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오랜 시간동안 뵙기를 원했던 회장님과 첫만남을 가지고 난 후
적잖이 놀라고 기쁘고,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체질의학을 알게 되고
이주일 동안 아주 조금인 지식을 가지고 확인 작업(?)에 돌입 했습니다.
사실 확인작업이라기 보다는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AK와의 조화를
생각하며 사주를 묻고 풀고 적용하고......
놀랍게도 AK로 치료 해 오던 알러지 파트와 아주 유사하게 들어 맞기도 하고
때론 아주 엉뚱한 문제와 마주 치기도 했습니다.
나름 임상에서 공부 해 오며 어떤 한계에 부딫힌 느낌을 갖을때 마다 또 다른 컨셉을 찿고
또 한치를 확장 시킨 느낌으로 치료에 임하고 다시 또 한계를 느끼게 되고
언제나 환자는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팜므파탈의 존재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 이면서
또 아픈 채찍이어서 더 채울 것을 찿아서 헤메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제 박정 선생님과의 공부로 이 헤메임의 종착역에 가깝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동안의 뭔가 조금 아쉬운 부분의 부족함이 이제서야 후련함으로, 채워지기 보다 비워지지 않을까
그런 가슴 설레는 기대감이 듭니다
지난 이주차에 너무 많은 시간을 강의 주제와 상관 없이 소비해 버리도록 한점....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 만족을 주신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치료사로서 보다는 치유자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고요 행복한 만남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대체의학에 관한 글이 하나 있어서 올려 봅니다...^^
지금 인류의 대부분이 진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신념 중에 '특정병인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특정병인설이란 모든 질병에는 특정한 원인이 있으니 그 원인을 찾아내서 제거해야 병이 낫는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세균감염병의 경우, 그 병을 일으키는 원인균을 찾아내서 그 균을 죽일 수 있는 항생제와 같은 화학약품을 써야 병이 낫는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이론은 일면 너무나 당연한 듯이 보이지만 여기에 반대하는 의사그룹도 꽤 많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세기 초 코호라는 의학자가 콜레라균을 발견하고, 콜레라는 콜레라균에 감염됨으로써 발병한다는 세균병인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때 코호 못지 않게 위대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던 페텐코우퍼나 메치니코프 같은 의사들은 이 이론에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콜레라로 사망한 환자의 배설물에서 추출한 콜레라균 수백만 개를 컵에 담아가지고 자기 동료들과 함께 대중 앞에서 직접 먹어 보이 는 실험을 했습니다. 콜레라균이 몸에 들어온다고 해서 꼭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신들의 몸으로 생체실험을 했던 것이지요.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들 실험자들 전원의 대변에서 콜레라균이 검출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사람만 가벼운 설사를 일으켰을 뿐 단 한사람도 콜레라 환자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실험실 내의 연구와 현실세계는 명백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파스퇴르나 코호가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연구결과가 자연계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지요. 병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세균이 하나의 부분적인 원인이 될 수는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심리상태, 영양상태, 노동조건, 전신의 면역력, 체질적 요인, 나이 등 더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병의 감수성을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콜레라균을 직접 먹어 보인 의학자들의 생체실험으로 코호나 파스퇴르의 세균병인설은 오류임이 증명된 셈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세균병인설은 백년이 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서양의학의 중심사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오류를 증명한 학자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반면 코호나 파스퇴르 같은 세균학자들은 위대한 의학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당시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유럽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하던 때라 계층간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따라서 소외받던 절대 다수 대중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과로에, 영양실조에, 생활환경조차 너무 열악하여 영아사망률도 높았고 평균수명은 40세가 채 못되었습니다. 당연히 폭동과 같은 대중저항이 그칠 새 없이 일어났습니다.