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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소설 본질과 그 미학의 세계
설성경 ‧ 최영 (나손인문학연구실)
들머리
지금까지 학계에서는「홍길동전」을 본격적인 영웅소설로,「춘향전」을 염정소설로 보아왔다. 이들 17세기의 대표소설들을 유형이나 주제에 따른 분류로 파악해온 표면서사 중심의 작품성의 규정은 이제 표면서사에 연계된 이면서사에 내장된 본질적인 주제인 작가가 경험한 내우외환의 문제를 소설작품을 통하여 일부나마 해결해보려는 성리학자들의 애국심이 한쪽으로는 군주를 향한 제왕학으로, 다른 한쪽으로는 통속소설로 독자들에게 파고드는 성리이념의 실용적인 훈민학의 요소를 가진 작가들의 강력한 목적의식이 투영된 작품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되어온 조선 중기의 대표 고전소설의 비평이나 해설, 또는 단편적인 연구에서는 도달하지 못했던 한국의 작품이 지닌 특질을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론에서 얻어진 최신 연구성과로 보면, 이들 작품의 보편성은 성리소설이라는 공통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도출하게 된 데에는 50여 년, 2세대와 3세대에 걸친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요, 한국적 연구 방법론을 만들어내겠다는 연구 기술과 방법론 개발에 대한 특별한 의지의 결실이다. 개발에 성공한 한국 문학 연구 방법은 <광통학>이라 일컬어지는 한국적 연구 방법이다. 이 방법에서는 작품 상호간의 특질, 작가 상호간의 특질, 시대 상호간의 특질을 통시적 측면과 공시적인 분석을 포용하여, 작품을 창작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생각지도를 먼저 논리적으로 구축하여 얻어낸 성과이다. 동시에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이고, 역사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접근 방법을 통해 융합한 결과로 내우외환의 문제를 야기시키는 요소들을 원천에 해소하는 성리학에서의‘도심’을 지키는 주인공 중심의 서사작품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들 고전작품은 성리학적 이상국과 이상사회의 이념을 누구나 알기 쉽게 소설로 풀어 쓴 성리학의 응용소설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광통학의 방법론으로 개별 작품의 진면목을 찾아보면, 이들 작품은 미학적인 측면에서 공통 요소를 포함하면서도 각각의 상대적인 미학적인 특질로 구분하면, 야성미가 더 강조된「홍길동전」, 감성미가 더 강조된「춘향전」이라 평가할 수 있다.
2. 대표 고전소설의 속성은 성리학자가 창작한 성리소설
조동일교수는 1976년에 서울대학교에서「영웅소설 작품구조의 시대적 성격」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7년에는「이기 철학의 전통과 국문학 이론의 새로운 방향」,「자아와 세계의 소설적 대결에 대한 시론」,「소설시대의 이해를 위한 예비적 고찰」,「소설의 성립과 초기소설의 유형적 특징」을 묶어『한국 소설의 이론』으로 출간을 했다. 조동일교수는 이기철학과 국문학 연구를 연계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철학적 논리화와 함께, 성리철학이 문학작품으로 형상화 되었을 것을 전제로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한 철학적 논리와 문학적 형상을 풀어내었다. 그러면서「홍길동전」,「조웅전」같은 작품을 영웅소설의 범주로 놓고, 성리철학 문제를 풀어나갔다.
