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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하늘재~저수령 스크랩 백두대간 황장산
조은산 추천 0 조회 184 15.08.27 21: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백두대간 황장산

 

2015. 8. 19()

산길 : 저수령~차갓재

사람 : 객꾼 호박 이교수 조은산

거리 : 13.9km / 08:50

 

 

저수령~문복대~벌재~황장산~작은차갓재 / 13.9 km

Cartographic Length = 13.9Km Total Time: 08:50

 

저수령~차갓재.gpx

 

 

 

 

평소 같으면 밤중에 한번쯤 일어나 볼 일을 보곤 하는데, 오늘은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일어나도 화장실 생각이 나지 않는걸 보니  어제 그만큼 수분이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라. 껍데기만 남은 헐렁한 기분으로 앉아 있는데, 라면 퍼지니 퍼뜩 오시란다. 빈 껍질만 남은 몸에 아침부터 라면이라니, 뭔가 좀 영양까 있는거 없나... 마지 못한듯 정자로 올라가니 진짜로 퍼자빠진 라면만 남았다. 이거나마 쪼매 더 꾸물댔더라면 궁물만 퍼 마시고 갈 뻔했네.

 

보조요원들(학생)이 있어 좋다. 일어나니 밥상 딱 채려놨지, 또 우리 출발하면 차를 날머리로 이동시켜주지, 필요한거 보급에, 주변정돈까지. 경비까지 나라에서 다 대준다. 오로지 할 일이라고는 한 구간에 서너군데 흙 한 줌씩 퍼담아오면 되는데 그건 일도 아닌기라. 미생물인지 프로젝튼지는 몰라도 이런 시스템이라면 백두대간 열 번도 더 하겠다.

 

 

날씨는 어제 그대로이고, 이교수가 함께하므로 사람 하나 늘었을 뿐이다. 거리도 어제의 반토막 정도라 물병도 반 만 채우고 부담없이 나선다.  

 

 

 

07:10 저수령

08:10 문복대

09:40 벌재

12:15~13:10 1004.5m (치마바위) 점심

14:35 황장산

15:25 멧등바위

16:00 작은 차갓재

 

 

 

 

저수령

 

저수령(850m)

충청북도 단양군과 경상북도 예천군의 경계로 927번 도로가 넘어간다. 단양쪽에 있는 주유소와 휴게소는 폐업한지 오래된 그대로 내버려져 있고,  예천쪽 아래 조성중인 공원도 공사를 벌려놓고는 그대로 방치된 채로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故峴(고현)으로 표기되었다.

 

 

 

 

 

어제 내려섰던 반대쪽으로 올라간다. 아침부터 사진 밝히는 호박씨.

나무계단에는 [용두산 등산로] 이정표가 있는데, 용두리 뒷산인 ×976.7봉을 마을에서 용두산이라 부르며 국사지맥의 첫봉우리다. 작년 초에 조진고문님과 국사지맥 하면서 여기서 올라갔다.

 

 

물봉선

 

 

 

 

국사지맥 분기점

 

저수령에서 10분 올라가면 국사지맥 분기봉(920m). 왼쪽으로 묘터를 넘어가면 국사지맥이고, 백두대간은 우측이다. 국사지맥은 여기서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용문산, 국사봉을 거쳐  금천과 내성천이 낙동강을 만나는 삼강주막이 있는 삼강교까지 가는 40km의 산줄기다. 예천 비행장을 크게 돌아갔고, 가오실지, 연꽃 가득한 산택지를 지나가는 지맥이다.

 

국사지맥을 따라  예천군과 문경시의 경계가 갈라진다. 경북과 충북의 도계는 백두대간을 따라  지형도의 '문봉재'까지 좀 더 이어지고, 이제부터 능선 왼쪽은 문경땅이 된다. 문경시 동로면.

 

 

 

오미자길

 

920봉에서 국사지맥을 남쪽으로 보내고, 대간길 따라 내려가면 임도에 떨어진다. 우측 소백산관광목장에서 올라 온 길인데 풀이 우거져 경운기나 올라올 만하다. 임도건너 등산로 따라 파이프를 하우스 처럼 박아놓고 오미자를 심어놨다.