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세균병인설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지배계층의 통치논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즉 정치나 경제가 잘못되어 질병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세균이 병을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병에 걸리는 것은 세균 탓이거나, 혹은 세균에 노출된 개인에게로 그 책임을 떠넘기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의학이라는 것이 건강과 질병에 대한 생물학적 진실들만 축적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해왔을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의학 역시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생활양식과 같은 사회적 요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한 시대의 의학을 잘 살펴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한 모든 조건과 상황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사람들의 의식, 문명,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바뀌어감에 따라 의학의 모양도 그 조건대로 틀림없이 바뀌게 됩니다. 오늘날 첨단 의료장비와 선진적인 의약품들이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새롭게 개발되어 나오는 것은 의학자들의 순수한 의학탐구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데는 제약회사나 의료장비회사들의 자본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첨단 의료장비나 선진적 의약품의 등장이 꼭 참된 의학발전의 지표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아무튼 근래에 와서 앞서 말한 특정병인설에 반대하고 나서는 의학자들의 움직임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예방접종에 대한 일부 의사들의 반대운동이 그 하나의 예가 됩니다. 특정한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므로 세균을 찾아내서 병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되었고, 따라서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기 위한 예방접종은 불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특히, 이들 특정병인설 반대론자들은 세균질환이 아닌 암, 고혈압, 심장병 같은 만성 퇴행성 질환에까지 특정병인설을 적용하여 특정한 한두 개의 원인을 찾아내서 치료하겠다는 태도에 대해 크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체를 여러개의 부속품들로 조립된 기계처럼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세포가 모여서 생체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체 그대로가 하나의 단위이므로 이를 분해하고 분석하자마자 생체로서의 특질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항상 생체 전체로서 관찰할 수밖에 없고, 설령 생체를 분해하고 분석해서 어떤 뛰어난 생물학적 자료를 얻어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전체로서의 생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간염환자의 간에서 감염 바이러스를 확인했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그 환자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감염 바이러스의 검출이 부분적인 참고자료는 될 수 있겠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그 환자의 심리와 생리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입니다.
요즘 가장 문제시되는 암 치료법에 대해서도 의사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견해가 맞서 있습니다. 수술이나 항암제, 방사선 치료, 면역요법 같은 정통적인 치료방법에 동의하는 의사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 서있는 의사들도 상당합니다. 몇해 전 일본의 암치료 전문의사인 곤도 교수가 발표한《암을 건드리지 말라》라는 책은 그래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곤도 교수의 입장에서는 기계 부속품 수리하듯 암을 잘라내는 일은 생체를 전체로서 이해하지 못한 소치라는 것이지요.
대체의료가 나오게 되고 이것이 대중들의 선호를 받게 되는 이유는 기계론이나 특정병인설의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들은 수술이나 화학약품 같은 공격적인 방법을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런 방법을 써서 자연치유능력을 발현시킴으로써 전체적 조화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질병만 치료한다기보다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치료한다는 개념이지요.
의학은 신념체계다
서양의학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여러가지 의학체계나 치료방법들을 두루 살펴보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 물론 동양의학은 서양의학과는 아주 다른 차원에서 출발하고 있으므로 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방법도 당연히 다르리라는 것을 우리는 대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동양의학인데도 중국의 전통의학과 인도의 전통의학은 그 내용이 상당히 다릅니다. 이런 점들을 보면 결국 어느 문화권이나 나름대로 독특한 전통의학을 가지고 있고 이런 전통의학들은 현대에도 그 문화권의 틀 안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공식의료권 밖으로 한번 나가볼까요?
공식적인 정통의료 바깥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체의료 또는 민간의료 방법들이 있습니다.
홍채학(虹彩學)이라는 일종의 대체의학이 있는데, 이것은 눈의 홍채를 통해서 간, 신장, 심장 같은 전신의 각 장기의 상태를 읽을 수 있다는 신념체계입니다. 이 홍채학의 방법은 대체의학을 탐구하는 서양의사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민간요법의 하나로 널리 유행되고 있는 수지침은 전신의 건강상태가 그 사람의 손에 모두 반영되어 있으므로 각 장기에 상응하는 손의 지점을 침구로 치료하면 건강이 회복된다는 건강법입니다. 이 수지침이 외국의 어떤 의과대학에서까지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나름대로 독특한 장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손에다 침을 놓는 것뿐이 아닙니다. 귀나 발을 통해 전신의 건강상태를 이해하고 질환을 치료한다는 이침이나 족침도 개발되어 있습니다.