이때, 조동일 교수는「춘향전」은 서울대학교 출신 선배교수인 김동욱 교수의 박사논문 「판소리계 소설의 실증적 연구」를 받아들여 판소리 소설로 보았다. 그 결과「춘향전」은 근원설화에 근거한 적층문학 유동문학으로 보아 서민문학 민중문학의 범주에 넣었다. 이러한 방향성은 그의 제자 정병설에 의해서「춘향전」은 적층문학이기 때문에「춘향전」의 작가는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굳이 논의하자면, 온국민이 작가라는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김동욱 교수의 연구실에서 7년간 개인 지도를 받은 설성경은 지도교수 김동욱의 학설을 발전적으로 극복하면서, 김동욱 교수와 반대편에서 선 이가원 교수의 춘향전 양반 작가설을 융합하여 남원 진사 조경남 작가설을 세웠다. 설성경은 대학에서「춘향전」을 배울 때는「춘향전」을 지은 사람은 천민 광대들이고, 어떤 광대들이 떠돌아다니는 근원 설화들을 주워들어서 이야기로 꾸며 노래로 부른 것이 판소리며, 이런 판소리가 유행하자 어떤 사람이 그 광대들이 부르는 가사를 받아 적은 것이 소설「춘향전」이 되었다고 배웠다. 그래서「춘향전」을 비롯해서「심청전」,「흥부전」같은 작품은 판소리계 소설이라고 한다. 이런 근원설화 중에는 암행어사 설화, 신원설화, 열녀설화, 신물교환설화 등등이 있다고 했다. 또 일설에는 남원 지방에 춘향이라는 못생긴 처녀가 있어서 사또 자제를 짝사랑 했으며, 자기 딸이 비록 못생겼지만, 사또 자제를 좋아해서 상사병으로 죽게 되자, 늙은 엄마가 낮에 몸종이 책방도령을 꾀어서 집으로 데리고 오게했다. 그리고 책방도령이 그 여자와 하룻밤을 자게 하고, 못생긴 자기 딸을 몸종과 바꿔치기 해서 잠자리에 들게 했다. 다음날 깨어보니, 사또자제는 자기와 하룻밤을 지낸 처녀가 워낙 못생긴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곧장, 나가려고 할 때, 춘향은 그래도 하룻밤을 지냈으니, 그냥 가지 말고, 무슨 정표라도 하나 주고 가라고 했다. 책방도령은 준비해간 것이 없었기에, 손수건을 건네주고 갔다. 책방도령이 떠나간 후 춘향은 더욱 그리움에 사무쳐 더 이상 살 수 없어 동네 뒷산에 가서 목을 매어 죽었다. 그 이후로 남원에는 가뭄이 들어 사람들은 춘향의 죽은 원혼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이런 사태를 안타깝게 여긴 어느 이방이 종이 세 장에 춘향이야기를 적어 제사를 지냇더니 광한루 모퉁이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그 후로 가뭄은 해소되고 모둔 상황은 정상이 되었다. 그때 이방이 지었던 세 장짜리‘춘향 위로이야기’가 늘어나서「춘향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홍길동전」과「춘향전」은 작가가 성리학자들인 것이 공통점이다.「홍길동전」은 동인의 영수 허엽의 아들 교산 허균이 썼고,「춘향전」은 율곡의 재전 제자요 중봉의 제자인 산서 조경남이 썼다.「홍길동전」에서는 홍길동이 중국으로 진출하여, 괴물 울동에게 납치된 조씨녀와 백씨녀를 구출하고 이 두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다.「춘향전」에서는 이념혼사를 기본주제로 다루어 퇴기의 딸과 부사의 아들이 사랑을 하고, 시련을 거친 다음 재회하여 신분을 뛰어넘는 위대한 혼사를 하는 서사를 중심으로 삼고 있다.
3. 허균의「홍길동전」에 형상된 야성미
나손인문학연구실에서는 2019년에‘우리가 알고 다시 읽어야 할 고전’으로『홍길동전 바로알기』>를 설성경 ‧ 최영 공저로 나녹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이 책을 공저로 출간한 이유는 『춘향전의 비밀』,『홍길동전의 비밀』,『구운몽의 비밀』 등에서 부분적으로 활용한 학술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제시할 뿐만 아니라, 성리학의 도설 전통을 잇는 본격적 학술디자인이 등장하는 책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허균은 내우외환으로 시달리는 조선의 정치가요 학자요 작가로서 당대의 여러 갈등들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혁신소설「홍길동전」을 창작 유포시킨 것으로 파악하였다. 작가 허균은 홍길동전을 통해 성리본심을 회복하는 사회로 바꾸어보고자 하는 창작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았다. 홍길동전은 팩션으로 표면서사에서는 서얼 출신 홍길동이 활빈당의 수령이 되고, 조선의 병조판서가 되고, 국외로 나아가서는 율도국의 왕이 되는 이야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표면서사 이면에는 기축옥사와 같은 정치 문제와 임진왜란, 정유재란 같은 내우외환의 해결책, 동인과 서인의 정치 갈등 해소 방안을 담았다. 작가 허균은 역사에서 발굴한 실존 인물 홍징장군의 손자 홍길동을 주축으로 하여, 당대의 상황에서 전란을 뚫고 갈 인물인 율곡, 사명당, 서애 같은 인물을 투사한 대표 모델을 내세워 내우외환의 혼란기에 백성들의 민생을 해결하는 영웅 병조판서로 탄생시켰고, 이어 율도왕으로 그린다. 모델이 된 실존인물 홍길동의 패기 넘치는 삶과 한,중,일로 뻗어가는 영웅의 삶은 아시아의 혁신 영웅상의 의미 있는 한 전형인 홍길동으로 우뚝세웠다.
