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50330월 Thule Syabru 2210m-Laurebina 3900m
아침부터 졸리다. 밀크티에
계란후라이에 티벳빵을 주문했건만 잘 먹히질 않는다. 남은 빵을 조각 내어 배낭에 챙겨 넣는다. 설마 고소증세는 아니겠지. 잠도 잘 잤는데. 아무래도 걸어야 나아질 것 같다. 확실히 나는 걷는 게 편하다. 조금 힘들어도 날씨가 잔뜩 흐려서 뜨겁지 않아 좋기는 한데 비가 올 것만 같다. 1시간만에 고도 325m를 올렸다.
빔센이 나름 지름길이라고 찾아서 가는 길은 때로는 돌담으로 막혀 있고 때론 간간이 있는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어제의 집시 같은 스위스 부부는 길을 잘 찾아서 가고 있을까? 우리나라
산기슭과 비슷한 이 곳엔 이 곳 주민들도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고 비싸게 팔리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아깝다. 네팔짱 한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잘 다니고 있나? 사모님과 따님이 연락이 안돼 무척 걱정하는 것
같더라’ 등의 대화를 나눈다. 2640m에 간이 휴게소에서
생강차 한 잔을 시켜놓고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으니 없단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는 수 없이 돌담 뒤 적당한 곳 소 똥이 널려 있는 곳에 숨어 소처럼 말처럼 일을 본다. 네팔 국화 랄리구라스가 군락을 이루어 만개한 모습이 우리나라 만개한 벚나무 단지처럼 아름답다. 두 대의 헬기가 강진곰파로 향한다. 그 중 한 대는 곧 되돌아 나온다. 아무런 사고가 없기를 바라며 또 오른다. 09:40 Mu Kharka에서
밀크티를 마시며 또 휴식을 취한다. 쉴 수 밖에 없다. 내리막은
전혀 없고 계속 오르막이다. 오늘 1700m를 올라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소증세가 없다는 것이다. 보온용 옷을 껴입고
출발하려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빔센은 주인아주머니와 작별이 아쉬운지 한 참을 서서 이야기한다. 내가 기다려 줘야지. 작은 비가 눈으로 바뀐다. 하늘에서는 연상 엄청난 천둥소리를 낸다. 단 한 차례의 내리막도
없는 곳을 오르는 요령은 꾸준히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호흡에 맞춰 가능한 갈지자를 아주 길게 잡고 오르는 것이다.
네팔 부녀가 소리 없이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소리 없이 구름처럼 사라진다. 나는 발걸음 보다
숨소리가 바쁘건만 네팔리 부녀는 소리 없는 숨소리보다 발걸음이 빠르다. 눈송이가 제법 커지고 많아진다. 지난 겨울 녹지 않고 쌓여있는 곳에 이른다. 히말라야 신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축복이라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자. 그런데 평소 쉴만한 장소마다 쓰레기가 넘친다. 트레커가 버렸다면 처음부터 오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고, 네팔리가
버렸다면 정부차원에서 교육을 시켜야 할 문제다. 심각하게 쏟아지는 눈을 헤치고 12시 정각에 3584m 촐랑파티에 다다른다. 5시간동안 약 1400m를 오른 셈이다. 길에선 보이지 않던 트레커들이 휴게소 난로 주변에 모여 있다. 대부분
고사인쿤드로 향하다 눈이 많이 와서 되돌아온 사람들이다. 영국 아가씨들, 그리스 노부부, 이스라엘 청년들이 즐겁게 떠드는데 내가 끼일 틈이
없다. 그들의 유창한 영어 속에서 쓸데 없이 고생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밀크차를 마시며 메모를 한다. 45분간의 휴식을 마치고 라우레비나로 떠나려 하자 이스라엘 청년이 walking을
계속할 거냐고 묻는다. 75일간 계속할 거라 답하고 떠난다. 하여간
눈 속을 걷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눈은 여전히 계속 쏟아진다. 다행으로
길이 넓어진다. 경사도 덜 심한 것 같다. 고소증세도 전혀
없다. 한 겨울에 설악을 오르듯 지리를 오르듯 한라를 오르듯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설경을 만끽하며 오른다. 히말라야에 점점 깊숙이 빠져든다. 촐랑파티로 내려가는 이스라엘 가족을
만나 즐겁게 인사를 나눈다. 11살 딸에게 악수를 청하니 예쁜 미소를 짓는다. 아랫동네에 이스라엘 청년 둘이 있다고 하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방천지에 있다며 애 아버지가 웃으며 말한다. 정말 많다. 촐랑파티를 떠난 지 정확히 한 시간 만에 라우레비나에
도착한다. 도착과 동시에 어제의 스위스 부부를 만난다. 참으로
묘하다. 이렇게 한 번 보고 두 번 보면 친해지는 모양이다. 그들도
나처럼 내일 고사인쿤드 통과가 어려우면 모레 시도할 계획이란다. 이 곳에도 난롯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젖은 신발 옷 등을 말리며 여러 색깔의 영어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선 닭 스프에 아침에 먹다
남긴 티벳 빵으로 요기를 하며 비록 사투리이지만 살아있는 영어듣기를 한다. 그런데 시험을 치르면 점수는
안 나올 것 같다. 오늘 1700m의 고도를 올랐다. 10일 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GOSAINKUND로 알고 있는데 여기 저기에 GOSAINKUNDA로
적혀 있다. 지도에 표시된 것은 어찌 다를까? 밥 먹고 할
일이 없어 난롯가에 앉는다. 프랑스청년 둘과 스위스 부부가 불어로 대화를 나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또 한 사람은 순수 영어권 사람인듯한데
열심히 메모를 하다가 시끄러운 와중에 독서를 한다. 넷 중에서도 오직 한 사람 프랑스인만 계속 이야기한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고 대화 상대도 없어 등산화와 젖은 옷가지를 말린다. 그리고
불장난이다. 일반 세상과는 완전히 두절된 상태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참으로 특이한 경험이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난롯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아보자. 지금 보니
스위스 부부의 머리기가 레게 머리다. 남자의 땋은 머리는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여자의 머리는 짧고 귀염성이
있어 보이고 상냥하다. 5시가 넘어서도 가는 눈발은 계속되고 오늘의 일과를 정리하고자 내 방으로 오른다. 6시 현재 실내온도 4도에 창 틈으로 눈발이 쳐들어 온다. 밖에는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방음이 전혀 안되 계속 시끄럽다. 내리는 눈으로 사방이 막혀 랑탕리룽, 가네쉬히말, 히말출리, 마나슬루 등을 조망할 수가 없다. 저녁을 먹으러 가보니 프랑스인 스위스인 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내 또래의 독일인 셋이 추가되었다. 내게 관심을 갖고 이 것 저 것 등등 묻는다. 포터, 가이드 들도 자리를 함께 하니 난롯가가 북적댄다. 독일인들이 담배
피우러 나간 사이 GORKHA에서 왔다는 네팔 가족들이 모여든다. 젊은
친구가 부모와 누나 질녀 등등을 데리고 온 모양이다. 13살 소녀 리사가 젖은 운동화를 말리는 것 등을
도와주었더니 젊은 엄마는 고맙다며 커피를 대접하려 한다. 그들도 내일 고사인쿤드로 간단다. 어린아이 그리고 그들 부모가 가능할지 걱정이 된다. 방이 너무 추워
난롯가에서 9시까지 버티다가 냉방으로 향한다. 남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술을 마신다. 괜찮겠지. 나도 한국인을
만났으면 좋겠다.