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자 친구, 내 가난한 친구
내 '가난한 친구'는 60년대에 이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서울의 3층집에 살 정도로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을 졸업했다. 내가 살던 산동네의 아랫 동네에서 살았고 대학교는 달랐지만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전교 수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대학에서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내 '가난한 친구'는 직장생활 20여년에 나이 오십 줄이 되도록 단 한 달도 회사를 쉬어 본적이 없는 성실한 샐러리맨이다. 대기업 간부로서 부하 직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있으며 미술과 예능을 전공하는 딸 둘을 위해 휴일에도 Two 잡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착실한 가장이다. 그는 한번도 도로를 무단 횡단한 일이 없을 정도로 흔히 말하는 윤리의식이 투철한 모범 시민이다. 길가에 꽁초 한번 버린 적이 없고 그에게 있어 교통위반은 상상조차 힘들 정도다. 그는 우리주변에 흔히 보는 교활하고 뻔뻔하며 약삭빠른 친구들과 정 반대되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당연히 갖춰야 할 미덕으로 배웠던 선비정신도 겸비한 인물이다. 그러나 완벽을 추구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성격 탓에 때로 우유부단하고 융통성이 전혀 없는 꽉 막힌 인물로 비춰지기도 한다.
80년대 초에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어 소득도 남보다 부족할 게 없었고 재테크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내 ‘가난한 친구’에게는 재산 운이 따르지 않았다. 평생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그 흔한 주식투자 기회와 부동산 투기 바람도 매번 그를 비켜갔다. 주택청약부금에도 가입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투기차익을 올린 적이 없다. 오히려 80년대 말의 주식시장 호황기에 뛰어 들었다가 손해를 보기도 했고 벤처 붐에 막차를 탔다가 속을 끓이기도 했다. 어느날 나와 함께 한 자리에서 그는 내게 일본 유학중인 딸 둘의 교육이 끝나면 현재 살고 있는 30평 작은 집도 호사라며 파주의 시골동네에 원룸을 얻어 살 계획을 갖고 있다고 속내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나는 인간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내 ‘가난한 친구’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불행한 삶을 살고있는 것은 어찌 보면 도덕적인 모순이고 인생의 불가사의다. 어쩔 수 없이 초로기(45세~55세)의 나이에 접어 든 내 '가난한 친구'에게 이제 남은 수단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엄청나게 오른 부동산 시장에서 이제 그에게 과거 방식의 돈 벌 기회는 다시 오지않을 것이고 새로운 시장에 걸 맞는 투기밑천도 없어 부동산으로 한몫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좋게 말해서 그가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그는 현재 일산의 31평 건영빌라에 살고 있으며 그나마 부채를 제외하면 전재산이 2억원 남짓할 정도다.
반면에 내 '부자친구'는 불알 두쪽만 차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5백억대의 재산가로 성장했다. 그는 1년에 평균 100 라운드의 골프를 치고, 틈만 나면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유유 자적하며 살고 있지만 그 모든 경비를 임대소득은 차치하고 금융소득만으로 충분히 메꿀 정도다. 그는 대구에서 내 '가난한 친구'와 똑 같은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모대학 축산과를 나와 여느 사람처럼 중견기업에서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모은 돈으로 이미 80년대에 재개발 아파트 2채를 사서 최초의 종자 돈을 마련했을 정도로 재테크에 탁월한 지혜를 타고 났다. 재개발 아파트 2채를 판 돈으로 화랑을 시작한 그가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상류층 인사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천재 화가 이인성 전시회를 열고부터 였다. 제대로 된 이인성 작품 하나 없이 발품을 팔아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국내 최초로 성사시킨 이인성 전시회는 미래고객들을 끌어다 주면서 훗날 그에게 큰 장사 밑천이 되어주었다. 열정적으로 미술시장을 개척한 그는 대량의 미술품을 구입하는 호텔이나 기관에 납품도 하고 홈쇼핑에 출연해 운보 판화 등의 미술품을 팔아 엄청난 이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부자친구'가 부자의 반열에 오르고 큰돈을 벌게 된 첫번째 기회는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베트남 미술품에서 찾아왔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부자들이 외국으로 흘러나간 예술 작품들을 사오는 것을 보고 언젠가는 베트남 사람들도 자국의 미술품을 수집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90년대 초 10년 후를 내다보고 여전히 저평가된 베트남 최고 수준의 화가 작품들을 엄청나게 사들였는데 예상보다도 빨리 베트남에 미술품 수집 붐이 일어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지금은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돈을 번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한 화상이다. 또 IMF 때에는 고가의 미술품들을 헐값에 사들이기도 하고 청자나 백자 같은 골동품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 주면서 더욱 큰 돈을 벌었다. 당시에는 경기가 워낙 나빠 채무자들이 담보로 잡은 미술품들을 못 찾아가는 바람에 이중의 차익을 얻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미술품시장도 불황에 빠진 90년대 말에는 때 마침 벤처기업 열풍이 불었고 그는 여기서도 조기 편승해 더욱 큰돈을 벌었다. 요즘은 고가 미술품 시장이 투기판으로 변해 하루에도 수억 원을 벌 정도로 더욱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물론 억대를 호가하는 소수화가의 그림들만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형 시장이라 인맥도 없고 그림에 대한 조예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내 '부자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재미나는 일이 돈 버는 일이고 그 다음은 골프와 여행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그는 남들이 “지독한 놈! 저렇게 하면 누구는 돈 못 벌어!”하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 들인다. 기실 거기에 그만의 성공비결이 있는 것이다.
