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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가부도 위기와 우리의 미래
백남주(시화노동정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최근 몇 달 사이 세계경제의 가장 큰 불안요인은 미국의 예산안과 부채한도 증액 문제를 둘러싼 미국 정치권의 공방이었다. 아무리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지만 여전히 세계의 패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연방 정부가 폐쇄되고 심지어 국가부도 사태까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은 다소 생소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미국 재무부장관이 일종의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10월 17일을 하루 앞둔 16일에 민주, 공화 양당이 합의안을 도출하며 정치권의 공방은 일단락되었다. 그에 따라 미국은 16일간 지속된 정부폐쇄 사태에서 벗어나고 당장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미국의 재정과 부채문제를 둘러싼 위기와 정치권의 논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미국의 예산과 부채문제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봉책에 그친 합의안...앞으로가 더 문제
민주-공화 양당이 합의한 내용의 골자는 9월에 끝난 지난 회계연도(2012년 10월 1일~2013년 9월 30일) 수준으로 내년 1월 15일까지 예산을 집행하기로 하고, 부채 증액의 경우 상한을 새로 정하지 않고 긴급 조치를 통해 내년 2월 7일까지 부채를 끌어다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결국 이번 합의는 예산안 문제나 부채한도 증액 문제의 해결을 내년 초까지 한시적으로 뒤로 미루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예산 문제에서는 2014회계연도(10월 1일∼내년 9월 30일) 잠정 예산안도 아닌, 지난 회계연도 기준으로 내년 1월 중순까지 지출을 집행하라는 것이다. 부채 한도도 법정 상한을 현행 16조7000억 달러에서 더 높여준 게 아니라 긴급 조치를 통해 내년 2월 초까지 돈을 더 끌어다 쓰라는 내용이다. 결국 내년 1월 15일 까지 새로운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또 다시 정부폐쇄가 될 수 있고, 2월 7일까지 부채한도 증액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디폴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정치권의 갈등과 이에 따른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바마케어’ 시행 유예, 재정적자 축소 방안 마련 등의 목표 달성에 실패한 공화당이 이번 합의안을 패배로 규정하고 있어 공세를 더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화당 베의너 하원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안인 ‘오바마케어’의 폐지 또는 축소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사태로 티파티의 대표 얼굴이 된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 역시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한 후에도 ‘오바마케어’를 저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식의 미국 재정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과 부채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인데, 이러한 정치적 갈등과 부채문제는 미국경제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10월 22일(현지시간) 제이슨 퍼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은 16일간에 걸친 연방정부 폐쇄(셧 다운)로 인해 10월 취업자수가 셧 다운이 없었을 때와 비교해 12만5000명이나 급감하고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해법이 보이지 않는 미 부채문제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난다 해도 별다른 뾰족한 해법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현재 예산안 문제나 부채한도 증액 협상 문제의 표면에는 ‘오바마케어’ 문제가 놓여있다. 물론 ‘오바마케어’라는 복지지출에 대한 민주-공화당의 전통적인 입장과 자본진영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정치적 타협이 쉽지 않았던 측면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간단히 말해 미국이 부채가 너무 많고, 쓸 돈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복지 분야든 군사 분야든 지출항목의 어느 쪽에서든 예산을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어려우니 이런 정치적 갈등이 더욱 노골화 되는 현황이다.
재정․ 부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우선 정부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걷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지출 삭감 논쟁이 이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치적 논쟁이 불거지고 오히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이런 식의 정부지출 축소나 세금 인상은 경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경기 악화는 정부의 세금수입을 감소시켜 재정을 더욱 악화시킨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경기가 회복되어 성장을 많이 하고 그에 따라 정부로 들어오는 돈이 많아지거나 수출을 많이 해서 돈을 많이 벌어오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경제는 아직 경제위기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당장에 어떤 형태로든 긴축을 해야 하니 경기회복에 더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적어도 상당기간 저성장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조업 경쟁력을 크게 상실했고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금융으로 먹고살던 미국이 단시간에 수출을 확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군사적 힘을 이용해 주변국들에게 수입을 강요하는 정책을 펼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부채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제한 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현 위기 국면에서 대다수의 나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수출을 늘리고 싶어 하는 상황이라 미국의 수출확대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부채와 재정문제를 둘러싼 미국 정치권의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황에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하는 지점들을 살펴보자.