눈, 손, 귀, 발과 같은 몸의 국소부위를 통해서 온몸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할까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이해하려면 몸의 각 국소부위마다 일일이 조사하는 방식보다는 의식과 신념의 탐사에서 출발하는 것이 보다 빠르고 쉬울 것입니다. 이것들은 신념의 나타남에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손이나 발, 눈이나 귀를 통해 온몸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치료가가 코를 통해서건 입을 통해서건, 아니면 배꼽을 통해서건 어떤 국소부위를 통해서 전신을 이해하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탐구해가면 그는 결국 그럴듯한 신념체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 합당할 만한 의학이론을 개발해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몸은 어떠한 신념의 내용도 되비쳐줄 수 있을 만큼 무궁무진한 정보와 모습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 몸의 세포 한개를 통해서 그 사람 전신의 정보를 다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러한 관점에서 탐구하게 되면 그 신념을 뒷받침할 만한 신념체계가 나타날 것입니다. 즉 사람 몸의 수십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그 사람 전체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다 포함되어 있음이 밝혀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현대의학은 이런 것을 증명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티끌 작은 속에 세계를 머금었고, 모든 티끌마다 우주가 가득하네(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의상조사(義相祖師)의 법성게(法性偈)는 생명에 대한 깊고도 오묘한 이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체질을 사상(四象), 팔상(八象) 같은 음양론으로 구분하여 그 체질에 맞는 섭생법이나 생활법을 따라야 건강해진다는 이론이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오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체질구분의 건강법들이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효과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체질론은 오랫동안 인류에게, 특히 동양권에서 집단신념으로 자리잡아왔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체질감별 치료법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가운데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음양체질론에서는 양성체질은 음성섭생을, 음성체질은 양성섭생을 취해야만 음양조화가 이루어져 건강해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양성체질이 양성섭생을, 음성체질이 음성섭생을 취하게 되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지요.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이 방법을 믿고 실천해서 건강이 좋아졌다는 사례와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치료가들은 그 반대의 처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양성체질은 같은 양성섭생을, 음성체질은 같은 음성섭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요? 어찌된 일인지 이 방법을 믿고 실천한 사람 가운데서도 병이 낫고 건강이 증진되었다는 사례와 증거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요즘 생수를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해서 생수음용이 널리 유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건강법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생수를 하루 2리터 가량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고 가르칩니다. 이 방법을 실천한 후 변비도 좋아지고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로 태양이 떠오르는 오전에 생수를 마시는 것은 생명의 불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으므로 생수음용을 피해야 하고, 식사 도중이나 식사 전후 두시간 동안은 일체 물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건강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을 믿고 실천하여 병이 낫고 건강이 좋아졌다는 사례도 물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치료법이나 건강법들 가운데는 그 이론이나 실천방법에 있어서 서로 상반되고 대립되는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가 옳다면 다른 것은 마땅이 틀려야 할텐데 상반되는 이 두 가지가 나름대로 효능을 발휘하고 있으니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이것은 한마디로 신념의 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대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심신에 병을 만들어내는 것도, 또는 병을 낫게 치료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신념이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에서 발견된 어떤 의학적 원리를 사람들이 옳다고 믿게 되어 많은 사람들의 신념이 여기에 보태지게 되면 그 원리는 더욱 강력한 치유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집단신념이 그 집단의 개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국사람들이 특별히 그 효능을 믿고 있는 산삼, 녹용, 웅담 같은 것도 이런 것을 별로 믿지 않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한국인들에게서처럼 큰 효험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동양인과 서양인이라는 체질상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작용을 하리라는 것도 사실이겠습니다만.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든지, 또는 민간요법을 사용하든지간에 자기가 좋아서 일단 선택했을 때에는 그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마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좋은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치료법을 쓰든지 환자와 가족 그리고 치료자 모두가 한결같은 믿음을 가지고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지니는 간절함의 정도가 치료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공(氣功)치료 가운데는 염력(念力)을 활용하는 방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염력이란 신념의 힘, 상념의 힘이란 뜻입니다. 어떤 암환자가 단지 맹물 한잔을 컵에 담아놓고 바라보면서 우주 가운데 충만한 자연치유력이 이 컵속으로 모두 모인다고 믿으며, 또한 모이고 있는 느낌을 가집니다. 그가 물 한잔을 먹을 때 이것을 온전히 믿고 염력을 사용할 경우 다른 치료법 없이 이것 하나만으로 암이 치료된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도 이런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염력침(念力鍼)을 활용하여 환자 몸에 어떤 침해나 불편함을 주지 않은 채 치료하는 방법도 있는데 치료자의 손가락 끝에서 기(氣)가 나간다고 믿고 훈련을 쌓으면 금속침을 쓰지 않고도 금속침 이상의 치료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믿음의 힘만으로 말입니다.
