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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서부교회 교인들 |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 교회’라는 호칭을 듣던 서부교회. 1만 3천여명이라는 주일학교 학생들이 매주 서부교회를 출석하면서 당시 단일교회 최초로 기네스북에 올라갔을 정도다. 1980년도에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주일학교 교회로 인식되어 많은 교회들이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리모델링했고, 기성성도들도 약 5천여명이 출석하며 부산지역 최대의 교세를 자랑했다. 하지만 1989년 8월 27일 새벽 4시 50분경 담임목사 백영희 목사가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다 괴한의 칼에 맞아 순교하면서 서부교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교회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성도들이 양분됐고, 급기야 92년 10월29일 서영호 목사의 신임투표가 부결된 후 교회가 양쪽으로 갈려 지금까지 한지붕 두 교회(서영호 목사측-백명희 사모측)가 공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후 양쪽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때론 긴장상태로 15년 동안 따로 예배를 드리면서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본보는 양쪽 서영우 목사와 백명희 사모(백영희 목사의 딸)와의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본인들에게 인터뷰를 거절당했다. 백명희 사모 언니인 백순희 사모측에서 대리인을 내세우겠다는 답변을 해 왔지만 실제적으로 대리인 인터뷰는 이뤄지지 않았고, 서영호 목사측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거절해 오면서 “지금 기사가 나간다면 이후 좋지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간접적인 압력도 행사해 왔다. 때문에 본보는 서부교회 성도들과 서부교회에서 이탈해 나간 성도등을 통해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서부교회의 15년 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여 독자들에게 알 권리를 제공하고, 하루속히 서부교회가 제도권으로 나와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차원에서 이 기사를 쓰게 되었다.
총공회 창시자 백영희 목사
서부교회를 알고자 한다면 먼저 백영희 목사를 알아야 한다. 1910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백 목사는 27세때 고신 거창교회(주남선 목사)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후 집사가 되어 무급교역자로 시무하면서 1939년부터 45년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투쟁하였고, 49년도 위천교회에서 주남선 목사의 추천으로 첫 유급목회의 발을 딪게 된다. 1952년 7월 부산 서부교회 3대 목회자(1대 손이원 목사(손양원 목사 동생), 2대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로 부임(한상동 목사와 박윤선 목사의 일치된 청빙에 의해)했고, 1954년 6월 고려신학교 8회 졸업을 하게 된다. 당시 나이가 44세였다. 하지만 상회불복종죄로 1959년 고신교단에서 제명당하면서 독자적으로 서부교회를 이끌어 오게 된다. 이후 1966년 총공회를 발족하게되고 서부교회를 세계최대의 주일학교 교회로 부흥성장 발전시키게 된다. 백영희 목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주일학교 부흥이다. 백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 한 영혼의 가치는 장년반이나 주일학생이나 동등하다는 운동을 펼쳐왔고, 이 운동이 주일학교 부흥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또 이 운동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백 목사 재임시절 약 120여 교회를 개척하게 되고, 총공회가 크게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의 신학은 고신교단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진보적 보수교단으로 통합측에서는 총공회를 극보수교단이라는 표현도 해왔고, 고신을 비롯한 일부 교단에서는 총공회를 이단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외에도 백목사는 집필활동에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400-500쪽 분량의 목회설교록까지 100여권 발간했고, 82년도에는 백영희 목회연구소를 설립해 왔다. 89년 8월 27일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다 괴한의 칼에 맞아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 80세였다. 아이러니하게 그의 평생 소원은 설교하다 주님곁으로 가는것이었다. 비극적이었지만 그의 소원은 이뤄진것이다.