정치적 통솔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미국
주목해 봐야 하는 것은 현 부채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전혀 세계적인 정치력과 통솔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존 세계경제 질서는 미국이 패권을 장악하고 미국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이러한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미국의 정책들이 주변국들에게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예산안 통과나 부채한도 증액 협상에서 보여준 미국 정치권의 모습은 오히려 세계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에 대한 최대 채권국인 중국뿐만 아리라 일본 등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정치적 불안에 우려감을 표시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의 부채상한 협상과 함께 양적완화 축소 문제도 짚어볼 수 있다. 최근 양적완화 축소 이슈가 부상하자 인도, 말레이시아 등 ‘신흥국’ 위기가 불거졌다. 미국이 막대하게 살포한 돈이 ‘신흥국’ 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가 이제는 푸는 돈을 줄이고, 종국적으로는 거둬들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신흥국’에서 급격히 자본이 유출되면서 충격이 온 것이다. 그러자 ‘신흥국’은 소위 ‘선진국’의 출구전략이 다른 나라 경제를 위협하면서 세계경제의 핵심 위협요소로 등장했다고 우려했고, ‘신흥국’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출구전략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인사들은 “신흥국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례로 데니스 록하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준은 오로지 미국의 국익에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타국은 (출구전략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각국의 여건에 따라 알아서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연준은 신흥시장 환율 변동성만을 배려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최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미국 국내 경제”라고 이야기했다(서울경제, 201308.26). ‘신흥국’들에게 안정감을 줘야할 미국이 오히려 ‘신흥국’들을 내팽겨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자유무역의 전도사를 자임하던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며 이중적인 잣대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애플과 삼성은 각각 서로의 특허를 침해해서 국제무역위원회(ITC)로부터 수입금지 판정을 받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애플제품의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했고, 삼성제품에 대해서는 그대로 수입이 금지되도록 했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라 미국은 노골적인 보호무역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8월 말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미국 월마트는 미 상무장관과 주지사 등이 참여한 ‘제조업 고위관계자 회담’에서 향후 10년간 500억달러(약 56조원, 월마트 매출액의 10%를 넘는 수준)를 미국산 제품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이 이런 정책을 폈으면 미국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스스로가 주변국들에게 강요했던 논리를 뒤집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과 행동들은 주변국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요인이 되고 있고, 오히려 자국의 경제회생을 위해 주변국들을 압박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기존 체제의 붕괴와 새로운 ‘비젼’의 상실
미국의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정치적 통솔력의 상실은 패권의 균열과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패권이란 단순히 힘으로 지배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옥중수고』로 유명한 그람시는 ‘헤게모니 이론’에서 민중의 자발적 동의와 강제력의 지배가 균형을 이룰 때만이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즉 패권은 강제력과 함께 민중의 자발적 동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배집단의 이익에 봉사하면서도, 보다 보편적인 이익에 봉사한다는 인상을 종속 집단에게 주는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세계체제론자인 지오바니 아리기는 이러한 그람시의 패권 개념을 국제적인 범위에 적용한다. 그는 패권에 대해 “지배적 국가가 자국의 성과 때문에 다른 국가들이 모방하는 모범이 되는 것”과 함께 “지배적 국가가 국가들의 체계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뿐 아니라 그를 통해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믿음을 널리 주는 것이 세계패권의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이렇게 패권의 본질을 규정해 본다면 미국의 패권은 실질적으로 붕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 90년대를 돌아보면 많은 국가들이 금융화 된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부러워하며 자국경제를 미국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한편 발전 선상에 놓여있는 많은 국가들은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역할하고 있는 미국으로 상품을 수출하면서 자국경제를 성장시킬 기회를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위기로 금융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미국 모델이 지속가능하지 않음이 밝혀졌고, 경제가 어려운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작동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 이상 신자유주의적 미국모델은 여타의 국가들이 따르고 싶은 발전 모델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은 오히려 자국 경제회복을 위해 제조업 부활과 수출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모델과 발전방향을 제시해 줘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현재는 각 국들이 경제회복을 위해 각자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형국이고, 그에 따른 충돌과 갈등으로 불만들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언급 했듯이 미국이 갈등을 조정하고 불만들을 아우르는 정치력을 보여주고 있지도 못하다. 오히려 미국의 정책들이 다른 국가들에게 불안요인으로 작동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이다.
미국이 세계적인 경제 패권을 틀어질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기축통화인 달러화에 대한 신뢰도 많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 미국의 국가부도 위기로 정말 미국이 부도가 나서 빌려준 돈을 못 받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이전보다 커졌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를 계기로 주요국 중앙은행들 사이에 보유외환에서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한층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서울경제신문, 2013.10.22).