어떠한 요법을 수단으로 하든지간에 그것을 믿고 따르는 신념의 정도가 치유의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암환자 수술해서 얼마나 고쳤소?
내가 여러가지 의학체계와 치료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건강과 질병을 다차원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지니게 된 데는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습니다.
나는 한때 개인클리닉을 열기도 했고 그후 대학병원에서도 일한 적이 있지만 환자를 보면서 수련의 시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에 부딪치곤 하였습니다. 그동안 배운 지식과 실제의 간극을 절감하며 서양의학의 한계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그 전까지는 내가 받은 교육이 서양의학이고 다른 의학은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 서양의학만이 최고라고 생각했지요. 수술받은 암환자가 재발되어 다시 병원을 찾는다든지, 우리나라에 매우 흔한 골 관절통 환자들에게 진통 소염제와 물리적 치료가 별 도움이 안된다든지, 만성 간 신장질환, 알레르기,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 만성 퇴행성 질환에 서양의학의 치료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함을 절감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4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서양의학으로는 별 도움이 안되는 만성 난치성 질환자들을 위해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 작은 규모의 요양원을 세워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단식, 물치료, 부항, 맛사지, 식이요법 등 다양한 대체의료를 활용하고 있었는데, 공식적인 의료 외에는 의료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당시의 내게는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서양의학의 치료법이 약과 수술 중심이라면 그곳의 치료법은 그러한 틀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체의료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자 그곳 관계자는 일본의 대체의료 전문가인 마나까 요시오 선생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당시 이분은 기따사또 대학(北里大學) 동양의학 총합연구소 주임교수였는데 침술을 크게 발전시킨 공로로 일본의 최고의학상을 세번이나 받은 경력이 있었습니다. 이분 역시 50대 초까지는 외과의사로 일하다가 서양의학에 한계를 느끼고 대체의료와 동양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특히 침구분야에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습니다.
나를 향한 마나까 교수의 첫질문은 "외과의사라는데, 그래 암환자를 수술해서 얼마나 많이 고쳤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내가 크게 회의하고 있던 질문이었는데 그 역시 같은 문제로 고민했다면서 나를 위해 특별히 대체의학과 동양의학의 개요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아주 흥미가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자료용 슬라이드와 비디오를 통해서 보여준 것 가운데는 귀에 침을 놓기 전과 후의 변화에 관한 것도 있었는데, 침을 놓은 한시간 후에 그 이전에는 없었던 미세혈관들과 특별한 화학물질이 새로 생성되었으며 혈구수에도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서양의학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가느다란 침을 하나 꽂은 것만으로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하수 환자에게 침, 생약, 식이요법 등을 써서 방광 부위까지 죽 늘어졌던 위를 약 4주만에 배꼽 위에까지 끌어올려놓은 것을 비교한 엑스레이 필름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하수는 서양의학적 방법으로는 특별한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밖에도 완전탈모나 난치성 안과질환들이 대체의학적 방법으로 치유된 데이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마나까 선생은 자신이 원래 서양의학 전공자임에도 다소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 서양의학의 