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年代 ▶한국 근대시의 前史 (시)
▶서구시(자유시)의 경험이 한국 근대시를 형성시킨 요인이 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외부 적인 자극(영향)일 뿐, 한국시 자체 내의 전통적인 경험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서구시는 자극제였던 것은 사실이나, 모방의 주체는 아니다.
▶새로운 감수성의 출현-고전시가의 지속이면서 20년대 진정한 문학을 위한 과도기.
▶1920년대 한국적낭만주의의 조짐(꿈,환상,낭만-1920년대 근대시의 자설적구조변화의 과정)
#자설적 형식-남에 의해서(외부에 의해서)주어진 어떤 문학적 특징
타설적 형식-스스로 자체내에서(자생적으로)형성된 어떤 문학적 특징
ex)외부(한시)의 영향→우리 조선사회를 주름잡는 형식. 엇시조,사설시조→자설적
▶문예지- <소년><청춘><태서문예신보><창조>
▶주요작가-육당최남선, 춘원이광수, 소성현상윤, 소월최승구(최소월)
▶일본유학파 신세대들에 의해 겉껍질은 변했지만 내용은 별진전이 없었다.(공부,개화하자...)
▶<태서문예신보>-태서는 구라파,서구 문학을 의미.외국문학을 소개해 주는 신문.김억(김소 월의 국어선생.장관출신.7,80년대까지 가장많은 분량의 전집작가.근대최초 의 시집<오뇌의 무도>20年代)이 번역,편집,사장
▶육당과 춘원의 2人문단시대.
▷육당 최남선-17세때 편집인겸 사장. <소년><청춘>지에 매호 자신의 작품발표.
·「해에게서 소년에게」-제일 못쓴작품(?). 지금은 중요시 않함.
신시의모습이나 내용은조잡. 바이런의 디오우션을 번역하다시피한 작품<소년>창간 호의 권두시. 당시 17살의 작품에 당시인들은 야∼하는 반응 일으킴.
·정형성을 갖춘신시(한계를 느낌)←(혼란)→<태백산시집>에서 자유율 선택 리듬의 무 정부 상태
▷춘원 이광수-초기에 교육자. 1909년1월호<大韓 興學報>에 실린「옥중호걸」에서 시작.
·작품-「우리의 영웅」, 「곰」 「어머니의 무릎」
·춘원시의 주류를 이루는 세부가 육당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구조가 아니라, 관념적이고
-1- 보편적인 공적 감정으로 일관됨→형식면에서 자유로움만 극단적으로 몰고간 자유율의 한계→춘원은 시에 회의를 느끼고 근대소설을 쓰게됨.
⊙1910年代 ▶근대소설의 태동기-암울한 시대인식과 소설 (소설)
▶시대적 배경-당시 유학생세대의 작가들은 부유층의 자녀들이었으며,과거 조선시대 사회 제도의 모순과 부당한 인권유린과,조혼제도로 인한 개인 행복의 박탈을 직접 적으로 체험한이들은 그것을 논문이나 소설로 일깨우고 싶은 충동이 컸었다.
·1910년대 단편소설의 형성배경에는『청춘』매호 2300자내외(원고지10장내외)의 단편소 설 현상문예 모집규정과 이를 심사하는 이광수의 영향이 많았을 것
·작가들 대부분은 체험부족으로 장편을 쓸 수 없었다.
▶단재 신재호와 소성 현상윤-역사인식과 시대모순 파악
·신재호-「꿈하늘」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정신적 진실만을 추적하여 작품을 서술
자강의 힘을 키워야함 강조(민족운동가적 문체)
·현상윤-「한의일생」자연주의적 작품
「핍박」그 시대 지성인들이 가졌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현상을 묘파(작자曰)
▶이광수와「무정」
·일본 유학중 친구의 권유로 톨스토이 소설에 몰두(인도주의 문학에 매료)
·당시 매일신보만 살아남았는데(친일성향) 이 신문에 연재
▶김동인의 「감자」「배따라기」
·『창조』(1919.순수문예지)-김동인.주요한.전영택.김환-순수문예활동만 할 것을 선언.
·인생의 본질문제를 다루는 순수소설로 춘원류 소설을 극복하려함.
(이광수-청장년기/김동인(18,9살))
·자연주의와 리얼리즘 소설관-서구 문예사조를 작품에서 실험한 작가.
*근대소설의 출발로 보기의 문제-이광수의 영향력에 앞도되어 가려졌지만 작품의 우수 성에 무게를 두었을 경우 김동인의 감자나 배따라기를 삼아야 할 것.(백운복)
출처 : 네이버 지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