최근 중국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은 아주 노골적으로 미국의 재정 위기가 “미국의 패권에서 벗어난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할 좋은 기회”라고 논평을 했다. 신화통신은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패권을 유지해왔다”면서 “이런 구도 밑에서 많은 나라의 운명이 한 위선 국(미국을 지칭)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당히 직설적이고 강도 높게 쓴 논평이 공식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국제질서의 요구들이 높은 시기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황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세계경제 질서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지를 모색해야 한다.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있어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며, 새로운 ‘비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전과 같은 방법과 산업구조로는 한국경제를 꾸려 갈 수 없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 할 수 없다.
특히 미국이 세계의 소비시장으로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출 중심의 정책은 한계가 명학하다. 한미FTA 같은 것에 집착하며 미국 경제권에 편입하려는 정책은 전혀 미래지향적인 해법이 아니다.
세계경제 질서 변화와 산업구조 개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더욱 힘들어 질 것이고, 그에 따른 정리해고 등의 고통은 노동자‧민중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부채문제 해결...누가 부담을 질 것인가?
다음으로 주목해 봐야 할 문제는 미국의 부채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둘러싼 갈등이 커질 것이란 점이다.
부채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는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비용은 단순히 돈을 빌린 사람만 지는 것이 아니다. 돈을 빌린 사람은 돈을 갚아야 할 책임이 있지만, 돈을 빌려준 사람 역시 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하며 적정하다고 생각되는 이자를 받기로 한 것이므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군다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세계에서는 그 비용을 제 3자에게 전가시킬 수도 있다.
국가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경우를 보자. 그리스, 아일랜드 등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 등 소위 ‘트로이카’로부터 구제 금융을 지원받고 있다. 트로이카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각 국의 정부에게 긴축을 강요하고 있다. 쉽게 말해 씀씀이를 줄여서 돈을 갚을 수 있도록 방도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긴축은 복지지출 축소, 공공자산의 사유화로 이어져 민중들에게 고통을 강요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지원받은 돈들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이 돈들은 자국의 국민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부채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 돈을 빌려 준 금융투기자본에게 빚을 갚는데 쓰이고 있다. 국가재정위기에 내몰린 나라들에게 더 많은 이자를 받을 것을 예상하며 돈을 빌려준 투기자본들이 책임을 져야하는데도 말이다.
결국 금융위기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금융투기자본들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제위기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는 민중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실에서의 채권 채무관계는 불평등하게 나타나며, 각 계급 계층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해서 나타난다. 다른 예로 정부가 ‘대마불사’의 이유로 재벌대기업들의 부채는 어떤 형태로든 보증을 서준다던지 채무상환을 연장해 준다던지 해서 해결해 주려고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이자를 낮춰 주더라도 끝까지 갚게 하는 등의 정책을 펴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더군다나 패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은 자신들의 부채 문제에 따른 비용을 주변국들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은 막대한 양의 달러를 시중에 살포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달러화의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만약 미국에게 100$를 빌려준 나라가 있다면 향후 받게 될 100$의 가치는 이전보다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미국은 미국에 돈을 빌려준 나라들에게 부채 비용을 전가시킬 수 있다.
우리가 F-35 등 미국산 무기를 사야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무기의 구매비용이라는 것은 결국 국가가 재정으로 지불하는 것인데, 예산을 감축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무기구입에 지출하는 돈을 줄여야 한다. 군수산업체는 미국에 있어 막대한 수입과 일자리를 보장해 주고 있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부채문제로 발목 잡혀 있는 무기구입비 지출을 소위 ‘동맹국’들을 이용해 보충하려는 유인이 작용할 수 있다. 이 역시 부채문제 해결 비용을 다른 국가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적인 부채문제를 둘러싼 전쟁은 우리 노동자 민중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이다. 무기구입에는 막대한 돈을 지출하면서도 복지에는 쓸 돈이 없다고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면서 나오는 이야기가 부가가치세와 주류·담뱃세 인상을 통한 증세방안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경향신문, 2013.10.31). 위기가 심화 될수록 누가 부채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를 둘러싼 갈등은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그 비용 부담은 경제위기를 촉발시킨 것과는 전혀 무관한 일반적인 노동자, 서민들에게도 지워질 것이다.
이상 살펴봤듯이 미국 패권의 붕괴조짐과 그에 따른 세계경제질서 변화, 부채문제 해결을 둘러싼 각국들의 갈등은 우리 노동자 민중의 삶과도 직결된 문제이다. 세계경제의 변화를 제대로 읽고 대처해 나갈 때 우리의 미래도 밝혀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