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2008년 10월 21일
- 2부 -
새벽 치료가 끝났다. 어느덧 창밖이 밝아오고 있다. 허겁지겁 출입처인 국무총리 기자실로 출근해 일정 보고를 준비하고 있는데, 웬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직은 이른 시각, 누구일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상호 기자시죠? 저는 이준익이라고 합니다.” “이.. 준익 씨요?” “네, 영화감독 이준익입니다. ”남자는 ‘영화감독 이준익’ 이라고 했다.
영화 <왕의 남자>를 히트시킨 이준익 감독의 전화를 받다니. 영광이었다. <왕의 남자> 외에도 <님은 먼곳에>, <황산벌>, <라디오스타> 등 작품들이 말해주듯 그는 명실상부한 스타 감독이 아닌가. 그런 그가 아침부터 무슨 일로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일까? 그가 용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정승혜 씨 아시죠? 영화사 ‘아침’ 대표.” “아.. 정승혜 씨. 네,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충무로의 여걸..” “이 기자, 잘 아시는군요.
사실 정 대표가 아파요. 암환자입니다. 벌써 오래됐어요. 기사에서 이 기자께서 침뜸 보급운동을 하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정 대표를 침뜸으로 좀 도울 수 없을까 해서요. 어디 계시는지 제가 좀 찾아 뵙고 싶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다짜고짜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거장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가 있는 충무로로 향했다.
영화사 ‘아침’ 사무실에는 이준익 감독이 정승혜 대표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정 대표는 지난 몇 년간 대장암에 이어 폐암까지 달고 살아왔다고 했다. “아무에게도 이 병을 알리지 않았어요. 그게 제일 고통스러웠지요. ”지독한 통증 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남에게 알릴 수 없다는 고독감이었을 것이다. 아직 아프지 않은 자들의 세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그녀는 혹시라도 자신의 낙인을 남이 볼새라 가슴을 졸이며 살아온 것이었다.
병든 몸으로 항암제 치료를 받아오며 그녀는 9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히트 영화와 관련을 맺어왔다. 여성 영화제작자로서의 성과를 인정받아 2006년 올해의 여성 영화인상을 받았을 때 뒤늦은 그녀의 수상을 영화계가 함께 기뻐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모든 일을 그녀는 병마와 홀로 싸우며 이룬 것이었구나. 막연히 ‘철의 여인’으로만 알고 있던 그녀 지금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항암제 치료의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투약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고, 그냥 침대 속으로 가라앉아요. 책상에 앉아 있는 건 사치예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영화 만들다가 그렇게 몇일씩 죽어지내다가 다시 돌아와서 일했어요.” “아.. 그랬군요. 저는 이따금 먼 발치에서 뵈면서, 참 씩씩하고 힘이 있으시다. 강한 여성이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고통이 너무 심해요. 그런데 침뜸이 항암제 치료의 고통을 없애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주변에 알아보니 이상호 기자가 오랫동안 구당 선생님을 취재해왔다고 들었어요. 저 좀 만나게 해주실 수 없나요?” “.. 그게 죄송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알아요. 저 몇 번이고 구당 침술원이 있는 청량리에 갔었어요. 아무리 일찍 가도 번호표를 받을 수가 없어서 번번히 돌아왔어요.” “네. 환자분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어요. 전날부터 철야 대기를 하십니다. 그나마 이제는 침술원 영업을 아예 안하십니다.” “어쩌나.. 지난번에 그냥 허탕치고 돌아올 때는 서러워서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어떻게 좀 도와주세요.
”구당과 나는 공적公的인 관계다. 비록 편의상 할아버지라고 칭하지만 그 뿐이다. 침뜸을 알리기 위해 구당을 취재하고 있는 것일 뿐 그를 맹목적으로 추앙한 적이 없다. 구당에게 농반진반으로 ‘고발할 사안이 드러나면 언제라도 고발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마당에 그와의 관계를 사적私的으로 이용해 진료를 알선한 적은 더더욱 없다. 원칙 앞에서 나는 냉혈한이 되고 만다.