허균은 1612년 8월 마지막으로 큰형 허성까지 세상을 떠나자 혈육이 모두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형의 친구였고, 자신이 따랐던 임란의 의승장이요 난후에도 쇄환사로 일본을 다녀온 사명당의 비문을 지으면서 느낀 바를 토대로「홍길동전」을 지은 것으로 파악하였다. 허균에게 두 형인 허성과 허봉은 그가 과거에 급제를 한 이후에 조정에 나아가 관직 생활을 할 때, 동인의 영수인 부친 허엽 못지 않는 정치적 후견인이었다. 허성은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부친의 후광을 받으며 조정의 중신으로 활동하였다. 허균은「홍길동전」을 창작하면서 가족들의 실제담을 세종시대 홍상직의 얼출로 추정되는 홍길동 이야기와 무르녹였다. 가정에서는 천대받고 모함당하는 서러운 존재였지만 가출하여 혼탁한 사회에서 의로운 행동으로 활빈당 수령이 되어 탐학한 관리들에 맞서 가난한 백성을 구제한다. 또한 자원 병조판서의 직책을 얻어서 중국으로 진출하고, 중국에서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괴물 울동에 납치되어 고통받는 백씨녀와 조씨녀를 구출하여 두사람을 아내로 맞고, 조선에서 데려간 부하들을 조련하여 군사력을 증강한 다음에 남해에 제3국 섬나라인 율도국을 공격하여 왕위에 오른다. 이후 조선의 부모를 모셔오고, 조선과는 형제국의 관계를 맺는 영웅의 일대기를 보여주었다. 이런 표면서사에 연계된 이면서사에서는 비유나 상징, 때로는 전고를 통하여 15세기인 세종 시대에서 예종에서 성종시대를 거쳐서 홍상직의 얼자 홍길동의 시대로부터, 작가 허균이 살았던 17세기의 선조와 광해군 시대에 걸친 사화와 옥사들을 비롯하여 기축옥사를 거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을 겪는 내우외환의 비극적인 시대를 소재로 삼으며, 다시는 이런 어두운 시대를 되풀이 하지 않는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이 되는 성리이념이 살아있는 평화와 행복의 나라를 만들자는 소망을담아 허균은 성리이념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 성리소설「홍길동전」을 혁신 징비록과 같은 차원에서 창작해내었다.
허균이 이런 인물들을 융복합하여 주인공 홍길동을 영웅으로 형상하여「홍길동전」창작에 대한 동기가 촉발된 시점은, 형처럼 모시던 임진왜란의 의승장 사명당의 비문과 문집의 서문을 지으면서이다. 승려인 사명당이 자신보다 국가를 위해 전쟁과 외교의 일선에서 활동한 사실에 크게 감동하고 깨달은 바가 있어 참회의 자세에서「홍길동전」을 창작하게 된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므로「홍길동전」에서 서출 홍길동의 영웅담 속에 강병부국과 보국안민의 주제를 서얼 차대의 철폐위에 내세웠다. 특히, 홍길동의 율도국 정벌 이야기의 역사 소재로는 세종 시대에 잦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한 사건과, 1609년에 대마도가 유구를 침략한 사건에 대해 작품 속에서 응징하고, 유구의 평화를 지켜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홍길동이 중국에 진출하여 괴물 울동을 퇴치하고 두 처녀를 구하는 이야기는, 처녀들을 납치해서 아내로 삼으려는 악의 상징인 괴물 울동을 처단하고, 고통 속에 있던 여성들을 구출해 내는 이야기다. 괴물 울동으로 부터 구해낸 그 처녀들은 홍길동의 아내가 되고, 후에 홍길동이 율도왕이 되자 율도왕비가 된다.
