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탄도 유 재경님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세상이 뒤집힐듯 주식 시장이 곤두박질 쳤다. 몇 일 전만해도 바닥일 듯 싶던 주식 시장은 그 끝을 알수 없을 정도로 다시 대폭락 하며 주식을 하는 모든 사람의 간장을 녹여 버렸다. 마이너스 110포인트에 코스피 지수 940포인트 정도로 시장은 마감을 했다.
그 와중에 만사를 잊기 위해선 요트를 타는 것이 대수 일 것으로 생각 해 예정대로 토요일 아침 대부도를 향했다. 본래 대부도 옆에는 탄도라는 섬이 있었는데 이제는 대부도와 연결이 되어 탄도는 대부도로 통칭되고 있다. 그 탄도의 끝에 지난 여름 세계 요트대회가 있었던 전곡항에서 마주 바라 보이는 곳이 탄도항이다. 본래 탄도항은 어항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요트들이 몰려와 진을 치고 숫자를 늘려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수도권에서 가장 유명한 요트 정박지로 알려져 있다. 이미 이곳에 떠있는 요트만해도 40척을 넘고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나 요트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는 중이다.
노영문을 비롯한 고교 동창생들은 이미 탄도항에 도착 해 나를 반갑게 맞이 해 주었다.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요트가 있는 바닷가로 갈 때, 비록 하늘은 찌뿌듯하고 약간의 빗방울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바람은 요트를 즐기기에 적당 할 듯 싶었다. 근래 요트를 할 적마다 바람이 적어 지루하던 터에 바람이 반갑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일곱명이 승선을 했지만 기실 요트에 대한 기본을 아는 사람은 나와 노영문 뿐으로 나머지 다섯은 요트에 대해 무뇌한이라 해야 할 생짜베기였다.
우리가 승선한 배는 친구 노영문이 한달 전 구입한 수령 20년의 노후 된 42피트의 전문 레이싱 요트였는데 더우기 오랜 동안 방치되었던 배여서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드물 정도로 손을 많이 보아야만 하는 배였다. 나도 이 배를 세번째 타는 배여서 그 내용을 어느정도 밖에 파악 할 수 없었지만, 정작 선주인 노영문 마저 이 배에 대해 내용 파악이 부족한 입장이었다. 노영문은 내겐 고교 동창 친구이지만 우리나라 요트 역사에 있어서 신화적인 존재로 유명세 있는 사람이다. 28년 전 그가 재직하던 경일 산업에서 시제품으로 제작한 '파랑새' 라는(당시 전두환 정권 속에 파랑새라는 이름을 단 이 요트는 동학혁명의 '녹두밭의 파랑새' 와 연계되어 말썽 소지가 많았다고 한다.) 이름의 요트를 타고 친구인 이재웅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태평양을 횡단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태평양 요트 횡단을 했던것은 그의 말대로라면 멋몰라서 결행한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한다. 그는 태평양을 항해 하면서 많은 갈등을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목숨 걸 일을 왜 해야 했던가, 알량한 돈과 명예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결행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에 대한 후회, 만일에 목회자로서 목숨을 걸고 일을 했다면 죽어도 천당에서 한 자리를 하사 받겠지만, 이러한 일에 목숨을 건다는 일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가. 그래서 그는 항해를 마친 후 목회자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단다.
노영문은 동창생이긴 했지만 고교시절에 가까이 지낸 친구는 아니어서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지는 않았다. 우연히 탄도항에서 요트를 하면서 다시 만나게 된 동창생이었다. 그는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다. 누구나 호감을 갖고 신뢰 할 수 있는, 훤칠한 키에 싱거워 보일 정도로 호감있는 성품의 사람이었다. 딩기라는 조그만 요트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천진 할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태평양을 횡단한 거창한 요트맨에 대한 기대에 비하면 허술해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재로 태평양을 75일에 걸처 악전 고투하며 횡단하여 이를 실천에 옮긴 산 증인이니 앞으로 관심을 갖고 관찰 해 볼만한 그런 사람이다.
