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창근 목사와 함께) 새롭게 읽는 이솝우화 이야기
23. 당나귀와 주인 (개구리와 왕)
이솝우화를 보면..... 부지런한 정원사 소유로 새벽부터 일을 해야 하는 당나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당나귀는 신세를 한탄하며 제우스신을 찾아가 간청했습니다.
“제우스신이시여, 남들은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데 저는 새벽닭이 울기 전부터 일어나서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 주인은 못된 사람입니다. 제발 주인을 바꿔주시옵소서.”
그러자 제우스신은 “너의 부탁을 들어주겠다. 하지만 후회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우스신의 뜻대로 정원사는 당나귀를 벽돌공장에 팔아넘겼습니다.
무거운 벽돌을 나르던 당나귀는 “이번 주인은 더 지독합니다. 훨씬 힘든 일을 시키면서 늘 적게 먹게 하고 너무 많은 일을 하게 합니다. 툭하면 채찍으로 때립니다. 다시 주인을 바꿔주십시오.”
제우스신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경고하며 당나귀를 가죽공장에 팔려가게 하였습니다. 가죽 장수는 일찍 당나귀를 깨우지 않았지만 당나귀는 또 불평했습니다.
“가죽은 너무 무겁고 냄새도 지독합니다. 먼저 주인에게 있을 때는 짐을 싣는 동안 풀을 먹을 수도 있었고, 언제나 싱싱한 풀냄새나 꽃향기 속에서 살았는데....”
그리고 자신도 결국은 가죽이 벗겨져 죽을 것을 알고 당나귀는 말합니다.
“전 주인들은 나를 힘들게 하고 굶겨도 나의 가죽을 벗기는 일을 하지는 않을 텐데...”
- 여기에 등장하는 신이 제우스신 말고 주피터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주피터는 로마의 신이기 때문에 그리스의 이솝과 어울리는 제우스신이 맞다고 봅니다.
------------------------
1) 불평과 신세 한탄의 문제
여기의 당나귀도 서민(민초, 노예)의 모습입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는 서민(민초, 노예)의 삶은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피곤한 삶을 좀 더 편하게 바꿔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정치제도 아래에서는 이런 변화 욕구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에게 이 문제의 해결을 요청합니다.
- 삶을 개선하여 편한 것이나 진보된 것들을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욕구입니다.
심리학자 애브라함 매슬로우의 인간의 욕구 7단계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욕구에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과 소속 욕구, 자기 존중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는데, 지적(인지적)욕구와 심미적 욕구를 더해 7단계 욕구를 완성합니다.
①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 의식주 등의 기본욕구
② 안전 욕구(Safety Needs) : 생명, 생활, 외부로부터의 자기보호욕구
③ 소속감 및 애정 욕구(Belongingness &Love Needs) : 소속, 유행, 사랑의 욕구
④ 존경 욕구(Esteem Needs) : 존경, 자부심, 자존심, 자존의 욕구
⑤ 인지적 욕구(Need to Know &Understand) : 문화, 교육, 지적 욕구
⑥ 심미적 욕구(Aesthetic Needs) : 문화예술의 추구, 자연, 환경을 통한 심미적 욕구. - 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오히려 정서적이고 감상적이며 감성적인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환경, 자연 등에 관심도가 높고,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체험하며 즐기고자합니다.
⑦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 자아실현, 잠재능력. -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창조적으로 자기의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합니다.
이런 다양한 욕구를 다 누릴 수는 없지만 좀 더 자고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누리고자하는 당나귀 같은 서민의 욕구는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사회정치제도가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 오늘날의 민주적인 사회에서도 삶을 바꿔보고자 한다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불평과 신세 한탄을 제자리에서 하지 말고 멋진 도전으로 바꿔 노력한다면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신의 해결책은 무슨 의미인가?
제우스신이 나타났습니다. 당나귀 같은 서민의 변화 욕구에 대해 후회를 언급하며 오히려 더 일이 힘든 벽돌 공장으로 보냈으며, 나아가 더 힘들고 공포까지 생겨지는 가죽공장으로 보냈습니다.
왜 불평도 못하게 하고 더 일은 어렵고 나아가 공포까지 생겨지는 곳으로만 계속 보내서 그나마 처음보다 더 힘들어 처음의 삶을 그리워하게 했을까요?
깨달음을 얻으라고 보냈다고 보기에는 마음이 시원하지 않습니다.
사회정치제도는 이것을 지탱해주는 종교적인 지원이 반드시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제우스신을 믿는 종교적인 사회에서는 당나귀 같은 서민의 삶을 규정하고 그것에 따르도록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에 반발하고 더 나은 삶을 요청하는 것은 단순히 사회정치체제를 바꿨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지탱하는 종교적인 욕구까지 포함되기에 이것을 더 강한 폭력으로 눌러버리는 것입니다.
당나귀의 최소한의 인간적인 욕구는 더 강한 반발과 저항에 부닥치고 눌려질 수밖에 없었고, 더 큰 고통으로, 더 심한 절규가 나올 수밖에 없게 하였습니다.
- 올바른 종교는 올바른 사회정치체제를 만들고 건강하게 유지하게 합니다.
잘못된 종교는 당나귀 같은 서민의 삶을 더 짓누르고 억압하며 복종을 강요합니다. 나아가 반발하는 세력은 더 심한 고문과 탄압으로 싹을 잘라 놓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종교를 갖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정치체제가 유지되도록 해야 합니다.
3) 이와 비슷한 우화가 있는 의미는?
연못에 개구리 떼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들이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줄 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신에게 왕을 보내달라고 매일 하늘을 보고 개굴개굴 하고 울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제우스신이 커다란 나뭇조각 하나를 던져 보내주었습니다. 개구리들은 신이 보내준 왕이라고 좋아했습니다.
그날부터 위험한 물가가 아닌 안전한 물 한 가운데 나뭇조각 위에 올라가 쉬고, 공중에서 잡아먹으러 오는 새들이 보이면 나뭇조각 밑으로 숨어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개구리들은 나뭇조각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무대답도 없는 나뭇조각은 자신보다 약해 자신들의 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왕을 달라고 하늘을 보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본 제우스신은 뱀을 던져주었습니다. 뱀은 연못에서 개구리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잡아먹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더 나쁜 것으로 되어졌는데, 충격적인 것은 어떤 글에는 뱀이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개구리들은 행복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말이 안 되는 해결책입니다. 이렇게 문제를 이야기하고 변화를 촉구하지만 더 나쁜 결말을 얻게 되는 것은 사회정치체제를 넘어선 신의 결정이라고 운명 짓고 그렇게 삶을 속박하려는 문제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솝은 이런 나쁜 신을 바꿔버리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한번 얘기해서 안 되니 두 번 이런 이야기를 넣어 제발 바꿔보자고 외치는 것이지요.
- 우리를 정말 원숭이에서 진화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귀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취급하는 신앙이 그래서 저는 귀하다 봅니다.
우리는 모두 귀한 사람들입니다. 올바른 변화욕구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며 살아보십시다.
-------------------------------
많이 사랑해주세요.
후원계좌 : 401149-52-092752 농협 민*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