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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생활 행동강령(육군본부 2003.8.4)) 첫째, 분대장을 제외한 병 상호간에는 명령이나 지시, 간섭을 금지한다. 둘째, 어떠한 경우에도 구타 및 가혹행위를 금지한다. 셋째, 폭언. 욕설. 인격모독 등 일체의 언어폭력을 금지한다. 넷째, 언어적. 신체적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성 군기 위반행위를 금지한다. ※용어의 정의 카. 병 상호간 관계 의무복무를 수행하는 병 상호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수평적 동료관계임. 단 분대장은 조직의 편성 및 임무수행 목적상 일반 병을 지휘 통제하는 상관의 위치를 인정함. |
병사관리와 교육훈련, 상급부대 훈련파견 등으로 피로가 누적된 초급간부들은 끊임없이 내려오는 상급부대 명령수행까지 하려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열정이 지나쳐 혹시라도 폭언이나 구타가 뒤따르면 곧 처벌로 이어지기에 위험한 열정보다는 안정적인 적당주의에 빠져들기 쉽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후임 관리’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병사들 사이의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자 육군본에서는 이미 10년 전에 병영생활 행동강령(육군본부 일반명령 제 03-21호)을 하달하였다.
아울러 폭력행위처벌도 강화하였다. 그러자 선임 병사들이 자기보호차원에서 후임 병사에 대한 관심을 거두어 버렸다. 남은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자 후임 병사에 대한 무관심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로써 병영은 전우가 아니라 너와 나만이 존재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변질되었다.
인사청탁은 賣國的 행위
둘째, 군대가 존재 가치와 임무를 망각하고 다시 정치화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군대는 정치적 중립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집단이다. 군대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도 안 되지만, 개인이 진급이나 보직 등 인사와 관련해 정치인에게 청탁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장군 진급 시에 각 군 본부 심사와 국방부 제청심의를 마치고 청와대 결재를 받는 과정에서 명단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진급한 의외의 인물을 두고는 권력 실세와의 인연에 대한 소문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그 소문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난다. 군 지휘관은 국가 운명과 수많은 부하들의 생사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렇기에 공정한 평가와 절차를 무시하고, 인사 청탁을 하거나 인사에 개입하는 사람은 군대와 국가를 망치는 매국적 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 병영선진화를 가로막는 권위주의와 불공정한 인사 실태를 바로 보아야 한다. 맹자는 “천시지리불여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전쟁 승리를 위해서는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군대는 어떠한가?
병영 내 갈등과 폭력에 따른 연도별 사망사고를 조사한 국방부 내부행정자료를 보면 그 심각성이 잘 드러난다. 질병과 천안함 등의 전사자들을 포함시키지 않았음에도 매년 100명이 훨씬 넘는 장병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럼에도 군대는 군사보안이라는 울타리 안에 스스로를 가둔 폐쇄적 집단이다 보니 병사들과의 소통보다는 권위적으로 지휘권을 행사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진정한 화합을 위해 왜곡된 병영문화를 비판하기가 어렵다.
반면에 이스라엘 군대는 인권과 소통을 중시하며 막강한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 주미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이스라엘 방위군 예비군 장교인 마이클 오렌이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내가 이스라엘군 사병이었을 때 장교를 내쫓은 일이 있었다. 사병들이 모여서 투표로 결정한 다음 당사자한테 가서 당신의 능력이 부족하니 우리를 지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상관한테 가서 경질을 요구했다. 그것은 계급보다는 개인의 자질과 능력에 관한 사안이다.”
우리 군도 한때 다면(多面)평가제를 도입하여 진급과 인사에 부하 장병들 의견을 반영하는 시도를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군 수뇌부에서 이를 폐지시켰다. 상급자의 권위를 훼손시킨다는 것이 이유였다. 진정한 권위는 부하들의 존경과 자발적 충성에서 비롯됨을 간과한 오판이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개혁 요구를 외면하던 군이 여론에 떠밀려 스스로 개혁하겠다고 나섰지만 이 셀프개혁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국방부가 서둘러 구성한 병영문화혁신위가 면피성 요식행위로 끝난다면 국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이번에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이에 필자는 몇 가지 고언(苦言)을 하고자 한다.