노영문의 킹콩이라는 이름의 요트를 타고 우리는 조급한 마음에 우선 시동을 걸고 Jib Sail을 올린 후 닻을 풀어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 갔다. 그리곤 Main Sail을 올리는 작업을 강행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며 복잡한 Riging 사이로 메인 세일을 올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그것은 장착된 쎄일이 이배에 적합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미숙한 사람들이기에 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돛을 다 올리기도 전에 점점 파도가 높이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그런 참에 악천후로 회항하여 돌아오는 어선들이 세줄로 줄을 이으며 우리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주변은 수심이 낮은 지역이라 항해의 범위도 제한되어 있어 상황은 매우 난감한 처지에 이르렀다. 몰려 오는 배를 피하기 위해 진로를 바꾸자 우리 배는 급격히 기우러지며 선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미처 다 올리지 못한 돛은 바람에 심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항해를 하는데 있어서 선원이 기본을 갖추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바다라는 거대한 물덩이와 대적할 만한 어떠한 힘도 우리는 갖고 있지 않은 탓에 단 한가지의 실수가 바로 생명과 직결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기본이라면, 특히 요트에 있어서, 날씨에 대한 정보, 바다의 수심 및 해류와 같은 바다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항해를 위한 기본기의 습득을 갖추는 일이겠지만 특히 요트에 있어서 선박에 대한 구조의 이해와 이들 각 부분의 작동 여부에 대한 점검 및 항해를 위한 기본 도구를 갖추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노영문과 나의 경우, 그날 킹콩이라는 이름의 오렌지색 레이싱 요트를 몰고 나간 시점의 우리의 입장은 어떠했는가,
이 배는 악천후의 경우에 최소한 4명 이상의 노련한 선원이 필요한 전문적 경기용 요트였다. 그러나 이번 킹콩호에는 노영문과 나만이 선원이라 할 수 있고 나머지 다섯명은 그냥 손님에 속하는 풋나기였다. 배의 구조와 이의 점검에 있어서도 나는 불과 세번 타본 것이 전부일 정도로 배에 대한 이해가 턱 없이 부족했고 선주인 노영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재로 아직도 나침판을 비롯한 모든 계기가 불능 상태에 있었고 수 없이 많은 로프들의 위치와 역할마저 충분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였다. 요트에는 항해를 위한 장비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 선박의 이안 및 계류를 위한 도구는 필수 장비에 속한다. 그 중에 장대 훅크라는 앵커링을 위한 도구가 있다.
탄도항은 현재 요트가 사십여척 떠 있지만 아직 계류시설이 없어 바다 한 가운데 앵커링을 해 놓고 있다. 그러므로 배를 타기 위해선 중간에 고무보트를 타고 가야 한다. 그런 후 고무보트는 배를 묶어 논 부표에 묶어 놓고 요트를 타게 된다. 역시 항해를 마친 요트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부표에 앵커링을하고 선원은 고무보트를 타고 육지로 돌아 오게 된다. 그런데 요트를 다시 이곳으로 몰고와 앵커링을 하기 위해선 부표를 붙잡아야 하는데 배가 이동하면서 잡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배의 무게에 따른 큰힘을 견뎌가며 앵커링 밧줄을 요트에 묶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에 필수 장비가 장대 훅크이다. 긴 장대에 갈고리가 달린 도구로서 배가 부표에 근접을하면 부표에 매어 달린 밧줄을 잡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의 킹콩은 바람 앞에 촛불마냥 돛을 펄럭이며 이미 속수무책의 상태에 접어 들었다. 키를 잡은 나는 앞에서 달려오는 어선을 피하며 강풍에 넘어가는 배를 바로 세우기에 바빳다. 그나마 배의 진로를 잡기 위해서 비상용 엔진을 켰다. 바람을 마주 해야 기우는 배를 바로 잡아 집 쎄일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집 쎄일은 선수에 매어 달린 돛으로 그 크기에 따라 제노아, 래귤러, 스톰등이 있다. 