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상의 구분
경영형태·업무지역·부설목적·수송대상에 따라 분류된다.
⑴ 경영형태:초기단계에는 주식회사 형태가 많았으나 현대에는 전국적인 철도망 형성으로 국유·국영형태를 채용하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영국 철도는 1947년 법률에 따라 국유화되었고 63년부터 공공기업체로 운영되고 있다. 독일 철도는 20년 독일국유철도 설립으로 국유화되어 현재 국영사업체로 운영되고 있으며, 프랑스 철도는 37년 공사혼합주식회사 발족 이래 국유화를 추진하여 83년부터는 전액 정부출자 사업체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 철도는 제 1 차세계대전중에 한때 국가의 관리 아래 있었으나 기본적으로는 민간주식회사이고, 1970년 이후 국가가 운영·관리하는 철도로서 앰트랙(철도여객공사), 콘레일(북동지역철도)이라는 특수회사가 설립되었다. 한국에서는 1899년 처음 개통된 이후, 외국인이나 내국인에게 철도부설권이 부여되어 초기단계의 철도사업이 진행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건설사업이 추진되었고, 광복 전까지 일부 사설철도회사가 있었다. 광복 후 1946년 5월 10일 남한 소재 사설철도와 부대사업 일체를 국유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1989년 12월 30일 법률 제4192호 한국철도공사법이 제정되어 93년 1월 1일 한국철도공사로 개편되었다.
⑵ 업무지역:전국철도·지역철도·지방철도 등으로 나누어 구분할 수가 있다.
⑶ 부설목적:보통철도·도시고속철도와 같은 여객수송을 하는 철도, 등산철도·광산철도·산림철도와 같이 특정 여객이나 화물을 수송하는 철도, 임해(臨海)철도와 같이 특수한 산업구조의 유지를 위한 철도 및 군용철도 등으로 분류한다.
⑷ 수송대상:여객과 화물을 취급하는 일반철도, 여객만을 취급하는 여객철도, 그리고 산림·광산 철도와 대부분의 임해철도와 같이 화물만을 수송하는 화물철도가 있다.
철도의 기능과 역할
자동차가 출현하기 전에는 각국의 주된 육상교통기관이었으나 자동차 보급과 항공기 발달로 그 역할이 해마다 축소되는 추세이다. 1980년대의 철도수송 점유율은, 여객수송에서는 영국·프랑스·독일이 7∼11%, 미국이 1%, 화물수송에서는 12∼38%로 되어 있다. 유럽과 미국 각국의 교통체계에서 철도의 역할은 여객수송보다는 화물수송이 더 크다. 한국은 1961년도 여객 13.0%, 화물 47.9%에서 96년 각각 5.9%, 8.6%로 격감되었다. 자동차 보급과 항공기 발달에 따라 철도에 기대하는 기능으로서는 ① 중·장거리 화물수송 ② 도시간 여객수송 ③ 도시권내 통근수송을 들고 있으며, 이용률이 낮은 지역철도는 버스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 환경·안전·에너지·국방 등의 관점에서 철도의 기능과 역할을 평가하고, 철도가 필요한 분야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철도에 기대하고 있는 기능과 역할은 프랑스 TGV로 상징되는 신속성과, 도시권의 통근·통학에서 볼 수 있는 대량수송이며, 이는 21세기를 향한 철도의 특성을 발휘하는 분야로 전망된다.
