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올 여름은 비가 적게 내려서 가뭄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한다.
예년의 강수량의 30% 미만이라고도 하고, 저수율이 극히 낮아 농업용수 공급에 피해가 우려된다고도 한다.
나는 평소에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어서 올해의 가뭄 정도를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지만,농작물이 목말라하는 것은 그 땅거죽 모양으로 대충 이해가 된다.
차밭의 흙이 푸석푸석 먼지가 날리고, 잎이나 줄기가 생기가 떨어지는 것이 둔감한 내 눈에도 보인다.
가끔씩 분수형 자동 물뿌리개로 급수를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차나무도 시들거리고, 잔디밭에도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동백나무 이파리도 뒤틀려진다.
말은 못하지만 목말라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뭄이 극심하여 농작물이 부대끼는 만큼 잡초도 작년만큼 극성을 떨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작년에는 명아주가 사람 키보다 크게 훌쩍 자라서 밑동을 베어내려고 애먹은 기억이 난다.
보리를 수확하고 그 터에 집을 짓기 위하여 서너 달을 방치하였더니 온갖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마치 숲을 이룬 듯 하였다.
그 주에서도 명아주는 어찌나 성장력이 뛰어나던지 이게 일년생 풀인가, 다년생 수목인지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이다.
그 밑동은 얼마나 두껍고 단단한지 낫으로 여남은 번을 힘껏 쳐대도 베어지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옛날에 청려장이라 하여 임금님이 퇴임하는 늙은 신하에게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를 하사했다고 했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도 어떻게 1년생 풀로 지팡이를 만드나 하고 의심쩍어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과서에도 나오는 명아주는 아주 여린 풀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명아주의 놀랄 만큼 빠른 성장력에 명아주로 지팡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가볍고 단단하여 힘없는 노인에게는 적절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명아주며, 쇠비름이며 갖가지 잡초들이 작년만큼 왕성하지는 못한 것이 우리가 틈틈이 뽑은 탓도 있었지만, 워낙 날이 가물어 제 맘껏 자라지 못한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9월이 되자 눈에 띄게 잡초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따라서 아침저녁으로 풀과 힘겨루기 했던 수고를 덜게 되었다.
한창 잡초를 뽑을 때만 해도 언제 이 고생을 면하나 하고 한숨이 절로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지니 이제 며칠에 한 번꼴로 차밭의 잡초를 뽑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그 만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 것이다.
그동안 손을 놓았던 작품 제작에도 마음을 쓰기 시작하고,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도 많아졌다.
여름내 내 손을 묶어두었던 풀들이 나를 해방시켜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도 든다.
어떤 이는 전원생활하려거든 잡초와 싸우려 들지 말고 친해지라는 말을 한다.
풀을 제거해야할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함께 살아갈 동료로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잡초가 자라서 풀밭을 덮어도, 잔디밭 여기저기에 고개를 내밀어도 조바심 내지도 않고, 안타까워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시골생활에 여유를 갖게 된다나?
나는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해 잡초가 쑥쑥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모른 체하거나 지나치지 못한다.
우리 부부는 풀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 여름을 땀에 젖은 채로 보내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