혁신의 목표는 强軍 육성
첫째,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부터 혁신해야 한다. 지난 8월 6일 국방부는 한민구 장관과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를 발족시켰다. 위원은 군인 외에도 시민단체와 종교계 인사, 유명 연예인 등 113명으로 구성하였다. 그렇지만 혁신위원 선정과정에서 공모 등의 투명한 절차를 거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전문성과 열정과 사명감을 갖춘 혁신위원들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혁신위의 한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혁신위 활동을 제한한 분과 선정, 국방개혁 본질을 외면하는 혁신과제 선정, 불과 4개월여의 짧은 운영기간, 졸속으로 발표하는 혁신 방안 등이 그렇다. 4개월에 불과한 시간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병영문화 혁신안'을 채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인권전문 정부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는 배제시켰다. 이제라도 혁신위원을 재구성하고 활동기간을 연장해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혁신위를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직속기구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위원장 역시 민간 단독으로 해 국방부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혁신의 목표를 강군 육성에 두고 혁신과제를 재선정해야 한다. 병영문화혁신의 방향은 ‘적과 싸우면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전투원 양성과 화합 단결된 부대’ 육성에 맞추어야 한다. 그렇기에 면회제도, 휴대폰 지급, 병사가족과 간부 사이의 실시간 SNS, 군 파파라치, 병사 계급구조 변경 등 전투력 약화 우려가 있는 정책은 재검토해야 한다.
평일면회 허용으로 혜택 받을 병사는 극소수이고, GOP 휴일면회는 면회 병사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다른 병사의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휴대폰 지급 역시 보안 문제와 함께 선임병의 휴대폰 독점과 요금에 따른 갈등을 유발시킬 뿐이다. 또한 간부들에게 병사 가족과 SNS 밴드를 만들어 실시간 소통하라는 것은 교육훈련과 부대관리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초급간부가 처한 상황을 외면한 처사이다. 전우애를 파괴할 파파라치 도입도 문제이고, 병사계급을 단순화시키면 가혹행위가 줄어들 것이라는 발상도 황당하다. 이 모든 것들이 부대 내 가혹행위와 대체 무슨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도 모자라 동기생만의 분대와 소대를 편성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것도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한 말이라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전투조직 교범과 부대 편제는 수많은 전투의 승패 요인을 분석하고, 무기나 전장 상황 등을 고려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참모총장이라 하여 자의적으로 바꿀 수 없다. 오로지 사고예방이라는 보신주의에서 비롯된 지극히 편의주의적이고 비전투적인 방안은 ‘빈대 잡기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부적합 간부도 솎아내야
혁신 과제에는 초급간부들의 복무여건 개선도 포함시켜야 한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자살한 초급간부가 208명이고, 근무지 이탈자는 총 1,368명으로 한해 평균 100여명에 이른다. 이는 초급간부의 복무 스트레스와 인권 상황이 위험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말한다. 그 외에도 여러 사회단체와 인권단체의 요구인 군 옴부즈맨제도, 군사법원 폐지 혹은 독립성 강화, 군 인권법 제정 등을 수렴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장병인권보장이 강군의 기본이다. 대한민국은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 병사 역시 주권자인 국민이다. 그럼에도 군에서는 병사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병영문화가 아직 낮은 수준이라 군 인권위원회에 접수되는 상담과 진정은 증가 추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이후 연도별 군 관련 상담과 진정 접수추이>
이 추세라면 연말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이후 가장 많은 상담과 진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진정건수의 약 41%는 인권침해사건이었다. 현재 각종 규율과 명령 또는 지침 형태로 산재되어 있는 군 인권 관련 내용을 한데 모아서 군 인권법을 제정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넷째, 인사가 만사다. 매년 군 장성인사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3사관학교, 학군사관, 학사사관, 간호사관, 간부후보생 소위 임관자의 15분의 1에 불과한 육사 출신이 육군 장성의 80%를 독식하는 제로섬 진급체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지난 달 7일의 장성 인사를 보더라도 육군준장 진급자 58명 가운데 비육사 출신은 12명에 불과했다. 전문성을 가진 다양한 장교들을 육사 출신들의 독점적 진급을 위한 들러리로 희생시킨다면 군과 국가에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
3천여 년 전, 강태공은 인재를 발탁하기 위한 팔징지법(八徵之法)을 말했다. 첫째, 전문성(詳), 둘째 위기관리 능력(變), 셋째 성실함(誠), 넷째 도덕성(德), 다섯째 청렴함(廉), 여섯째 정조(貞), 일곱째 용기(勇), 여덟째 태도(態)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사 원칙이다. 진급제도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인사위원회를 민간 외부인사에게도 개방해 시빗거리를 없애야 한다.
육군 장교는 충성, 용기, 책임, 존중, 창의의 다섯 가지 가치관을 근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 결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로 얻은 계급이라야 명예와 존경의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연고주의에 편승해 얻은 계급에는 조롱과 멸시가 있을 뿐이다. 부적응 병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적합 간부도 분명 있으니, 이들을 솎아내어 군의 명예와 사기를 회복시키는 제도를 하루속히 만들어야 한다.
