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 12: 16-21 수면위의 인생
1992년 가을 미국의 마이클 플랜트라는 유명한 요트 선수가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대서양 횡단에 나섰습니다.
플랜트는 이미 단독으로 세계 일주 항해를 한 베테랑이었고 요트항해 분야에서는 그의 기술을 따라올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그가 타고 갈 중형 요트 코요테호는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 진 현대 항해 지식의 전형 이었습니다.
여기에 비상시에 인공위성으로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는 에펍 무전기를 구입했습니다.
이 에펍 무전기는 네 번만 연속으로 짧게 신호를 올리면 지상 관제소에서 망망한 대해에서의 위치를 정확히 잡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플랜트의 항해에 대해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었습니다.
최고의 항해사에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요트에 인공위성 구조 장비까지 갖추었기에 가족 친지들은 대대적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항해를 떠난 지 11일 만에 플랜트와의 무전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은 그가 험한 날씨와 싸우는데 열중한 나머지 본부 기지에 연락을 취할 수 없었을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더욱이 인근을 지나던 선박들에게서도 구조신호나 조난 신호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연락 두절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수색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비행기와 선박이 대서양을 샅샅이 흝기 시작했지만 몇 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신호도 관측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무도 예상치 못한 유럽의 포르투칼 앞바다에서 코요테호가 완전 전복되어 있는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플랜트는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플랜트가 요트 선실에 비치에 두었던 비상시 부풀려 쓰는 뗏목을 타고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화물선의 갑판으로 끌어올려진 코요테호의 선실 안에서 플랜트의 목숨을 구했어야 할 그 뗏목이 부풀려지다 만 상태로 발견되자 , 사람들은 아연 실색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항해 11째 되던 날 캐나다와 미국의 지상 관제소에는 에펍 무전의 조난 신호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위치 파악에 필요한 네 차례의 짧은 신호가 들어오는 대신 단 세 번의 신호만 들어왔기에 이 짤막한 전신을 그냥 무시 했다고 합니다.
더 이해 할 수 없는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배를 아는 사람들은 아실 겁니다. 모든 배들은 반드시 수면 아래쪽이 위쪽보다 더 무거워야 한답니다. 그래야만 풍랑을 견딜 수 있다는 군요
이런 면에서 요트는 배 가운데서 가장 안전한 배라고 합니다. 요트는 절대로 전복 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요트를 보면 위는 아주 매끈합니다. 치장이 별로 없습니다.
대신에 보이지 않는 수명 아래에 수면 위보다 3배는 무거운 용골을 설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뒤집어져도 마치 오뚝이 인형처럼 벌떡 일어 난다고합니다.
그러니 최고의 요트가 전복된 채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이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 배에는 이 용골이 감쪽같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용골이 순간적으로 떨어져 나갔기에 플랜트는 긴급 구조 요청도 보낼 겨를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매우 유능하고 경험 많고 찬사를 한 몸에 받던 사람이 해상에서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 이 이야기의 의미가 무엇인가 ?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것입니다.
경험 많은 뱃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바다를 결코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면 바다 멀리 나가면 당연히 늘 폭풍이 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악의 사태도 늘 염두에 둡니다.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폭풍은 찾아 옵니다.
어려서부터 인생인란 고통없이 , 고민없이 , 불편없이 살아야 한다는 서구식 교육을 받은 신세대들에게도 삶의 폭풍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해마다 월급이 오르고 안락한 생활과 권태나 난관이 없는 결혼 생활을 누리고 육체적 질병과는 무관하리라는 가정 하에 청소년기를 거쳐서 성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나이가 얼마입니까?
직장에서 쫒겨난 친구들도 있고 육체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교통 사고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인생의 풍랑을 여러분은 몇 번이나 경험하셨습니까?
또 앞으로 얼마나 큰 풍랑을 몇 번이나 겪으실 것 같습니까?
사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라는 것을 체득하셨을 것입니다.
어른신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 없는 땅에서 태어나 남의 나라 말로 이름을 짓고 배우다가 6.25 거치고 보릿고개 넘으며 고생 고생 하면서 여행 한번 갈 시간 없이 정신없이 살아 오셨을 것입니다.
나는 못먹어도 자식들은 배 고프지 않게 하시려고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피셨을 것입니다.
나는 못 배웠어도 내 새끼들은 배우지 못한 서러움 안 받게 하려고 눈 한번 제대로 못 부치셨을 것입니다.
이제는 자식들 다 가르치고 출가까지 시켜 놓아 좀 편하게 살려는데 서산으로 해가 져가고 있습니다.
돈은 있는데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겁니다.
등과 허리 어깨는 밤마다 쑤시고 그렇게 튼튼했던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만난 것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모릅니다. 재미난 것을 보아도 재미가 느껴지질 않습니다.
이것이 인생인가 싶고 지나 온 날들 생각하면 눈 깜짝할 사이였는데 후회와 한 만 남습니다.
성경은 인생은 해뜨면 없어질 안개와 같다고 합니다. 해아래서 수고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한탄합니다.
