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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녹색평론에 기고한 글입니다.
마을 도서관 만들기- 꿈꾸기와 어려움
지난해 연말에 생명평화 탁발순례 단이 대구. 경북지역 순례를 마치는 자리를 통해서 가진‘농촌, 농업을 생각하는 토론 모임’에 참석했다. 모든 토론회가 늘 그렇지만, 수많은 말들이 오고갔다. 언제 부터인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토론모임에서 말보다는 느낌으로 기억을 남기고 있다.
말과 글이 다 너무 많아져서 그걸 기억하기가 어려워져서 그런 것 같다.
그날 토론회를 마치고,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 ‘천규석 선생님’ 이시다.
선생님께서는 당신께서 말씀하실 시간에 ‘40년 농민 운동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지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이제 이런 토론 자리에 나가는 것도 지겹다. 오늘도 정말 오기 싫었는데, 젊은 친구들의 사정에 못 이겨 왔다.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다른 건 다 기억나지 않는데 ,그 말을 할 때 선생님 모습은 뚜렷이 기억에 남는다.
왜 그럴까?
선생님의 지금 모습이 20~30년이 지나서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다.
게임을 할 때 언제나 지는 자리에 서는 사람이 있다.
대중보다 한 발짝만 앞서 나가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기를 속일 수 없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다.
지금 이글도 그 실상은 지는 게임을 알면서 한 기록이다.
그러나, 눈 밝은 사람은 이런 글속에서 보석을 캐낸다.
책과 관련해서 나는 해볼 수 있는 실험을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돈을 벌 때는 책을 많이 사서 봤고, 좋은 책은 여러 권사서 선물하기도 하고, 책꽂이에 책이 많아지면 공공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하고, 책 여행을 시켜보기도 하고........
지금은 돈을 벌지도 못하고, 공공도서관에 좋은 책들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못따라갈 정도로 많이 들어와서 거의 사지 않게 된다. 거기다 이제 2년째 되는 우리 마을 ‘농민 도서관’에도 책이 만권 가까이 된다.
내가 사는 곳은 차가 없는 사람이 읍내에 다녀올려면, 차비만 왕복 4천원이다.
부부가 아이와 함께 읍내에 다녀올려면 차비만 만원이 든다. 농촌지역에서 대부분 문화 공간이 읍에 있는 걸 생각하면 문화를 누리기엔 우린 정말 열악한 조건이다. 도시 아이들이 거의 생활 공간처럼 느끼는 게임방도 이곳 아이들은 일년에 한 두 번 접하게 되는 문화체험이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에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책을 볼 수 있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고, 바둑, 장기를 둘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악기를 연주해 볼 수 있고, 차를 마시며 작은 모임도 할 수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내가 사는 마을에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책을 마을회관에 가져다 놓고 북, 장구 이런 악기를 가져다 놓을 생각이었다.
마을 회의에서 합의한 일인데도 한두 달 지내보니 마을 어르신들 중에서 싫어하는 분들이 있었다. 농촌 마을에는 글을 못 읽으시는 분들도 많고, 평생 책을 보지 않고 살아왔는데, 늘 이용하는 마을 회관에 책이 있는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작은 농촌 마을에서 독립된 문화 공간을 꿈꾸는 건 이제 정말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현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엔 농민회를 목표로 설득을 시작했다.
전라남도에는 탄탄한 조직력을 가진 지역 농민회가 많이 있다. 내가 속한 곡성군 농민회는 곡성 지역 자체가 인구 3만 정도인 워낙 작은 군이라 큰 힘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곡성 내에서는 자발적인 회원 활동이 일어나는 거의 유일한 민주사회단체이다.
거기다 죽곡면 지회는 곡성 내에서도 회원 활동이 제일 활발하게 일어난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회원 활동이 잘된다는 이야기는 술을 많이 먹는다는 이야기하고 바로 이어진다.
술 먹으면서 하는 조직 활동은 곁으로는 잘되는 것 같아도 몸과 함께 결국은 조직도 파괴된다. 나는 그 끝을 알고 있었고, 이걸 바꾸고 싶었다.
‘우리가 하는 농민 운동이 꼭 정치활동 성격만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문화 소외지역인 우리 면에서는 문화 활동도 중요한 조직 운동이 될 수 있다. 문화라는 눈을 운동에 도입하자.’
