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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월 |
예원중학교 졸 |
1992년 8월 |
서울 예술고등학교 1학년 재학중 도러 Russian Boshoi Ballet Academy 편입 |
1996년 6월 |
Bolshoi Ballet Company 입단 |
1997년 |
“모스크바 국제 콩쿨” 특별상, 인기상 수상 |
1998년 |
“페름 국제 콩클” 1위 금메달 Best Couple (바실리에프 & 막시모바)상 수상 |
1998년 |
모스크바 국립 Classic 발레단 “The Nutcracker” 주역, 크레믈린 대극장 |
1999년 7월 |
“World Winner’s Gala” 참가 헝가리, 부다페스트 |
1999년 |
“Bolshoi Gala”, 서울 |
2000년 4월 |
러시아 Chevaksar 발레단 “The Sleeping Beauty” 주역 |
2000년 5월 |
러시아 Kazan 발레단 “The Sleeping Beauty” 주역 |
2001년 7월 |
“한국을 빛낸 해외 무용 Star”, 서울 |
2002년 1월 |
“Mari-El 공화국 공훈 예술가” 수상 |
2002년 7월 |
“World Ballet Gala”, 서울 |
2003년 7월 |
“Swan Lake”, “Don Quixotte” 주역, Kiev 발레단 |
2003년 11월 |
“Giselle” 주역, 러시아 국립 발레단 |
2004년 1월 |
“Swan Lake” 주역, Mari-El 공화국 |
“Ballet는 내 인생”
1992년 열 다섯살의 나이로 동토의 러시아 땅을 밟은지 12년, 세계 최고의 발레단인 Bolshoi 발레단의 솔리스트역을 맡아서 오는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Bolshoi 발레단과 함께 공연을 한다.
어렸을 적부터 TV에 발레나 무용이 나오면 빨려들듯이 좋아하던 어린 소녀, 몸이 원래 약해서 안된다고 반대했던 부모님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초에 뒤늦게 시작했던 발레.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와 문화교류가 시작되면서 예원중학교 3학년때인 1991년 12월 Bolshoi Ballet Academy 교수님 두분이 한국에 Lesson차 들렸다.
라리사 선생님이 첫날 수업 후 모스크바로 유학 올 것을 배주윤에게 제안하였다. 그 때, 러시아의 상황은 실제로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고 경제사정도 몹시 안 좋다고 하였다.
현재는 세계 최고급 백화점과 유명 shop, 대형 슈퍼마켓이 모스크바 시내에 대거 진출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빵과 음료수를 사기 위하여 몇 정거장을 가서 줄을 서 기다려야만 했다. 갑작스런 이 제의에 집안 식구들은 회의를 거듭했고 결국 극구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한 말은 “Ballet는 내 인생”이라는 한마디였다.
“첫 수업에서 흘린 눈물”
1992년 9월 1일, 러시아의 대부분의 학교가 새 학기를 맞이하는 날이다. 5학년 레오노바 (현재 볼쇼이발레학교 교장) 선생님반 학생은 동양인 배주윤을 포함하여 9명. 체격과 신장은 별 차이 없이 모두 비슷한 상태였다. 아름다운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진행된 수업이 끝났을 때 배주윤은 창 밖을 내다보며 울고 서있었다. 레오노바 선생님이 첫 수업에 대한 소감을 듣기위해 통역과 함께 다가왔을 때 그 모습을 보고 몹시 당황하여 왜 울고있는지를 물었다.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는 그녀에게 레오노바 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큰 뜻을 품고 이렇게 먼 곳까지 유학을 왔는데 정말로 훌륭한 발레리나가 되라”며 등을 다독였다.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의아해하는 엄마에게만 입을 연 그녀는 러시아 학생들이 너무 예쁘고 잘해서 눈물이 나왔다고 이야기하였다.
“졸업시험 중 Bolshoi 발레단 감독에게 발탁되다”
1996년 6월, 8학년 졸업 실기시험이 거의 3주에 걸쳐 치뤄지고 있었다.
40여명에 달하는 러시아 유명 발레단의 감독, 대학교수 등이 심사위원이 되어 엄격하게 진행된다. Bolshoi Ballet Academy 졸업생 40여명 중 실제로 Bolshoi 발레단에 입단할 수 있는 사람은 남녀 도합 6, 7명에 불과하였다.
졸업시험 중 당시 Bolshoi 발레단 예술감독인 비아체슬라브 가르지예프가 Bolshoi 발레단에 들어올 것을 제안하였다. 러시아인이 아니기 때문에 러시아의 국립발레단인 Bolshoi에서 규정상 정식 단원으로 시작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1년이 지나면 정식단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제안하였다. 다른 발레단의 정식 단원으로 입단하라는 주위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발레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Bolshoi 발레단에 첫 발을 디뎠다.
가르지예프 예술감독은 당시 Bolshoi 극장의 총 감독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레리노 바실리예프와 의견 충돌이 잦아 1년 후 러시아 국립발레단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후 보카투리예프가 예술감독이 되면서 또다시 1년 후에 정식단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현재까지 200명이 넘는 Bolshoi 발레단원 중 외국인은 배주윤과 일본인 발레리노 1명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러시아 여자와 결혼하여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상태였으므로 실질적인 외국인은 배주윤 혼자였다.
