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 제16일(5/23). 맑음. 22도. 수분재-원촌리
-재를 넘어서-
장수에서 콩나물 국밥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첫 버스편을 타고 다시 수분재에서 내렸다. 08:30
갑화백은 어느새 버스 안에서 할머니 한 분을 사귀어 드링크 1병을 얻어 마신다.
그 할머니는 1병 밖에 없어 갑화백 한 사람만 줘서 굉장히 미안해 한다.
괜찮아요, 할머니. 그 마음만 고맙게 받을께요.
수분재에서 어느 마을 할머니에게 혹시나 해서 '김세호'씨 집을 아시는지 물어봤다. 그 할머니는 김세호씨는 이미
작고하셨다며 그 분이 살던 집을 가리켜 준다. 알고보니 어제 무심히 지나첬던 버스정류장과 주유소 사이의 자그마한
바로 그 집인데, 가까이 가서 안을 들여다 보고 실망했다. 이럴수가! 집 내부는 지금 남녀 화장실로 개조되어 있었다.
아니, 그럼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가 화장실 지붕이란 말인감? 이미지 차원에서 제발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버스 정류장에 연세 높으신 할머니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계시다가 나를 보더니 말을 건다.
-왜 그러고 댕겨?
-그냥 걸어서 여행 다니고 그래요.
-밥은 제대로 먹고 다녀?
-예, 객지에 나와서도 먹는 건 잘 먹고 다닙니다.
-차 타고 다녀!
이곳 말씨는 전라남도와는 조금 다르다.
19번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중앙분리대가 있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걷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길을 벗어나려고 장수
읍내로 들어와서는 다른 한적한 지방도로를 물어서 가게되었다.
조설모는 길가 농협에 들려 약간의 여비도 현금으도 인출하고 또 하나로마트에도 들려 간식으로 사과, 두유, 양갱,
비스킷을 샀다.
장수읍이 내려다 보이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담배농사도 보이는가 하면 상큼한 풀냄새가 코끝에 감긴다. 뻐꾸기
소리도 한가하게 들려온다. 걷는 길이란 이래야 좋다. 걷는 맛이 난다. 어제 부절리 보건소에서 간호사가 처치해
준 발가락이 조금 편해졌다. 갑화백은 간호사가 누구 발가락만 만져줬다고 괜히 시샘을 한다.
물집 생긴 발가락은 휴식을 끝내고 일어서서 발에 시동을 걸고 1단으로 출발 할 때에는 통증이 심하다가 2-3단으로
넘어가면 그때는 통증이 잊혀진다. 무감각해 지는 것이다.
오르막길을 다 오르고 보니 여기가 '싸리재(540m)'라고 되어있다. 11:30. 싸리재를 넘어서 계남면의 어느 농장 입구
소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며 사과와 간식을 먹는데, 농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한분 나오더니 사람들이 쓰레기
버린다고 괜히 우리한테 심통맞게 군다. 인심하고는....
다시 일어나서 걷다가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식당을 만났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까지 그 자리에서 쉰다.
이 때가 하루중 가장 졸음이 오는 시간이다.
장계면 사무소를 지나니 거창 방면의 갈림길이 나오고 이정표가 보인다. 그 쪽은 육십령과 남덕유로 가는 길이며,
내 큰며느리 친정인 거창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 번엔 거창 방면으로 내 고개가 한참 돌아간다.
날씨가 무덥다. 무주-통영 간 고속도로 다리 아래 그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또 오르막길인 집재(해발 510m)를 넘었다. 그리고 산촌 삼거리와 매례 삼거리를 지나 다시 솔재(해발 530m)를
넘었다. 오늘만도 세 개의 재를 넘었다.
이제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우리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지쳐갈 무렵 오늘 하루의 걷기를 마감할
곳을 찾아간다.
목적지인 원촌리에 도착하니 오후 6시. 부근에 민박집은 없다.
하는 수 없이 7km 떨어진 안성까지 막차 버스로 이동, 숙소를 찾아 들었다. 갑화백이 우리 빨래를 모아가지고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안성에서 목욕탕에 가려고 모텔 주인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여자가 목욕하는 날이란다. 남자는 내일이라나..
손님이 하도 없어서 만든 제도라지만 재미있다.
저녁을 먹고 PC방도 모두 문 닫고 해서 숙소에 들어와 쉬는데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늘 북한산에
다녀왔다는 얘기며, 엊그제 봉은사 절에서 관광버스 50대로 합천 해인사에 다녀왔는데, 너무너무(!) 좋았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줄줄이 엮는다.
나도 전에 가야산 등산 때 해인사에 들렸었는데 계곡이 참 좋더라고 하자, 그 좋은데를 그동안 자기를
빼놓고 혼자만 다녔냐고 공연히 열을 내다가, 영감이 집에 없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고도 한다.
이 할망구 안 되겠네. 화백의 싱글, 엔젤과 연달래를 보내 정신교육 좀 시켜야 겠구나. 영감 없이 살아가는게
얼마나 외로운지를....
오늘 걸은 거리 : 30.7km. 7시간(휴식 제외)
코스 : 수분재-(19번 도로)-장수-장계-원촌리
첫댓글 (완주)재밋는 세상 구경 많이 하고 계십니다. 목욕탕을 남,녀가 번갈아 쓰는거 사람 없는데 참 경제적이네요. 시몽, 사모님도 아주 심심하게 지내시는거 같지 않아 넘 다행입니다. 좋은델 좀 모시고 다니세요. 앞으로 06.05.24 22:13
(whitekimkj)뭐시냐 정신교육은 우리가 받아야하고 그냥 놀다오라고 하면 뭐 생각(?)해 볼까요? 동행 못한 서러움 함께 나누면서리 06.05.24 22:15
(캡화백맏딸)푸하하하~ 정신 교육~ 너무너무 재미납니다~ ^^ 06.05.25 09:23
(김용우)아버지 어머니 목소리가 항상 밝으세요. 떨어져 계시니 그렇게들 좋으세요??? ^^;; 제가 지금까지 30여년 보아왔던... 그..... 그.. 그...... 모습 들은..... -.-+ 06.05.27 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