그런 내가 싫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세운 원칙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나이를 먹어도 ‘고발 기자로 살자’는 초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원칙론에 사로잡힌 강박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못되게 굴었다.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정 대표님에게 구당 선생을 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 단지 거장 이준익 감독과 제가 연결이 됐다고 해서, 그의 지인인 정 대표께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닐까요?” “...” “인연이 없어 구당 선생에게 닿지 못한 사람들, 돈이 없어 돈이 들지 않는 치료수단이 필요한데도, 병원에서 포기해서 달리 갈 곳이 없이 죽어가는데도 침뜸을 알지 못해 고통받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건 옳지 않습니다. 저는 구당의 침뜸을 취재해 알리는 전달자에 불과합니다. 제 주제를 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차를 마시며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일순 냉랭해졌다. 두 사람의 낙망한 얼굴을 차마 마주하기 힘들 정도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또 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낙담하지는 마십시오. 제가 제 주제에 맞지 않는 일을 할 ‘명분’을 주시면 어떨까요? 기왕에 제가 하는 일은 침뜸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이니, 그 일을 도와주시면 어떨까요?”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 보았다.“ ‘구당’을 알려달라는게 아닙니다. ‘침뜸’을 알려 주십사 하는 겁니다. 침뜸을 알지 못해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많은 분들을 위해 침뜸을 알려주신다면 제가 말씀드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분이 가진 달란트가 영화 제작이니 기회가 생기면 침뜸을 알리는 영화를 만들어 주신다고요 약속하시면.."
“침뜸 영화요?” 금세 두 사람의 낯빛이 밝아졌다. “아.. 그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준익 감독이 반색하며 화답한다. “안 그래도 이번에 조선 선조 때 이몽학의 난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드는데 거기에 넣으면 되겠네요. 황정민이 황정학이라고 맹인 검객으로 나오는데 그 사람이 침을 잘 놓는 캐릭터거든요. 황정학이 침과 뜸을 함께 시술하는 걸로 에피소드를 잘 살리면 되겠네요…….”
“근사한데요? 그렇게 되면 관객들이 부지불식간에 침뜸의 오랜 전통과 뛰어난 효험을 느낄 수 있겠네요. 또 다른 영화에서도 기회가 되시면 침뜸에 대한 관심을 가져 주신다고 약속해 주시면 좋겠네요.” “네, 약속하겠습니다. 정 대표 치료과정을 통해 침뜸의 효과를 알게되면 이 기자가 말하지 않아도 저희가 나서서 열심히 알릴 겁니다.”
(이준익 감독은 약속을 지켰다. 2년 뒤에 나온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맹인 황정민이 침과 뜸으로 부상당한 백성현을 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보고도 그 장면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태반이겠지만, 그래도 얼마나 고마운줄 모른다. 이 감독께는 첫 대면의 무례함을 뒤늦게 나마 사과드린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회가 침뜸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기를 저는 희망합니다. 환자들이 좋다는데, 정부나 의학계가 나서서 검증을 하고, 만일 사실이 아니면 구당을 처벌하고 만일 사실이라면 그걸 알려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국가나 사회가 해야할 일 아닙니까? 기자는 뭐하는 직업입니까?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생명과 건강. 이 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뉴스가 어디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저희도 같은 생각이예요. 영화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거 중요하지요. 어차피 저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고 침뜸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좋은 거라면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최대한 역할을 찾아보겠습니다.
”정승혜 대표의 말이었다. 진심이 넘쳐나는 그녀의 대답에서 용기가 전해졌다. 그렇다면 지체할 수 없었다. 구당에게 전화를 넣어 치료를 청했다. 침뜸을 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구당은 이번에도 거절하지 않았다. 퇴근 후 정승혜 대표와 함께 구당을 찾았다. 구당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그저 열심히 묻고 또 기록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오니 밤 9시가 훌쩍 넘었다.
늦은 밤 정승혜 대표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놀라운 하루였고, 정말 고마웠습니다... 진짜로 기적처럼 느껴졌어요.”세상에 기적은 없다. 필연을 간구하는 기도가 있을 뿐이다.
<알려드려요>
- '영리병원 반대'와 '민중의학 침뜸 보급' 위해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희망이 세상을 고친다>(나무와 숲)를 매일 연재합니다.
- <환자가 병원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오늘> 돈 들이지도 않고도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침뜸의 소중한 진실, 함께 지켜주세요. 읽으시고 공감되시는 분, RT 부탁드립니다.
- 장진영씨에 대한 치료는 2008년 9월28일부터 12월 25일까지 3개월간 매일 이뤄졌습니다. 연재 역시 2011년 9월28일부터 12월25일까지 이어집니다.
- 우리의 오늘은, 3년전 장진영씨에게 그토록 절실했던 하루였답니다. 그녀와 구당의 대화를 통해, 당신의 하루가 더 근사해지길 희망합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