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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북삼락사우회 원문보기 글쓴이: 아무따나
2011년 3월 경북삼락회문화유적답사 계획
답사지역 : 1.경상남도 고성군 상족암군립공원(상족암. 공룡발자국화석지. 고성공룡박물관)
2.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옥천사
일시 : 2011년 3월18일(금)
동아쇼핑센터(08시 00분 출발) - (161km. 2시간30분) - 고성군 하일면 제전마을(10시 30분 도착) - (해변길 산책 3km. 공룡발자국화석지. 상족암 1시간 30분 소요.해변의 산책로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 고성공룡박물관(12시 00분 도착 관람 40분) - 점심(12시 40분부터 1시 40분까지) - (32.4km. 1시간 10분) - 옥천사(2시간 50분 도착 관람 1시간 3시50분 출발) - (131km. 2시간 10분) - 동아쇼핑센터(6시 00분 도착)
하이면 덕명리, 월흥리에 위치한 상족암군립공원은 남해안 한려수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해면의 넓은 암반과 기암절벽이 계곡을 형성한 자연경관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곳은 바위가 밥상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고 쌍족(雙足) 또는 쌍발이라고도 한다.
상족암 부근 해안에는 6km에 걸쳐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 발자국이 남아 있는데 지난 82년 공룡발자국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두 다리로 걸었던 공룡과 네다리로 걸었던 공룡 등 여러 종류의 공룡이 함께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또한, 천연기념물 제411호인 고성덕명리의 고생물화석산출지는 중생대 백악기 고생물화석산출지로서 공룡발자국화석과 새발자국화석이 다양하게 산출되고 있다.
약 1억년전에 형성된 중생대 백악기 지층인 해안을 따라 약 41km에 걸쳐 1,900여족 이상되는 공룡발자국은 용각류, 조각류, 수각류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고, 미국 콜로라도, 아르헨티나 서부해안과 함께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인정받고 있다. 공룡들의 발자국을 따라 바윗길을 돌아가면 동굴 입구가 보인다.
굴안에는 천연적인 석불이며 기묘한 모습을 한 물형들이 많고 여러 가지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태고때 선녀들이 내려와 직석기를 차려 옥황상제에게 바칠 금의를 짜던 곳으로 베틀모양을 한 물형들이 있으며, 암반에는 공룡발자국이 남아 있다. 발자국 모양과 크기가 일정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같은 종류의 공룡가족이 집단서식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산지(固城 德明里 恐龍과 새발자국 化石産地.
천연기념물 제411호.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52-)
고성 덕명리 화석산지는 중생대 백악기 공룡발자국화석 산지로 양적으로나 다양성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곳이며, 중생대 새발자국 화석지로는 세계 최대이다. 이곳은 다양한 퇴적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1억 2천만년 전 생물의 생활흔적이 많이 나오고 있어, 공룡의 생활상, 자연환경, 퇴적환경, 해륙분포, 새의 진화과정 등을 알 수 있는 학술적으로
고성공룡박물관(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85)
“지금으로부터 2억 3000만 년 전 중생대 초, 지구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공룡” 그로부터 약 1억 6500만 년 동안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공룡은 백악기가 끝남과 동시에 멸종하였다.
지금은 더 이상, 지구의 어느 곳에서도 공룡을 볼 수 없지만 지층 속에서 오래도록 잠자고 있던 공룡은 화석이 되어 다시금 우리 앞에서 그 위용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공룡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경상남도 고성입니다. 온화한 기후와 천혜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살기 좋은 우리 군은 국내 최초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곳으로, 군 전역에 걸쳐 거의 모든 곳에서 약 5,000여 점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공룡전문박물관을 찾은 일반인들에게 공룡화석을 보다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오비랩터(Oviraptor)와 프로토케라톱스(Protoceratops) 진품 화석을 비롯하여 클라멜리사우루스 (Klamelisaurus)와 모놀로포사우루스 (Monolophosaurus)와 같은 아시아 공룡, 그리고 세계의 다양한 공룡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옥천사(경남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408)
신라의 성인 원효대사와 함께 쌍벽을 이룬 의상조사는 당나라 유학시 그곳 종남산에서 지엄선사로부터 화엄의 오묘한 뜻을 깨닫고 귀국하여 화엄대의를 선양하면서 국내의 영지를 가려 불찰을 많이 세웠는데 그것을 화엄십찰이라고 일컬었고, 옥천사는 그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창건되었다.
경내에 달고 맛있는 물이 끊이지 않고 솟는 샘이 있어 절 이름을 옥천사라 불렀고,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이다.
본 사찰은 창건 이후 수차례 중창하였으나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완전 소실되었다가 인조 17년(1639년) 학명대사가 대둔리 촌락에서 유숙하다가 신인이 지시하는 곳에 대가람의 도국이 나타나는 영몽을 꾸고 다음날 이곳을 찾아 명당의 절터를 알고 의오대사와 힘을 합하여 7번째의 중창을 시작하였다.