서울의 고급 아파트 촌에서 살고 있는 내 ‘부자 친구’에게 그렇게 부동산이 많은데 왜 또 아파트를 사느냐고 물으면 "부동산은 손에 잡히는 확실한 것이고 좋은 아파트는 월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답변한다. 용인의 84평 아파트를 1년에 한두 번 사용하는 별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에게는 아파트 투자도 미술품 컬렉션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도 내 ‘부자 친구’를 따라 하면 결코 실패가 없다. 타워펠리스가 미분양이었을 때 101평형을 사라고 한 것도 그였다. 또 내 wife가 90년대 말에 파주의 통일동산 땅에 투자하여 수십 억대의 투자수익을 거둔 것도 그의 덕분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내 '부자친구'는 성공을 향한 먹이 경쟁에서 중도포기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집요한 인물이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상상력의 범위가 끝간데 없고 먹이를 쫓는 맹수처럼 좀처럼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는 이익을 얻는 일에 체면을 구기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위험하다 싶으면 냉혹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좀체 손해를 보는 법도 없다. 사람을 사귀어도 조금이라도 해가 될 사람은 가차없이 자르며 돈 되는 사람만을 사귄다. 그는 지혜가 있는 사람들과 사귀는 일을 매우 가치 있게 여기며 돈이 되는 아이디어를 갖고있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내 '부자친구'는 그런 사람들만을 가까운 친구로 둔다.
내 '부자친구'는 "돈은 자기 그릇만큼 담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언제나 4가지의 포트폴리오로 돈을 번다고 한다. 첫째는 현금, 둘째는 부동산, 셋째는 좋은 미술품, 넷째는 유망 펀드 투자다. 직접 하는 상장 주식투자는, 진짜 부자들이 채권에만 손을 대는 것처럼, 기대수익보다 위험이 커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내 '부자친구'는 지금도 더듬이를 세우고 유익한 세미나라면 경제와 증권 등 주제를 가리지 않고 빠짐없이 참석한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그가 참석한 세미나 숫자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인맥이 넓고 모임을 좋아하는 그는 99년 내가 개최한 제33회 ‘정보브로커’ 세미나에 참석한 수강생이었다. 세미나가 끝난 후 우연히 투자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동갑의 우리는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한 후 곧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거기서 만나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여러분도 미래에 대다수의 '가난한 친구'와 극소수의 '부자친구'를 두게 될 것이다. 물론 여러분 자신이 부자가 되지 못하면 '부자친구'가 있다고 해도 진정한 우정을 나누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의 비극이지만 현실이며, 자신이 가진 돈과 지위로 신분과 계층이 확연히 구분되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얼마 전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보통사람의 노후생활자금으로 '최소 2억6천만원이 필요'하고 월 여윳돈 규모가 200만원 수준이 되려면 7억1049만원이 소요된다고 발표했다. 생계를 위해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내 ‘부자 친구’의 눈으로 보면, 내 '가난한 친구'의 경제적인 미래는 어둡다 못해 캄캄할 정도다.
연봉 7천만원을 받고 있지만 일본 유학중인 두 아이 교육비로 연간 5천만원을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금공단이 제시한 최소한의 금액마저도 내 ‘가난한 친구’에게는 먼 목표로 보인다. 정년 58세를 채운다는 가정 하에서 아무리 후하게 계산을 해도 그가 생전에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단순히 재테크에 실패한 결과치고는 참혹하기조차 하다.
그리고 그것은 자녀들에 대한 지나친 교육비 지출로 나이 들면서 오히려 재산이 줄어든 50대 전후 평범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Kabbu 글
2006년 출간 예정인 '양처럼 살 것인가, 늑대처럼 살 것인가(ver 0.7)'중에서
...글쓴이는 'KABBU'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5년간의 칩거생활을 거쳐 현재 자신만의 독특한 성공철학을 글과 강연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wife는 현재 예술마을 헤이리(www.heyri.net)에서 영화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 <정보브로커><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갑부의 5분 성공학><갑부의 5분 부자학><정보거래로 큰돈 버는 법><밀레니엄 인포미디어리><영화포스터로 보는 50~60년대 명화> 등의 저서를 펴냈으며, <내 안의 백만장자(Millionaire in You)>와 <행동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Success thru Positive Mental Attitude)>를 직접 번역해 책으로 내기도 했다.
...수정과 보완작업을 거쳐 2006년 <양처럼 살 것인가, 늑대처럼 살 것인가><정보브로커II>를 출간할 예정이다. Naver 카페 (http://cafe.naver.com/infoker.cafe)에서 '정보브로커'로 검색하면 책의 완성돼 가는 과정은 물론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