 

 

 

 

백두대간 등산로에 일부러 꾸며놓은건지, 재배를 하는건지 '오미자길'을 만들어 놓고 실제로 오미자가 열려있다. 여기 달려있는 저 오미자를 따가는 인간도 있을까? 여러사람이 찾는 산길에 열려있는 뭐든지, 그대로 두고 모든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문화가 아쉽다. 그저 우리나라 산길에는 뭐든지 "먼저 보는 놈이 임자"이니... 그게 우리 백성들의 수준이다.

 

 

 

오미자

산길에 달려있는 열매들,  제발  있는 그대로 좀 두자.

 

 

 

시료채취

 

 

 

송장풀

 

지형도의 '문봉재'는 어디를 말하는지 모르겠고, 여기서 경북도계는 북쪽으로 내려가고, 이제 백두대간 마루금은 온전히 문경땅으로 들어간다.

 

 

문복대 (門福臺  ×1,077.6m)

 

지형도에는 지명없이 고도표기만 되어 있는 봉. 다른 지도에는 여기를 옥녀봉이라 표기한 것도 있더라.

다리도 아프고 육신이 피곤하여 정상석에 몸을 기대고 앉으니 차가운 돌의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전해온다. 한참동안 이렇게 기대 있었다.

 

 

문경 동로면의 천주봉이 기둥처럼 솟아있다

저 천주봉이 왼쪽 뒤로 다 밀려나면 차갓재다.

 

 

 

 

국사지맥

맨 왼쪽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보이고, 우측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산수국

 

 

 

 

돌목재

 

남쪽 아래 석항리에 돌목마을이 있어 돌목재인가 보다. 그리고보니 한자 石項里를 우리말로 풀면 돌목 아닌가. 예전에는 고개 역할을 했는가 모르겠다만 벌재가 이웃하고 있어, 넘어 다닐 일은 없어 보인다.

 

 

애기나리

갈 때가 된건지, 병이 든건지... 죽.는.건.가...?

 

 

 

 

벌재 직전 임도 위로 구름다리가 놓였다.

 

구름다리를 건너가려다가, 왼쪽 아래로 도로와 정자가 보이고, 정자에서 교수님이 부른다.

 

 

 

 

벌재

 

벌재 (640m)

문경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59번국도. 저수령보다 교통량이 훨씬 많다. 백두대간 진행시, 고개 너머에 이쁜 아줌마가 하는 포장마차가 있었는데, 성벽 같은 육교가 놓였다. 산림청의 이야기대로라면 끊어진 백두대간을 이었다는건데, 사람은 못 지나간단다. 여기부터 월악산 국립공원 영역이고, 국립공원에서 년중 출입을 금지한다. 출입금지는 13년 전에도 그랬었는데 아직 그대로네.  

 

벌재라는 이름은 '붉은 재'에서 왔다고 한다. 벌재의 남쪽 마을이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赤城里)인데 이 이름에서 고개 이름을 따 왔다는 설명이다. 적성리의 적자가 '붉을 적'()이어서 고개 이름이 '붉은 재'가 된 것을 이 고장 말로 '벌재'라고 했다는 것인데,  사실성을 알 수는 없으나 그럴 듯해 보이긴 한다.

 

 

 

40억이나 갖다 붓고, 사람은 들어오지 마라...

 

산림청에서 '백두대간 마루금 복원사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육십령, 이화령에 이어 벌재, 속리산 비재에도 생태통로를 완공했다. 하나에 40억이면 160억 이란 계산이 나온다.

 

산림청 보도자료(신문기사)를 보면,

'생태축 복원으로 야생동물이 이동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야 충분히 공감을 하는 바이지만, 이어서 등장하는 18번 노래처럼, '일제 강점기 때 도로 개설로 끊어진지 83년만에...',  '생태축 복원과 함께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의미가 있다”하는 부분에서 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네.

 

땅 껍데기 조금 벗겨낸다고 맥이 끊어지며 민족성이 자빠지나? 흙 좀 갖다 부으면 죽었던 민족성이 살아나고? 그래서 83년동안 나가있던 민족성이 돌아왔는가?