이때 건립한 것으로는 인조 22년(1644년)에 동상당을 세웠고 같은 23년에 심검당을 세웠으며 효종 5년에는 법당과 궁선당을 세우고 현종 5년에는 성요, 승안, 돈계화상 등의 원력으로 정문을 건립하여 그 규모를 확장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옛 신라고찰의 맥을 잇고 면목을 갖추었고, 그 뒤 숙종3년에 묘욱선사가 법화외사를 열고 대중을 모아 묵루각, 향적전, 만월당을 세우고, 다음 해에는 관음전, 청계당, 옥련암을 세웠으며 한해 넘어서는 동상당을 중창하고 그 다음에는 승당과 선당, 정문, 시왕전, 백련암을 중창하였으며 영조 40년에는 자방루를 건립하였으니 이것이 8번째의 중창이다.
고성 옥천사 청동북(固城 玉泉寺 靑銅金鼓.보물 제495호.경남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408 옥천사)
반자란 절에서 사용하는 금속으로 만든 일종의 타악기이다. 금고 또는 금구라고도 하며 절에서 대중을 불러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리는데 사용한 도구이다. 이 반자는 지름 55㎝, 너비 14㎝로, 표면에 굵고 가는 선으로 4개의 테두리를 둘러 4개의 원을 만들었다. 중심원에는 6개의 둥근 연꽃열매가 돌출 되어 있으며, 그 다음 원에는 연꽃잎이 겹쳐서 도드라지게 새겨있다. 가장 바깥 원에는 덩굴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고, 그 안쪽의 원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다. 옆면은 중앙에 굵게 돌출된 선이 있어 위 아래로 구분되고, 선 위로 둥근 모양의 고리가 3개 있어 매달 수 있게 되어 있다. 옆면 위쪽에 쓰인 글로 미루어 보아 고려 고종 39년(125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반자는 처음부터 옥천사에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지리산 안양사의 것이었는데, 언제부터 옥천사에 보관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반자는 무늬가 뚜렷하고 손상이 없으며, 옆면의 글을 통해 만든 시기와 유래, 관계자의 성명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固城 玉泉寺 地藏菩薩圖 및 十王圖.보물 제1693호.)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는 1744년 화승 曉岸의 주도하에 11명의 화승들이 참여하여 조성되었다. 현재 제1진광대왕도와 제2초강대왕도가 결실되어, 지장보살도 1점과 시왕도 8점이 남아 있다. 이 9점의 불화와 함께 옥천사에는 1744년 曉岸이 제작한 영산회상도와 삼장보살도가 전하였으나, 현재 도난당하여 남아 있지 않다. 지장보살도는 화면 중앙에 두건을 쓴 지장보살을 배치하고, 그 좌우를 2단으로 나누어 하단에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2보살을 그리고, 상단에 대칭으로 6보살을 배치하였다. 상단의 6보살 중 지장보살의 좌우 보살은 정면상을 취하고, 나머지 권속들은 중앙의 지장보살을 바라보게 표현하여 화면의 구도가 짜임새 있고 안정적이다. 시왕도는 한 폭에 각 1位의 시왕을 묘사한 형식을 취하였다. 각 화면은 용두가 장식된 의자에 좌정한 시왕과 권속을 상단에 크게 배치하고, 하단에 彩雲으로 화면을 구획하여 각 시왕에 해당하는 지옥 장면을 묘사하였다. 화면 상단에는 각 시왕의 권속들이 배치하고, 하단에는 지옥장면이 묘사 하였다. 이러한 형식의 시왕도는 1742년 범어사 시왕도가 가장 이른 예로 알려졌으나, 범어사 시왕도는 현재 소장처를 알 수 없다. 이후 시왕이 각각 1폭으로 조성되는 시왕도는 옥천사 시왕도에 시왕의 의자 뒤로 병풍을 추가한 형식이 다수 제작되었다. 1764년 시왕도(호림박물관 소장)나 1798년 통도사 시왕도 등이 그 예에 속하며, 이는 18세기 후반 시왕도의 전형이 되었다. 현재 옥천사 지장보살도는 색의 오염과 화면 꺾임 등의 현상이 나타나지만, 본존과 다른 권속들의 상호는 원형이 잘 남아있는 상태이다. 시왕도는 개체한 흔적이 없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지장보살도와 제9도시대왕도는 바탕천의 재질이 비단이며, 나머지 7점의 시왕도는 모시바탕에 제작되었다. 18세기 명부전 불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옥천사자방루(玉泉寺慈芳樓.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옥천사는 연화산 기슭에 있는 옥천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이 지은 절이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탄 뒤 여러 번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옥천사 자방루는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거나 절의 행사 때 쓰이는 기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던 누각이다. 앞면 7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놓인 주심포계 건물이다. 사찰에서 누각은 일반적으로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데, 자방루 역시 앞마당과 누각의 마루를 거의 같은 높이로 하여 대웅전 앞마당에서 출입하기 쉽도록 하였다. 대웅전 마당 쪽을 향하는 면은 난간을 설치하여 개방하였고 서쪽과 북쪽면은 벽을 설치하였는데, 특히 북쪽면은 7칸 모두 2짝씩의 널판장문을 달아 밖의 경치를 볼 수 있게 하였다. 사찰 누각으로서 대단히 큰 규모를 가진 자방루는 우아한 건물로 이 절의 품위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옥천사향로(玉泉寺香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9호)
