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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임씨(미수 허목의 어머님) 묘갈을 세우던 날 출처 양천허씨 대종회 | ||
ㆍ작성일 : 2016-04-21 (목) 15:14 | ㆍ조회 : 783 |
2016년 4월 20일(목요일), 이른 아침부터 식당 안이 분주하다. 9시에 여는 식당 문이 합천공파 종회의 특별한 요청으로 아침 6시부터 문이 열렸다. 이날이 바로 대학자이며 남인의 영수로서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나 항상 대쪽같이 살으셨던 미수 허목의 어머님, 나주 임씨의 묘갈을 만들어 세우는 날이다. 물론 사초(莎草)도 함께 하는 날이다. 이날이 평일인 관계로 후손들이 많이 참석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래도 경상남도 창원, 의령, 충청남도 논산 등의 지역에서 할머님의 묘갈 세우는 것을 돕기위해 후손들이 모였으며 대종회 회장, 허엽 대종회 부회장, 허동 대종회 사무총장, 허완 대종회 감사, 허주 전 양천군파 종중 회장(대제학공파), 허유권 대종회 운영위원(동주사공파) 등 여러 외빈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미수공의 어머님 나주 임씨 묘는 경기도 연천 은거당 묘역 내(內), 미수공의 아버님인 포천공 허교(喬) 묘소로부터 약 30m 정도 떨어진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님의 애뜻한 마음을 헤아려셔 였을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을까? 나주 임씨 묘소에서는 큰 아들인 미수공의 묘소가 직선 아래쪽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자상한 어머님이 사랑스러운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나주 임씨의 묘 앞에는 특별한 묘갈이 없었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 전까지 은거당 묘역 옆에 위치한 은거당에서 항상 모든 묘소 관리를 해 왔기에 어느 묘소가 어느 할아버님, 또는 할머님의 묘소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한국전쟁 중 소실된 은거당은 고사하고 은거당이 위치했던 곳이 민통선 안 쪽이라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이 되었으며 이곳을 참배하는 많은 분들께서 미수공을 낳아 기르신 미수공의 어머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하는 열망에 나주 임씨 묘갈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나주 임씨 묘갈은 미수공이 작성한 묘갈을 미수공의 12대 종손 허찬 대종회 명예회장이 한글로 번역하여 돌에 새겼다. 허찬 명예회장은 번역을 하면서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약간 순화(純化) 시켰다. 물론 번역 내용 모두는 미수공이 작성한 원문에 충실하게 반영이 되었다. 이 행사는 하루 전인 4월 19일 산신제를 미리 지내는 것으로 시작, 당일인 4월 20일 합천공파 종회 사무실을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연천 은거당 묘역에 도착 후, 묘갈을 세우고, 점심 식사 후, 은거당 복원 시 필요로하는 어린 나무 심기를 하는 것으로 일정이 만들어 졌으나, 나주 임씨 사초가 늦어지며 묘갈 세우는 것도 늦어져, 은거당 묘역 잔디광장 옆쪽에 어린 묘목 심기를 먼저 했다. 은거당 종손가에서 준비한 어린 묘목은 소나무 계열로 약 500주다. 이 나무들은 미수공께서 노닐던 은거당의 정원 중 하나인 ‘십청원’에 있던 나무들로 소나무 계열 일부이다. 이날 식재한 어린 나무는 적송, 금강송, 해송, 주목, 구상나무, 측백나무 이렇게 6종류이다. 이날, 어린 나무를 심기위해 각종 연장을 준비해 온 방축골 문중(미수공 후손)의 허준무, 허인행, 허번, 허송무, 허백무, 허종범 그리고 멀린 논산에서 올라와 나무 심기에 동참한 허희수께 많은 감사의 말을 드린다. 어린 나무 심기가 끝난 후, 임진강 옆에 위치한 생선 매운탕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식사후 다시 은거당 묘역으로 돌아와 모두 임씨 할머님 묘소에서 사초를 도우며 묘갈이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특히 묘갈의 상단부인 머리가 올라갈 때는 참석한 많은 종인들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묘갈이 세워지자, 참석했던 후손들은 바로 고유제를 지냈다. 행사가 다 끝나니 시간은 어느 덧 저녁 6시가 되었다. 후손들과 외부 인사들은 저녁으로 수제 두부를 만드는 식당에서 맛있는 두부전골 메뉴와 함께 옥수수 막걸리, 소주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오니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을이 제법 굵었다. 후손들의 조상 섬기는 마음에 하늘도 감동을 한 것 같다... 아니면 혹, 돌아가신 할아버님과 할머님의 영이 계신 것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합천공파 종회 총무 허유
(어린 나무를 심고 있는 합천공 후손들)
(어린 나무 심기를 마친 후)
(맛있는 점심 시간)
(나주 임씨 묘소 사초를 하고 있는 모습)
(좌대쪽으로 묘갈을 옮기는 모습)
(묘갈에 머리를 얹는 모습, 묘갈 머리는 할머님이기에 꽃과 구름을 무늬로 넣었다)
(묘갈 머리가 얹혀진 모습, 앞면에 정경부인 나주임씨, 뒷면에는 미수공이 쓰신 어머님의 묘갈을 공(公)의 12대 종손 허찬 명예회장이 번역한 내용이 새겨저있다.)
(묘갈을 세운 후 고유제를 올리고 있는 후손들) 나주 임씨 묘갈 제막 및 고유제에 참석해 주신 외빈 여러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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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서예가인 허목(許穆.1595~1682)은 성리학 뿐만 아니라 각종 학문에도 모두 능하였다. 허목은 1595년 연천현감 허교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나주 임씨다. 나주 임씨는 당대 천재 시인이었던 백호 임재의 딸로, 천재시인 아버지 백호를 닮아 고결하고 단아한 성품을 지녔다. 허목은 조선 중기 당쟁의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곳곳한 자세로 일관한 사람으로 칭송 받고 있는데, 그의 성품은 어머니 나주 임씨의 가풍을 닮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