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단 십자가 - 무아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 *
십자가를 짐은 모세가 파라오왕 앞에 던진 지팡이가 뱀이 되었는데 그 뱀을 집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단 집고 난 모세의 지팡이는 한 민족의 힘이 되고, 바다가 길이 되게
하였고, 하늘에서 양식이 내렸고,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는 기구가 되었다. 모든 것을
희생으로 참아 받으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원칙에 따라 우리를 해치는 일이 없어진다
십자가는 우리가 우리 죄로 말미암아 받아야 전부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협조해 달라고
하신다. 전부는 지고 가시고 우리는 조금만 지게 하셨으니 달고 단 십자가다.
이 십자가는 죽이는 형틀이 아니고, 침묵하는 영혼이 십자가를 알아 들어 잘 지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어떻게 잘 질까? 모세 앞에 파라오가 꼼작 못하고 이스라엘이 가는
곳에는 바다가 길을 내고, 양식이 끊어지면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 왔다.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 죄 때문에 그렇게 되신 것이다.우리가 희생으로 참아
받으면 모세 이상으로 받을 것이다. 다니엘 앞에서 사자가 꼼짝 못한다. 전화위복의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와 달라고 하시는 십자가는 사랑으로
주신 것이니, 곡 지고 가야 한다. 이 십자가를 참아 받으면 희생이 된다. 이 희생이
올라가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이 영광을 우리는 누리게 된다.
아담이 죄짓기 전에 에덴복지는 대단히 좋았다. 그 시대에는 병고 죽음이 없어 그저
좋기만 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좋다, 괴롭고, 고단하고, 아프고, 죽는다. 이것이 복되다.
왜 그럴까? 그 고통과 병고, 죽는 것, 이것이 보통 누리는 평화다.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보다 말할 없는 복이 되었다. 그래서 성인의 경축은 그들이
죽은 날로 친다. 죄인들이 받는 죽음과 의인이 받는 죽음의 고통은 아주 다르다.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고 복중 복이다. 천신들이 이것을 부러워 한다.
천신은 육신이 없어서 죽는 것을 못한다. 그래서 죽는 복을 못 누린다. 즉 이 괴로움도
강복하고 창조하신 것이다. 이 즐거움은 아무도 빼앗지 못한다.
(그래서)치명자들이 받는 괴로움에 대하여 우리는 알아 듣는다. 우리 수도자는
그 생활이 에덴 복지보다 더 낫다. 지극히 비천하고 미소한데 일수록 거룩하게 하시고
생활하게 하시고, 강복하신다.
성인이 되라고 거룩하게 하시고 고통을 받아야 사는 것같이 느끼게 된다고 하셨다.
하느님을 전적으로 따라 가겠다고 하는 이에게 십자가를 지고 너를 누르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제일 큰 복은 십자가에 있고 더 큰 복은 자기자신을 누르는데 잇다.
십자가의 비결은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알아듣고 자기를 제어하며 누름으로
면형으로 가게 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화위복의 비결은 반드시 "사랑의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데 결코
크고 위대한 일을 희생함으로 주어지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이고 구체적이며
또한 현실적인 자질구레한 일들을 희생함으로써 얻어진다.
전화위복의 비결이며 하느님을 제일 기쁘게 해 드리는 비결은 사랑의 희생입니다.
마음 상하는 일, 어려운 일이 닥쳐 올지니 그때마다 사랑의 희생을 바치기 위해 꾹
참고 지내며, 절망적인 생각이 들러라도 죽으라고 참는다면, 이는 정신이 되어 어려울
때에는 꼭 희생하여야 된다는 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의식주는 동물성(몸)으로 가고, 지식은 정신으로 가서 지성을 향상시키며,
사랑은 마음으로 가며, 희생은 神으로 갑니다.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때 참읍시다.
사랑은 불가침이요, 전화위복이다. 수고도 죽음도 사랑에는 없다. 초연한 광채가 맘을
비추면 금은은 티끌이요, 쾌락은 시궁이요, 인지(人知)가 암흑인 줄 깨닫게 된다.
이때 십자가는 生命水로 변하며 바위가 단 샘이 되며, 이에 깃든 기쁨의 잔은 철철 넘쳐
흐른다.
사랑은 죽음의 죽음이요 애덕은 악마의 파멸이며, 십자가상의 죽음은 삶이다 의지의
대상중 최고절정은 사랑이니 사랑은 바로 천주님(하느님)이다.사랑에 도달한 그는
천주님을 모신다. 참으로 내림이 오름이요, 괴로움은 즐거움이다. 기갈은 포식이요,
죽음은 삶이며, 산이 무녀져 골짜기를 매우면 교만은 떨어지고 겸손은 올라가니
성인은 괴로워도 그는 괴로움을 좋아 한다.
사랑을 맛본 자유는 사랑 밖에 몰라 사랑만 선택하고 더욱 큰 사랑으로 끓고 타는 것이다.
<<사랑에서 태어나고 사랑 위해 생겼으니 우리 本은 사랑이요 목적도 사명도 사랑일세>>
글 무아 방 유룡 안드레아 신부
고향마을 : 피정의 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