 

 

육십령 때도 산림청에 항의를 했다. 산림청 보도담당 대변인과 통화를 하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 했는데 그들의 레파토리는 여전하다. 육십령, 이화령이나 여기 벌재도 마찬가지로 일제가 도로를 내기 전에는 길이 없었나. 아마도 내 짐작에 신라시대부터 있었을만한 고갯길이다. 조선시대에는 과거길이었을 테고, 가마타고 넘고 소달구지가 넘기도 했을 길이다. 이화령은 조선시대에 '영남대로'였다. 그렇게 예전부터 있던 길을 일제시대에는 자동차가 넘어다니게 좀 더 넓게 확장하지 않았겠나. 그리한게 일본놈들이 민족정기를 훼손코자 단절했단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어쨌든, 소설같은 소리를 다 빼면 결국은, 생태축을 이어 동물 이동이 자유스럽게 한다는게 전부인데, 그거 할라꼬 40억을 갖다 붓나 말이다. 이화령이나 육십령도 그렇고 여기 벌재는 더 그렇다. 저런 육교 없어도 산짐승 지나가는데 크게 문제될게 없다. 시속 100km 이상 달리는 도로에서 로드킬이 발생하고  생태축이 원활히 이어지지 않는것이지, 이런 한적한 시골길에서야 문제될게 뭐 있나. 없는거 보다야 낫겠지만, 160억이나 갖다 부을 일이 아니지 않나. 지나가는 고라니한테 물어봐라. 이런거 없으면 못 지나가냐고.

사대강 자전거 도로 내는데 22조 갖다 부었는데 꼴랑 160억 갖고 왠 시비냐고?

 

 

정작 생태축을 이어야 할 곳은 추풍령이다.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고, 경부고속도로에 국도까지 생태통로는 완전히 단절되어 사람을 제외한 어떤 동물도 건너갈 수가 없다. 사람도 건너가려면 지하통로를 빠져나가 다시 고가육교를 통해 건너가는데, 그것도 IQ가 100은 넘어야 가능한 구조다. 진정으로 생태축 단절을 걱정한다면 추풍령 생태통로를 어떻게 이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기 바란다.

 

 

 

 

벌재부터 월악산국립공원 구역이다.

 

감시카메라(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신문기사를 보면 고라니, 오소리, 족제비가 지나가더라며 생태육교 설치 효과를 광고하더라. 이런 짐승들은 육교 없어도 잘도 지나 다니더만... 사람 감시도 하는지 모르겠다만, 객꾼 한테는 국립공원 출입 허가쯩(공문)이 있다하니 겁 낼(?) 일 없이 보무도 당당히 지나간다.

 

 

 

 

법정탐방로이므로 출입을 합니다 (희망사항)

 

1차에 10만원이면 2차부터는 10% 할인 안되나?

둘이 걸리면 한 사람 공짜~!,  세번 통과시 무료~!

이런게 있어야 사랑받는 궁닙공원이 될텐데 말이다.

 

 

 

천주봉 - 공덕산

 

×927.3봉을 지나면 남쪽으로 조망이 트이면서 11시 방향에 보이던 천주봉이 9시 방향에 와 있고, 동로면 소재지도 훤하게 보인다. 전방에 보이는 하얀 바위산. 치마바위에 가서 점심을 먹자 한다.

 

 

 

치마바위

 

멀리 치마바위가 보인다. ×1,004.5봉을 전 후한 화강암 절벽이 치마를 펼친 것 같다 하여 생긴 이름.

 

 

폐맥이재  시료채취

 

폐맥이재 (폐백이재,  820m)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혼자서는 이 길을 지나지 않는다는 고개. 곱게 차려입은 새색시가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는 광경을 떠올려 폐백이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벌재 직전의 돌목재도 그렇고,  여기도 마찬가지로 바로 옆에 넓은 벌재를 놔두고 더 높은 여기로 넘어 다닐 일이 있었겠나 싶다.

 

 

 

×1,004.5m  치마바위에서

 

발 아래로는 치마처럼 넓게 자락을 펼친 화강암 절벽인데, 오금저리는 장면이라 오래 내려다보지도 못하겠다.

 

 

점심을.