이런 이야기를 몇 달에 걸쳐서 한 뒤에 비어있던 죽곡농민회 사무실을 도서관으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끝까지 논쟁이 됐던 건 관리 문제였는데, 책은 이제 아주 흔한 것이어서 없어지는 책이 있겠지만, 더 많은 책이 들어 올 수도 있다는 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해서 24시간 개방하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열기로 했다.
이름도 공모를 통해 ‘농민도서관’으로 했다.
이쁜 이름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런 이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이 우리에겐 부족했다. 늘 아쉽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나무를 사와서 서가를 꾸미고, 지역내 주요 단체에 공문을 보내고, 농민회원과 이장들을 통해 마을에서 책을 모았다.
농촌 면소재지에 농민들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도서관을 여는 건 우리 군 전체에선 큰 화제가 되는 일이어서, 도서관 개관식을 하는 날엔 손님들이 많이 왔다.
마침 그날이 복날이어서 개도 잡고, 닭도 잡고 걸진 잔치를 벌였다.
처음엔 2천권 정도로 시작했는데, 잔치 효과가 나면서 책이 모이기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5천권을 넘어섰고, 2년이 조금 못된 지금은 만권 가까이 책이 모였다.
거기까진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을문고법’이란게 있었다.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지역 군에서 설립을 인가해 주는건데, 곡성군에서 우리 도서관을 마을문고법에 따른 문고로 인가를 해줬다.
이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처음엔 잘 몰랐다.
그뒤로 일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엔 농촌에 사용되는 이런 저런 기금이나 예산이 많이 있는데, 이런 돈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법 기준이 필요하다.
문고 인가뒤 우리 도서관은 이런 돈이 들어올 수 있는 기준이 된 것이다.
우리는 군에서 책구입 예산을 지원받았고, 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진행하는 소외지역도서보급사업에도 선정돼서, 분기마다 ‘우수문학도서’가 100권 정도 들어온다.
우수문학도서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대출율이 높고, 도서관이 잘못하면 오래된 책의 창고가 될 수 있는 문제를 풀어 준 우리 도서관 활성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보문화진흥재단으로부터는 지역 정보격차 해소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서 무상으로 컴퓨터 10대를 지원받아 설치하기도 했다.
올해는 전라남도 예산에서 3천만원을 배정받아 건물 증축도 예정되어 있다.
이게 얼마나 이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다음 단계는 빔 프로젝트를 이용한 작은 영화관 정도를 건물 증축과 함께 진행해 갈 것 같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꿈꾸는 성공 드라마에 불과하다.
정말 어려운 건 이런게 아니다. 양심을 속일 줄 알면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말면 된다.
우리나라엔 관리하는 사람없이 24시간 개방하는 도서관은 없다.
그런 걸 꿈꾸면 지는 게임을 하게된다.
나는 그냥 도서관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이 되어 관리하고, 24시간 개방하고, 잠도 잘 수 있어서 일정 정도 피난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그런 걸 생각했다. (가정 폭력이 심한 집이 있어서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부부싸움하고 나면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도 가끔은 혼자 있고 싶기도 하지 않나 그럴 때 도서관에 가서 책보거나 쉬었다가 그대로 잠자고 오면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현실에서는 대부분은 술이나 담배로 해결할 것 같다.)
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의미보다는 개방성이라는 열린 이미지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런 열린 공간을 만들려면 높은 수준의 자율, 자치 의식이 있어야한다.
그러나, 한번 상상해 보자. 현실이 어땠을지...
나는 아이들이 많이 이용할 수 있게, 만화책을 가능한 많이 모았다.
아이들은 즐겁게 이용했고, 마음껏 어질렀고, 컴퓨터에는 늘 바이러스가 떠다녔다.
농민회원들이 치우고 치우고해도 늘 그랬고, 거기다 좁은 공간에 서가가 다 채워진 상태에서도 책이 계속 들어왔다.
바이러스로 고장난 컴퓨터를 수리하는 돈도 우리들 자치 활동 예산에서는 보통 부담이 아니었다.
집요하게 관리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 힘을 얻기 시작했고, 개방성을 중심으로 생각한 내 의견은 힘을 잃었다.
결국 문에 열쇠가 잠겼다.
물론 가까운 가게에 열쇠가 있어서 원하면 누구나 열고 들어갈 수 있지만, 요즘 세상에 아이들이 그런 장벽을 넘고서 도서관에 갈 아이는 없다.
