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부러진 갈대나 억새를 보았는가? 허리가 꺾여 머리를 땅으로 숙이고 꽃잎을 늘어뜨린 모습. 모양은 비슷해도 갈대는 습지에서 자라고 억새는 야지에서 자란다. 마태복음에서 ‘상한 갈대’라는 용어는 특이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이 ‘상한 갈대’라는 말엔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여 총체적으로 손상된 인간에 대한 묘사가 있다. 그것은 적절한 이미지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부러져 소망 없이 두려움과 외로움과 고통 속에 버려진 인간을 설명하기 위한 절묘한 이미지. 일반인들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 개념을 가지고 심리학은 사람에 대해 생산적인 견해들을 펼치기도 하지만 사람은 부러진 갈대일 뿐이다. 갈대는 가냘프면서도 고독한 형상인데 부러진 갈대야 오죽하겠는가.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원래 고상한 위용을 갖추고 있었지만, 죄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을 등지고 그 위용을 잃은 존재인 것이다.
또 인간은 떨어진 새에 비교될 수 있다. 인간은 날개가 부러져 하늘에서 떨어졌지만, 날 수 없으면서도 자기가 날던 하늘을 갈구하면서 죽어가는 새와 같다. 이 새에겐 잃어버린 세계가 있다.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향수는 칼처럼 새의 가슴을 베고 그렇게 베인 가슴에서는 상실감과 공허감과 무의미라는 이름의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 죄로 말미암아 사람의 육체는 시공간에 종속되지만 사람의 영혼은 시공간에 종속되기를 거부한다. 날개 부러진 새처럼 시간 속으로 떨어졌지만 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에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영혼은 시공간 너머의 차원을 끝없이 힐끗거린다. ‘영원한 행복’ ‘영원한 사랑’ ‘영원한 가치’ 등의 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지만 그래도 인간의 내면엔 불가항력적으로 이런 개념이 내재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아니면 적어도 영원하기를 바라는 심리가 내포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영원할 수 없다. 영원할 수 없는 존재이면서 영원을 갈망하는 것은 모순이다. 우주 안의 어떤 피조물도 자기 본질 이상의 것을 갈망하지는 않는다. 나비는 새가 되기를 원하지 않고, 새는 천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개는 인간이 되기를 갈구하지 않으며,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좌절하지 않는다. 한데 인간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면서도 끝없이 영원을 바라고,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로 말미암은 자상을 중심에 가지고 있으니 왜 그럴까? 이유는 인간이 영원을 빼앗긴 존재라는 사실 때문이다. 처음부터 영원할 수 있었던 존재가 영원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대한 존재론적 직감이 인간 안에 상실감과 공허감과 무의미로 나타나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영원을 빼앗긴 이유를 죄라고 한다. 즉 갈대가 부러지고 새가 하늘에서 떨어진 원인이 죄인 것이다. 이 세상에 발을 디딘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도 배워야 한다. 죄를 모르는 인간은 인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윤리를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죄와 그에 대한 해결을 제시하는 신앙인 것이다.
죄란 무엇인가? 구약에 사용된 히브리어 ‘아삼(죄, 범죄)’, 신약에 사용된 헬라어 ‘하말티아(죄, 범죄)’ 모두 죄를 의미하는데 ‘아삼’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반역을 의미하고, ‘하말티아’는 ‘표적 이탈’ ‘과녁을 벗어남’의 뜻을 내포한다. 여기서 표적, 과녁은 물론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뜻이다. 죄는 인간관계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발생하는 악이다. 즉 죄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당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뜻에 순종해야 할 인간이, 교만한 의지와 욕심으로 하나님께 반역하여 그의 뜻을 이탈하는 것이다. 반역(rebellion, treason), 불순종(disobedience), 이탈-불일치(discord), 위반(transgression), 우상숭배(idolatry) 이 모두가 죄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 오는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믿고 사랑함이 모든 죄악의 뿌리인 것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범한 악의 본질이 이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인데, 자기를 파괴시키려는 마귀의 교활한 제안에 따라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것이다. 한 마디로 자기의 교만한 욕심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귀의 말을 따른 것이다.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이 죄에 연루됐고, 또 실제로 이런 죄를 범한다. 컵이 존재하는 것은 컵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함이 아니요 컵을 만든 사람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마이크가 존재하는 것은 마이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 아니요 마이크를 잡은 사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다. 컵이 컵을 만든 사람의 의지를 존중하여 거기에 물이나 차를 담는 기능을 온전히 수행한다면 의로운 것이지만, 자기 마음대로 술이나 금을 담으려고 한다면 죄를 짓는 것이다. 마이크가 마이크를 잡은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한다면 의로운 것이지만 마이크를 잡은 사람의 목소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면 죄를 짓는 것이다. 모든 것의 근원과 기원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의 의미나 목적도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기 존재의 원래 의미나 목적을 무시하고 굳이 자기 욕망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탈한 교만과 욕심에 그 뿌리가 있는 것으로서 여기서 만 가지 죄악이 발생하는 것이다. 의미나 목적은 주어지는 게 아니요 인간이 설정하는 것이라는 실존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은 사실은 하나님을 거부하려는 몸짓인 것이다. 이것이 주인에 대한 반역이요 과녁 이탈이다. 이 죄의 결과 인간은 부러진 갈대가 되고 땅에 떨어진 새가 되었던 것이다.