 

 

 

 

마가목

 

 

 

 

월악산 권내에 들었음인지 암릉으로 이어진다.

 

 

 

 

여우목고개 - 운달지맥

 

교수님이 하늘재라 하길래 그런가보다 해놓고는, 자세히 짚어보니 여우목고개다. 하늘재 같으면 우측에 하얀 바위산 포암산이 있어야 하는데, 우측 높은 산은 대미산(1,115.1m)이다. 대미산에서 백두대간은 여우목고개가 아니라 우측으로 휘돌아간다. 대미산 너머로 만수봉, 포암산, 부봉, 주흘산, 조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하늘금을 그리고  있다.

 

 

 

황장산 (우측)

 

황장재로 떨어졌다가 다시 오를 일이 걱정이 되었는데, 산길은 앞 첫봉 우측 사면으로 비스듬히 올라간다. 그렇더라도 여기서 보이는 그대로 급비탈이라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다.

 

 

 

날등바위

 

 

 

 

 

 

황장산 (1,0781.m △단양24)

경북 문경시 동로면에 위치한 황장산의 이름은 예로부터 왕실에서 대궐이나 임금의 관, 배 등을 만드는데 사용하던 황장목에서 유래한 것이다. 목질이 단단하기가 으뜸이고 결이 고운 것으로도 최고의 가치를 지닌 소나무가 많이 생산되어 이러한 나무의 관리를 위해 벌목을 금지하였다. 또한 이 산을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관리 감독케 할 관리까지 파견하여 감시하였던 곳이다.

 

황장산에 대해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산경표에는 작성산(鵲城山)이란 이름으로 표기 되어 있는데 까치집을 닮은 산세에서 유래한 것으로 산기슭에 자리한 문안골에는 고려시대에 축조된 작성(鵲城)산성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황장산이 있는 동로면은 고려시대에는 작성현(鵲城縣)이었다.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에 황장산(黃腸山)을 봉산(封山)으로 정한 표석이 있다.

봉산은 나라에서 궁전·재궁(임금·왕대비·왕세자비 등의 유해를 모시는 관선박 등에 필요한 목재를 얻기 위하여 나무를 심고 가꾸기에 적당한 지역을 선정하여 국가가 직접 관리·보호하는 산을 말한다. 소나무의 재질이 우수하여 1680(숙종 6) 봉산으로 정하고 황장산이라 하였는데, 이때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黃腸山封山標石  경북문화재자료 제227호)

 

 

삼각점 (△단양24)

 

풀섶에 덮힌 삼각점을 찾아냈다. 기반이 없이 묻혀있어 삼각점번호는 지리원 홈페이지에서 확인

 

 

비실대는 후미조

 

 

 

 

뻗었다

 

 

황장산 산이름이 수상하다.

황장산으로 알고 올라왔고, 정상석도 黃腸山(황장산)인데, 정작 국토지리원의 고시지명이나 지형도 표기지명은 皇庭山(황정산)이다. 정상석 옆면에는 '一名 鵲城山'이라 새겨져 있다. 이 정상석은 10여년전 백두대간 때도 그대로 있었던 정상석인데 그때야 내가 뭘 알았나. 제대로 좀 찾아보자.

 

 

 

산경표 (작성산)

 

 

대동여지도(작성산)

 

 

 

1917 조선지형도 黃場山(황장산)

 

 

 

  1/50,000 지리원 지형도 단양도엽 (1990년대)  黃腸山(황장산)

 

 

2015 국토지리원 지형도 皇庭山(황정산)

 

조선시대를 포함한 예전에는 鵲城山(작성산)이었다가 1917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지도에 黃場山

국토지리원 발행  5만분의1 지형도 (1990년대에 쓰던 지도)에 黃腸山(황장산)으로 옳게 표기되었는데,

그 후 지리원에서 지형도를 새로 제작(2014년)하면서 皇庭山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한 때 옳게 표기되었던것이 최근에 엉뚱한 글자로 바뀐걸 알 수 있다.  

