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 닭목령 <제11구간>
1. 산행 정보
1) 일 시 : 2012. 03. 31. (토) 10:30 ~ 16:30(날씨 : 맑은 후 흐리고 눈)
2) 주요산 : 능경산(1123m) / 고루포기산(1238m)
3)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왕산면 및 평창군 도암면
4) 코 스 : 대관령 – 능경산 - 고루포기산 - 닭목령
들머리(대관령) ; 강윈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산 1-17 대관령
날머리(닭목령)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859 닭목재
2. 대관령 ~ 닭목령 (도상 : 12.3km)
대관령~1.8km~능경봉~2.6km~샘터~1.6km~전망대~1km~고루포기산~6.3km~닭목령
이 구간은 고산지대로 백두대간 행로는 ‘Ƨ’자형이다. 들머리 대관령(해발832m)과 고루포기산의 해발차이가 약400m 이므로 산은 높아도 산행은 대체로 완만하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서서히 상승하며 고도를 높이면 능경봉이다. 능경봉에서 강릉과 동해바다 등을 감상하고 행운의 돌탑에 행운의 돌을 올리며 소원을 빌고 샘터(870)까지 내려간다. 물을 취수하여 행로를 재촉하여 영동고속도로터널 위를 설명하는 이정표를 보고 전망대로 들어선다. 평창군 대관령면의 마을을 감상하고 고루포기산으로 향한다. 고루포기산 일대는 화전민이 일구어 놓은 산악지대 경작지이다. 이후 고랭지마을과 농장사이로 열린 대간을 따라 닭목재(708m)까지 해발 고도를 낮추게 된다. 산은 높아도 산이 부드럽다.
3. 산행의 흐름과 메아리
1) 들머리에서
강원도의 백두대간을 첫 나들이하는 날이다. 산행보다 차량이동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는 관계로 첫날은 짧은 코스를 이튿날은 긴 코스를 산행하기로 한다. 안동 간고등어로 빈속을 채우고 대관령휴게소로 들어서니 몹시 바람이 불어온다. 풍력발전기는 잘도 돌아간다.
진입 : 50번고속도로 - 횡계IC - 456번지방도 -> (구)대관령휴게소
2) 대관령 – 881 - 능경봉 - 행운의돌탑 – 영동고속도로1터널전망 - 샘터 (10:30 ~ 12:30)
대관령의 매서운 바람을 이용하여 풍력발전기가 돌아간다. 자연의 바람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듯이 사람의 움직임 등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원자력발전설비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 강국이 될 것이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미래를 꿈꾸며 매서운 바람을 시원하게 품으로 받는다. 입춘불래춘(立春不來春).
‘전국토 공원화’라는 글이 자연의 순수성을 망각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자연에서 동물과 함께하는 국립공원을 기리며, 주목나무 조림사업에서 위안을 삼는다. ‘동해영동고속도로’기념비에서 강릉과 동해바다를 조망하며 비행장에서 동해로 비행기를 날려 보낸다.
백설에 발자국을 새기며 임도를 넘어 ‘능경산, 제왕산’삼거리에서 능경산으로 진입하니 나무들은 겨울에 갇혀서 꼼짝을 못한다. 남쪽에는 매화, 목련이 피어 봄기운이 만연한데 아직은 동토지대라니 놀랍다. 제왕산능선과 동행하며 능경산에 이른다.
능경산표지석이 눈에 덮여서 능경까지 눈을 파내고 인증샷을 날린다. 강릉시내와 동해바다, 제왕산을 조망하고 내려서니 ‘행운의 돌탑’이 있어서 동해바다를 넘어서는 해상왕국으로 우리나라가 거듭나기를 빌어본다.
능선아래 계곡으로 영동고속도로가 신나게 달려간다. 옛고속도로는 대관령을 넘어갔는데 이제는 터널을 뚫고 영동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며 거리와 시간을 단축한다. 축지법, 지금의 비행기, 자동차, KTX, 터널과 고속도로 등이 그 비법을 현실로 실현시킨 기술이구나.
내려가면 올라가야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 내려간다고 두려워말고 올라간다고 자만하지 말자. 산의 정기와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렵도 힘든 길도 삶의 체험으로 남아서 목표를 이루는데 많은 도움을 주리라. 영동고속도로 제1터널 표지판과 영동고속도로를 보고 페달을 밟으니 샘터에 도착한다. 샘터는 거리가 가깝고 바람을 막아주어 민생고를 해결한다. 기회가 오면 잡는 것이고, 그것을 십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3) 샘터 – 전망대 – 고루포기산 – 왕산 제2, 1쉼터 – 맹때기농장 - 닭목령 (12:30~16:30)
샘터에서 왕산리로 내려가며, 왕산리에는 백두대간과 제왕산의 맑은 물이 빗어낸 왕산8경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남대천이 흐른다. 샘터에서 심신을 정화하고 고루포기산을 향하여 고도를 높이는데 연리지가 사랑으로 산을 더욱 아름답게 밝힌다. 사랑! 참으로 어렵고 힘들면서 아름답다. 꽃은 피고 져도 연리지는 떨어지지 않겠지.