아직 내 발로 뛰고 내 손과 머리로 힘껏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여러분들
여러분이 세운 계획이 무엇입니까?
좀더 큰 집에서 살고 문화적인 생활도 누리고 좋은 차 타고 생활비 걱정안해 보며 살기위해서 오늘도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자식들 가르치는 것 하나만도 벅차서 그냥 돈 버는 기계가 되어 있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자원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 보이는 것에만 투자하지 않습니까?
수면 위 , 남들의 눈에 보이고 현재 보기에 좋은 것들에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여자들의 옷차림 보십시오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답습니까?
얼마 전 평택 박애 병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송탄을 오는데 복잡한 버스 안에서 자리에 앉아 책을 보는 여대생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참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우리 평택지역에 그렇게 예쁜 아가씨가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을 정도였습니다.
아가씨가 보고 있는 책도 미우라 아야코의 “길은 여기에” 라는 인간미 넘치는 감동의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참 아름답다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버스가 통북동 시장 로타리에 이르자 70대의 할아버지가 타셨습니다.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공교롭게도 이 여대생 앞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대생은 계속 책만 보는 겁니다. 독서에 열중한 나머지 할아버지를 못 보았던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합니다.
드디어 이 아가씨가 눈을 들어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책을 보는 겁니다.
이때부터 제 눈에는 이 여자의 미모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얼굴값도 못하는 인격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만 들고 불쌍하고 그 사람의 그 미모가 추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수면위는 그럴 듯 한데 수면아래는 형편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속 깊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가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술 한잔 먹고 헤롱 헤롱 헤져야 이야기하는 가식의 대화는 많지만 진정으로 영혼을 어루만지며 울어줄 친구들은 없습니다.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고 몸이 부서져라 흔들어 대며 춤을 추지만 그 때 뿐 더 깊은 절망감만 허무감만 자리합니다.
찜질방에서 목욕은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데 정작 속은 더러운 시궁창과 같습니다.
더러운 노폐물 빼겠다고 황토방이다.
불가마속에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지만 더러운 돈 냄새는 빼낼 생각을 안합니다.
오직 돈을 위해서 삽니다. 수면 아래 자신의 영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언젠가 내가 넘지 못하는 인생의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경험이 기술이 재산이 사람들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엄청난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많이 가지면 그것이 천국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를 찾아야 합니다. 세상이라는 그럴 듯한 신기루 속에서 나를 찾으면 돈이 있어야 내가 존재하고 출세해야 내가 존재하고 남들 하는 것 보다 더 갖고 해야만 나를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기 입니다.
인생은 소유를 넓혀가는 과정이 아리라 진리를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수면 위에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
여러분 행복하고 싶습니까? 아니 지금 행복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모두 행복한 사람이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줄 수 있는 것은 신기루 입니다.
어떤 가정 이든 속에 들어가 보면 고통이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없는 사람이든 있는 사람이든 창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모두 고통이 있습니다. 슬픔 근심이 다 있습니다.
고통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행복 , 하나님 안에는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수면 위에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서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근본은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의 육체를 만드시고 영혼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눈에 보이는 육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인데 근본을 떠나서는 인간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는 육체의 근본인 자연을 가까이 해야하고 영혼은 영혼의 근원인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나무가 흙을 떠나서는 살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과 자연을 떠나서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속히 하나님과 자연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은 요트의 용골을 채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근본입니다
사람이 대단한 존재 같지만 태어나서 일평생 하는 것들을 분석해 보면 인생의 삼분의 일은 잠을 자면서 죽는 연습을 하면서 보내고 삼분의 일은 먹을 것을 준비하고 그것을 먹고 싸는 데 보내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골병들게 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다가 어느 날 죽음이 찾아오면 아무 말 없이 너무나 허망하게 싸늘한 시신이 되어 정든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시골마을들을 찾아가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꾸미는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몇몇 할아버지 할머니는 스튜디오까지 올라와 퀴즈대회를 즐겼습니다. 진행자가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깁니까?"라고 물었지요. 어떤 팀은 호랑이, 어떤 팀은 사자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호랑이가 이긴다고 생각합니까?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을 못합니다. 사자라고 대답한 팀에게 왜 사자가 이긴다고 생각합니까? 물었더니 할머니 한분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습니다. "사자가 무섭지요. 호랑이든 사람이든 다 잡아 가는 건 저승 사자예유." 스튜디오 안은 한바탕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어느 날 불쑥 찾아 옵니다.
죽음만큼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죽음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인생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확정된 시한부 인생으로 지금도 죽음을 향해 달려 가고 있습니다.
병들어 죽든 차에 치어 죽든 , 전쟁으로 죽든 젊어서 죽든 , 늙어서 죽든 , 가난하게 살다가 죽든 부자로 살다가 죽든 권세를 누리며 살다가 죽든 언젠가는 모두 죽습니다.