문을 잠근 이후 이용율이 급격히 떨어지자, 관리하는 사람을 몇 달간 고용하기도 했지만,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나.
문이 잠긴지 멀마뒤에 도서관 창문이 깨졌다.
쓰리고 아픈 심정으로 그걸 봐야했다.
자율, 자치, 개방성의 실험 공간 도서관의 꿈이 그렇게 깨어진 것이다.
지금은 도서관 증축 뒤에 관리를 어떻게할 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작은 공간 관리도 사실상 실패했는데, 건물 크게 짓고, 문 잠그고 있는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중요한 제안으로 나온게 1층에 가게를 유치해서 무상으로 쓰게하고, 관리 책임을 맡기는 안이다.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면소재지에 새로운 가게를 여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인 고령화율에서 곡성같은 지역은 고령화 사회인 25% 수준이다. 이것도 읍내가 들어가서 그렇지 면을 기준으로 하면 30%가 넘는다.
10년 뒤에는 다른 이유없이 사망 인구로만 인구 1/3이 줄어드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게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경제 사업, 정치 활동 중심의 농민 운동은 어떻게 하든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농민 운동이 문화 활동으로까지 성숙하기엔 벽이 너무 많다.
사실 이건 농민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다 눈 앞에 보이는 것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순과 고통, 빈곤은 사실 드러난 문제만 가지고 풀 수 없다.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단순히 돈이 없어서 그런게 아니다.
돈없다 돈없다 하면서도 아이들 학원은 죽으라고 보낸다.
그렇게 학원에 간 아이는 경쟁 교육에 시달려서 정신이 황폐하게 된다. 황폐해진 정신은 폭력과 갈등을 낳고, 결국 파괴된다.
고통의 진정한 원인은 돈이 아니다.
돈이면 모든 게 다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고통의 진정한 원인이다.
눈 앞에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을 익혀야 고통에서 놓여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런 걸 얻을 수 있나?
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근대 계몽 운동가들이 농민들 속으로 들어와서 한 가장 중요한 일이 글을 읽고 쓰는 일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남과 소통이 있고, 생각을 키워가는 이런 활동은 시대를 떠나서 중요한 일이다. 이 일은 지속해서 꾸준히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활동이 가능한 공간을 생활권 내에서 자꾸 만들어 가는 노력도 할 수 밖에 없다. 죽곡농민회가 진행한 도서관 운동은 아주 소박하게 집에서 자기가 보던 책을 한자리에 모으자는 정도 생각에서 시작했다. 단순한 지침을 가지고 한 일이지만 단순했기 때문에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고, 투쟁력을 가진 운동가 중심의 전위 운동에 지쳐있던 우리는 지역 대중이 함께 하는 운동 가능성을 실제로 경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마을 도서관 운동은 독립된 도서관 운동이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자율적인 활동 기반을 다지는 운동이면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을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여기까지 성공해야 진정한 성공이고, 해방의 길이다.
우리는 외부의 폭력 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폭력 때문에도 고통받고 있다.
보르헤스라는 남미 아르헨티나의 작가이면서 국립도서관장을 지낸 분이 천국이 어떤 곳일까 하는 상상을 하다가 ‘도서관’ 같은 곳일 거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누구나 돈이 없어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너와 나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고, 연애도 하고, 미래를 준비하기도 하고..., 도서관은 천국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면서도 천국을 상상했는데, 여기다 ‘마을’이라는 자율과 자치, 진리와 자애의 공동체가 결합된다면 이건 천국 위의 천국이다.
천국을 꿈꾸는 것 만해도 불경스러운데, 천국 위의 천국을 꿈꾸는 나는 천벌을 받을 지도 모른다.
그 벌은 굴려도 굴려도 끝나지 않는 시지프스의 바위를 영원히 굴리는 것이다.
내가 지난해 본 천규석 선생님의 모습은 이 땅에 천국을 만들고 싶었던 -아니 최소한 인간이 야만으로 전락하는 것만은 막으려고 한 - 인간이 평생 지고 왔던 짐에 지친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또 내 모습이기도 하고, 자율과 공생의 골고루 가난한 생태 사회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운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첫댓글 마을 작은 도서관을 꿈꾸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천국위의 천국이란 말이 다가옵니다. 많은 느낌들을 주는 글인듯 합니다. 곱씹고 곱씹으면서 느낌들을 정리해야 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