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살아보니 쓸데없는 계산하느라
남들과 비교하느라 힘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 제법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더라.
세상의 정말 중요한 일들은 ‘외로움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외로움은 ‘정말 중요한 일’을 이뤄내는 원동력(原動力)이라고 생각한다.”
- 매일 괴테와 ‘영혼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 괴테에 30년 넘게 매혹된 이유라면?
“‘문인(文人) 괴테’는 그의 지극히 작은 단면이다.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宰相)이자 4개 부처 장관을 지낸 정치가였고 1400점의 그림을 남긴 화가였다.
뉴턴의 광학(光學)이론에 맞서 색채와 식물을 깊이 연구했고
화재 난 극장을 다시 건축하는 일도 책임졌다. 1749년부터 1832년까지
82년에 걸친 괴테의 삶은 현대인에게 귀하고 값진 영감(靈感)과 감동을 주고 있다.”
60년동안 <파우스트>...끈기와 지속성
그는 이어서 말했다.
“괴테의 자기형성(自己形成) 자체가 놀랍다.
적지않은 근·현대 철학·예술가들은 어딘가 일그러져 있거나 병들어 있는데
괴테는 인생을 원만하고 견실하게 살면서 탁월한 작품들을 남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단테 등과 달리 괴테는 지금 시대와 훨씬 가깝다.
전문화돼 있으면서도 일그러지지 않은 괴테는 우리에게 전인적(全人的)인 자기형성의 훌륭한 모델이다.”
- 어떤 측면이 그런가?
“가장 두드러진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끈기와 지속성이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모든 큰 노력에 끈기를 다하라’로 썼는데
그 자신이 이를 평생 행동으로 옮겼다.
예컨대 괴테는 <파우스트>를 22세부터 82세까지 60년동안 썼다.
3000여년의 시공(時空)을 넘나드는 <파우스트> 2부는 당대에 이해받지 못하리라 생각해
죽기 한 해전인 1831년 여름 봉인해 장롱속에 넣었다.
이듬해 죽음을 눈앞에 둔 정월, 그는 봉인을 풀어 수정한 뒤 다시 봉인했다가 3월22일 타계했다.”
전 원장의 이어지는 말이다.
“괴테는 광학 연구에 40년 동안 매달렸고, 식물 연구도 1786년 이탈리아 여행 무렵부터 시작해 평생에 걸쳐 했다.
인도의 설화를 소재로 한 발라데 한 편을 쓰기 위해 그는 ‘40년을 품고 다녔다’고 했다.
그 한 편의 시(詩)를 ‘다마수쿠스의 검(劍)’처럼 날카롭게 벼린 것이다.
가볍고 표피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지금 시대에서는 찾을 수 없는 긴 호흡으로
탄생한 괴테의 작품들은 더욱 독보적인 가치와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바이마르 공국(公國)에서 산업부 장관도 맡았던 괴테는 은광(銀鑛)을 살리기 위해 1만8000종의 광물을 수집해 연구했다.
놀라운 정열과 탐구력이다”고 밝혔다.
호기심과 탁월한 시간관리
- 문인이면서 동물학자, 해부학자, 지질학자, 외교관, 신학자 등으로 괴테는
어떻게 이처럼 다방면의 활동을 할 수 있었나?
“괴테는 ‘종이시대에서 가장 생산적인 문인’이었다.
괴테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구술(口述)에 능숙해 다방면의 호기심을 소화할 수 있었다.
더 결정적인 것은 탁월한 시간관리이다.
괴테는 평생 아침 5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고, 오후 1시부터 사람들과의 식사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연극 공연을 주관했다.”
그는 이렇게 이어 말했다.
“괴테는 ‘시간이 나의 재산, 내 경작지는 시간’(Die Zeit ist mein Besitz, mein Acker ist die Zeit)라고
노래했다.
그는 손자 발터에게는 ‘오늘과 내일 사이에는 아직 긴 시간이 있다.
처리하는 법을 빨리 배우라’고 써 줬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면서도 아둥바둥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고 여유와 관조(觀照)를 즐긴 괴테는
시간관리의 달인(達人)이었다.”
人間愛와 생의 마지막까지 분투
- 많은 문학 작품에서 드러난 괴테 정신의 정수(精髓)는 무엇인가?
“1만2111행의 시(詩)로 짜여진 대장편 희곡인 <파우스트>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이다.
인간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는 것은 갈 곳, 목표, 지향점이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방황이 멈춰지고 자족과 정체(停滯), 그리고 안주(安住)가 일상화된 삶이라면
목숨이 붙어 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생을 마치기 직전까지 <파우스트>를 수정하고 다듬었다.
바이마르 괴테하우스의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침상(寢牀)에 가면, 벽에 음향학 용어사전과
지질학 용어 사전이 걸려 있는 게 보인다.