「홍길동전」은 중국의「수호지」를 본받으면서도, 앞선 시기의 김우옹의 심성소설인「천군전」의 이중서사 방식을 계승 발전시켜, 속 이야기에 당대의 정치 갈등을 포함시켜 조선형으로 더욱 발전시킨「혁신 수호지」를 창작했다. 그 결과 표면서사에 연계된 전고에 따른 이면서사를 통하여 기축옥사를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최영경의 옥사와 관계가 깊은 인물인 이흡을 지목하여, 작품 속에 포도대장 이흡으로 전환시키고 그 실명을 노출한다.
작가 허균은 정여립 사건에서 비롯되어 동인계 관료와 천명에 가까운 유학자들에게 피해를 준 최대의 정치적 참사인 기축옥사를 환기시킴으로써,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내우외환의 문제를 이념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원리를 서얼 출신 영웅 홍길동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였다.
또한, 허균은 주인공 홍길동을 통해 적서 차별의 사회적 분위기를 창조적으로 뛰어넘는 민중 영웅 홍길동이, 의적 활빈당의 당수가 되고, 실력으로 자원 병조판서를 제수받아 해외로 출국하여 율도왕이 되는 서사를 통해, 재능있는 조선의 인재들을 적서 차대와 당쟁의 희생물로 삼은 기축옥사 사건을 원천에서 제고하게 한다. 이는 조선 최대의 내우를 원천에서 제거하는 성리도심의 회복과, 이를 위정자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확산시키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최초의 성리소설「홍길동전」창작의 목적인 것으로 판단된다.「홍길동전」의 전반적인 구조를 살펴보면, 전반부 국내편과 후반부 해외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반부의 국내편에서는 서출인 홍길동이 병조판서가 되는 이야기가 핵심을 이루고, 후반부 해외편에서는 조선의 병조판서 홍길동이 바다 건너 중국으로 진출하여, 중국의 사회악인 괴물 울동을 퇴치 시키고, 망탕산 기운을 받아 제 3국인 율도국을 정복하여 왕위에 오르는 것이 핵심이다. 서사적 전개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은 정치 사회적 풍자나 개혁을 위한 비판을 이중 서사 구조 위에서, 각각의 주제도 이중으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개했다는 점이다.
홍길동이 활빈당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친민중적인 영웅으로서의 삶을 펼치는 것은, 당대의 현실에서 기대하던 실제 영웅의 탄생에 대한 독자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기능을 했다. 즉, 제도적 질곡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좌절감을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하게 했다. 특히, 후반부에 나오는 율도국의 건설은 국내에서의 장벽을 해외공간으로 이동시켜 시원하게 해소시킨다. 그러나 일반적 서사 체계에서는 작품의 논리적 결함을 지적을 받기도 한 이상국으로 설정된 율도국은, 중국 남경에서 더 남쪽 바다로 진출한 곳이며, 율도국 자체는 살기 좋은 곳이고 인물이 번성한 곳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약간의 도적이 있었음이 암시되고는 있으나, 그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을 법한 일이며, 불의가 지배하는 곳은 아니다. 허균은 이곳을 홍길동이 이상을 펼칠 새로운 무대로 제시하며, 특히 작품에서 활빈당의 활동과 도둑들을 훈련시켜 해외로 진출시키고, 해외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발상은 진취적인 사회 개혁의식으로서 작가 허균이 제시하는 시대를 뛰어넘는 혁신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4. 조경남의「춘향전」에 형상된 감성미
