석이 낄낄거리고는 내 말을 받았다.
“애기가 나오는 걸 생각해 봐 임마. 히히힛!”
그 후 나는 여자들도 성기에 대한 관심이 남자 못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남자가 여자를 자빠뜨리고 싶어하는 거와 여자가 남자에게 눌리고 싶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자들의 성기에는 돌출 부위가 없으므로 동성간의 성기에 대한 호기심이 남자들만큼 강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나는 범생이었고, 순진했었다.
동아리모임에서 시인 지망생인 파트너 계집애가 술에 취해 흥얼거렸다.
“난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그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구. 한번은 남자들과 똑같은 자세로 우리도 가능한지 바로 선 상태에서 여러 각도로 요의를 해결해 봤지.”
“흐음, 그래서?”
“최초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은 어느 여자가 분무기를 발명했거나, 어떤 형태로든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어. 호호홋!”
“분무기처럼 확 퍼져나가더란 말이지? 흐흣! 그리고 또 있어?”
“있지. 한때 골반 면적과 그것의 너비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어.”
“그래서?”
“그 데이터를 뽑기 위해 친구들을 꼬드겼지. 그리고는 앞에 거울을 놓고 크기를 대보게 했어.”
“비례했어?”
“아니. 절대 무관하다는 결론을 얻었지. 끄윽, 나 화장실 다녀올 동안 너 먼저 토끼지 마. 죽여버릴 거야.”
아내는 여전히 욕조에 누운 채 웃음을 띠고 있었다.
“더 웃고 있으면 불쾌해져 기죽는 수가 있어.”
“상관없어요.”
“그렇게 되면 어디까지나 당신 손핼걸. 봐 벌써 고갤 숙이잖아.”
“착각하지 마세요, 서방씨. 난 그럴 생각 전혀 없으니까.”
“속에 없는 말 하지 마셔. 난 당신 눈빛만 봐도 다 알고 있으니까 부인님.”
“호홋! 착각은 책임소재가 따르지 않는 개인적 권리니까 머.”
“말장난 그만하고, 왜 웃고 있었어?”
“서글픈 미소, 그런 거였죠. 염색도 할 수 없고…… 문제가 있어요.”
그제서야 나는 그녀의 시선이 겨냥하고 있는 내 성기를 살폈다.
아뿔사!
내가 무관심한 사이 너댓 가닥의 은색 음모가 섞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나는 농담 같은 사실에 당황했다.
―내가 늙었단 말인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거부의 분노가 치밀었다.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말― 나이 삼십이 넘으면 신체 부위 어딘가에는 흰털이 나기 시작한다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외치듯 말했다.
“새치야! 새치는 초등학교 애들한테도 돋아날 수 있는 거야.”
“어쨌든, 당신은 중년의 문턱에 서 있는 거예요.”
“쓸데없는 소리! 난 젊어!”
“삼십에 꼬리가 붙은 나이예요.”
“아니야, 난 청년이야!”
“받아들이세요.”
“절대로! 내가 청년이라는 걸 보여주겠어.”
나는 즉시 욕조로 뛰어들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이, 중년이라는 말을 인정할 수 없어!
좁은 욕조라서 불편했지만, 난 기어코 단호하게 젊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도 미심쩍어 목욕을 끝내고 나온 아내에게 다시 도전하여 그녀로 하여금 실언(失言)에 대한 철회 선언을 받아냈다.
“이래도 중년이야?”
“이제 그만! (헐떡헐떡) 그래요, 당신은 청년, 아니 열여덟 소년이에요!”
나는 벌거벗은 채로 아파트 실내를 돌아다녔다.
“팬티만이라도 입어요, 제발!”하고 아내는 내 팬티를 들고 따라다니며 사정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체했다. 유쾌하고 자유로웠다. 문 밖으로 내닫고 싶었다. 햇빛 쏟아지는 너른 초원이라면 더욱 좋으리라! 목이 터져라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마구 날뛰고, 뒹굴고 싶었다.
진정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부끄럽고 억울한 과거는 망각의 단지 속에 우겨넣어 묻어 버리고, 속박의 현실도 깨부숴 버리고, 햇병아리로 갓 태어나고 싶었다.
이튿날도 나는 벌거벗은 채였다. 옷을 입자마자 달려들 속박감이 싫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늘 그렇게 살고 싶었다. 죽는 그날까지.
사돈노인이 올 때까지만이라도 그렇게 있기로 했다.
아내는 어느 새 나의 나신이 눈에 익은 듯 탓하거나 특별히 관심 두지 않았다. 물론 가끔씩은 덜렁거리는 내 성기에 시선을 보내며 배시시 웃기는 했지만, 거부감을 드러내는 그런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체로 아침을 먹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난 부부 사이의 무례를 이유로 이혼한 내 친구를 이해할 수 없게 됐어요.”
“부부 사이의 무례?”
“당신같이 집안에서 벌거벗길 좋아하고, 아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방귀를 뀐다고 이혼한 애가 있거든요.”
잠깐 사이를 두고 아내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가 이러고 있는 게 싫어서 우회적으로 질책하는 것은 아니겠지?”
“천만에요.”
“정 싫다면 옷을 입을게.”
“진심이라니까요. 처음에는 좀 황당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옷을 입고 있는 당신이 이상하게 보일 것 같네요.”
“정말야?”
“당신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눈에 익히게 되고, 그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 느낌이에요. 당신의 배꼽 밑 흉터에서부터 거기에 난 흰털까지, 모두를. 호호홋!”
“그렇다면, 나도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죄다 사랑할 수 있게끔 드러내줄 용기는 없는 거야?”
“이이는!”하고 아내는 발그레 홍조를 띠었다.
“강요하지는 않겠어.”
“원해요?”
“물론.”
아내는 잠깐 망설였다. 그리고는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알았어요. 정 원한다면…… 당신을 위해서.”
껍질을 벗어 팽개친 아내는 내 앞에 실체 그대로를 드러내주며 물었다.
“어때요?”
“아름다워!”
“정말?”
“가까이 와 여보!”
나는 아내를 끌어안고 으스러져라 팔에 힘을 주며 바닥에 뉘였다. 너무 열정적으로 그녀를 사랑해 줬으므로 모노륨 바닥에 무릎 껍질이 벗겨져 머큐롬을 발라야 했다.
우리는 사돈노인이 왔던 오후 5시경까지 알몸뚱이로 아침과 점심을 먹고, 낮잠을 즐겼다.
이 대목을 쓰다 말고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혹시 나체를 고집하는 저 아내는 지금껏 그때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는지……?
어쨌든 우리는 한 달, 두 달, 석 달― 그렇게 살맛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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