미인도 죽고 추녀도 죽고 성공해도 죽고 출세해도 죽고 실패해도 죽고 유식해도 죽고 무식해도 죽고 대통령도 죽고 거지도 죽도 성자도 죽고 악인도 죽고 박정희도 죽고 이병철도 죽고 정주영도 죽고 김일성도 죽고 플라톤도 죽고 그들을 따르는 자도 죽었고 또 죽을 것이고 ... 할아버지도 죽고 아버지도 죽고 어머니도 죽고 나도 죽을 것입니다.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의 분리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육체는 물질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 육체는 시간이 경과하면 누구나 늙어 죽습니다. 하지만 영혼은 비 물질이기 때문에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그런데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육체를 벗어난 영혼은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 이후에
“ 천국에서 영원히 사느냐 , 지옥에서 영원히 사느냐 ” 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문제입니다.
인생 최대의 문제는 얼마나 많이 버느냐가 아닙니다.
수면 위의 문제가 아니라 수면 아래의 문제를 보실 줄 알아야 합니다.
죽음 앞에서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 ”가 무슨 소용입니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폴란드에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습니다. 독일 나치가 2 차 세계 대전 때에 유대인들을 가장 많이 학살한 수용소로서 역사의 교훈을 삼기 위해서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여러개의 방이 있는데 각 방마다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첫 번째 방에는 안경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두 번째 방에는 가죽 신발이 , 세 번째 방에는 금 이빨이 가득 들어 있다고 합니다.
나치가 유태인을 죽을 때까지 노동력을 착취하고 더 이상의 노동력이 안 나올 때 죽이면서 남겨둔 것들입니다.
왜 이것을 남겨 두었을까요 ?
당시는 전시 상황이었습니다. 머릿털은 밀어서 독일군들 방한복에 집어 넣었고 뻐로는 아교를 만들어 섰고 나머지 안경 구두 금이빨은 물자가 모자랄 때 쓰려고 보관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써보지도 못하고 전쟁이 끝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 이 독일 군들이나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행복을 위해서 쌓아두고 쌓아두려고만 하지 다 쓰지도 못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보십시오
창고를 크게 지어습니다. 물건과 곡식이 많아서 창고를 헐고 새로 지었습니다. 꽉꽉 채워 놓고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고 합니다. 행복한 삶을 누리자고 합니다. 그런데 수면 아래에 준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오늘 밤에 내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비웃고 있습니다.
제가 입고 있는 양복 어지간하면 10 년 이상 거뜬히 입습니다.
옷이 헤어져서 못입는 것 보다 싫증나서 유행 지나서 못입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옷장에 꽉꽉 채워져 있는 옷들 일년 가도 못 입는 옷도 있습니다.
연예인들 아무리 옷이 많아도 한벌 옷 밖에 못입습니디.
아무리 큰 집에 살아도 한평 침대에서 잘 뿐입니다.
아무리 돈 많아도 밥 세끼 먹는 것은 못 가진 사람과 똑 같습니다.
죽음 앞에서 사람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안됩니다.
이 세상 눈에 보이는 것을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부자가 아닙니다.
행복해질 수도 없습니다. 엄마 잃은 아이처럼 불안하고 공허하며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사금팔이 가지고 어려서 땅따먹기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점심 시간에 땅따먹기 합니다. 좀더 많은 땅을 차지 하기 위해 싸우기도 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을 냅니다.
점심 심간 끝나는 종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아무리 많은 땅을 차지 했어도 모두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두 교실로 들어가고 난 운동장은 쓸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이 시간이라도 부르시면 힘쎈 권력도, 건강했던 몸도, 쌓아둔 재물도 다 소용없습니다. 모든 인생에겐 끝이 있고 종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물 때문에 여러분 정말 기쁘십니까?
여러분이 배운 지식 때문에 정말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의 자리 때문에 정말 감격 스럽습니까?
그런데 참다운 행복은 환경이나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사랑에서 옵니다.
인간은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젊은 연인들은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밥을 안 먹어도 행복합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합니다. 그냥 둘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겁니다.
옆에 있는 부인 봅시다. 사랑해서 결혼했지요 지금도 행복합니까? 그냥 웃습니까?
이 행복은 오늘도 행복해야 하지만 내일도 모래도 그리고 죽음 이 후에도 계속 행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도 행복하고 죽음 이후에도 계속 행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진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정해 놓은 법을 어기면 행복하고 싶어도 감옥에 끌려가야 하는 것처럼 ,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하나님의 감옥인 지옥에 끌려가서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인생 최대의 실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진리 안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성공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수면 아래 꺼져가는 나의 영혼을 사랑하십니다.
불쌍히 여기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분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면 영원히 행복 할 수 있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시간 우리의 구주로 다시 한번 내 육체의 수면 아래서 만나십시오
사람은 죽지만 존재는 영원합니다. 허무한 것이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죽음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죽는 것으로 인생이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존재 합니다.
수면위만 치장하다가 점점 침몰되어 가는 배가 되지 마시고 수면 아래 내 영혼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남으로 영원한 행복을 소유할 수 있는 즐거운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