「춘향전」은 우리 고전문학을 대표한다.「춘향전」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춘향전」은 이미 가치 평가가 끝난 불후의 명작이다. 광의의「춘향전」은 원작가 조경남의 창작 이래, 원작의 개방적 성향의 특징으로 각 시대와 지역, 개작자의 신분과 취향 등에 따라서 다양하게 창조적 변이를 거듭해 왔다. 또 개작가의 관점에 따라 중심 인물의 설정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관객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작품의 내용이 변하면서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어느 작품보다도 매체의 발전에 따라 여러 장르로 더욱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춘향전」은 표현 양식의 다양화를 이루기에 가장 유용하게 활용되는 특성을 가진 작품으로서,「원춘향전」의 창작 이래, 380여 년간 ‘춘향현상’을 일으키며, 여러 장르로 재창작되는 창조적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춘향전」의 원작가 조경남은 남원 출신으로 평생을 남원에서 살았다. 그의 일생은 양대 전란으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특히 그는 정유재란 당시 무능한 중국의 원병 장수가 도망하고, 조선군이 혈전을 벌인 끝에 남원성과 함께 몰락할 때, 의기 있는 장교들은 화염 속에 버티고 서서 몸은 죽여도 정신만은 죽일 수 없음을 보여주었고, 수많은 백성들이 맨몸으로 싸우다가 죽어가는 현장을 직접 보았다. 왜란이 끝난 후, 전란으로 소실되었던 광한루 등이 복원되었지만, 당시 전란의 후유증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부패한 관장들의 가혹한 정치였다. 즉, 물질적으로 파괴된 것은 다시 복구할 수 있었지만, 파괴된 정신은 제대로 복원되지 않은 결과이다. 아니나 다를까 40년 만에 다시 호란이 발발하였고, 조경남은 왜란 때처럼 의병을 모았으나 모아지지 않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 원인은 왕정 질서의 신념이 무너졌고, 그렇게 되기까지는 지방관들의 사리사욕도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상적으로는 중세적 질서의 재건을 기도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지방관의 탐학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작가 조경남은 고통받는 춘향의 형상에는 전후 수탈받는 백성의 전형을 담았고, 신의를 지켜 돌아오는 암행어사의 형상에는 중세 질서의 복구라는 이념을 담았다. 기생 춘향과 사또 자제인 도령과의 만남은 가장 낮은 자와 가장 귀한 자의 만남이다. 이들은 광한루에서 만나서 사랑을 했다. 전란으로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구된 광한루, 그 광한루에서 나눈 사랑은 신의와 절개를 중시하던 전란 이전의 정신세계가 복구된 사랑이다.
「춘향전」의 주제는 여러 계통의 이본들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 이본들을 토대로 보편적 주제와 개별 이본들이 담고 있는 개별적 주제로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춘향전」의 모든 이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랑, 신분 상승 욕구 등을 보편적 주제로 보고, 그와 반면에 각각의 이본들이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주제를 개별적 주제로 본다. 보편적 주제는 모든 이본에 공통되며「춘향전」의 전승 과정에서도 변하지 않지만, 개별적 주제는 이본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파악될 수 있다. 그러므로「춘향전」의 주제를 세 가지로 나누어 대주제, 중주제, 소주제로 파악해 볼 수도 있다. 대주제는 작품의 전체 내용을 대변하는 주제이고, 중주제는 작품의 전반부나 후반부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을 대변하는 주제이며, 소주제는 작품의 구성 요소들이 소설에 수용되기 이전에 설화적 상태로 있을 때의 주제이다.이 작품이 지닌 문학적 감동의 원천은 사랑의 완성을 유예시키는 운명적 시련과 이별, 그리고 뜻밖에 이루어진 암행어사 출두의 극적인 반전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정의는 끝내 승리한다는 결말은 선악의 삼각구도에서 등장하는 변부사에 의하여 증폭된다.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의 방해자인 변부사와, 사랑을 지키려는 춘향과 이어사의 결합은 남녀간의 자유로운 만남이 금기시되고, 사랑마저도 계급적 제약에 의해 규제받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를 벗어나려는 순수한 사랑이 극적인 서사의 공감력을 높여준다.