우리가 사용한 것은 래귤러였다. 집 쎄일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로프를 좌우로 당겨 위치를 조작하며 메인 쎄일과 함께 지그재그 항해를 하기 위한 돛인데 바람의 세기에 따라 선택하여 사용하지만 오늘처럼 바람이 강한 경우엔 올려선 안되는 돛이었다. 그 날의 실수는 출항 할 당시에 바람이 세지 않았기에 방심하고 메인 쎄일에 앞서 우선 집 쎄일을 올린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복잡한 항구에서 출항 할 때 엔진만을 사용해서 항구를 빠저 나온 후 집 쎄일보다 메인 쎄일을 먼저 올리는 것이 순서이다. 그렇게 항해를 하다가 바람의 상태에 따라 적당한 집 쎄일을 선택한 후 이를 올리는 것이 올바른 순서였다. 그런데 우리는 방심한 탓에 집 쎄일을 먼저 올린 후 출항하면서 메인 쎄일을 올렸는데 그나마 메인 쎄일이 킹콩에 부적격하고 돛의 운용을 위한 기술과 로프를 파악하지 못한 선원들 탓에 돛을 다 펴기도 전에 위기를 만난 것이었다. 본래 메인 쎄일은 배의 중앙에 위치 하기 때문에 집 쎄일에 비하면 바람에 안정된 돛이어서 올바르게 펼쳐있으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집 쎄일은 다 펴놓고 메인 쎄일은 마저 올리지 못한 불안정한 상태에서 각종 로프와 함께 돛이 바람에 날려 요동을 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누구하나 배에서 바다로 낙수라도 한다면 큰일 날 일이다.
요트에는 많은 장치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을 동력으로 항해하는 배이므로 돛과 이를 조정하기 위한 각종 로프이다. 요트에 오르면 수없이 많은 종류의 로프들이 이곳 저곳에 널려있고 감기고 메어있다. 종류가 많아서 각 로프는 서로 다른 색으로 분류하기는 했지만 이들의 용도를 모두 파악하려면 많은 경혐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요트를 배우는데 있어서 기본은 이들 로프의 종류를 파악하고 용도를 숙지하는 것은 물론 기본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로프를 정리하는 일이다. 하나 하나의 로프가 모두 나름대로의 고유한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어지러워 서로 엉키거나 엉뚱한 곳에 메어 있으면 긴급한 상태에서 큰 낭패를 볼수 있기 때문이다.
노영문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까지도 요트에 대한 면허를 갖고 있지 않았다.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대학 요트 동아리에서부터 그냥 혼자 익혀 온 탓에 요트의 기본을 숙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요트에 있어서 기본은 로프이고 로프를 다루는데 있어서 기본은 매듭인데 그는 매듭 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Bow Line 도 잊고 있었다. 그런 그가 태평양을 일엽편주인 33피트로 횡단하다니 정말 불가사이한 일이다. 그 사람 안에 무엇이 있기에 그런 일을 벌릴 수 있었을까, 그는 정말 연구 대상인 인물이었다. 요트에 있어서 매듭은 매었을때는 단단해야 하고 역설적이지만 풀기에는 쉬어야 한다. 만일 풀기 어려운 매듭을 했을때 위급 시에 칼로 잘라야하는 불상사를 겪기 때문이다. 그런데 칼마저 손에 없다면 닥친 상황이 어떻게 되겠는가.
요트 킹콩호는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추풍낙엽이었다. 요트는 강한 옆 바람을 받으며 거의 45도 정도로 기울어 갑판 위에 물이 오를 정도가 되었다. 이대로라면 배가 지나치게 기울어 선실로 물이 들어차서 침몰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또한 자칫 급한 경사에 친구들이 갑판에서 미끄러져 바다에라도 떨어지면 강한 풍랑에 쓸려 매우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거듭 거듭 되면서 우리 모두는 겁에 질려 초긴장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요트는 배 중에 가장 안전한 배라고 일반적으로 예기한다. 그것은 요트의 구조적 특성 때문인데 돛이 있기에 안정을 위해서 요트의 바닥에는 발라스트 킬이라는 것이 있다. 발라스트 킬의 무게는 배 무게에 30%에 이를 정도로 무거운 것으로 복원을 위한 추의 역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트는 뒤집히거나 선실에 물이 차지 않는 한 다시 복원 될 수 있는 특징이 있기는 하다.