1년 후 보카투리예프가 급작스럽게 사망하게 되었고 니나 아나니애슈벨리의 파트너로 유명한 화데예체프가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화데예체프 역시 그로부터 또다시 1년 후를 기약하였고 그렇게 힘든 테스트 기간 3년이 흐른 뒤 1999년 드디어 정식 단원이 되었다.
“유명 국제 콩쿨에 입상하다”
1997년 “모스크바 국제 콩쿨”에서 특별상과 관객이 뽑은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관객들이 1, 2, 3라운드를 거치면서 콩쿨에 참가한 많은 출연자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사람을 관객들이 직접 투표하여 선정하는 인기상을 수상한 것이다.
여러 국가, 발레단 출신으로 각기 다른 경력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이제 막 발레단의 첫발을 디딘 스무살의 배주윤에게 이와 같은 상이 돌아온 것이 참으로 영광스러웠다.
특별상은 클래식 발레 레파토리를 가장 잘 해석, 표현하여 춤을 춘 참가자에게 수여되는 상이었다.
1998년 5월 “페름 국제 콩쿨”에서는 여자부분 1위 금메달과 Best Couple 상을 수상하였다.
파트너인 콘스탄틴 이바노프는 Bolshoi 발레단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와 파트너를 이루게 된 것은 모스크바 콩쿨 때 배주윤이 Sleeping Beauty를 추는 것을 보고 이바노프가 페름 콩쿨의 파트너가 되어 줄 것을 선생님을 통하여 제의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Best Couple상은 바실리예프(Bolshoi 발레단 총감독)와 그의 부인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레리나인 예카테리나 막시모바가 직접 선정하는 상이며 회마다 수상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시상식에서 막시모바는 배주윤의 춤이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수상소감에서 배주윤은 각기 다른 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며 나는 춤을 추고 싶어서 참가하였다고 밝혔다.
“크레믈린 대국장에서 호두까기 인형 주역을”
1998년 3월 1일 러시아 크레믈린 대극장, 세계 발레스타들이 꿈에 그리는 무대 크레믈린궁 대극장 (6,000명 수용) 에서 “호두까기 인형” 주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모스크바 국립 Classic 발레단의 바실료프와 카사트키나 부부 감독은 지난 해 모스크바 콩쿨 때 배주윤의 춤을 눈여겨 보았다며 자신들의 발레단 객원 주역으로 공연해줄 것을 제안하였다.
공연 초청장을 가지고 졸업한 Bolshoi 발레학교를 찾았을 때 부총장 게라시모프는 놀라면서 말했다. 이번 졸업생중에서 가장 먼저 주역을 맡은 사람은 동양인인 주윤이라고.
극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공연이 끝난 후 바실료프와 카사트키나 감독은 서정적으로 아름답고 신선하였으며 다음 공연에 다시 초청하고 싶다는 제안을 건넸다.
무대 뒤에서는 발레지도를 해주셨던 지도교수, 한국 유학생들이 함께 기쁨의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공연 내내 관중석에서 긴장한 눈빛으로 지켜본 어머니는 공연이 끝난 후 양쪽 다리에 쥐가 나 일어나지 못했다. 러시아의 한인 교포들이 신문을 읽고 찾아와 기뻐해 준 것 또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Mari-El 공화국 공훈 예술가”
2002년 1월 Mari-El 공화국, Ioshi Kar-ola에서 Bolshoi Gala 공연이 끝난 후 뜻깊은 시상식이 있었다. Mari-El 공화국 대통령으로부터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공훈 예술가 훈장이 수여된 것이다. 러시아인들도 놀랐고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공훈 예술가 훈장은 러시아 예술인이라면 모두가 가장 원하는 최고의 영광이었기에 외국인인 배주윤에게는 더욱 뜻깊은 일이었다.
배주윤이 Mari-El 공화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페름 콩쿨에서 K. 이바노프와 파트너가 되면서였다.
그는 Ioshi Kar-ola 출신의 발레리노로 모국에서 많은 문화 예술 사업 활동에 참여하며 이미 공훈 예술가 훈장을 수여받는 등 인정받고 있었다. 이바노프와는 1998년 페름콩쿨 이후부터 해외 Bolshoi Gala와 지방 전막 공연에 함께 공연해 왔다.
특히 Mari-El 공화국의 주요 공연, “Swan Lake”, “Don Quixotte”, “Giselle”, “La Fille Mal Gardee” 등에서 전막 주역을 맡았으며 Gala로도 매년 함께 참가하였다.
한국에서도 이바노프와는
1999년 “Bolshoi Gala”,
2001년 “한국을 빛낸 해외 무용스타”,
2002년 “World Ballet”,
2003년 “남양주 세계 야외 페스티발” 등에서 함께 공연하였다.
“또다른 내일을 위하여”
볼쇼이 발레단의 주요 솔리스트 역은 물론이고 매년 수회의 해외 및 지방 공연, 러시아 국립 발레단, Mari-El 공화국 발레단의 객원주역으로 현재 활동하고 있다.
배주윤의 Bolshoi 발레단 7년 과정에서 감독으로는 비아체슬라브 가르지예프, 보카투리예프, 화데예체프, 보리스 아키모프, 올해로 신인 감독인 30대 후반의 알렉세이 라트만스키를 만난다.
새로운 감독을 맞을 때마다 외국인인 그녀는 항상 새로운 테스트를 거쳐 검증을 받는 것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