文民 국방장관 나올 때가 됐다
다섯째, 문민 국방부장관은 시대적 요구이다. 5.16 이후 지금까지 국방부 장관은 모두 군 출신이다. 게다가 육사출신들이 국방장관을 독식하다시피 하였다. 이로 인해 육사 선후배의 엄격한 위계에 따른 권위주의 문화는 더욱 공고해졌다. 문민정부 이후의 국방장관만 보더라도 비육사 출신은 32대 이양호, 38대 조영길, 39대 윤광웅 장관 등 셋에 불과하다. 육군본부나 합참, 국방부 핵심 보직도 대부분 육사출신들이 독식하며 대물림하고 있다. 참모총장은 단 한 차례도 비육사 출신에게 내어준 적이 없다. 그 외에도 비육사 출신들에게는 절대 배정하지 않는 핵심 보직이 수두룩하다.
이제는 국방부 장관을 민간인으로 임명해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때이다. 민간이 국방개혁을 추진해야 국방조직과 병영문화 전반의 적폐를 청산하고, 군의 전략적 사고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군사강국들도 효율적인 국방조직관리를 위해 국방장관을 민간인으로 하고 있다. 그래야만 국방부가 ‘군을 위한 군대’에서 벗어나 ‘국민의 군대’로 도약할 수 있다. 연고주의에서 벗어난 군 인사개혁과 육해공군·해병대 등 군별 갈등 해소 정책도 문민장관이라야 자유롭게 시행할 수 있다.
상호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
여섯째, 병영문화 혁신의 성공사례인 상호존중과 배려운동을 전군으로 확산해야 한다. 필자는 2003년 10월에 육군 제32사단장으로 취임한 후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에 3건의 구타사건을 적발해 병사 7명을 구속하고 10여명을 영창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면서 구타와 가혹행위를 근절시킬 방법을 찾은 것이 '상호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 운동'이었다. 이는 ‘상호간에 존중어 사용하기, 경례 후 정감어린 인사말 나누기, 경청하고 칭찬하기’의 3대 실천과제를 습관화 · 생활화하여 우호적인 전우 관계를 만들자는 행동 실천운동이었다. 훈련 및 작전 시에만 명령어를 사용하고 일상 대화에서는 선임병도 후임병에게 ‘김 일병, ~합시다.’ 등의 존중어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다음은 정감어린 인사말 나누기이다. 군에서는 경례를 존경과 친근감의 표현보다 군기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 경례 자세를 트집 잡는 경우가 많아 상급자를 피하려한다. 이에 경례구호에 이어 ‘좋은 하루 되십시오.’ 등의 인사말 한 마디를 덧붙여 친밀감을 나누도록 하였다. 마지막 과제는 경청과 칭찬의 생활화로 새로운 군대 예절을 만드는 일이었다.
차별화된 존중어 사용으로 전우 관계가 강압적, 형식적 질서에서 존중과 배려의 우호적 질서로 바뀌어 병영문화 선진화에 이바지하고, 전우애를 돈독히 해 군기가 강화되었다. 그런데도 부드러운 리더십이 군대를 망친다는 근거 없는 억지는 여전했다. 심지어 2008년 육군본부에서 나온 전투지휘검열단은 이 운동으로 6군단 전투력이 약화되었으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엄격하게 전투력 측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6군단 장병들은 자발적으로 측정 받겠다고 나서서 검열관들을 놀라게 했다. 그해 6군단은 전투지휘검열 우수부대로 선발되어 참모총장 표창을 받았다.
그렇다고 하여 군 내부의 미묘한 알력과 견제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필자에 대한 압력의 절정은 부당한 인사 조치였다. 실 지휘권이 없는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은 통상 6개월에서 1년 정도 머무는 직위였으나 필자에게 이 보직을 맡기고는 무려 25개월이나 묶어 놓았다. 그 사이에 여러 경로를 거쳐 회유가 들어왔다. 상호존중과 배려운동을 포기하면 대장 진급이 가능하다는 조건부 승진 제의도 있었다. 필자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4성 장군이 되기 위해 신념을 저버릴 수 없었고, 상호존중과 배려운동에 동참했던 수많은 전우들을 배신할 수 없었다. 결국 2010년 12월에 필자는 40년 동안 입었던 제복을 벗어야 했다.
부드러운 리더십이 强軍 만든다.
일제의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조선을 떠나면서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그러니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였다. 이 때문인지 식민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조선 놈은 맞아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만 이러한 자기비하는 병영에도 그대로 이식되었고, 그 잔재가 아직 우리 군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를 이제는 거두어 내야 한다.
진정한 군기는 강압에 의한 면종복배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완수하는 외유내강형 장병이 만드는 것이다. 강한 군대는 정과 의리로 화합 단결해 전우와 상관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장병들로 구성된 군대이다. 이를 위해서는 병사들의 인격존중을 군 기강 해이로 여기는 지휘관의 사고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필자는 이미 여러 언론 인터뷰와 칼럼을 통해 이러한 국방개혁과 병영문화혁신 방안을 제시했다. 혁신위 공동위원장 두 분께 제안서를 보내기도 했다. 상호존중과 배려운동의 효과와 구체적 시행방법을 놓고 혁신위원들과 토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수차례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마지막으로 잘못된 병영문화 탓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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