성리소설「춘향전」이 지닌 주제의 한 갈래는, 탐관오리에 대한 징치다. <금준미주> 시로 그 절정을 이루는 어사출도 대목은 이몽룡이 백성들의 한을 씻어주고, 삶의 현장에서 희망을 확인해주는‘환과 희’의 절정을 제시하는 대목이다. 변부사의 생일잔치에서 사령들이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기 전에 <금준미주> 시를 통해 은근히 드러내자, 잔치에 모여있던 남원 인근의 여러 고을 수령들이 눈치를 채고 허겁지겁 도망을 시작하는 그 순간에, 암행어사 출도가 외쳐지자, 생일 잔치상이 뒤집어지고, 탐관오리의 학정을 징치하는 암행어사 출두의 대반전이 일어난다는 극적인 표현이「춘향전」의 대단원이다.
5. 성리소설의 이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보조 성경학>의 길
17세기 성리학자들이 특수한 전고를 통하여 그 의미를 확충시킨 성리소설의 심층적 주제를 탐색하는 연구 방법인 광통학은 통속소설과 유사한 표면서사의 이면에 숨겨진 본질적인 의미를 탐색하는 방법이다. 공격적인 전고를 활용하는 특수한 서사를 통해, 때로는 전고적 서사의 유기적 융합으로, 때로는 서사에 내장된 점진적인 의미의 축적과 적층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연구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구체적인 작품과, 그 작품의 전후 시대 작품과의 상대적 상관관계를 통해, 소설의 표면과 이면의 이중적인 서사구조를 분석하여 성리학 시대의 학자들이 창작한 작품 속에 특수한 장치를 통해 서사적인 자아를 투영시켜 심층적 주제를 내장한 것을 찾아내게 되었다.
「홍길동전」의 경우는 광해군 난정 시대에 출세와 좌절을 거듭하던 허균이 한문 단편을 창작하던 경험 위에서, 자신보다 100년 전에 활동했던 인물 홍길동이 정통 역사 기록에서 지워진 것에 반발이라도 하듯이, 성리소설의 주인공으로 부활시켰다. 고려말 홍징 장군의 손자를 문학으로 되살려, 작품 속에서는 홍판서의 얼출로 투사시켰다. 그러면서 역사 인물 이흡을 내세워 활빈당 수령 홍길동에게 우롱당하는 표면서사의 이면서사에서는 정철이 위관이 되어 1천명에 가까운 동인의 선비들을 숙청한 기축옥사를 비판하며, 성리도심의 주인공 홍길동이 율도왕에 오르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춘향전」의 경우는 작가 산서 조경남이 자신의 제자 성이성이 남원의 책방도령에서 인조가 특별히 아끼는 호남암행어사가 된 역사적 사실과, 홍월과 유점의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실화 등을 융합시켜서 영남과 호남의 소통을 이면서사에 내장하였다. 「춘향전」은 춘향의 수절과 열녀정신, 암행어사의 변치않는 사랑과 약속의 실천을 성리도심으로 풀어내었다.
나손인문학연구실에서는 이미 5년 전에 공동 저서인『홍길동전 바로알기』를 출간하였기에, 그 후속 작업으로『춘향전 바로알기』를 집필하고 있다. 이런 사제동행의 연구 활동은 17세기 성리소설이 전해주는 고전의 지혜로 보수적으로 안주하기 쉬운 우리 주변의 여러 상황들을 쇄신하는 길을 찾아보고, 그 찾아진 혁신의 길로 들어서는 적극적인 삶의 길을 제시한다. 이 길이 겉으로는 짚신문학회라는 이름처럼 낡은 방식같이 보일지라도 그 본질에서는 성리소설의 선비정신을 실천하는 현대판 ‘짚신정신의 귀중한 본질’이다. 이는 송골 오동춘 회장의 인생철학인 ‘참삶 뼈삶 빛삶’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짚신문학회 회원들의 애국정신의 뿌리이며, 기독교 기반의 창조적인 한국형 인문학 정신으로 열어가는 <보조 성경학>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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