맹점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질병을 전깃불이라고 비유할 때 그 전깃불을 끄기 위한 방법에 있어서 서양의학은 보자기로 전깃불을 싸서 가리거나, 아예 몽둥이로 전구를 깨버리는 것과 같다면 대체의학이나 동양의학은 시간이 더디더라도 스위치를 찾아내서 살짝 누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증세 그 자체만을 억압하고 제거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전일적(全一的) 통찰을 통해 증세의 근본원인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시 마나까 선생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으나 어쨌든 이분을 만나면서 의학을 바라보는 데는 여러가지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체의료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자 선생은 먼저 한국의《동의보감》을 비롯하여 동양의학을 꼭 이해할 것을 당부했고, 일본의 임상의사들 중에 대체의료를 활용하고 있는 여러 분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대체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1987년 봄부터 나는 모든 일을 미루고 몇달 동안 일본을 방문하였는데 주로 대체의학을 연구하는 의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자연요법 연구소를 운영하는 도쿄의 와타나베 쇼우 선생과 나고야의 가씨오 선생의 병원에서 환자처럼 입원하여 단식을 직접 체험하면서 여러가지 자연요법의 원리와 실기를 배웠습니다. 단식과 생식의 과학적 연구에 있어서 세계적인 개척자로 공인받고 있는 오사카 대학의 고오다 교수의 연구소에 있는 동안 많은 환자들을 접촉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단식과 생식을 비롯한 자연요법의 탁월한 생명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오사카 대학의 예방의학 교수를 역임한 마루야마 히로시 선생은 당시 일본의 대체의학 연구가들의 대부격이었는데, 이분은 동양의 전통의학들 특히 인도의 아유르 베다를 꼭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여러가지 대체의학에 관한 이분의 연구 가운데서도 특히 식용소금에 대한 연구는 아주 유명합니다. 마루야마 선생의 주장에 의하면 식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뽀송뽀송한 정제염은 화학약품과 같은 것이므로 사람이 결코 먹어서는 안되며 자연 그대로의 천일염은 불에 구워 볶음소금으로 먹을 경우는 입맛에 맞는 만큼 짜게 먹어도 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개 서양의학에서는 짜게 먹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나 이는 하얀 정제염에 한해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소화기 내과의사로서 부항과 식양요법을 주로 해서 특히 간장질환의 치료에 명성을 얻고 있는 후쿠오카의 안도오 선생,《생명의 의학, 생명의 농업》이라는 유명한 저서의 내용처럼 인간의 생명을 하나의 우주로 보고 자연과의 전체성 속에서 관찰해야 한다는 나라(奈良)의 생태주의 의사 야나세 선생, 구마모토 대학 내과교수로 재직중에 본인의 만성간염을 대체요법으로 극복한 뒤 교수직을 그만두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꾸찌 양생요양원을 운영하는 다께구마 선생, 도쿄 대학 생리학 교수로 재직중에 서양의학의 약점을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의학을 제시한 모리시타 선생 등을 만났습니다. 지난 십여년간 내가 활용해온 대체의학의 방법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주로 이분들에게서 배우고 익힌 것들입니다.
1987년 가을 IPPNW(핵전쟁 방지 국제 의사회)와 관련된 일 때문에 미국의 하버드 보건대학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단체의 공동의장으로서 노벨상 수상자인 로운 교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분은 심장병 전문의였는데도 대체의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분을 통해서 서양에서도 다양한 대체의학이 독창적인 의료분야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서양의학과 병행하여 단식과 다양한 식양요법, 명상, 최면, 카이로푸락틱, 동종요법 등과 같은 대체의료를, 면허를 가진 의사들이 환자치료에 실제로 활용하고 있었고, 미 연방정부와 의료보험회사들이 대체의학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느꼈습니다.