죄가 죄인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이 아니라 자기본위, 자기의, 자기 영광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신앙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 깊숙한 곳에는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는 이 세 가지 중심 동기가 숨어있다. 첫째 자기본위다. 모든 사회, 모든 그룹, 모든 개인의 움직임과 대화의 중심을 살펴보라. 그들의 모든 사상과 관심과 행위의 핵심이 무엇인가 포착해보라. 자기본위다. 심지어 친구관계나 연애관계도 자기본위적이다. 만물 속에서 애교로 봐줄 수 없는 이 지독한 자기본위 의지가 바로 죄다. 모든 만물의 중심에 서서 그 중심체가 되고자 하는 본능이 자기본위라는 죄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본위 아닌 자기본위 가운데 서 있을 때 존재의 질서는 파괴되는 것이며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망가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라는 집의 대문에서 인간의 문패를 떼어야 한다. 우주와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아닌 것이다.
자기 의는 무엇인가?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안에서가 아니라 인간 자신 안에서, 자기 완전 안에서 만족하고자 하는 의지다. 인간의 죄 가운데엔 하나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체로서 완전하고 흠이 없다는, 그래서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 따위는 불필요하다는 악랄한 자기 신뢰가 뿌리 내리고 있다. 이것은 자기신격화라는 우상숭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자기 의란 자기의 근본을 부정하고 자기의 실태를 은닉하는 죄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인간은 의롭지 않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자기의 완전함을 믿고 싶은 것은 에덴동산에서의 타락처럼 자기도 신이라고 하는, 실제로는 자기를 기만하는 죄인의 심리였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이 자기 의에 오염이 됐고, 제사장들은 이 자기 의로 부패했다. 유대인들은 복음의 은총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힘을 다하여 자기 의를 부여잡고 하나님의 의를 거부했다(롬10:3). 그 최악의 표현이 적개심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었다.
자기 영광은 무엇인가? 주기도의 마지막 부분은 이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6:13).” 모든 종류의 영광이 하나님의 것이다. 먹을 것 입을 것 누릴 것 모든 소유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요 원래 우리의 것은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머리카락 한 올에서 육체 영혼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까지 모두가 받은 것이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니 어쩌다가 우리에게 생겨난 행운이나 영예 또한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조건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래 없었던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기의 영혼과 몸과 재능과 소질과 능력과 자기가 누리는 모든 것을 사유화하여 본래부터 자기 것인 것처럼 자랑하곤 한다. 교수가 탁월한 교수의 능력을 구사하는 것, 예술가가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는 것, 가수가 노래를 잘하는 것, 정치가가 지혜롭게 정치를 하는 것, 설교자가 설교를 잘하는 것, 연주자가 연주를 잘하는 것, 운동가가 운동을 잘하는 것, 미인의 아름다운 얼굴, 이 모든 것이 원래 자기의 것인 것처럼, 그래서 그로부터 생겨나는 영광을 자기 것으로 당연시하는 태도가 도둑질이요 죄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 중요한데 우리는 원래 없었던 존재이며,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이다. 인간은 다만 은혜로 사는 것일 뿐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13)”
죄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불법이다. 이 불법으로부터 만 가지 도덕적 악이 나온다. 자기중심 이기심 교만 탐욕 탐식 불의 위선 과시 질투 편견 증오 냉혹 포악 인색 분노 거짓 사기 살인 상해 파당 음행 남색 음란 동성애 유혹 악의 험담 중상 음모 비난 분쟁 배반 등. 복음이란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런 인간이 구원되는 길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용서받아야 할 죄인인 것이다.
<우리가 지상에 보내진 목적/이호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