괴테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 매일 아침 두 궤도에 적힌 용어를 외웠다고 한다.
비록 그의 침실은 하인 방 보다 좁았지만….”
전 원장은 “괴테가 세상에 남겨놓은 것은 파우스트, 베르테르 같은 허구(虛構)의 인물들만이 아니다.
그는 ‘괴테’라는 인물 자체를 남겼다.
우리는 괴테라는 근대인의 표상(表象)을 통해 자기 삶을 성찰(省察)하며 한량없는 감동(感動)과 감화(感化)를 받는다”고 했다.
- 어떤 측면에서 괴테가 근대인의 표상인가?
“한 번 주어진 자신의 삶 뿐 만 아니라 이웃과 민족을 지극 사랑하면서 문제 해결과 극복을 위해 철저하게 고민하며 대안을 내놓으려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정치·행정가로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하려고 직접 많은 실용적 연구를 했다.
<파우스트>에는 ‘세계를 그 가장 내면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정신이 관통하고 있다.
괴테 스스로도 ‘일이관지(一以貫之)’ 정신으로 맡은 일을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행동의 밑바탕에는 ‘사랑이 살린다(Lieben belebt)’라는 인간애(人間愛)가 있다.”
-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분투하라는 뜻인가. 괴테도 그러했나?
그는 “괴테의 이런 꾸준한 활동의 생애는 지적(知的) 활동은 중단한 채
등산·유튜브 등으로만 대부분 소일(消日)하는 한국의 60~80대 노년층에게 울림을 준다”고 했다.
“인간의 가장 양질의 부분은 전율”
- 삶과 일에 철저한 괴테를 보노라면, 독일인의 치열한 직업정신(職業精神)이 떠오른다.
“동감한다. 괴테는 자기 분야에 누구보다 철저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어느 날 저녁 누구를 어느 식당에서 불러 얼마치 음식을 대접하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괴테의 이런 자세는 독일인의 전통으로 내면화되고 있다.
독일어로 직업은 ‘Beruf’인데, 여기서 파생된 ‘Berufung’은 소명(召命)의식을 뜻한다.
직업 수행을 자신이 태어날 때 부여받은 ‘소명의 실천’으로 여기는 인식이 견고하다.”
- 괴테가 남긴 문장(文章)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표현을 꼽는다면?
“<파우스트>에 나오는 ‘인간의 가장 양질(良質)의 부분은 전율(戰慄)이다’는 문장이다.
나이가 80~90세가 되더라도
열려 있는 사고(思考)와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 활력, 정열, 호기심의 중요성을 갈파한 말이다.
괴테 본인은 이렇게 살았다.
감성과 여유를 잃어버린 한국의 성인들도 되돌아봐야 한다.”
- 독일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한 ‘괴테 마을’을 짓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괴테는 ‘사람이 뜻[志]을 가지면 얼마나 클 수 있는가
‘그런 큰 사람은 어떻게 자기를 키우고 형성했나’를 보여주는
생생하고 위대한 전범(典範)이다.
괴테의 정신과 노력, 자세를 한국인들이 또렷하게 배우고 공유해서 괴테와 같은
큰 인물들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괴테로 말미암아 그가 살았던 인구 6만명의 소도시 바이마르는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 수도가 됐다.
‘괴테 마을’이 들어선다면 여주도 세계적인 명품 인문 도시가 될 수 있다.”
“1남1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엎드려 읽고 애 업고 읽고, 빌려다 읽고, 복사해서 읽었다.
무조건 읽으며 최선을 다해 구불구불 길을 걸었는데 눈은 캄캄했다.
매양 걸었는데 어느 순간 안 보이던 길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도(地圖)가 그려진 듯했다.
그리고 사람들한테 도움될 수 있고 내가 받은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루하루가 참 귀하고 소중하다.”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인생을 너무 계산적으로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비록 도중에 이 길이 맞는지 알 수 없다 할지라도
자신의 일을 성심성의(誠心誠意)껏 하면 그 안에서 길이 반드시 생긴다.
‘본업에 충실하면서 반듯하게 사는 게 손해보는 일만은 아니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 65세 퇴임 후에 더 바쁘고 건강해 보인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작은 일이라도 내가 안 하면 표 나는 일을 최소한 한 개 이상씩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집안, 동네, 사회, 어디에서든 좋다.
직장 다닐 때 같은 직위나 돈을 바라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면 가정, 사회, 세상에서 내 자리가 만들어진다.
여백서원에 와서 봉사하는 은퇴자 분들은 아주 작은 일을 해도 어마어마하게 성장하더라.”
-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인가?
“서원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늦은 밤, 작은 등불을 들고
캄캄한 후원(後園)을 걸어 가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단칸방의 불을 켤 때이다.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땀 흘려 노동하고, 읽고, 쓰는 게 아마도 마지막 날까지 저의 모습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