 

 

 

문경시청 홈페이지

 

"황장산이라 부르는게 옳다"라 하면 끝인가. 지명위원회를 열고 절차에 따라 지형도의 표기를 변경해야 비로소 옳다라 할것이다. 황장산은 온전히 문경시 영역에 있기 때문에 다른 자치단체 의견을 물을 일도 없다. 문경시청에 또 상소장 올려야겠네.

 

 

 

 

황장산에서 차갓재로 가는 길

 

황장산에서 40분 쉬었다. 후미조 둘이는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리니 어쩔 수가 있나. 황장산에서 북쪽으로 나서면 절벽길이 나온다. 굵은 로프가 걸려있어 별 어려움은 없고, 멧등바위에서 내려서는 절벽은 팔 힘 좀 써야 된다. 오늘같이 조은 날씨에야 별 일도 아니지만, 겨울철 눈이 내리고 얼어붙어 있을 때, 딸내미들 데리고 올라간다고 생씨껍을 했다는 객꾼이다.

 

 

도락산 (965.3m)

 

 

 

멧등바위

 

 

멧등바위에 서면 차갓재를 지나 대미산과 운달산, 월악산이 아득하고, 북으로는 도락산의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그림같은  능선이, 북동으로는 수리봉, 신선봉, 황정산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그 너머 멀리로 소백산이 가물거린다.

 

 

 

차갓재

송전철탑 있는데가 차갓재, 직전 안부는 작은차갓재

 

 

 

 

멧등바위 절벽

 

 

 

 

딸내미들 데리고 여기를 어떻게 올라갔노?  그것도 한 겨울에~

 

멧등바위 절벽을 내려와 6분 후, 정북으로 가는 능선에서 왼쪽으로 떨어진다. 정신없이 가다가는 대간길을 벗어나기 좋은 지점이네. 정면 길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생달리 / 주차장에 내 차가 보인다.

 

 

 

멧등바위

 

 

 

 

작은차갓재

 

작은차갓재(750m)

×815.4봉을 넘어야 진짜(!) 차갓재인데, 여기서 산행을 마치고 내려간다. 뚜렷한 길 따라 13분 내려가니 출입금지 간판에 로프로 막아놓은 안생달 들머리다. 

 

차갓재 이름은 고개넘어 명전리에 속한 차갓마을에서 딴거 같은데 유래를 찾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경남도계를 진행하고 있어 자연히 도계에 관심이 가는 바라, 백두대간 너머에 있는 경북땅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 문경땅 중에 백두대간 너머 충청도쪽에 속한 유일한 마을이다.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마을을 만든다. 산줄기는 양쪽 마을을 단절시켜, 말씨가 다르고 풍습이 달라 다른 생활권을 형성하게 마련인데 문경에서는 유독 명전리만 산 너머 충청권에 속해 있다. 실제로 명전리 사람들은 "했니껴?" 보다는 "했슈~?" 한단다. 적(籍)은 경상도에 두었지만 몸은 충청도 사람이다.

 

자료를 찾다보니 재미있는 전설이 있는데, 조선이 개국하면서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이 조선팔도 물이 다 한양으로 모이는데, 오직 경상도만 물이 한강으로 오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명전리를 경상도로 편입해 경상도 물이 한양으로 오게 했다는 이야기다.

 

이 전설이 뻥이라는건 백두대간, 정맥을 해 본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를 챈다.  한양은 한북정맥과 한남정맥 울타리 안에 갇힌 동네라 한북 이북과 한남 이남의 물은 한양으로 갈 수가 없다. 오로지 한강 수계의 물만 한양으로 모이게 된다. 경상도 물은 억지로 만들었다 치더라도 전라도와 함경도 평안도는 조선팔도에 포함이 안되나 보지.

 

 

 

카메라가 작다보니...ㅠㅠ

  

 

 

 

 

 

동굴와인까페

 

10여년 전에는 안생달마을에 한백주양조장이 있었는데, 세련된 와이너리로 바뀌었고, 여기 CAVE는 자연동굴을 와인카페로 개조했다. 주차장에 차가 좀 있는걸로 봐서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 모양이다. 주인한테 양해를 구하고 앞마당 데크에 텐트를 치기로 한다. 바로 앞 개울물에 아쉬운대로 흐르는 물에 바가지로 떠 끼얹으며 몸을 씻고, 나는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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