의학에는 서양의학말고도 여러가지 대체의학이 있을 수 있으며 같은 질환에 대한 치료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1987년 한해 동안 일본, 미국의 방문, 그리고 국내의 대체의료 연구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하여 그후 다시 환자를 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나는 화학약품이나 수술만을 치료방법으로 여기는 데서 상당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서양의학을 도외시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환자를 위해서 어떤 것이 최선의 치료법인가를 검토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실제로 나는 자연요법과 같은 대체의학의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의 치료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의학에는 독특한 장점이 있다
내가 대체의학의 장점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활용하기 시작할 무렵인 1987년, 50대 후반의 간암환자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암덩어리가 두 주먹 크기로 만져졌는데 한 대학병원 암센터에서 한두달 내에 사망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이 환자는 내가 일하던 병원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암 부위의 통증이 심해지자 단지 진통을 목적으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꼭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으나 이 방법이 통증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자 환자와 가족은 내 방법대로 따르고 싶어했습니다. 생식을 위주로 몇가지 식양요법, 명상, 자기암시, 기타 자연요법의 방법들을 병행했는데 이 환자분이 이 방법을 믿고 열심으로 노력한 결과 입원 일주일만에 통증이 거의 사라지고 식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약 40일 가량 입원했는데 이 사이에 많은 호전이 있었습니다. 퇴원 후 자가치료를 꾸준히 계속하다가 약 3개월 후 처음 진찰받았던 암센터에서 재진을 받았는데 너무 호전되어 있어서 의사들이 이상하게 여기더라는 것입니다. 약 6개월 후 이 환자의 암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심부전증을 앓고 있던 40대 초반의 부인에게서도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장기간 입원했다가 곧 사망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고 귀가하여 가족들이 장례를 논의하고 있던 상태에서 나를 만났습니다. 극도로 탈진되어 있어서 숨만 쉬고 있지 않다면 그대로 시체라고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 환자는 내게 오기 전까지 한달 가량 대변을 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먼저 하제(下劑)와 관장을 통해서 장내를 비우게 한 다음 야채즙과 생수, 유동식 등을 조금씩 들게 하고, 많은 시간을 사지의 모세혈관을 미세진동시키는 물리적 방법과 족탕법을 시행하였습니다. 명상과 상상법, 그리고 여러 자연요법을 병행한 결과 약 3개월 후 이 부인은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줄 만큼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나 자신에게도 놀라웠습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을 그대로 시도해본 것뿐인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서양의학 교과서에는 말기 암과 같은 난치병 환자 천명 중에 한두명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절로 낫는 경우가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대체의학을 통해서 좋아지는 경우가 모두 여기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의학에는 서양의학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뛰어난 장점과 치유력이 있습니다. 마치 서양의학 가운데는 다른 어떤 의학적 방법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치료의 힘이 있듯이 말입니다.
아무튼 이와 같은 특별한 경험들이 계기가 되어 나는 자연요법 같은 대체의학의 방법들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장점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의학의 근본은 의식의 탐구
1991년 가을부터 그 이듬해까지 나는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 의과학(醫科學)센터의 의사학과(醫史學科)에 연구교수로 가 있었습니다. 이름만 연구교수일 뿐 의학사와 의학철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었으므로 학생과 같은 입장에서 공부했습니다.
내가 의학사와 의학사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이기는 했지만 동양의학이다, 대체의학이다, 민간요법이다 하여 이것저것 주워얻은 정보들을 하나의 실용적인 체계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있어야겠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본다고 할 때 오늘의 의학의 참모습을 바로 이해하고 미래의 의학을 전망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기간에 내가 얻은 소득 중의 하나는 오사카 대학의 마루야마 교수가 전에 그처럼 간곡히 당부하던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 베다를 배울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국제 아유르 베다 의학회 회장인 쵸프라 박사가 주관하는 이 교육은 환자를 임상에서 직접 관찰하며 아유르 베다의 이론과 실기를 익히는 코스였는데 이 과정을 이수한 의사들에게는 아유르 베다 치료법을 환자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라이센스가 주어집니다. 내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아유르 베다 메디칼 닥터라는 라이센스를 얻은 셈이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그동안 그 실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유르 베다 의학을 통해서 가장 크게 배운 바는 순수의식(Pure Awareness)의 힘이며, 의학이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한없이 광대하다는 점입니다.