한국의 철도
한국에 철도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76년 개항 후 일본을 다녀온 김기수(金綺秀)의 《일동기유(日東記遊)》에서였다. 이후 89년 미국주재 한국대리공사 이하영(李夏榮)이 귀국하면서 세밀한 철도 모형도를 가져와서 철도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조선정부는 처음으로 철도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일본을 비롯한 세계열강은 한국의 철도부설권을 획득하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참이었다. 조선정부는 96년 3월 경인철도 부설권을 미국인 J.R. 모스에게 특허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7월 경의철도 부설권을 프랑스의 피브리유(Fives Lille)회사에 주었으나, 이를 실행하지 못해 99년 7월 박기종(朴淇淙)이 창설한 대한철도회사가 특허를 받았다. 경인철도는 97년 기공을 했으나, 당시의 국내 사정으로 일본인이 경영하는 경인철도합자회사에 양도되었다. 이리하여 99년 9월 18일 한국 최초의 철도인 인천∼노량진 간의 경인선 33.2㎞를 완공, 개통하게 되었다. 그 뒤 여러 회사가 부설권을 얻어서 철도를 건설하게 되었다. 철도행정은 94년 농상공부 공무아문(工務衙門)에서 관장하였고, 1900년 궁내부에 철도원을 설치하였으나, 1906년 통감부에 철도관리국이 설치됨으로써 한국 철도경영은 일제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일제는 경인·경부·경의·마산선을 직접 장악하고, 10년 한일합방을 강행한 뒤, 조선총독부철도국을 설치하여 식민지 경제 착취를 위해 철도망 확장에 착수하였다. 14년 호남선, 28년 함경선을 완성하였고, 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제는 대륙과의 연락을 확충할 목적으로 국경지대 철도확장작업에 착수하여 37년 혜산선(惠山線), 39년 평원선(平元線)·만포선(滿浦線)을 완성하였고 41년 경경선(京慶線), 42년 중앙선을 개통하였다. 1914년 이래 총독부의 보조를 받아 사설철도회사들이 착수한 지선(支線)들이 다수 완성되어 식민지 정책 수행상 필요한 철도 노선이 거의 완성되었는데, 45년 광·협(廣狹) 철도의 총길이는 6362㎞에 이르렀다. 광복 후 미군정 아래 교통국이 설치되었으며, 정부수립 후 교통부가 설치되고, 63년 교통부 외청인 철도청이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99년 경인철도 개통 당시에는 증기기관차 4대, 객차 6량, 화차 28량으로 영업을 하였으나, 광복 당시에는 기관차 1166대, 객차 2027량, 화차 1만 5352량, 역 762개, 종업원 10만 527명이 되었다. 그 뒤 6·25로 많은 철도시설이 파괴되었으나, 전후복구와 철도재건에 노력하여 60년대에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성과로 철도 시설과 장비도 크게 발전하였다. 동력차도 증기기관차에서 디젤기관차·전기기관차로 대체했을 뿐만 아니라, 열차자동제어장치(ATC)·열차집중제어장치(CTC)·자동폐쇄장치·열차무선전화설비 등 서비스 시설 확대를 가져왔고 냉난방시설이 완비된 초특급열차(새마을호)가 서울∼부산간 4시간 10분에 주파하게 되었다. 그 동안 철도는 여객과 화물 수송에서 독점적인 위치에 있었으나, 70년대 들어서 경부·호남·영동 등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자동차를 상대로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하였다. 한때는 수송수요 감소와 수입 감소로 시련에 직면한 적도 있었으나, 73∼75년에 연속 개통시킨 중앙·태백선 전철화사업으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었고, 74년 개통된 수도권 전철은 도시교통수단으로서 철도의 중요성을 과시하였다. 또한 디젤기관차는 물론 전기동차·객화차를 국내에서 제작하고 국외에 수출하기에 이르렀으며, 철도기술자의 해외진출도 이루어졌다. 1998년 현재 전철을 연결하는 국철(國鐵)의 영업 노선은 53노선, 3124.7㎞나 된다. 그 중에서 복선 부분이 28.9%(901.2㎞), 전화(電化) 부분은 21.2%(661.3㎞)이다. 주요 간선(幹線)으로는 경부선(서울∼부산, 444.3㎞), 호남선(서울∼목포, 418.5㎞), 중앙선(청량리∼부산, 501.3㎞) 등이 있으며 완행열차 외에 새마을호·무궁화호·통일호·비둘기호 등 4등급 특급이 각각 달리고 있다. 서울∼부산을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으로 단축하는 경부고속철도가 건설중인데 프랑스의 테제베(TGV) 방식이 채용되었다. 2003년 12월에 서울에서 대전까지, 2004년 4월에 부산까지 개통하여 운전할 예정이다. 한편 북한은 철도의 비중이 높은 교통체계를 이루어 수송분담률은 여객이 철도 62%, 도로 37%, 해운 1%, 화물이 각각 90%, 7%, 3% 정도이며, 철도 총길이는 5214㎞이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분단된 남북의 철도를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어, 2001년 경의선연결공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