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Gershwin 1898-1937
Leonard Bernstein conducts the New York Philharmonic and plays piano in a performance of George Gershwin's
Rhapsody in Blue at the Royal Albert Hall in 1976.
‘재즈왕’이란 별명을 지녔던 오케스트라 지휘자 폴 화이트먼은 1922년 거슈윈의 1막짜리 오페레타 [블루 먼데이 Blue Monday]를
보고 거슈윈의 재능을 발견했다.
화이트먼은 거슈윈에게 상업적으로는 실패작이었던 이 작품을 새롭게 편곡할 것을 권유했다.
거슈윈 자신도 편곡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손을대지 못하고 있었다.
폴 화이트먼과 그의 오케스트라는 그보다 몇 개월 전인 1923년 11월 1일 에올리언 홀에서 프랑스계 캐나다 가수인 에바 고티에와
클래식과 재즈를 결합한 실험적인 콘서트에서 꽤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성공에 고무된 폴 화이트먼은 좀 더 야심적인 시도를 감행하기로 하고 거슈윈에게 ‘협주곡 형식의 재즈 작품’을 의뢰하며
1924년 2월에 무대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거슈윈에겐 여전히 작품을 편곡할 시간이 없었다.
협주곡 형식의 재즈 작품을 작곡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조지 거슈윈. 재즈와 클래식의 독창적인 결합을 시도했다.
1924년 1월 3일, 맨해튼 브로드웨이에서 조지 거슈윈과 버디 드 실바가 당구를 치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조지 거슈윈의 형인 아이라 거슈윈은 1월 4일자 <뉴욕 트리뷴>지를 읽고 있다가 어느 대목에 시선이 머물렀다.
‘미국음악이란 무엇인가?(What Is American Music?)’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화이트먼의 콘서트 리뷰 기사였다.
마지막 단락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조지 거슈윈은 재즈 협주곡을 작곡 중이고, 어빙 벌린은 싱커페이션(당김음)을 쓴 교향시를, 빅터 허버트는
[미국 모음곡]을 작곡하고 있다.”
“이봐, 조지, 이것 좀 보라구. 지금 재즈 협주곡 작곡하고 있는 것 맞아?”
다음날 화이트먼과 통화하면서 거슈윈은 화이트먼의 라이벌인 빈센트 로페스가 재즈와 클래식을 융합하는 자신의 실험을
표절해서 선수를 치려고 한다는얘기를 듣는다.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거슈윈은 마침내 작품을 쓰기로 결심했다.
남은 시간은 단 5주. 거슈윈은 서둘러 작품을 썼다.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랩소디 인 블루]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미국을 묘사하는 거대한 음악적 만화경, 미국적인 기운
1월 7일 거슈윈은 작곡을 시작했다. 원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이었던 이 작품에 붙였던 제목은 ‘아메리칸 랩소디’였다.
‘랩소디 인 블루’라는 명칭은 형 아이라 거슈윈이 조지에게 제안한 것으로,
몇 주 뒤 거슈윈은 작곡을 마치고 화이트먼의 편곡자 퍼디 그로페(Ferde Grofé)에게 넘겼다.
훗날 [그랜드 캐년 모음곡]으로 유명한 작곡가가 되는 그로페는 초연을 불과 여드레 앞둔 2월 4일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을 마쳤다.
[랩소디 인 블루]는 1924년 2월 12일, 폴 화이트먼과 그의 오케스트라(Palais Royal Orchestra)가‘현대음악의 실험
(An Experiment in Modern Music)’이란 제목으로 에올리언 홀에서 개최한 오후 콘서트에서 초연됐다.
초연은 화이트먼 밴드에 객원 현악 주자들을 보강한 가운데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연주로 진행됐다.
초연 악보에서 거슈윈은 화이트먼과 합의하여 1페이지 가량을 비운 채 진행했다. 그로페가 쓴 총보에도 ‘(피아니스트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때 연주를 계속한다’는 부분만 적어 놓았다. 이 공백 부분을 거슈윈은 즉흥으로 연주했는데,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피아노 즉흥 연주 부분을 따로 적지 않았기 때문에 초연 당시 [랩소디 인 블루]가 어떻게 연주됐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힘들게 되었다.
< 자료출처 ;네이버케스트, 글 유태형|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