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년대에 주례에는 코스코(KOSKO Korea Oil Storage COmpany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 사상저유소)
라 불리던 유류 저장시설(1보급창 공병에서는 송유관탱크라 불렀죠)이 있었습니다.
말만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지 실제로는 미군이 관리했었습니다.
내가 학장쪽이 고향인줄 알고있는 인터넷에서 온라인으로 알게된 어느 지인께서, 지금 미국에 살고있는
'50년대에 주한미군 장교로 근무했던 분의 개인 블로그에서 이사진을 구하여 자기 블로그에 올려놓고
나에게 사진의 장소에 대한 설명을 부탁해서 이사진을 접하게되었는데 정말 귀하고 반가운 사진이라
나름대로 사진 장소에 대한 설명을 블로그에 댓글로 달아주었던 내용입니다. 그 당시 귀하고 귀했던
코닥크롬칼라필름으로 촬영해서 남겨준 미군장교와 소개해준 지인 분께 감사드리면서 내 고향의 60년
전 모습(1955년 초가을)을 생생한 칼라사진으로 소개합니다.
사상저유소(주례저유소)가 나오는 사진이 정말 보고 싶었는데 님 덕분에 이렇게 보게 되네요..
아마 인터넷상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사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정말 감사합니다..
초량저유소에서 경부선을 따라 송유관 2선로(경유,벙커C유)가 주례저유소(현 주례럭키아파트)까지
연결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당시 저유탱크가 13개가 있었다고 주례친구들이 기억하더군요..
'64년도 대한석유공사 울산정유공장 준공으로 필요없게된 초량저유소와 사상저유소는 '60년대 중후반에
없어지게 되는데 저 송유관탱크(저유탱크)와 송유관을 해체하여 군(공병)에서 '90년대까지 전술자재로
분류하여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요..
대형 간판 오른편(사진 중앙 부근)에 홍깨마을과 학장초등학교 건물이 보이네요..간판 왼편에 학성
포구나무와 학성마을도 보이고 뒤편 낙동강 가까이에는 장인도 마을도 보입니다.
저 간판엔 아마 영어로 "O"자가 새겨져 있지 않았을까 생각 됩니다..대형 간판이 다섯개로 냉정쪽에서
학장쪽으로 "K" "O" "S" "C" "O" 다섯글자가 한글자씩 띄엄 띄엄 거리를 두고 일열횡대로 세워져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학장 주례 감전의 저 넓은 들판에 지금은 사상공단이 들어서 있죠
중앙에 주례마을이 보이는데요, 철도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아래위로 갈라져 경부선 위쪽은 웃각단
경부선 아래쪽은 아래각단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뒤 철로변에 감동마을이 보이고 그뒤에 좌측부터
서편마을(서감전),포프라마치,사상역앞 회산도 보이네요. 회산에 포부대가 있어서 길이 많이나 있습니다.
아래쪽 가야로 건너 엄광산자락에 저유탱크 2개가 있는 쪽이 지금의 주례럭키아파트가 있는 곳으로
군데 군데 뭐가 많이 쌓여져 있는 것은 드럼통들입니다. 그 당시엔 기름을 드럼통에 넣어서 보급했었거
던요. 그리고 뒤편 낙동강너머 들판에 김해공항이 확장되면서 없어진 칠점산도 보이네요.
주례부분 확대한 모습
주례와 냉정 사이군요..다랭이 논이 눈에 확 들어오죠, 지금은 보훈병원과 대단위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죠
경부선 철길위에 있는 저 다랭이논 때문에 사상에서 주례사람들이 좀 부촌에 속했습니다..
학장 감전 괘법 덕포 삼락쪽은 저지대라 홍수피해가 많았지만 다랭이 논 쪽은 피해가 없었거던요..
다랭이 논위에 큰 저수지도 있었고요..
우측 아래쪽에 보이는 마을이 냉정마을(현 주례2동)입니다. 우측편 중앙이 신개금쪽으로 지금은 주공아파트를
비롯하여 대단위아파트가 들어서있죠.사진상에는 부대(1203건공단)부지조성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좌측편 아래쪽에 저유소로 가는 철길도 보이는데 가야역으로 연결되어 전국으로 유류를 보급했었죠.
부산항 3부두 입니다. 왼편에 초량저유소 저유탱크가 보이네요. 초량저유소에서 철길(경부선)을 따라
사상저유소까지 송유관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뒤편에는 영도 봉래산도 보이네요.
첫댓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서 실감이 안 나네요.. 귀한 사진 잘 보았습니다.
부산에도 이런데가 있었나 싶으네~ 부산의 옛자료들 모아서 관리 좀 하게 마니 올려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