기온이 올라가면서 눈길은 함정으로 변한다. 쑥 꺼지면서 허벅지까지 빠져든다. 와 눈이 정말 많이 와서 쌓여 있구나. 버들골가는 안내판이 무색하게 눈이 쌓여서 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설악산의 ‘오세암’에 대한 유래가 떠오른다. 옛날 겨울철에 눈에 갇혀서 거동을 할 수 없는 것이 허언은 아니로다. 산 속의 눈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평창군 대관령면은 골프장을 연상시키듯이 마을을 형성되어 있으면서 분지로 온화하게 다가온다. 평온이 흐르는 마을에서 서민을 살리는 사람들이 많이 나기를 기대하며, 돌탑에서 안전을 기원하고, 전선철탑에서 대한민국의 행복을 밝혀주기를 바라며 고루포기산에 도착한다.
검은 구름이 밀려오며 눈이 내린다. 눈에 빠지고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왕산리 제2쉼터에 도착해서 빈의자에 엉덩이붙일 사이도 걸음을 재촉한다. 3월말일의 눈과 바람이 교통을 단절시킬까봐 두렵다. 금강송의 강건함에 두려움을 걸치고, 금강송의 우아함에 희망을 얻으며 잡목 숲을 헤쳐 간다. 혼자서 눈길 산행하다가 잘못하면 동사하기 딱 알맞겠다며, 눈 없는 조릿대 길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초록의 계단이 비단결로 구세주로다.
눈길로 접어들어 왕산제1쉼터이고, 닭목령까지 3.4km 남았다. 잡목들이 비켜나며 금강송이 장식하는 한편에는 고랭지 채소밭이 동행을 하면 눈길의 어려움을 덜어준다. 고랭지채소밭을 경작하는 분들은 옛날에 화전민으로 엄청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고랭지채소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언제나 천덕꾸러기는 없다. 단지 때를 못 만나고, 현대의 감각으로 살려내지 못해서 생기는 것일 뿐이다.
겨우살이로 기운을 살리며 맹때기농장을 돌아 임도를 만나서 인공조림과 금강송을 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의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닭목령에 도착한다.
4) 날머리에서
남대천을 따라서 왕산리를 지나 강릉을 거쳐서 속초에서 해산물구이와 도로목으로 천하의 맛을 얻는다. 행복을 충만하여 진부령으로 가는데 미시령 옛길이 교통통제 되었다. 산행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강릉에서 숙박하며 내일을 설계한다.
4. 문화유적과 전설
1) 능경산
능경봉은 동해의 일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라 능정출일(能政出日)이라 하여 횡계팔경(橫溪八景)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리고 어떤 이는 누운 고양이 형상이라고 한다.
2) 왕산리
강릉지역으로 1916년에 곰자리(熊宿洞), 쑥밭버덩(蓬田坪), 입내골(立來谷), 제리니(紫蓮洞), 장재벌(長者坪), 큰골(大谷)과 오봉리 등을 병합하여 왕산리라 하였다. 대관령 아래에 있으며, 이종(理宗)을 추봉해서 단(壇)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며 높은 산을 대제(大帝:왕산)라 하였다. 대관령 산정 동남쪽으로 제왕산이 있으며 제왕산성이 있다. 제왕산성은 고려말 우왕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왕산리에는 왕산8경이 있다.
왕산8경 : 구남벽(九男壁) / 잿물소 / 비룡폭포(飛龍瀑布) / 천성폭포(天聲瀑布) / 참참이소 / 찍소폭포 / 임내폭포 / 돼지바위계곡(豚岩溪)
<사진 인터넷에서 펌>
3) 설악산 오세암
조선 인조21년(1643)에는 설정대사(雪淨大師)가 관음현신을 목격하고 중창불사 한 오세암의 전설이 전해진다.
설정대사는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절에 데려와 키우고 있었다. 대사는 어느 겨울철 월동준비를 위해서 마등령 넘어 양양의 물치장터로 장을 보러 가게 되나갔다. 어린 조카를 혼자 두고 떠나야 하기 때문에 며칠분의 밥을 지어 놓고, 법당안의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며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저 어머니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라고 신신 당부한 후 양양으로 장을 보러 떠났다.
설정대사가 양양에서 장을 본 후 외설악 신흥사(新興寺)에 왔을 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해서 산길이 막히고 말았다. 대사는 어린조카가 걱정이 되어 조바심을 태워도 어쩔 수가 없어서 신흥사에서 그해 겨울을 넘기게 되었다.
이른 봄날 설정대사는 눈이 녹기도 전에 암자로 달려갔다. 그런데 경내에서는 은은한 목탁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설정대사는 황급히 법당 문을 열어보니, 굶어 죽은 줄로 알았던 어린 조카가 목탁을 치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안에는 훈훈한 기운과 감미로운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대사는 어린 조카를 와락 끌어안고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더니 어린조카는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며, ‘저 어머니가 오셔서 밥도 먹여주고 잠도 함께 자며 놀아 주셨다.’ 는 것이었다. 그 때 백의를 입은 젊은 여인(白衣女人)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서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부처가 되었다(成佛)는 기별을 전해주고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날아갔다.
설정대사는 관세음보살의 가피(加被)에 감격하고 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살아나게 된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절을 중건하고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