향로란 절에서 마음의 때를 씻어준다는 의미를 가진 향을 피우는데 사용하는 도구를 말한다. 높이 23㎝, 입 지름 27.5㎝인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선시대 향로로, 입 주위에는 넓은 테를 가진 전이 있으며, 안쪽으로 ‘의령수도사’라고 점선으로 새긴 글자가 있다. 향로 몸체의 둘레에는 4곳에 꽃 모양으로 창을 만들고, 그 안에 봉황을, 남은 공간에는 빈틈없이 덩굴무늬를 새겨 넣었다. 아랫부분의 받침대에는 문양이 없고, 그 형태가 몸체와 균형이 맞지 않으며, 조선 순조 16년(1816)에 보수하였다는 글씨이 새겨 있다. 이 향로는 무늬를 먼저 새긴 다음 은으로 입히는 방법을 사용하여 문양을 만들었으며, 표충사 은입사 향로와 같은 수법을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으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옥천사대종(玉泉寺大鐘.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
조선시대 청동으로 만든 높이 110㎝, 입 지름 82.5㎝의 종이다. 종을 매는 용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등지고 앉아,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를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종의 윗쪽 띠에는 2자씩으로 연결된 80여자의 범자가 새겨 있으며, 아래쪽 띠에는 연꽃 덩굴무늬가 새겨 있다. 범자무늬 아래에는 4곳에 정사각형의 유곽이 배치되었는데, 유곽은 덩굴무늬를 그려 만들었다. 유곽 안에는 9개의 도드라진 유두가 있으며,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삼존불이 양각되어 있다. 아래쪽 띠 위편에는 ‘건륭 41년’으로 시작되는 글이 있어, 조선 숙종 27년(1701)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종은 진주 민란 때에 파열된 것을 수리하였다.
옥천사대웅전(玉泉寺大雄殿.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옥천사는 연화산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이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인조 17년(1639)에 다시 지었다. 옥천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석가모니를 모시는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효종 8년(1657)에 용성화상이 다시 지었으며, 그 후에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내부의 천장은 2단으로 된 우물천장이고, 불단이 있으며 그 뒤에는 탱화가 걸려있다. 대웅전 앞에는 좌우에 당간지주가 있다. 옥천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법당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고성옥천사소장품(固城玉泉寺所藏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9호)
고성 옥천사에 소장되고 있는 총 119점의 유물이다. 소장품 중에는 크기가 가로 81㎝, 세로 78㎝인 법고가 있는데, 이것은 독경을 하거나 염불을 외울 때, 리듬을 맞추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삼존위목대는 가로 34.5㎝, 세로 54.5㎝ 크기로, 구름과 용·봉황을 조각하여 채색하였다. 가로 103㎝, 세로 152㎝ 의 규모를 하고 있는 시왕탱화는 불교의 시왕(十王)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든 불교그림으로, 벽에 걸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밖에 동제 향로와 집전 행사용 도구인 바라가 있고, 1981년에 제작된 신상탱화와 큰 나무로 만든 밥그릇이 있으며, 예불 행사용 불구인 굉소와 동제 밥그릇 등이 있다. 불교의 의식이나 행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물들이다.
고성보광사목조대세지보살좌상(固城 普光寺 木造大勢至菩薩坐像.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75호)
조선 후기 삼존상의 특징을 지닌 것으로 17세기 전·중반의 목조상들과 비교해 규모도 작아지고 어깨도 약간 위축되었다 진주 연화사의 본존상과 비교할 때 보광사 불상은 불신은 작아졌지만 신체의 비례라 든지 긴 콧날, 사선으로 접힌 승각기의 형태는 매우 유사하며, 단지 우측 어깨의 대의 주름이 물방울 모양을 이루지 않고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은 본존상과 협시상이라는 격의 차이에서 표현의 간략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옥천사명부전(玉泉寺冥府殿.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6호)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여러 차례 고치고 새로 지어 세울 당시의 건물은 없다. 절 이름이 옥천사인 것은 절 뒤에 맑은 샘이 솟아오른다고 하여 붙인 것이다. 명부전은 조선 중기 때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계에서 영혼을 재판하는 곳으로 현대 사법기관과 마찬가지로 공정하게 영혼들을 재판하여 편히 잠들게 하였다고 한다
내일의어제 상족암군립공원 바로가기 :
http://blog.daum.net/bosar/13430656
내일의어제 옥천사 바로가기 :
http://blog.daum.net/bosar/13430460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첫댓글 회장님 수고하십니다. 8시에 동아쇼핑 앞에서 승차하겠습니다.-한찬섭-
07:40에 어린이회관에서 승차하겠습니다.
07:40분
어린이회관에서 승차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