백 목사 사후 혼란스러운 서부교회
총공회의 독특한 행정중의 하나가 2년마다 목사, 장로가 신임투표를 받는 제도다. 일선한국교회가 90년대 이후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신임투표를 실시해 오는 교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서부교회가 소속된 총공회는 72년부터 실시해 왔다. 기간도 2년이며 75%를 넘지 못한다면 목사는 이동을 장로는 직분을 내려놓아야 하는 지금현실에서도 파격적인 제도이다. 총공회에서는 이 신임투표가 교역자의 이동에 크게 반영되곤 했다. 서부교회가 혼란스러워진 것은 서영호 목사와 백명희 사모측의 갈등에서 비롯되었지만 표면적으로는 이 신임투표가 교회를 갈라놓는 계기가 되었다. 백영희 목사의 후임으로 부임한 서영호 목사는 92년 10월 29일 실시한 2년임기의 신임투표에서 69.8%의 지지율을 획득 사실상 교회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 목사의 반대측 사람이 16장의 부정투표를 갖고 있는 것이 발견되어 서 목사측에서 투표자체를 무효로 선언해 버렸다. 당시 92년 12월 14일 (석간)부산일보에는 “14일 새벽 서부교회 성도 300여명이 서영호 목사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3시간 가량 농성을 벌렸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서영호 목사측은 “투표과정에서 16장의 부정투표가 발견되어 투표자체가 무효며 승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금도 서 목사 반대측은 “당시 16장의 반대표를 제외하더라도 서영호 목사는 신임을 얻을 수 없었다. 반대로 당시 서 목사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찬성표가 약 200표가 더 있어야 했다. 16표의 반대표 때문에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핑계”라고 주장했다.
한지붕 두교회, 그리고 파행적인 교회 행정
현재 서부교회는 서영호 목사측의 예배와 백명희 사모측의 영상예배로 따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문제는 백명희 사모측의 예배는 과거 백영희 목사의 영상설교를 15년동안 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고인의 영상설교를 매주일 듣는다는점에 대해 일부 신학자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또 서부교회는 모든 행정이 파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 서영호 목사가 신임을 얻지 못한 점 때문에 당회장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5년동안 직분 임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장로, 집사의 임명이 없을뿐만아니라 성찬식도 거행하지 않고 있으며, 학습, 세례식도 공식적으로 드릴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개별적으로 세례를 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15년동안 재정공개가 없다는 점이다. 행정목사인 이탁원 목사는 “교회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재정공개는 하지 않지만 목사와 장로들은 재정상태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는 서영호 목사측 뿐만 아니라 백명희 사모측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부교회를 이탈해 나온 그룹이 4개 정도에 이른다. 서부교회를 이탈해 나온 모 교회는 처음 100여명이 이탈해 나왔지만 현재 300명이 넘게 부흥해 있다.
15년전과 현재는
교회가 파행적으로 운영되다보니 서부교회의 현재는 과거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5천여명이 출석했던 15년전에 비해 지금은 약 3천여명의 성도들이 출석하고 있다. 이중 서 목사측은 2,300여명이 자신들측에, 그리고 나머지 700여명이 백명희 사모측 예배에 출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고, 백명희 사모측은 2천여 명 대 1천여 명 비율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세계최대 주일학교 교회라는 말이 무색하게 과거 13,000여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출석했지만 지금은 1/10 수준인 1천 5백여 명의 학생들이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제도권으로 나와야
신임투표와 더불어 총공회의 독특한 행정중의 하나는 목사, 장로의 임기가 없다는 점이다. 과거 백영희 목사가 80세까지 일선 목회를 한점도 이 때문이다. 때문에 서부교회가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교회의 혼란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선 장로교의 경우 목사, 장로의 임기때문이라도 양측이 다시 머리를 맞대고 후임자 논의를 하는 등 대화가 계속될 수 있지만 현 서부교회의 경우 어느 한쪽이 현 상황을 만족하고 버틸 경우 혼란은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취재과정에서 들리는 말로는 양쪽이 활발한 대화를 나누고 있고, 다시 합해질 수 있는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좋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이탁원 목사는 “활발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기사가 나간다면 자칫 문제가 더 꼬일 수 있다”며 이번 기사를 보도하지 말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15년동안 가장 폐쇄적인 교회로 운영되어 온 서부교회가 하루아침에 문제해결이 될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고 있다. 서부교회를 이탈해 나온 모 성도는 “모든 문제점을 드러내고, 양측이 활발한 대화를 해 나간다면 꼬인 매듭을 한 가지씩 풀어나갈 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후대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이런 상황을 지속해서는 안된다. 과거 축복을 내려주신 하나님과 서부교회를 이렇게 키워오신 백영희 목사님이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지 양측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