우선은 배가 바람을 덜 받도록 집 쎄일을 내려야 했다. 결국 악천후에 경험이 많은 노영문은 집 세일을 내릴 것을 결정하고 아수라장이 된 선상에서 놀라 어쩔줄을 모르는 동창생들을 이끌고 침착하게 돛을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쎄일을 몸으로 휘감아 가며 결국 그는 성공적으로 집 쎄일을 내리고 갑판 한 켠에 묶어 놓았다. 그제서야 배는 안정이 되어 제 자리를 잡고 엔진을 이용해 항로를 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메인 쎄일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돛 폭을 휘날리며 주변의 리깅과 함께 요동을 친다. 이제는 메인 쎄일을 안정을 시켜야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 상충된 의견을 갖게 되었다. 내 경우는 메인 쎄일을 안정 시킨 후 항해를 계속하고 싶었고, 노영문은 메인 쎄일 마저 내린 후 엔진을 이용 해 회항하자는 것이었는데, 결국 선주인 노영문의 의견에 따라 돛을 내리고 아쉽지만 기항지를 향해 배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외해의 기상 상태는 당시 파도가 2~4미터에 이를 정도로 악천후 속에 있었다 하니 결국 노영문의 판단이 옳은 것이었다.
돌아가는 중에도 멀리서 고기를 잡던 배들이 줄을 지어 파도를 일으키며 앞다투어 기항지로 돌아 가고 있었다. 멀리 우리배를 묶어 놀 앵커링 부표와 그에 묶어 논 고무 보트가 보였다. 여전히 파도는 높고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었다. 간간히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지며 옷을 적시어 한기를 느끼게 된다. 이제 킹콩호를 고무 보트에 인접시켜 묶어 논 밧줄을 잡아 앵커링을 하면 될 일이다. 킹콩은 앵커링 밧줄을 잡을 수 있도록 조심스레 고무 보트에 인접 시켰다. 엉성하게 접어논 메인 쎄일에 시야가 가리어 앞을 제대로 파악 할 수는 없었지만 배의 접근은 성공적인 것 같았다. 그러나 노영문은 준비한 PVC 장대 후크로 밧줄을 잡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장대 마저 놓치어 이를 물속에 빠트려 잃어 버리고 말았다. 다시 킹콩을 돌려 주변의 즐비한 어선 사이를 헤치고 돌아와 2차 시도를 했다. 그나마 있던 각목을 이용한 모양인데 거듭 실패 하고 말았다. 다시 배를 돌려야 했다. 이러다 주변의 배라도 들이박는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되니 키를 잡은 나는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엔진을 가속하고 다시 줄이기를 반복하면서 키를 돌리는 일을 계속했다. 3차 시도를 했으나 또 다시 실패를 했다. 높은 파도와 바람 때문에 키를 돌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배와 배사이의 좁은 해로를 따라 좌우로 급히 회전해야 하므로 키를 조정하는 일이 숨이 턱에 찰 정도로 힘이 들었고 설상가상으로 틸러가 정갱이에 계속 부닥치어 통증이 만만치 않았다. 4차의 시도도 실패를 했다. 다시 5차 시도를 하다 항로를 이탈 해 결국 일이 벌어졌다. 남의 앵커에 메어 놓은 보트가 우리의 킹콩에 걸려 버린 것이었다. 보트는 파도에 휘말리며 연실 킹콩을 드리 박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킹콩과 보트가 서로 많은 손상을 볼 것이 자명했다. 노영문이 보트에 뛰어 들었다. 나도 함께 거들며 이를 해결하려 했지만 묘책이 스질 않았다. 노영문은 이미 파도를 맞아 온몸이 물에 젖은체 보트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28년 전 태평양에서 있었을 '파랑새'호의 노영문을 연상 시켰다. 검은 바다, 폭풍의 바다, 그 안에서 필살의 사투를 버리고 있었을 노영문, 순간 그의 진면목이 보이고 그런 그의 모습은 내게 존경스런 마음을 자아 내게 했다.
