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소한 작당의 조운 대표
청년들의 자립을 통한 공동체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조운 대표를 필두로 한 ‘소소한 작당’이 그곳이다. 청소년들의 반사회적 충동은 청소년들의 발산욕구를 충족할만한 이렇다 할 공간의 부재와 공동체성의 결여가 빗은 현상이다. 작당이 지역을 중심으로 올바른 청소년문화로 자리 잡게 될지는 아직 무리수가 따르지만, 설립 취지와 방향에 있어서는 성원을 보낼 만 하다.
소소한 작당은 ‘언한수(언니에게 한수 배우다)’가 문을 닫고 올 7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언한수때와 달라진 모습이라면 재단의 후원으로 이어가던 지원을 자립으로 꾸려나가겠다는 것. 소소한 작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한수의 지난 행보를 엿볼 필요가 있다.
언한수는 볍씨학교 졸업생들이 지역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다 같이 동네 한 바퀴를 돌자’ 돌다보니 동네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마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함께 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 속에서 실로 놀라운 일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은 잡지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영화의 리뷰를 작성하는가 하면, 패션의 기준을 정하기도 했다. 동네를 돌며 애완동물 사진을 찍고, 음식을 만들어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다.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자신들이 발견해낸 특별한 마을을 저희들끼리만 공유하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이의를 제기해 신문제작에 들어갔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발췌하고 주변 건물들과 기관들 소식을 담아내는 것은 물론 삽화와 관련사진들을 배치시켰다. 살고 있는 지역의 관심으로부터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 개선점들은 자연스레 아이들 몫이 됐다. 그렇게 4년여 시간을 끝으로 언한수가 종료됐다.
묘사한대로, 언한수는 지역이라는 현실공간에서 아이들 스스로가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기껏 20살 초반의 청년들 일곱 명이서 말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사실 그들은 보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재현한 것에 불과했다. 언한수 멤버들 또한 YMCA에서 어린 시절 활동을 하며 지역에 대한 애정을 키워냈기에 가능했다.
소소한 작당은 현재 100원 놀이터를 운영 중이다. ‘OH필름 나비만들기’와 ‘만다라 도안 공책 만들기’ 체험 등이 기획돼 있다. 우선은 참여률을 높이고자 흥미위주의 프로그램으로 마련해 매주 화요일 모이고 있다. 무료 놀이터로 하면 될 것을 왜 100원을 받을까. 가치를 부여해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 물론 그런 이유도 있다. 그러나 소소한 작당이 위치해 있는 철산 4동의 여건 상 100원은 현실적인 금액이기도하다. 작당 인근에 있는 분식점의 떡꼬치 가격은 200원이다. 허름한 건물이 많아 종종 낙후지역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개발의 난항은 꼭 소득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높은 보상을 요구하는 소유주들과 경기침체로 인한 뉴타운사업 부진이 이유다. 100원은 개발의 뒷전에서 반영된 물가라 하겠다.

▷ 만다라 도안 공책,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놀이 중 하나다

▷ 한 눈에도 걱정이 많아 보이는 인형이다.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 OH 필름 나비 만들기, 알록달록한 색상이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 소소한 작당의 분위기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데코
멀지 않은 곳에는 지역아동센터와 넝쿨어린이 도서관이 있어 비전과 정보 공유가 용이하다. 작당의 위치를 이곳에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소소한 작당을 이끌어 가는 인물은 조운 대표 혼자다. 당초 함께했던 언한수 교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여전히 같은 비전속에서 마을의 한계를 벗어나 목소리를 내고 있거나 문화의 현장으로 달려가 직접 공연자로 뛰고 있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달려온다.

조운 대표가 소소한 작당을 운영하기로 작심한건 공간의 중요성을 느껴서다. 그것도 마을을 중심으로 말이다. 조운 대표는 마을에서 사례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자란 환경에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립해 살아가는 청년이라면 직업을 구해야 하는 시기라도 꿈을 유보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그런 점에서 조 대표는 청년들의 일자리에 대한 고뇌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꽉 짜인 틀에 자신을 끼어 맞춰 급여만을 바라보며 늙어가는 왕성한 혈기가 못내 아쉬웠다. 그것은 창작해내고 발굴해내는 일과는 무관했으며, 생명력을 지닌 존재가 사장되는 일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일이라 어찌할 수 없는 형편. 직접 괭이와 삽을 들고 땅을 일구는 행위는 아니더라도 직업(JOB)이라는 것은 경작하는 일이어야 했다. 그 속에는 하고자 하는 의욕이 깃들어야 하고 발견이나 성취해냈을 때의 기쁨이 충족돼야 했다. 이를테면 문화의 어원으로 이어지는 소득이어야 했다.
얼마 전 조 대표는 소소한 작당의 사회연결망 구축에 나섰다. 일자리 허브센터 내 청년일자리창업에 부스 하나를 얻었다. 올바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토대로 지역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소소한 작당에 출입을 권고하는 부모가 몇 명이나 되겠냐는 것이다.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나 본다면 누군가는 움직일 것이다. 가치를 발견하고 움직일 청년들과 그들의 급여를 해결해주는 전문기관으로써의 자립을 위해 현재 조운 대표가 뛰고 있는 거다.
소소한 작당은 철산 4동의 가파른 언덕 중턱에 위치해 있다. 뉴타운사업과 아파트 건설 붐도 모두 비켜간 낙후된 건물들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외형들의 현란함 속에서, 그는 어딘가에 감춰 있을 사람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