아유르 베다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서 생명이라는 뜻의 아유르(Ajur)와 지식 또는 과학이라는 뜻의 베다(Veda)의 합성어입니다. 아유르 베다라는 말의 의미가 표현하고 있듯이 이것은 한계도 없는 무한한 생명의 탐구를 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유르 베다는 생명과 자연치유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병을 치유시키는 근본 에너지를 자연치유력이니, 생명력이니 하고 말들은 하지만 대부분의 의학체계는 이 자연치유력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아예 탐구대상으로 삼고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서양의학의 경우 병이 치유되는 현상적인 메커니즘만 설명하고 있을 뿐 현상 너머의 치유력의 근원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치유력, 생명력의 실체는 실증과학으로 탐구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유르 베다에서는 건강과 질병을 결정짓는 최초의 원인을 의식과 신념으로 보고 이것을 다루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내가 생명의 본성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고 지금과 같은 생명관과 의료관을 가지도록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은 청화대화상(淸華大和尙)과 해리 팔머(Harry Palmer)입니다.
이분들은 생명과학이나 의학을 전공한 바는 없지만 내가 만난 가장 위대한 생명과학자이자 의학자입니다. 이 두분과의 조우를 통해서 나는 생명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전체적이고 다차원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새로운 통찰과 메시지를 얻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의 금강선원에 주석하고 계시는 청화대화상께서는 모든 정통적인 종교와 동서고금의 위대한 철학, 과학사상 가운데에 일관하는 생명관과 우주관을 하나의 원리로 회통시켜 내보임으로써 생명의 실상, 생명의 본질이란 무엇이며 생명의 본질을 체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명징하게 비추어주고 계십니다. 이분은 모든 종교와 사상의 갈래를 초월하여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성자 가운데 한분이며 온 인류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신성(神性)의 빛 그대로입니다. 한 인간이 마음을 닦고 인격을 완성해갈 때는 이렇게 아름답고 자비로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영성을 통해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미국의 플로리다 올랜도의 해리 팔머는 원래 교육심리학자였는데 깊은 순수의식을 체험한 후, 과거 성인들이 한결같이 증명하였던 우주와 생명의 근본원리를 현대인들의 의식수준에 맞도록 쉽게 풀어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바타 코스(Avatar Course)'라는 영적 진화 및 의식탐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동안에 자기 생명의 본성과 물질 우주의 창조의 배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분은 모든 존재가 한결같이 무한한 생명의 근원임을 자각하게 함으로써 한정된 의식과 주입된 신념의 틀을 넘어서 삶을 창조적으로 살 수 있게 하고 나아가서 인류가 밝은 문명을 함께 창조할 수 있도록 그 방향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바타 프로그램의 직접 경험을 통해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의 근원은 한정지을 수 없는 순수의식이며, 질병이나 고통 또는 건강이나 행복을 지어내는 최초의 원인이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나는 환자가 자신의 신념체계를 바꾸는 것만으로 질병에서 풀려나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나는 이제 환자의 몸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지 않으며 질병의 최초의 원인이 되는 의식과 신념을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질병을 바라볼 때 종전에는 물질적이고 분석적인 관점에 치우쳐 있었다면 이제는 그러한 관점과 더불어 의식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을 함께 갖게 되었다고 표현한다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한 개인이 질병이나 불건강 가운데 있게 되는 데나 또는 질병이 치유되어 건강을 회복하게 되는 데 있어서 그의 신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치료자나 환자나 신념의 위대한 힘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치료자와 환자를 도와주는 가장 큰 힘은 믿음의 힘입니다.
환자와 그 가족이 지금 만나고 있는 의사와 치료가를 신뢰하고 선택한 치료법을 믿고 있다면, 또한 동시에 그 의사나 치료가가 자기 환자를 참으로 사랑하며 자신의 치료방법을 믿고 있다면 반드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
* 이 글은 전홍준 著, 《완전한 몸, 완전한 마음, 완전한 생명》(도서출판 에디터, 1998년)에서 발췌한 것임.
첫댓글 너무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치료자보다는 치유자 제가 꿈꾸고 달려가는 곳입니다.^^ 동반자로서 멋지게 달려가십시다.^^
아...이렇게 올라오게 되는 거군요...쑥스러움이.....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