우선은 보트를 킹콩호로부터 떼어 내야 했다. 그렇다고 보트를 표류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로프로 보트를 킹콩에 메어 단 후 앵커에 연결된 보트의 로프를 끈어 내야 했다. 파도는 연실 배를 때리며 하얀 거픔을 품어 내고 있었다. 노영문은 온몸에 물 벼락을 맞으며 내려준 로프를 보트에 묶었다. 이제 보트의 앵커줄을 끈어 내면 된다. "칼 좀 줘 !!" 하며 노영문이 외친다. 급히 칼이 필요했다. '칼', 인류가 사용해 온 도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유용하게 사용 되어 온 칼, 인류의 역사는 칼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얼마나 많은 전쟁 속에서 수 없이 많은 칼들이 휘둘려졌는가. 피의 역사, 피와 땀의 역사, 그 역사에 늘 함께 했던 칼, 그 칼이 당장 필요 했다. 그래서 요트맨에게 필수 휴대 장비 중 하나가 칼이다. 나는 엽구리에 늘 차고 다니던 맥가이버 칼을 꺼내어 노영문에게 건네 주었다. 칼로 줄을 끈어 내자 마자 요트에 막무가내로 부닥치던 보트가 멀어지면서 킹콩은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보트는 킹콩의 엽구리에 매어 달린체 킹콩과 함께 운명을 하게 되었다. 킹콩호는 다시 앨커줄을 잡기 위해 다시 선회를 해야 했다. 보트를 옆구리에 매단 체, 그렇게 역시 몇 바퀴를 다시 돌았지만 앵커줄을 잡는 일은 거듭 실수를 했다. 겨우 잡으면 요트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줄을 다시 놓치고 말았다. 갑판에 납작 업드려 각목을 들고 줄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노영문은 거의 탈진 상태에 있어 보였다. 그렇게 수 없이 억지 선회를 하면서 실수를 거듭하는 우리의 모습은 남들이 보기에도 영 말이 아니었을것이어서 그런 생각에 이 와중에도 창피스러운 생각 마저 들었다. 진작부터 주변의 모든 배 안의 사람들이 무슨일이 일어 날듯하여 놀란듯 우리를 바라 보고 있었지만 만만치 않은 파도와 바람 때문에 우리를 도와 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최후의 방법은 요트가 접근하면 누군가 고무 보트에 올라서야 했다. 요트에 누구든 타라고 외쳤지만 어느 누구도 선듯 나서지 않아 말하는 입만 바짝 마르고 거듭 선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노영문이도 이젠 앵커 로프를 잡는 일을 거의 포기한 상태인 모양이었다. 할 수 없어 키를 노영문에게 맞기고 내가 선수로 뛰어가 고무 보트에 뛰어 들었다. 나는 보트 위로 벌렁 나 자빠지면서 보트와 함께 파도에 휩쓰렸다. 킹콩호는 다시 보트로부터 멀어지게 되고보니 나는 망망 대해에 혼자 일엽편주에 떠있는 외로운 표류자가 되고 말았다. 다시 선회하며 접근하는 킹콩호를 향해 밧줄을 길게 한 후 내게 던지라고 소리쳤다. 나는 킹콩호가 다시 멀어지기 전에 급히 밧줄을 받아 앵커 줄에 묶었다. 성공이었다 그러나 숨이 턱에 바친다. 이날 장대 훅그가 제대로 준비 되어 있었으면 손쉽게 앵커링을 할 수 있었을 것을 이를 준비하지 않은 탓에 호댄 수업을 치렀다. 항해에서 비록 사소해 보이지만 하나 하나의 도구가 망망 대해를 항해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는 온몸을 다 바쳐 제대로 실감 할 수 있었다.
이제 킹콩쪽에서 밧줄을 당기어 앵커줄을 잡아 배에 묶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되는 셈이다. 환호를 하며 동창생 모두가 메어 달려 밧줄을 끌어 당겼다. 영~차 영~차 하면서......... 앵커줄을 배에 묶은 후 우리 모두는 우선 휴식이 필요했다. 안도의 웃음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그리고 소주와 안주, 마침 갖어 온 와인을 꺼내어 무사함에 감사의 뜻으로 힘차게 건배를 했다.
살았다~~~~~
남쪽 하늘에서부터 서서히 검은 구름이 걷히며 구름 사이로 살짝 햇살이 내려 쪼인다. 햇살이 무척이나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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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메인을 먼저올려야한다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